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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24화 (124/653)
  • 124화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어!”

    설격대주 에드퀼이 라온을 보며 갈색 눈을 부라렸다.

    “쭈그려서 발자국을 본 걸로 어떻게 트롤의 위치를 알 수 있다는 거냐!”

    그는 말도 안 된다는 듯 호통을 치며 라온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관심이 고프면 돌아가서 허접한 대련이나 해! 여기서 나대지 말고!”

    “그럼 내기라도 할까?”

    라온이 고개를 모로 틀었다.

    “내기?”

    “그래. 내 말이 맞는지, 여기서 주절거리기만 한 당신의 말이 맞는지. 내기를 하자고.”

    “정신 빠진 놈! 누가 네 말을 믿고 따라가 준다고 내기를 한다는 거냐!”

    “쫄려?”

    “끅!”

    피식 웃으며 입매를 말아 올리자, 에드퀼이 이를 바득 갈았다.

    “어디서 굴러온 지도 모르는 무지렁이 따위가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마라! 그리고 왜 아까부터 반말하는 거냐!”

    “네가 먼저 반말했잖아. 난 네 부하가 아니야.”

    “부하가 아니더라도 내 지위는 너보다….”

    “난 사령관님이 직접 정찰대의 호위로 임명해주셨다. 소속을 따지자면 사령관 직속이니, 너한테 굽힐 이유는 없어.”

    위치 상 에드퀼이 높은 건 맞지만, 사령관에게 직접 지위를 내려받으니, 놈에게 머리를 숙일 필요는 없는 건 사실이었다.

    “어린놈의 새끼가!”

    “지위로 안 되니까. 나이인가? 추잡하군.”

    “그만!”

    테리안이 묵직한 걸음으로 라온과 에드퀼 사이를 막아섰다.

    “둘 다 자제해라. 언제 몬스터가 움직일지 모르는데 뭐 하는 짓이야!”

    그는 둘을 번갈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에드퀼. 오늘 왜 이리 감정적이지?”

    “이 꼬마가 자꾸 헛소리를 지껄이지 않습니까!”

    “그는 아직 헛소리를 한 적이 없다. 트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찾았는지 말하지 않았으니까.”

    테리안이 고개를 돌려 라온을 보았다.

    “찾은 건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정찰대가 예측한 방향에서 25도 정도 우측에 있는 얼어붙은 계곡 부근에 모여 있습니다.”

    “그건 어떻게 알았지?”

    라온의 자신감 있고 확실한 대답에 테리안의 목소리가 떨렸다.

    “숲과 산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사람에게 적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감을 배웠습니다.”

    “감? 지금 감이라고 한 거야?”

    에드퀼이 손가락을 겨누며 비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감이랍니다! 저 미친놈의 말을 믿진 않으시겠죠?”

    “감이라.”

    테리안은 에드퀼과 설격대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덤덤한 라온을 보았다.

    ‘감을 믿을 수는 없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경험으로 만들어진 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감만으로 단체를 움직일 수는 없기에 가만히 있는 거다.

    ‘그렇지만 저 아이는….’

    지그하르트 소속이라는 걸 떠나서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간다. 특히 저 붉은 눈. 세상 모든 것을 뚫어보는 듯한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으면 그의 말을 믿고 싶어졌다.

    ‘거기다 숲과 산이라고 했지.’

    그 말을 듣자마자, 한 사람이 생각났다. 라온의 교관이라는 지그하르트의 광검 리메르. 아마도 그에게 수색의 감각을 배운 것 같았다.

    “후, 그렇다고 해도….”

    “부사령관님.”

    3번 정찰대장 라딘이 앞으로 나왔다.

    “얼마 전에 보고드린 적 있었죠. 라온의 말을 무시했다가 전부 죽을 뻔했다고.”

    “그래.”

    테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샤크몰이 다가온다는 라온의 경고를 무시했다가 전멸할 뻔했다는 말을 바로 며칠 전에 들었었다.

    “이 친구 그때도 지금 같은 눈빛을 했습니다. 한 번 믿어보시죠.”

    “샤크몰을 감지하는 것 따위는 대단한 일이 아니야! 고작 감으로 무슨 결정을 내린단 말이냐! 정찰대는 전부 대가리에 구멍이라도 뚫린 거야? 앙?”

    에드퀼이 손가락을 들어 라딘이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그딴 거 할 시간 있으면 저 머저리나 똑바로 교육해!”

    “에드퀼. 거기까지 하도록.”

    “흥!”

    테리안의 제지에 에드퀼이 팔짱을 끼고 몸을 돌렸다.

    “흐음, 저도 조금 관심이 생기네요.”

    울브스 용병단의 단장 베토도 앞으로 나왔다.

    “라온 검사님?”

    “예.”

    “그 위치까지는 얼마나 걸리죠?”

    “그냥 가면 30분. 뒤를 잡으려면 그보다 10분 정도 더 걸릴 겁니다.”

    “뒤요? 기습을 할 곳도 파악하신 겁니까?”

    “예.”

    “허….”

    그는 헛웃음을 흘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보았다.

    “부사령관님. 30분이면 스터린 산의 중턱에도 못 미칩니다. 늦기 전에 돌아올 수 있으니, 한 번 가보는 게 어떨까요?”

    “베토? 당신까지 왜 이래! 다들 저 또라이에게 돈이라도 받은 거야?”

    베토까지 라온의 편을 들자, 에드퀼이 인상을 찌푸리며 발을 굴렀다.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가네요. 우리 사고뭉치들을 꺾어서 그런가?”

    “후우.”

    테리안이 한숨을 내쉬고서 뒤를 돌았다.

    “전부 준비해라. 스터린 산을 오른다.”

    “부, 부사령관님! 진짜 가신다는 겁니까?”

    “그래. 밤이 되어서 트롤들이 습격해오면 더 위험할 수 있다. 제거할 수 있다면 빠르게 제거하는 게 나아.”

    “이 정신 나간 놈의 뭘 믿고 움직이신다는 겁니까!”

    “반대는 더 이상 듣지 않는다.”

    “으윽!”

    에드퀼이 더 입을 열려고 했지만, 테리안이 확실하게 못을 박자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섰다.

    “가는 건 결정됐고.”

    라온은 차갑게 웃으며 에드퀼 옆으로 다가갔다.

    “내기는 계속해야지.”

    “무슨 내기를 하자는 거냐!”

    “내가 트롤을 찾으면 앞으로 정찰대에 존댓말을 사용하고, 너희들이 넘긴 짐만이 아니라, 정찰대의 짐도 들고, 잡일도 맡아.”

    “아니라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주지.”

    “좋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앞으로는 그 주둥이를 놀릴 수 없을 테니까.”

    에드퀼은 죽일 듯이 인상을 쓰고 설격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멍청한 놈이로다. 이놈에겐 항상 술수가 있거늘. 말에 넘어가지 말고, 조심 하고 또 조심해야 하지.

    ‘그러게.’

    라온은 에드퀼에게 한심하다고 말하는 라스를 보며 가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속는 건 너도 마찬가지야.

    *     *      *

    “음?”

    스터린 산 중턱에서 아래를 내려보던 검은 로브의 사내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신음을 흘렸다.

    ‘뭐지?’

    그는 스터린 산으로 올라오는 하분 성의 병력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왜 올라오는 거지?”

    흔적 하나만 보고 이 산을 오르다니,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하분 성 지휘관들을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계획이 꼬이는데….’

    본래 하분 성 병력이 캠프를 치고, 잠을 잘 때 아이스 트롤들을 보내서 습격하려고 했는데, 이러면 일이 어긋나게 된다.

    ‘일단은 물러서야겠군.’

    검은 로브의 사내는 혹시나 하는 사태에 대비하여 아이스 트롤 워리어와 샤먼을 데리고 조금 더 위로 올라갔다.

    다른 아이스 트롤들은 얼어붙은 계곡에 숨겨놨으니, 들킬 일 없었다. 실제로도 하분 성의 병력들은 계곡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흐음, 일단은 볼까.’

    검은 로브의 사내는 올라오는 병력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저들을 처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전부 죽여서는 안 된다.

    아이스 트롤 워리어와 샤먼이 나타났다는 걸 하분 성에 전해야만 자신의 계획이 완성되기에 소수의 인원은 살려 보내야 한다.

    ‘그만 내려가라. 너희들은 트롤들을 찾지 못… 어?’

    하분 성의 병력을 무시하던 그의 눈동자가 파랑을 맞은 배처럼 흔들렸다.

    “뭐야! 저놈들 어디 가는 거야!”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던 하분 성 병력은 뒤를 돌아서 산골짜기를 향하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고?’

    저렇게 움직인다는 건 처음부터 계곡에 트롤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저 방향으로 이동할 리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평생을 이곳에서 산 정찰병이라고 해도 이렇게 눈보라가 치는 스터린 산에서 트롤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 저들이 어떻게 트롤들의 위치를 파악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지금 트롤을 빼기엔 늦었는데 어찌… 아!

    어떻게 할까 고민할 때 좋은 생각이 났다.

    “아니지.”

    입술을 씹던 검은 로브의 사내가 뒤에 서 있는 아이스 트롤 워리어와 샤먼을 보며 짙은 미소를 그렸다.

    “오히려 이게 더 나을 수도 있겠어.”

    *     *      *

    라온은 기척을 죽인 채 모두를 이끌고 산 하부에 있는 언덕을 올랐다. 경사가 급하지만, 얼음이 얼어있지 않아 무리 없이 내려갈 수 있는 곳이었다.

    언덕의 끝에 엎드려서 아래를 보았다. 얼어붙은 계곡에 열다섯 마리의 트롤이 있었다.

    열한 마리는 오크와 베어울프의 시체와 피로 기이한 문양을 그렸고, 나머지 넷은 팔을 늘어뜨린 채 사위를 경계했다. 어떠한 주술이나 의식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트, 트롤이다. 진짜 트롤이야.”

    “열다섯?”

    “저희가 보았던 것보다 숫자가 늘었지만, 놈들이 확실합니다.”

    트롤 무리를 확인한 2번 정찰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저 아래에서 여기에 있는 트롤을 알아차린 거지?”

    “가, 감이 진짜였다니….”

    “사람 맞아? 개 아니야?”

    정찰대, 울브스 용병단 그리고 설격대까지 모두가 혼이 반쯤 빠져나간 눈으로 라온을 돌아보았다.

    “이, 이건 말이 안 돼! 어떻게 거기서 이놈들을 찾냐고!”

    설격대주 에드퀼은 믿을 수가 없다며 메기처럼 난 수염을 바르르 떨었다.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모르겠고. 약속한 건 기억하고 있겠지?”

    라온이 피식 웃으며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전투가 끝난 후부터 정찰대의 짐이랑 잡일은 전부 설격대의 담당이다. 그래도 한 단체의 수장인데 한 입으로 두말하진 않겠지. 아, 반말도 하지 말고.”

    “끄으윽….”

    “하나 더. 내 짐은 당신이 직접 들었으면 좋겠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재미없을 텐데?”

    “난 굉장히 재밌으니 걱정 안 해도 돼.”

    “이 자식이 끝까지….”

    에드퀼이 라온을 노려보며 바드득 이를 갈았다.

    “역시 내 예감이 맞았네. 저 친구에게서 뭔가 느껴졌다니까.”

    베토는 에드퀼의 화를 돋우듯 감탄을 터트렸다.

    “싸움만 잘하는 게 아니었군.”

    “그러게, 이런 탐색 능력은 처음 봐.”

    “어떻게 우리 용병단에 끌어들일 수 없나?”

    용병단원들도 트롤을 내려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끄윽!”

    “뭐, 저런 놈이….”

    “젠장!”

    이곳에서 똥씹은 표정을 짓는 건 라온을 조롱했던 설격대주와 설격대 검사들뿐이었다.

    “라온. 저, 정말 감으로 알아차린 건가?”

    테리안이 조심스럽게 옆으로 다가왔다.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감이 좀 좋다고.”

    “으음….”

    “그리고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게 있지 않습니까?”

    “그래. 그렇지.”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스럽게 언덕의 끝으로 다가갔다.

    “전원 전투 준비.”

    정찰병들은 쇠뇌를 들었고, 용병들과 설격대는 검을 뽑았다. 베테랑답게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미약한 살기를 느꼈는지 경계를 서던 트롤들이 약속한 것처럼 위를 올려다보았다.

    “크라라락!”

    “캬라락!”

    우측에 있던 트롤들이 언덕 위에 있던 설격대 검사들을 보고 귀가 따가운 괴성을 터트렸다.

    “쏴!”

    나무가 넘어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언덕 아래로 은색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퍼버버벅!

    아이스 트롤의 몸에 각기 다섯 발 이상의 화살이 명중했지만, 질긴 가죽 탓에 몸을 파고든 화살은 그리 많지 않았다.

    “크라라락!”

    “크아아아아!”

    트롤들은 몸에 박힌 화살을 쥐어뜯으며 뻘건 주둥이로 분노 어린 포효를 터트렸다.

    “돌진!”

    “이야아아아!”

    테리안이 오러가 깃든 검을 세운 채 준마처럼 달려갔고, 설격대와 용병단이 그 뒤를 따랐다.

    “크으! 우리도 간다!”

    정찰병들도 한쪽 손에는 쇠뇌를 반대편 손에는 방패를 들고 아래로 뛰었다.

    “으으윽!”

    도리안은 겁이 나는지 입술을 떨었지만, 할 일을 잊지는 않았다. 검을 뽑아 들고 정찰대 옆에 딱 달라붙었다.

    ‘나도 가야겠지.’

    라온은 3번 정찰대와 함께 언덕을 내려갔다. 이미 전투는 시작되었고, 설격대와 울브스 용병단이 트롤을 몰아치고 있었다.

    “살을 바르고, 찢어 죽여!”

    울브스 용병단의 단장 베토는 예의 있는 모습을 보였던 것과 달리 눈에 광기를 두른 채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다. 그의 검날에 담긴 시퍼런 기운이 아이스 트롤의 상체를 거칠게 베어냈다.

    “사위(四圍)를 잡고 공격해라! 목과 심장을 노려!”

    설격대도 더러운 성격과 다르게 실력 하나는 출중했다. 검진을 짜서 다수의 검사가 소수의 몬스터를 잡는 최적의 사냥법으로 트롤을 압박했다.

    “쏴!”

    정찰병들은 전장을 돌며 검사들과 싸우는 트롤들을 향해 쇠뇌를 날렸다.

    가까이서 쏘아대니 이전보다 가죽을 뚫는 비율이 늘어나긴 했지만, 그리 큰 충격은 아니었다. 다만 트롤의 시선을 분산시켜 검사나 용병들이 더 쉽게 싸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었다.

    트롤 한 마리당 10명에 가까운 검사와 정찰병이 붙었으니, 난전 같았지만 인간에게 더 유리한 막싸움이었다.

    “크헉! 도련님.”

    정찰병에게 달려들려고 하던 아이스 트롤을 밀어버리고 돌아온 도리안이 거친 숨을 뱉어냈다.

    “오늘은 왜 이렇게 조용하십니까? 평소라면 이미 튀어 나가셨을 때 아닌가요?”

    “우리 임무는 정찰병의 보호잖아. 그리고 내 상대는 따로 있어.”

    누구도 느끼지 못했지만, 트롤의 두목 격으로 보이는 두 마리의 괴물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거의 왔군.’

    라온이 서늘하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내 먹이가.’

    *     *      *

    “절대 접근하지 마! 우리의 목적은 시선 분산이다!”

    라딘이 정찰병들을 보며 외쳤다.

    “트롤의 시선을 끌었다면 바로 물러서! 직접 상대할 필요 없다!”

    그는 빠르게 달려 나가 설격대 검사를 움켜쥐려던 트롤의 어깨를 향해 쇠뇌를 당겼다.

    파앙!

    화살은 아이스 트롤의 어깨에 살짝 박혔을 뿐이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그 틈에 검사가 몸을 빼고 트롤에게 역습을 가했으니까.

    “체력이 달리면 뒤로 빠져!”

    라딘이 화살을 걸었다. 장전이 느린 쇠뇌라고 생각할 수 없는 속도.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단련한 티가 나는 모습이었다.

    그는 다람쥐처럼 전장을 휘돌며 위기에 빠진 검사와 용병을 돕고, 지친 정찰병들을 격려했다.

    “하아, 하아!”

    라딘이 내려온 언덕 앞에 멈춰서서 호흡을 골랐다.

    ‘최고의 상황이야.’

    기습 덕분에 가져간 우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부상자는 좀 있지만, 사망자는 없고 트롤도 열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

    하분 성의 과격한 싸움에서 이렇게 쉽게 축이 기울어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모두 라온 덕분이었다.

    ‘돌아가면 거하게 사야겠… 어?’

    머리털을 쭈뼛 세우는 흉악한 살기에 라딘의 생각이 툭 끊어졌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언덕 위. 아이스 트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트롤 두 마리가 몽둥이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워, 워리어와 샤먼….”

    “크르르륵!”

    두 괴물의 눈에서 뿜어지는 진한 살기에 벌거벗은 듯한 한기가 느껴졌다.

    콰아아앙!

    아이스 트롤 워리어가 언덕을 뭉개고 자신과 정찰병들을 향해 뛰어내렸다. 피로 물든 몽둥이에서 상상할 수 없는 거력이 느껴졌다.

    “끄윽!”

    호흡이 멈춰진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건 오직 죽음. 살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옆에 있던 다른 정찰병들도 삶의 끝을 느꼈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점점 커져 가는 몽둥이를 보며 입술을 깨물 때였다. 모두가 멈춰버린 듯한 시간 속에서 한 검사가 움직였다.

    터엉!

    그는 라딘과 정찰병들을 무형의 힘으로 밀어버리고, 아이스 트롤 워리워의 앞에 홀로 섰다.

    무시무시한 힘이 실린 트롤의 몽둥이를 향해 얇은 검을 내질렀다. 검날의 끝에 피어난 붉은 꽃이 단아하게 휘날렸다.

    콰아아아앙!

    무시무시한 충격에 만빙의 계곡이 바스러지고, 골짜기가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검사의 몸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천년 묵은 거목의 뿌리처럼 굳건하게 다리를 세우고, 인간의 몸통만 한 몽둥이를 힘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아….”

    죽음을 각오했던 정찰병들은 그 전율적인 광경에 숨조차 쉬지 못했다.

    “물러나 계세요.”

    라온이 고개를 반쯤 돌렸다. 입가에 걸린 건 분명한 웃음이었다.

    “금방 끝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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