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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34화 (134/653)

134화

도리안은 바로 숙소에서 튀어나가 하분 성에서 가장 높은 중앙탑을 올랐다.

“어? 도리안?”

“네가 왜 여기에 온 거냐?”

탑 최상층에서 경계를 서던 경비병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 지금 시간이 없어요!”

도리안은 고개를 저으며 달려가 경종을 내리쳤다.

땡! 땡! 땡! 땡! 땡!

순식간에 다섯 번의 종이 울리고, 웨이브와 같은 수준의 최고 경계가 발동되었다.

“너, 너 미쳤어?”

“이런 젠장!”

경비병들이 도리안의 팔을 당겼지만 이미 늦었다.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자던 병사들이 중앙탑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뭐, 뭐야!”

“갑자기 경종이라니! 무슨 일이야!”

“다섯 번이면 웨이브밖에 없잖아!”

“도리안이잖아! 네가 왜 거기 있어!”

병사들은 경종을 울리고 있는 도리안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몬스터가! 서쪽에서 몬스터가 밀려온다고 합니다!”

도리안은 계속 경종을 치면서 라온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읊었다.

“몬스터? 무슨 헛소리야!”

“서쪽에서 왜 몬스터가 나와!”

“이 멍청아! 주변의 몬스터는 전부 로드에게 복속됐잖아!”

“꿈이라도 꿨냐! 당장 내려와!”

설격대 검사들과 병사들은 욕설을 뱉으며 도리안에게 내려오라 손짓했다.

“도리안!”

“그만 좀 해!”

“라온 님이!”

경비병들이 도리안을 말리기 위해 다가갈 때 그의 입이 다시 열렸다.

“라온 님이 말했어요! 서쪽에서 몬스터가 온다고! 웨이브만큼은 아니지만 더럽게 많다고!”

“헉! 라온 님이?”

“그분이라면 미, 믿을 만하지.”

“믿을 만한 정도가 아니라, 믿어야지!”

“당장 움직여!”

“방어 준비를 해라!”

“다시 경종을 쳐!”

병사들과 설격대 검사들은 라온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리안을 말리려던 경비병들도 함께 경종을 쳤다.

“몬스터라고? 어떤 몬스터를 말하는 거냐!”

뒤늦게 뛰어나온 테리안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대체 뭐가 오는 건데! 종류에 따라 대비 방법이 다르잖아.”

“웨이브처럼 트롤하고, 오크, 해양 몬스터들이 섞여 있대요. 그리고….”

도리안이 심호흡하고서 말을 이었다.

“에덴의 귀신 두 놈이 끼어있다고 합니다!”

“에, 에덴? 오마의 에덴?”

“그 미친놈들이 온다고?”

“말이 돼? 그놈들이 여기에 왜 있어!”

“무슨 개소리야!”

병사들이 입을 떡 벌렸다. 몬스터까지는 믿어도 에덴이 온다는 말은 믿지 못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 진짜! 제가 아니라! 라온 님이 말씀하셨다고요! 에덴도!”

“그럼 진짜로군. 전투를 준비해라! 병창을 열어!”

테리안은 라온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망설임 없이 전투 지시를 내렸다.

“라온의 말이면 정말이잖아! 빨리 움직여!”

“에덴이 온다! 더 빨리 방어 태새를 갖춰!”

“창과 검을 들고 성벽에 서라!”

“기름을 끓이고, 바위와 통나무를 준비해! 바닥에 화살을 깔아라!”

병사들도 라온의 말이라니까. 의심을 지우고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도리안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병사와 검사들을 보며 콧등을 좁혔다.

‘다 때려치울까.’

자신의 말은 조금도 믿지 않던 사람들이 라온의 말이라고 하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게 아니꼬워졌다.

‘어쩔 수 없지.’

서글픔을 참으며 성벽으로 올라갔다. 라온이 서쪽을 노려보며 물 흐르는 듯한 기세를 피워내고 있었다.

“음….”

도리안이 마른침을 삼켰다. 성문 위에 서 있는 라온을 보자, 밀랜드가 자리를 지킬 때처럼 불안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진짜 괴물인가?’

자신의 미약한 무력으로도 느껴진다. 라온이 한층 더 발전했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놀라움이 깃든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라온의 빠른 지시 덕분에 적들이 오기 전에 먼저 하분 성의 전열이 갖춰졌다.

웨이브 때처럼 보병과 창병들이 성벽 위에 섰고, 그 뒤를 궁병과 설격대 검사들이 받쳐 주었다.

“음.”

도리안이 뒤를 돌아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상하네.’

테리안이 방어 준비를 하느라 이곳에 없었기 때문에 설격대주 에드퀼이 라온에게 한마디 할 줄 알았는데, 병사들 이상으로 조용했다.

그는 라온의 말을 신뢰하는 듯 서쪽만을 바라보았다. 저런 싸가지 조차 변화시킬 정도라니, 라온이라는 사람의 존재감이 상상 이상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고오오오!

서쪽을 바라보던 라온의 기세가 급변했다. 개울처럼 매끄럽게 흘러가던 오러의 물결이 거친 해일이 되어 치솟았다.

“온다.”

그의 낮은 목소리를 따라 서쪽을 보았다. 얕은 숲이 무너져 내리며 몬스터들이 산사태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녹청색 파도의 중심에는 귀기를 흘리는 가면과 투구의 괴인이 있었다. 에덴의 주구. 청주귀와 빙아귀였다.

“지, 진짜였어.”

“정말 에덴이야.”

“처, 청주귀….”

“저건 빙아귀다!”

“끄윽….”

에덴의 귀신과 웨이브보다도 흉악한 기세를 풍기는 몬스터들을 본 병사들의 동요에 성벽의 군기가 출렁였다.

“자, 잠깐만! 저 뒤에 있는 거 로드잖아! 아이스 트롤 로드!”

“로드도 여기에 온 거야?”

“하, 함정이었어! 이걸 어떻게….”

“발광탄을 쏴라.”

라온의 차분한 목소리에 병사들의 떨림이 일순간 멈췄다. 뒤에 있던 병사가 하늘 위로 두 발의 발광탄을 쏴 올렸다.

퍼버벙!

어둠이 가시고 몬스터들의 일그러진 기세와 흉악한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작전을 짤 시간이 없으니, 했던 대로 간다.”

라온이 아직 보수가 끝나지 않은 우측 성벽으로 이동했다.

“예?

“그게 무슨?”

“내가 아래에서 막을 테니, 위에서 지원하도록.”

“라, 라온 님!”

도리안이 말리려 손을 뻗었지만, 라온은 이미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허억!”

“또, 또 한다고?”

“그걸 다시?”

“라온….”

“라온 님!”

설격대 검사들과 병사들의 눈동자에 경악과 경외가 어렸다. 전율을 느낀 듯 몸을 떠는 병사들도 있었다.

쿠구구구!

거신처럼 성벽 앞을 지키는 라온 덕분에 공포에 짓눌렸던 군기가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라온 님.”

도리안은 막강한 기세를 뿜어내는 라온을 보며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그 옆에 있던 에드퀄도 입술을 깨문 채 라온의 등에 시선을 고정했다.

*     *      *

라온은 돌진해오는 에덴의 귀신과 몬스터들을 보며 숨을 골랐다.

‘8할 정도인가.’

아직 회복이 끝나지 않아 전력의 8할 정도의 무력밖에 발휘할 수 없었다. 다만 크게 성장한 덕분에 웨이브 전보다 지금이 더욱 강한 건 확실했다.

‘그래도 혼자서 막긴 조금 버거울지도 모르겠군.’

청주귀, 빙아귀에 아이스 트롤 로드까지 있었다. 뒤의 몬스터들이 아니라, 저 셋만 상대하기도 벅찼다.

‘그래도 해야겠지.’

무인은 어려운 싸움을 겪을수록, 위기를 이겨낼수록 강해지는 법이다. 박동하는 심장을 느끼며 만화공을 끌어 올렸다.

“네놈이 여기에 있었다니! 행운이로구나!”

빙아귀가 땅을 박찼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공간을 파고들어 팔목의 칼날을 내리찍어왔다. 막강한 투기와 예기가 동시에 깃든 공격이었다.

쿵!

라온이 진각을 밟았다. 솟구치는 기운에 광아검의 검결을 담았다. 빛살처럼 뻗어 나간 검격이 빙아귀의 칼날을 쳐냈다.

쩌어엉!

쇳덩이가 찌그러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빙아귀가 휘청이며 튕겨 나갔다.

“이, 이놈이!”

당황했는지 투구 속 빙아귀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후우우웅!

하늘에서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청주귀가 펼쳐낸 얼음 주술이었다. 기온이 낮아지고, 얼음 조각이 괴이한 각도로 짓쳐들어왔다.

후욱.

호흡을 조절하며 칼날 위에 새빨간 꽃을 피워냈다.

만화공 화령.

붉은빛으로 명멸하는 꽃잎이 흩날리며 허공을 가득 메운 얼음을 녹이고, 청주귀가 펼친 주술의 선을 끊어버렸다. 공명하는 불의 고리가 이뤄낸 격의 파동이었다.

“이게 무슨!”

망가진 주술에 충격을 받은 청주귀의 가면이 바르르 떨렸다. 일순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 놈의 목을 노리고 달려가려 할 때 우측에서 무시무시한 투기가 타올랐다.

“크아아아!”

들소처럼 달려온 아이스 트롤 로드였다. 막대한 투기가 깃든 도끼가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터엉!

라온이 태화보를 밟았다. 밤의 그림자처럼 흐려진 그가 한 발짝 뒤에서 나타나 검을 쳐올렸다.

“크르륵!”

성장이 끝나지 않았다고 해도 로드는 로드. 그 순간 도끼를 틀어 완벽한 방어 태세를 갖췄다.

쩌어어엉!

힘과 힘이 격돌하며 터진 충격파가 어둠이 내려앉은 대지를 갈랐다.

“흐읍!”

라온이 이를 아득 깨물며 광아검을 펼쳤다. 빈틈의 냄새를 맡은 흉악한 칼날이 아이스 트롤 로드의 도끼를 쳐냈다.

쿠우웅!

균형을 잃은 아이스 트롤 로드가 밀려나며 뒤에 있던 오크 무리를 덮쳤다. 여섯 마리의 오크가 그 아래에 깔려 한 줌 핏물이 되었다.

쿠구구구.

피어나는 하얀 먼지 위로 라온이 검을 내렸다.

세 번.

고작 검을 세 번 휘두른 것으로 에덴의 두 귀신과 백 단위의 몬스터들이 멈춰 섰다.

그 압도적인 무력에 성벽 위의 사람도, 아래에 있는 몬스터들도 넋이 나간 듯 눈을 꿈뻑였다.

“겨우 이 정도라면 실망인데?”

라온은 가는 미소를 지으며 검을 세웠다. 은빛 칼날에서 흐르는 사나운 기운이 공간을 잠식해나갔다.

-무리하고 있으면서 허세를 부리기는.

라스가 코웃음을 쳤다.

‘그렇긴 한데.’

라온이 피식 웃었다.

‘난 앞만 막으면 그만이라서.’

왼손을 들어 움켜쥐자, 평온한 달빛을 가르는 화살과 쇠뇌가 하늘을 수놓았다.

퍼버버벅!

무방비 상태에서 화살을 맞은 몬스터들이 우르르 쓰러지고, 무릎을 꿇었다.

“다시 쏴!”

테리안의 호기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번 수백 개의 은빛 벼락이 떨어졌다. 이전보다 더 많은 몬스터들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역으로 기습을 당한 기분이 어때?”

“우리가 오는 걸 어떻게 알았지?”

“내가 감이 좀 좋거든.”

라온이 청주귀와 빙아귀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함정은 정말 잘 팠어. 깜빡 속았으니까. 하지만….”

꺼져가는 발광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건 위험 신호다. 내일 아침이 오기 전에 사령관님이 이곳에 오실 거다. 난 그전까지만 막으면 그만이야.”

“빙아귀. 이번만큼은 네놈이 옳았다.”

청주귀의 가면에서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로 음울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저건 지금 이곳에서 죽여야 할 놈이다.”

“죽인다? 너희들론 안 돼.”

“라 티아!”

청주귀가 지팡이를 내리치며 주술을 외웠다.

“크르르르!”

“캬아아아아!”

화살을 맞고 죽어가던 몬스터들이 좀비처럼 일어나 뻘건 눈빛을 뿜어냈다. 처음보다 더 흉악한 기세를 펼치며 살점이 끼어있는 누런 이빨을 드러냈다.

“계획을 수정한다. 1순위는 저놈이다. 저놈을 죽여라!”

“나 참.”

청주귀의 말을 들은 빙아귀가 킥킥 웃으며 다가왔다.

“그때보다 더 성장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 너 진짜 괴물이구나.”

놈이 시퍼런 눈빛을 발하며 투기를 끌어 올렸다. 거칠고 차가운 북해의 파도가 그의 주변을 맴도는 것 같았다.

“들었지? 네놈부터 죽이란다!”

빙아귀가 끌어 올린 기운을 폭발시키며 쇄도해왔다. 순식간에 커지는 샤크스팅의 투구.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속도였다.

그에 맞서 라온이 글래시아를 운용했다. 감각의 바다를 통해 빙아귀의 움직임을 읽으며 검을 내리쳤다.

쩌어어엉!

칼날 지느러미와 검이 맞부딪치며 대지의 축이 흔들리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빙아귀가 힘으로 밀고 들어온다. 대해의 해일을 맨몸으로 감당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콰아앙!

라온이 만화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리며 광아검을 후려쳤다. 빙아귀의 칼날을 튕겨냈을 때 놈이 상어처럼 몸을 뒤틀며 가시로 목을 노려왔다.

“뒈져라!”

“네가 죽어라.”

가시가 목젖에 닿기 직전 라온의 왼손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허리 뒤편의 진혼검을 뽑아 그대로 그었다.

촤아악!

요기가 깃든 칼날이 빙아귀의 갑옷을 베고, 뻘건 핏물을 맛봤다.

“이 정도 상처쯤이야!”

빙아귀는 물러서지 않았다. 흉폭한 샤크스팅의 특성을 가져온 귀신답게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다시 달려들었다.

“그대로 베어주지.”

라온이 섬뜩한 눈빛을 발하며 검을 뒤로 젖혔다, 그대로 일섬을 그으려 할 때 시야가 하얀 털로 가득 채워졌다. 상처를 모두 회복한 아이스 트롤 로드였다.

치이이잉!

우측에서 시야를 가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눈덩이들이 쏟아져 내린다. 청주귀가 발동시킨 눈 폭풍이다. 아이스 트롤 샤먼의 주술과 달리 눈덩이 하나만 맞아도 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

콰앙! 쾅!

라온은 쏟아지는 눈 폭풍 속에서 아이스 트롤 로드의 공격을 피하며 빙아귀의 칼날을 쳐냈다.

‘후욱!’

빙아귀, 청주귀 모두 익스퍼트 상급 이상의 무력을 지녔는데,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지닌 아이스 트롤 로드까지 상대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멍청하게 달려드니 그 꼴이지.

‘시끄러.’

라스의 조롱을 뒤로하고 검격을 뻗어냈다.

만화공 십화.

회천.

불꽃의 톱니가 회전하며 빙아귀의 칼날과 아이스 트롤 로드의 허리를 찢어발겼다. 계속 나아가려 할 때 청주귀가 얼음 주술로 벽을 만들어 움직임을 차단했다.

“쯧.”

이런 식이다. 이런 방해 때문에 끝을 볼 수가 없었다.

‘몬스터도 문제고.’

일반 몬스터들도 성벽을 뚫기 위해 광기를 휘감은 눈으로 달려들었다. 한순간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셋 중 하나만 빠지면 될 거 같은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때 성벽 위에서 두 사람이 뛰어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덜덜 떠는 도리안과 입술을 깨문 에드퀼이었다.

“도리안? 그리고 당신은….”

“로, 로드는 저희가 맡을게요!”

“너는 그 둘만 상대해라.”

도리안이 배 주머니에서 검은색 돌과 하얀색 돌을 꺼냈다.

“두 번이나 혼자 싸우게 둘 수는 없어서요!”

녀석은 두 돌을 부싯돌처럼 부딪친 뒤 로드를 향해 던졌다.

파아앙!

돌이 터지며 회색 연기가 치솟아 아이스 트롤 로드와 몬스터들을 뒤덮었다.

“가요!”

“알겠다.”

도리안과 에드퀼은 이상한 안대 같은 것을 쓰고 연기 안으로 들어갔다.

-하, 저놈이 도움이 되는 모습을 보게 될 줄 몰랐군.

‘나도 그래.’

라온이 옅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청주귀와 빙아귀가 눈매를 좁히는 모습이 보였다.

“미안하지만 최대한 빨리 끝내야겠어.”

두 귀신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무력은 인정한다. 그 나이에 가질 법한 검력과 반응이 아니야. 하지만 우릴 너무 우습게 보는군.”

청주귀가 귀기 어린 미소를 흘렸다.

“이쪽도 평범한 괴물이 아니거든.”

*     *      *

빙아귀가 라온을 노려보며 자세를 낮췄다. 늑대처럼 두 팔과 두 다리로 땅을 짚고 고개를 들었다.

전신을 뒤덮은 투기를 운용하며 심장을 휘도는 북해의 냉기를 모조리 끌어 올렸다.

“그대로 얼어 뒤져라!”

먹이를 삼키는 상어처럼 입을 쩍 벌렸다. 시꺼먼 목구멍에서 차디찬 냉기가 쏟아져 나왔다. 샤크스팅의 능력, 냉기의 숨결이었다.

치리리링!

갈라진 대지를 순식간에 얼려버린 순백의 냉기가 라온을 덮쳤다. 무시무시한 냉기 파동에 그의 뒤에 가시로 가득한 얼음의 벽이 세워질 정도였다.

“끝났어. 이제…어?”

입가를 닦으며 일어서던 빙아귀가 석고상처럼 멈춰 섰다.

흔들리는 그의 동공에 라온의 모습이 비친다. 냉기의 숨결을 정면에서 맞았다고는 생각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말끔한 모습이었다.

“뭐, 뭐야!”

빙아귀가 중풍에 걸린 것처럼 전신을 떨었다.

“어떻게 냉기의 숨결을….”

냉기의 숨결은 투기와 냉기를 조화시킨 특별한 기술이다. 평범한 방한 능력으로는 절대 버틸 수 없는데, 어떻게 저리 멀쩡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비켜. 내가 하겠다. 카디아르틴!”

청주귀가 지팡이를 내리찍고 주술을 외웠다. 하분 성 주변을 몰아치던 눈 폭풍의 범위가 라온에게 집중되고, 색이 불길할 정도로 누렇게 변했다.

정신을 공격하는 냉기의 주술 황련의 눈송이. 이 주술은 신체가 아닌, 정신에 동상을 입히기에 강한 냉기 저항이 있어도 견딜 수 없다.

“어?”

무시무시한 저주의 폭풍이 휘몰아쳤지만, 그 안에 있는 인간은 당당히 서서 하늘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콰아아아아!

벼락처럼 떨어지는 붉은 칼날에 저주를 담은 눈 폭풍이 반으로 찢겨 나갔다.

은빛의 코트를 두른 듯한 그가 흩날리는 눈꽃을 짓이기며 걸어와 입매를 끌어 올렸다.

“마, 말도 안 돼! 저주를 담은 주술이 어떻게….”

황련의 눈송이는 밀랜드를 막기 위해 준비한 정신 공격용 주술이었다. 이렇게 파훼 되는 건 상상도 못 했다.

“냉기? 저주?”

라온의 검에 어둠을 녹여 내리는 새빨간 불길이 치솟았다.

“그딴 건 평생 겪어왔어.”

너희보다 훨씬 지독한 놈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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