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밀랜드가 성 중앙으로 쇄도하는 만타쿤을 향해 강기 다발을 쏟아냈다.
콰아아앙!
성문을 무너뜨리려던 거대한 가오리가 네 조각으로 쪼개진 채 오크 무리를 덮쳤다.
“사수하라!”
“사수하라!”
병사들은 그의 지시를 따라 외치며 성벽 위에서 검과 창을 휘둘렀고, 궁수들은 찢어진 손가락을 가죽으로 동여맨 채 시위를 튕겼다.
다시 새벽으로 돌아간 듯 군기는 하늘을 찔렀고, 그들의 열기는 얼어붙은 땅을 녹일 정도였다.
다만 하분 성의 분위기를 끌어 올린 건 사령관 밀랜드가 아니다.
정찰대의 호위 라온.
사령관조차 포기했던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머뭇거림 없이 뛰어내린 바보 때문이다. 홀로 몬스터의 해일을 막아선 무력과 망설임 없는 용기에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심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곳은 내가 막는다. 저 남자를 살려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울브스 용병단장 베토가 악을 지르며 라온을 가리켰다.
“단장이 안 시켜도 그러려고 했어!”
“저런 진짜 무인을 여기서 죽게 놔둘 수는 없지!”
“얼굴은 곱상하지만, 성격은 화끈하더라고. 마음에 들어!”
울브스 용병단은 강함을 숭상하고, 싸움을 즐기는 별종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부상자를 구하기 위해 몬스터들의 바다에 뛰어든 라온은 미친놈이자, 누구보다 울브스다운 사람이었다. 적당한 정도였던 호감이 하늘 끝까지 솟구쳤다.
“쇠뇌를 쏴라! 손가락이 찢어졌으면 이빨로라도 당겨!”
라딘이 물기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성벽 아래에 떨어진 병사 중에는 3번 정찰대의 부하들도 있었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뛰어들고 싶었지만, 방해만 될 게 뻔하다. 이곳에서 죽을힘을 다해야 했다.
“라온을 보조해! 뒤에서 몰려오는 놈들을 노려!”
“예!”
“알고 있슴다!”
정찰병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부서질 듯 비명을 지르는 쇠뇌를 당겼다.
“후우욱….”
비상 상황이라 임시로 설격대의 대주로 복귀한 에드퀼이 거친 숨을 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끝없이 밀려오는 녹색과 푸른 파도를 홀로 감당하는 금발의 소년이 보였다.
‘저 녀석….’
뛰어난 무력과 정립된 무학을 보고 라온이 잘난 집안의 아들임을 확신했다. 잘난 집에서 먹고 자랐으니, 세상이 좋게만 보인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떠날 놈이니, 정찰병들을 위해주는 것도 자기만족이라 여겼다.
하지만 라온은 진짜였다.
그는 죽을 게 확실한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서 직접 지옥으로 내려갔다. 떨어진 부상자 중에 직속 부하가 있음에도 머뭇거린 자신과 달리 망설임이 없었다.
등골 사이로 전율이 일었다. 그저 잘난 집 아들의 유희라고 확신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창피해서 못 견디겠군.’
에드퀼은 이 전쟁이 끝나면 가장 증오했던 저 아이에게 사과하겠다고 다짐하며 위로 올라오는 몬스터들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콰아아앙! 쩌어엉!
밀랜드의 검에서 태양 빛 같은 섬광이 뻗어나간다. 그는 아껴둔 기운까지 끌어 올리며 중앙만이 아니라, 좌측의 성벽까지 사수했다. 많은 힘을 소모했지만, 상관없었다. 지금은 라온을 돕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성벽 밖으로 떨어진 부상자 전부 구했습니다! 부상 정도가 심한 녀석도 있지만, 전부 살아 있습니다!”
밤 여우 기사단장 켈런이 다가와 소리쳤다. 흥분한 듯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제 라온만 남았습니다. 저희가 앞을 막겠습니다! 그동안 녀석을 데리고….”
“구하지 않는다.”
밀랜드가 라온의 등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예?”
“그, 그게 무슨!”
“사령관님!”
라온을 구하지 않는다는 말에 성벽에 있던 모든 간부와 병사들이 밀랜드를 돌아보았다.
“병사들을 위해 홀로 몬스터 대군 앞에 선 녀석입니다! 버리다니요!”
“사령관님.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은데요.”
“아버지!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신 겁니까!”
라딘이 이를 악물었고, 베토가 눈매를 좁혔으며, 성벽 아래에서 병력을 총괄하던 테리안마저 올라왔다. 전부 직접 뛰어들 기세였다.
“흥분하지 말고, 저 녀석을 잘 보아라.”
밀랜드가 손가락을 들어 라온의 등을 가리켰다. 그는 부상자들을 전부 구했음에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검을 휘둘렀다. 지치긴커녕 점점 힘이 나는지 검세가 예리해지고, 움직임이 부드러워졌다.
“서, 설마….”
“지금 저기에서 무아지경에 빠진 겁니까?”
“아니,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사람들은 홀린 듯 검을 휘두르는 라온을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이런 지옥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무아에 들어간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저 녀석은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았다. 절대 방해하지 말고, 주변을 정리해라!”
“아, 알겠습니다!”
“가자!”
“움직여!”
기사, 검사, 병사들은 모두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은 저 작은 영웅이 더 강해지기를,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꽉 잡기를 바라며 각자의 위치를 사수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세 번째 태양이 떴을 때 물밀듯이 밀려들던 몬스터들의 파도는 끝이 났고, 성벽 아래에는 시체들로 언덕이 쌓여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우리가 이겼다!”
“웨이브가 끝났다!”
성벽의 병사들이 무기를 들어 올리며 참고 참던 함성을 터트렸다.
그 폭발적인 함성에 화답하듯 라온의 검이 멈췄다. 고개를 들어 올리던 그는 이윽고 정신을 잃은 듯 뒤로 넘어갔다.
“이런!”
“라온!”
“잡아라!”
성벽 위에 있던 사람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쓰러지는 라온을 향해 뛰어내렸다. 모두 지쳤지만 어디서 힘이 났는지 질풍처럼 달려갔다.
“라온!”
그건 사령관 밀랜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누구보다 빨리 달려가 라온을 잡았다.
“어떤가요?”
“크게 다친 겁니까?”
“사령관님!”
검사, 기사, 병사할 거 없이 모두가 밀랜드의 입을 바라보았다.
“탈진이다. 체력과 오러가 한 방울도 남지 않았어. 이렇게까지 싸우는 놈은 내 평생 처음이다.”
밀랜드는 헛웃음을 흘리며 라온의 어깨를 꽉 잡았다.
“하아….”
“다행이네요.”
“정말이지….”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라온을 바라보았다. 다행이라는 눈빛 위로 경악과 감탄이 비쳤다.
“라온은 무사하다! 다시 승리의 함성을 질러라!”
“와아아아아아!”
“몬스터들이 전부 도망갔다!”
“하분 성이 이겼다!”
라온이 무사하다는 걸 알게 된 병사들과 기사들은 다시 승리의 환호를 내질렀다. 쉰 목소리와 지친 음성뿐이었지만, 기쁨과 환희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라온! 라온! 라온!”
“으아아아아!”
목이 터질 정도로 소리를 지르는 사람 중에는 라온을 증오하던 설격대 검사들도 끼어 있었다. 설격대주 에드퀼을 시작으로 설격대 모두가 함성을 터트렸다.
“나 참.”
밀랜드는 광휘가 내리쬐는 성벽을 보며 피식 웃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라온의 이름을 외친다.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녀석이 이런 영향력을 가지다니, 전무후무한 일이다.
“네가 깨어나면 얼마나 강해져 있을지 기대가 되는구나. 그리고 모두가 널 어떻게 볼지도.”
그는 오러를 운용하여 지친 라온의 육체를 풀어주었다.
“이겼다!”
“웨이브가 3일 만에 끝났어!”
“와아아아아!”
기사, 검사, 병사할 거 없이 모두가 웃고, 울며 승리를 기뻐했다.
하지만.
한 마왕은 달랐다.
그는 라온이 읽지 못한 메시지를 노려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글래시아?
라스가 몸을 덮은 냉기를 불기둥처럼 일으켰다.
-글래애애애시아?
다른 건 다 괜찮다. 능력치가 올라갈 줄도, 강해질 줄도 알았으니까.
하지만 글래시아는 예외다. 5개월을 내기로 걸었거늘 3개월 만에 습득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것도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이 사기꾼 놈!
라스가 기절한 라온의 멱살을 쥐었다.
-일어나라! 네놈이 또 본왕에게 사기를 쳤음이 분명하노라!
악을 내지르며 냉기를 마구잡이로 뿜어냈다.
-일어나! 이 족제비 같은 놈아!
라스는 드물게도 근엄한 마왕의 어투를 버리고, 괴성을 터트렸다.
-끄아아아악!
인간들이 환호를 지르는 승리의 땅에 홀로 비명을 지르는 마왕이 있었다.
* * *
“저놈. 위험하군.”
푸른 로브의 사내가 라온을 보며 뿌득 소리가 날 정도로 주먹을 말아쥐었다.
‘싸우면서 강해지는 재능이라니….’
넓고 넓은 대륙에서도 보기 힘든 자질이다. 3일 동안 무아지경으로 칼을 휘두르며 성장하는 저 괴물을 보고 있으니,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말했지 않느냐. 보는 순간부터 감이 좋지 않았다고.”
검은 로브의 사내가 입매를 비틀었다.
“그냥 놔둬서는 안 될 놈이다. 죽이자.”
강해지는 속도,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거는 성정을 보았을 때 하분 성에서 썩을 놈이 아니다. 언제가 에덴과 부딪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건 나중 일이다.”
검은 로브의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두 가지. 녹색의 왕의 마석과 세이렌의 화신이다. 그중 저놈의 제거는 들어 있지 않아.”
“언젠가 부딪칠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부딪칠 거다. 저런 놈을 키울 수 있는 건 육황 외에는 거의 없어!”
“그래도 지금은 아니다. 아직 계획이 무너지지 않았으니, 정해진 대로 움직여라. 빙아귀.”
“그 잘난 계획이 뭔지 이제 좀 말해. 언제까지 네놈만 알고 있을 거냐!”
빙아귀라 불린 남자가 검을 로브의 사내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안 그래도 말해주려 했다.”
검은 로브의 사내가 로브 안에서 꺼낸 지팡이로 바닥에 내리찍었다. 기이한 문자가 떠오르며 바닥에서 거대한 아이스 트롤 한 마리가 나타났다.
“어?“
빙아귀가 트롤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크기는 트롤 워리어보다 컸지만, 털의 색은 아직 성장을 끝내지 못한 백색이었고, 보통의 트롤에게는 없는 뿔이 이마 중앙에 솟구쳐 있었다.
“서, 설마! 로드인가?”
“맞다. 아이스 트롤 로드. 스터린 산 위쪽 협곡에서 태어난 녀석을 세뇌했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이쪽이 먹힐 뻔했는데, 타이밍이 좋았지.”
검은 로브의 사내가 아이스 트롤 로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는 필연적으로 주변의 몬스터를 끌어모아 복종시킨다. 로드를 나타난 걸 확인하면 밀랜드가 참지 못하고 병력들을 이끌고 나올 것이다. 그 순간이 바로….”
“우리가 파고들 때로군.”
“그렇다. 웨이브로 성벽이 무너지고, 많은 병사가 죽었으니, 로드의 총공세가 시작되기 전에 기습공격을 할 게 분명하다. 우리는 그때를 노려서 녹색의 왕의 마석과 세이렌의 화신을 데리고 가면 그만이다.”
“네놈이 왜 그렇게 계획했는지 알 것 같군.”
빙아귀는 눈이 풀려 있는 아이스 트롤 로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 녀석을 산 위쪽 협곡에서 데리고 왔다고 했나?”
“그렇다.”
“그럼 산 정상에는 뭐가 있지?”
“무서워서 가지 못했다.
“뭐?”
“내 모든 감각이 절대 올라가지 말라고 비명을 지르더군. 저 위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무언가가 있다.”
검은 로브의 사내의 뺨에서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흥. 겁쟁이 놈. 이 일이 끝나면 내가 직접 올라가서 확인해주지.”
“계획이 끝난 뒤에는 네놈이 개죽음을 당하든 말든 상관없다. 지금은 계획대로 움직이도록.”
“안 그래도 그럴 거다.”
빙아귀가 콧방귀를 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아까 그놈은 꼭 죽이고 싶은데 아쉽군.”
“계획이 가장 우선이지만….”
검은 로브 사내는 라온이 끝까지 사수한 성벽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기회가 있다면 죽이는 것도 좋겠지.”
* * *
“으음….”
라온이 눈을 떴다. 낡고 익숙한 천장. 정찰병의 숙소였다.
“얼마나 잔 거지?”
극한의 감각을 유지한 채 검을 휘두른 건 기억나지만, 그 이후는 멍하다. 마지막에 보았던 황금빛 태양만 생각났다.
-사흘이다.
대답은 꽃팔찌 속의 라스에게서 들려왔다. 녀석의 목소리는 찬 바람이 불어올 정도로 쌀쌀맞았다.
‘그렇게나 잤어?’
-…….
스멀스멀 피어난 라스가 대답 없이 푸른 얼굴을 들이밀었다. 분노로 타오르는 눈동자로 이쪽을 노려보았다.
-네놈. 본왕을 또 속였더구나.
“어? 뭘?”
라온이 몸을 뒤로 젖혔다. 하도 속인 게 많아서 뭘 따지는지 모르겠다.
-파인애플로 본왕을 유혹해서 글래시아의 정보를 빼가지 않았더냐! 이 치사하고 더러운 인간 놈아!
“아….”
말을 들으니, 라스가 저렇게 화를 내는 이유가 뭔지 알았다.
-음식을 이용해서 내기를 유리하게 가져가다니, 네놈에게는 양심이라는 게 없는 것이냐!
마왕이 양심 소리를 하다니, 신박했다.
-이미 한 번 말했을 터다. 밥을 먹을 때는 케르베로스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고, 네놈 같은 사악함은 마계에서도….
“아, 잠깐.”
말이 끝나질 않아서 손을 들어 올렸다.
“아직 내기가 끝나지도 않았잖아. 벌써 화부터 내는 건….”
-끝났다.
“뭐?”
-내기는 이미 네놈의 승리로 끝났단 말이다!
라스가 폭주하듯이 냉기를 터트렸다. 분노의 냉기가 방을 가득 휘감았다.
“끝났다고?”
라온이 입을 떡 벌렸다. 라스에게서 뿜어지는 냉기를 가볍게 털어낸 뒤 메시지를 확인했다.
[압도적인 무력을 보이셨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3포인트 상승합니다.]
“3포인트?”
능력치는 올라갈수록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다. 한 번에 모든 능력치가 3포인트나 오르다니, 예상을 벗어난 보상이었다.
[극한의 집중력을 유지하셨습니다.]
[특성 <집중>이 생성되었습니다.]
새로운 특성까지?
<집중(1성)>
집중상태에 들어가는 시간이 짧아지고, 집중상태를 유지하는 시간은 길어진다.
“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전투나, 수련 모두에서 도움이 되는 굉장한 특성이다. 계속 성장한다면 성벽을 지킬 때처럼 극한의 집중상태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었다.
-끄으윽….
라스는 곧 폭발할 화산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입맛을 다시며 마지막 메시지를 보았다.
[글래시아를 습득하셨습니다.]
[수속성 저항력이 5성이 되었습니다.]
“어?”
마지막 메시지를 확인한 라온이 눈을 부릅떴다.
‘글래시아 습득?’
이걸 언제?
검술과 오러 그리고 감각이 크게 성장한 건 알고 있었지만, 글래시아를 습득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수속성 저항력도 올랐고.’
냉기를 꾸준히 운용한 덕분인지 수속성 저항력도 5성이 되었다.
-이제 알겠느냐. 본왕이 왜 화를 내는 건지!
복어가 몸을 부풀리듯 라스의 냉기가 둥글게 응축되기 시작했다.
-본왕의 유일한 약점을 이용하여 내기를 이기려 들다니! 네놈은 악마라도 되는 것이냐!
악마의 왕에게 악마 소리를 듣다니, 이것 또한 신박했다.
-본왕은 인정하지 못한다! 이번 내기는 시작부터 잘못되었어! 본왕의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절대 보상을 내어주지 않으리라!
“흐음, 오랜만에 해볼까?”
-무얼 하겠다는 것이냐! 본왕은 절대 꺾이지 않는다!
“애플 미트 파이.”
-뭐? 그, 그걸 왜 지금 말하는….
“애플 미트 파이에 파인애플 피자 추가.”
—…….
라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것만으로 그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애플 미트 파이, 파인애플 피자에 파인애플 쿠키 추가.”
-…….
이래도 안 넘어오네.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이제 음식으로는 안 되는 건가?’
하긴 마왕이 음식에 몇 번이나 자존심을 파는 건 좀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고 새로운 딜을 제시하려 할 때였다.
[<분노>와의 내기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커흠!
라스의 몸집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녀석은 창피한지 고개를 홱 돌렸다.
대답이 없는 건 거절이 아니라, 내기를 인정하는 중이라 그랬던 것 같다.
“허….”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되지만, 파이와 피자에 쿠키면 마왕의 의지를 꺾을 수 있었다.
쉽네.
너무 쉬워서 무서울 정도다.
하지만 라온도, 라스도 몰랐던 부분이 하나 있었다.
[모든 능력치가 4포인트 상승합니다.]
[분노에게 다섯 번째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5연승의 효과로 추가 보상이 생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