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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20화 (120/653)
  • 120화

    주점 밖 공터.

    라온은 노란 눈의 검사와 마주 보고 섰다.

    주점에 있던 사람들만이 아니라, 소문을 들고 온 병사들까지 몰려 공터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도박판까지 벌어졌다.

    “저 녀석은 울브스 용병단의 투르카야! 일단 싸우기 시작하면 늑대처럼 물고 놓질 않는다고!”

    “그래. 섣불리 시비에 응할 필요 없어! 그만두자.”

    정찰병 선배들이 걱정을 해줬지만, 고개를 저었다. 광아검의 성취를 높여줄 제물이 알아서 찾아와줬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괜찮습니다. 걸어오는 싸움은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라서요.”

    라온이 자신감 있게 웃고서 앞으로 나아갔다.

    -빌어먹을! 먹고 죽은 마족이 때깔이 좋다는 말도 있다. 음식 다 식느니라!

    ‘다시 시켜줄게.’

    -험, 뭐, 그러면야.

    라스는 똑같은 걸로, 특히 피자는 무조건 시키라고 말하며 물러났다. 무게감이 깃털처럼 가벼운 마왕이었다.

    “울브스 용병단 4번 조장 투르카요.”

    “라온입니다.”

    투르카는 한참 어린 라온에게도 예의를 갖췄다. 다만 눈빛 속에 약간의 경시하는 마음은 감추지 못했다. 샤크몰 여섯을 홀로 베었다는 말을 완전히 믿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샤크몰을 일검에 베었다는 검술이 어느 정도인지 느껴보겠소.”

    그 말과 함께 투르카가 땅을 박차고 도를 뽑았다. 하늘을 찌를 듯이 세운 도를 그대로 내리쳐온다. 두껍고 무거운 도의 장점을 제대로 살린 공격이었다.

    다만 위력, 속도, 투로 모두 예상했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라온은 벼락처럼 떨어져 내리는 도를 향해 광아검을 올려 쳤다.

    쩌어어엉!

    오러가 깃든 검과 도가 맞부딪친 충격에 얼어붙은 공터 바닥에 실금이 돋아났다.

    “막았다고?”

    검을 맞대고 있는 투르카의 눈동자가 터질 듯 부풀었다.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막을 줄은 생각도 못 한 것 같다.

    “말했잖소.”

    라온이 가는 검으로 무거운 도를 밀어내며 서늘하게 웃었다.

    “내 검은 사나울 거라고.”

    “크윽!”

    맹수가 이를 세운 듯한 흉폭한 검격에 투르카의 도가 우측으로 튕겨 나갔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왼 주먹을 뻗었다.

    뻐어억!

    바람을 뭉개며 내지른 주먹이 투르카의 우측 허리를 강타했다.

    “끄헉!”

    투르카는 새우처럼 허리를 구부린 채 땅바닥에 처박혔다.

    “어어….”

    “투, 투르카가 저리 쉽게 당했다고?

    “저 녀석 울브스 용병단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텐데?”

    “무슨 놈의 주먹에서 바위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냐?”

    “저 얇은 검으로 어떻게 도를 튕겨냈지? 그것부터 이상하잖아.”

    용병단들도, 구경꾼들도 깜짝 놀라서 벙찐 얼굴로 라온과 투르카를 번갈아 보았다.

    “일부러 살살 쳤는데?”

    라온이 여유롭게 어깨에 검을 걸쳤다.

    “끄응….”

    투르카가 도로 바닥을 찍고 일어섰다. 노란 눈동자는 파도를 맞은 돛단배처럼 흔들렸다.

    “검을 보여달라고 했잖소. 난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으아아아!”

    네 손가락을 까닥이자, 투르카가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많은 전투를 겪은 용병답게 당황한 와중에도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횡으로 그어오는 도를 향해 광아검을 후려쳤다.

    쩌어엉!

    쇳덩이가 뭉개지는 듯한 굉음이 터지고, 투르카의 도가 밀려났다. 파탄을 드러낸 것 같았지만, 그의 눈은 살아 있었다. 허공에서 허리를 돌려 그대로 도를 내리쳐왔다.

    “그래야지.”

    라온이 무릎을 살짝 굽힌 뒤 제비가 날 듯 낮게 검을 그었다.

    쩌어엉!

    도를 쥔 투르카의 손목이 부러질 것처럼 꺾였다. 상대의 빈틈을 만들어내는 광아검의 효용이었다.

    “끄으윽!”

    투르카가 다급하게 뒤로 물러설 때 라온은 질풍처럼 나아갔다.

    뻐어억!

    투르카의 공간으로 파고들어 왼쪽 어깨로 가슴을 찍어버렸다.

    “끄으윽….”

    투르카가 눈을 까뒤집은 채 뒤로 넘어갔다. 입에서는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왔다.

    라온은 가볍게 손을 털고 뒤를 보았다.

    경악하는 시선들 속에서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울브스 용병단 중 한 사람을 가리켰다.

    “다음은 당신이 좋겠어.”

    라온이 흥이 올라 미소를 지으며 검을 들었다.

    “이대로 끝낼 건 아니지?”

    *     *      *

    라딘은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바로 사령관실을 찾아갔다.

    회의 준비 중이었는지 사령관 밀랜드는 아들이자 부사령관인 테리안과 지도를 보고 있었다.

    “복귀 예정일은 내일모레였을 텐데?”

    밀랜드가 지도 위에 붉은색 깃발 모형을 꽂고 고개를 들었다.

    “복귀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라딘의 진중한 목소리에 밀랜드가 모형 깃발을 내려놓고, 테리안이 팔짱을 풀었다.

    “말해봐라.”

    “샤크몰이 5번 땅굴 앞까지 올라왔습니다.”

    “5번? 5번 땅굴이면 숲 외곽이잖아!”

    말도 안 된다는 듯 테리안이 책상을 내리쳤다.

    “예. 저도 샤크몰이 스터린 산 부근으로 올라온 건 처음 보았습니다.”

    “몇 마리나 올라왔지?”

    “여섯 마리가 동시에 튀어나왔습니다.”

    라딘이 샤크몰의 지느러미가 담긴 보자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허어!”

    “그 정도로 영역을 벗어났다는 건가….”

    밀랜드와 테리안 둘 다 깜짝 놀랐는지 지느러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잠깐만! 샤크몰 여섯 마리가 기습했는데, 왜 그렇게 멀쩡해? 사상자는! 몇 명이나 죽었어!”

    “사상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어?”

    “뭐?”

    두 사람은 샤크몰이 나타났다고 할 때보다 더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어, 어떻게?”

    “너희들만으로는 샤크몰을 잡을 수 없었을 텐데.”

    “이번엔 제가 묻고 싶습니다.”

    라딘이 마른침을 삼키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라온. 그 녀석 대체 뭡니까.”

    오늘 새벽으로 돌아간 듯 그의 눈동자에 경악이 비쳤다.

    “제가 아니. 저희가 살아 있는 이유는 라온 때문입니다. 샤크몰이 다가오고 있다고 먼저 경고도 해주었고, 나타난 샤크몰 여섯을 홀로 베어버렸죠. 제가 나설 틈도 없었습니다.”

    “혼자서 샤크몰 여섯을 상대했다고?”

    테리안의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다.

    “예. 그야말로 압도했습니다. 일검에 한 마리씩 샤크몰 다섯을 순식간에 베어버렸고, 마지막 남은 놈이 지하로 도망을 칠 때는 단검을 날려 땅을 깨부숴버렸죠.”

    라딘의 눈빛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이 지옥 같은 땅에서 살며 많은 전사와 영웅을 보았지만, 저리 어린 나이에 저런 무력을 가진 녀석은 처음입니다. 대체 저희에게 어떤 괴물을 보내신 겁니까.”

    “…….”

    밀랜드는 대답하지 않고 지그시 지도만 내려보았다.

    “정찰 쪽은 어떠했느냐.”

    “열 받았습니다.”

    “뭐?”

    질문과는 상관없는 답변에 밀랜드가 눈매를 좁혔다.

    “지형지물 파악, 몬스터의 흔적 파악, 시간과 날씨, 독도법과 방향까지. 여기에서 몇 년은 산 정찰병처럼 모르는 게 없었습니다. 땅속이 비어 있는 공토까지 알더군요.”

    라딘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이 너무 잘나서 제가 짜증을 좀 부렸는데, 위험한 순간에 오히려 절 안심시켜주었습니다.”

    “인성도 좋다는 말이지?”

    밀랜드는 무언가를 생각하듯 까맣게 탄 손가락으로 낡은 책상을 두드렸다.

    “예. 본인이 한 일을 내세우지 않고, 아는 게 많다고 잘난 척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틀뿐이지만 정찰병들하고도 잘 지냈구요. 검술을 보지 못했다면 어려서부터 고생한 용병이나, 사냥꾼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럼 다른 녀석은 어떠냐.”

    “도리안이요? 솔직히 말하면 그 녀석이 더 특이합니다.”

    라딘이 눈을 질끈 감았다.

    “더 특이하다?”

    “예. 별의별 물건을 다 가지고 다닙니다. 제가 살다 살다 정찰을 나가서 매트에서 자고, 뜨듯한 차를 마시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 아이의 성격은 어떠하냐.”

    “착합니다. 겁이 좀 많긴 한데, 주변을 잘 보고, 필요한 걸 챙겨줍니다. 만난 기간이 짧아 확답은 못 하지만 둘 다 선한 녀석들 같습니다.”

    라딘은 라온과 도리안을 지켜보고 느꼈던 점을 솔직하게 말했다.

    “그니까 대답 좀 해주세요! 그 이상한 괴물들은 어디서 온 겁니까! 명가 맞죠? 얼굴에서 넘쳐흐르는 귀티를 보고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 아이들은….”

    밀랜드가 대답을 해주려고 할 때 밖에서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사령관님!”

    부관 중 하나인 찰스가 빨개진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그, 그 왜….”

    “좀 진정하고 말해.”

    “이틀 전에 들어온 신병 있지 않습니까.”

    신병이라는 말에 사령관실에 있던 세 사람의 눈이 동시에 빛났다.

    “그 신병 중 하나가 울브스 용병단의 투르카와 싸움이 붙었습니다. 서리의 가지 앞에서 진검으로 싸우고 있다고 합니다!”

    “뭐? 왜?”

    “그야 뻔하죠. 혼자 샤크몰을 잡았다는 소문을 듣고, 투르카가 싸움을 걸었을 겁니다.”

    테리안이 그 상황을 눈으로 보고 있던 것처럼 대답했다.

    “울브스….”

    밀랜드가 인상을 찡그렸다. 울브스 용병단은 용기와 투지가 강해서 전투에 큰 도움이 되지만, 싸움을 너무 좋아한다.

    외부에서 전투가 없으면 안에서 만드는 집단이라 여러모로 골치 아팠다.

    “싸움이 거칠어져서 누군가 크게 다치기 전에 말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라온이 그곳 출신이고, 샤크몰을 상대할 정도로 강하다고 해도 실전으로 다져진 투르카를 이기진 못할 겁니다.”

    “하아, 귀찮게 하는군.”

    밀랜드는 혀를 차고, 테리안을 보았다.

    “네가 가서 싸움을 말리고, 라온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라.”

    “알겠습니다.”

    테리안이 고개를 끄덕이고, 사령관실을 나섰다. 라딘은 함께 가겠다고 말하며 그 옆에 붙었다.

    “흐음….”

    밀랜드는 바닥에 놓여 있는 샤크몰의 지느러미를 보고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변화가 오고 있는 건가.”

    평생 이곳을 사수해온 노병은 변화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이 늙은 몸으로 그 변화를 감당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울브스 놈들 진짜 사고만 치고 다니네!”

    라딘이 서리의 가지로 달려가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뇌까지 근육이 찬 놈들이니까. 받지 말자고!”

    “그들이 앞뒤를 가리지 않는 건 맞지만, 전투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백병전에는 그만한 인재들이 없어.”

    테리안이 담담한 눈빛으로 사실을 말했다.

    “쩝, 그건 그렇죠.”

    라딘이 입맛을 다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이 새끼들이 우리 신입 건드렸으면 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

    “이상한 괴물이라며.”

    “괴물이든, 귀신이든 일단 3 정찰대에 들어왔으면 다 제 부하입니다! 자기 발로 나가기 전까진 보호해줘야지요. 거기다 라온에겐 목숨까지 빚졌으니까.”

    “훗.”

    테리안이 씩 웃었다. 라딘은 겉과 달리 속정이 끈끈한 전형적인 북방의 남자였다.

    ‘그건 그렇고.’

    많이 다치지 않아야 하는데.

    라온이 지그하르트 출신이고,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해도 실전에서 무력을 쌓은 투르카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과 사람을 상대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니까.

    우와아아아!

    조금 더 속도를 올리자, 서리의 가지 간판이 보이고, 함성이 들려왔다. 주변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서 들어갈 곳도 보이지 않았다.

    “흡!”

    테리안이 땅을 박차고 구경꾼들로 만들어진 벽을 뛰어넘었다.

    “어…?”

    둥글게 만들어진 임시 대련장의 끝에 착지한 그는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보고 돌처럼 굳어버렸다.

    ‘왜 저들이….’

    몬스터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용맹한 용병 다섯이 파랗게 질린 채 대자로 뻗어 있었다.

    그리고.

    뻐어억!

    바위가 깨지는 듯한 강렬한 소리와 함께 또 하나의 용병이 말뚝처럼 땅에 처박혔다.

    “우와아아아아!”

    “또 이겼다!”

    “6연승이야! 저 꼬마가 울브스 용병 여섯 명을 홀로 깨부쉈다고!”

    “미쳤어! 소문이 구라가 아니었잖아!”

    “검귀다. 검귀!”

    구경꾼들은 홀로 울브스 용병 여섯을 꺾은 라온을 찬양하며 함성을 내질렀다.

    “허….”

    테리안이 턱을 떨며 우측을 보았다.

    서슬 퍼런 예기를 발하는 금발의 검사가 울브스 용병단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다.

    “흥이 떨어지니, 한 번에 덤비시오.”

    붉은 눈에서 뿜어지는 기백에 테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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