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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18화 (118/653)

118화

라온은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약간의 호기심만 가진 듯한 눈빛으로 라스를 보았다.

‘오래 걸리는 거 아니야?’

-평범한 인간이라면 오래 걸리는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다. 하지만 순도 높은 냉기를 가진 네놈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라스는 엣헴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이 능력의 이름은 글래시아. 본왕에게 직접 교육을 받는 것을 영광으로 알도록 해라.

‘네. 네. 알겠으니까. 시작하시죠.’

-네놈에게 미약한 재능이 있음은 인정하지만,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할 터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거라. 이건 본왕이 직접 만든 비법으로서….

‘나 안 배워. 그냥 진혼검이랑 정찰이나 할란다.’

-자, 잠깐! 알겠노라! 바로 시작하겠다!

고개를 홱 돌리자, 라스가 다급하게 따라왔다.

-일단 정신을 차분하게 가라앉혀라.

‘알겠어.’

라온이 눈을 감았다. 지루할 정도로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 단순한 행동을 반복하자 머릿속이 도화지처럼 하얗게 칠해졌다.

-이제 연결이다.

‘연결?’

-그렇다. 네가 가진 냉기와 이 땅 전체에 깔린 냉기를 연결하는 것이지. 눈을 떠보아라.

눈을 뜨자, 라스가 시퍼런 냉기를 피워내고 있었다.

-본왕의 냉기를 잘 보아라.

라스의 불꽃에서 퍼져나간 냉기가 눈으로 가득 찬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흡사 눈과 냉기가 조화롭게 뒤섞이는 듯했다.

-보았나?

‘너의 냉기와 눈이 어우러지는 것 같았어.’

-음, 그건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다. 눈과 냉기가 아니라, 냉기와 냉기를 연결하는 것이지. 네 육체를 내놓는다면 제대로 알려줄 수….

‘안 배울란다.’

-아, 알겠다! 알겠으니 다시 보아라. 그런 말 하지 않으마!

라스는 침을 꼴깍 삼키고 뒤로 물러섰다. 속과 달리 겉에서 아쉬운 사람은 라스였다.

-크흠, 네놈이 가진 냉기를 이 땅에 어려있는 냉기와 조화를 시키는 게 핵심이다. 그리되면 먼 곳에서 벌어지는 일도 네 피부에 닿는 것처럼 알아차릴 수 있다. 즉, 이 주변에 깔린 눈과 얼음이 전부 네 눈과 귀 그리고 피부가 될 것이니라.

‘아, 무슨 말인지 대충 알겠어.’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외로 설명이 거창하지 않고, 직접적이라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렵겠는데?

냉기와 냉기의 연결은 생각도 못 한 일이다. 듣고 이해한 것과 달리 직접 행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제대로 익힌다면 들인 시간 이상의 결과가 돌아올 것이니라.

‘음….’

정찰병들은 도리안을 가르치느라 정신없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눈이 섞인 바람도 불고 있으니, 지금 해봐도 들킬 일은 없어 보였다.

‘지금 해보자.’

-그럼 주문을 알려주지.

‘주문? 나 마법 못 쓰는데?’

-주문이라고 다 마법이 아니다. 너희 인간들이 오러 연공을 사용할 때 중얼거리는 구결과 같은 느낌이니라.

‘알겠어.’

-그럼 시작하마. 서리꽃이 피어나는 얼음의 호수에 잠긴 신은….

라온은 불의 고리를 운용하여 집중력과 정신력을 키워 라스가 불러준 주문을 모조리 외웠다.

-못 외웠을 테니, 다시 한번 불러주….

‘외웠어.’

-끄응, 괴물 같은 놈….

라스는 인간 맞냐고 중얼거리며 눈을 흘겼다.

‘그럼 시작할게.’

라온이 눈을 감고 혹한의 냉기를 운용했다. 몸에서 퍼져나간 냉기가 바닥으로 가라앉아 눈 위로 흩날렸다.

후우우웅!

손이 굳어질 정도로 혹한의 냉기를 흘려보냈지만, 주변의 눈덩이들이 굳어지기만 할 뿐 큰 변화는 없었다.

‘연결을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

-연결이라고 진짜 눈과 너를 연결하라는 게 아니다. 이것 또한 이미지니라.

‘다시 해볼게.’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 호흡을 골랐다. 주문을 외우며 천천히 냉기를 내보냈다.

‘조화롭게.’

냉기와 냉기가 뒤섞이도록.

불의 고리를 회전시키며 끊임없이 냉기를 뿜어냈다.

‘이미지가 중요하다고 했지.’

어떤 이미지가 뒤섞이는데, 가장 좋을지를 생각해보았다.

‘뒤섞여서 하나가 되는 이미지라면….’

조화와 뒤섞임을 생각하자 조금 전에 보았던 북해가 생각났다.

세상의 모든 물이 모여드는 끝이 없는 바다.

그 바다라면 냉기와 냉기의 뒤섞임도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바다가 북해는 아니야.’

자신이 생각하는 바다는 파도가 일지 않는 잔잔한 대해이다.

호수처럼 여린 바다를 그리며 냉기를 이어내고, 주문을 읊조렸다.

손끝에서 퍼져나간 혹한의 냉기가 얇아진다. 머리카락보다도 가늘게 퍼져 이 공간 전체에 깔렸다.

투웅!

세상이 느려진다.

아니, 느려지는 건 자신이다.

진흙 속에 파묻힌 것처럼 온 팔과 다리가 무거웠다.

반대로 감각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민감해졌다.

작은 파도 소리가 들린다.

바다. 라온은 지금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아니, 바다와 하나가 되었다.

촤악!

잔잔한 바다에 파도가 일어났다.

좌측이다.

정찰병과 도리안이 움직이고 있다. 라딘이 도리안에게 바닥에 생겨난 흔적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 흔적은 한참 전에 사라진 아이스 트롤의 발자국이었다. 도리안은 배 주머니에서 거대한 자와 탁본 세트를 꺼내 발자국을 측정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우측에서 작은 물결이 흘러갔다. 베어울프 한 마리가 바람에 실린 인간의 냄새를 맡고 경계하듯 숨어 있었다. 놈의 손에는 오크로 보이는 먹이가 들려있었다.

허….

헛웃음이 흘렀다.

이 능력은 그저 누가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까지 알 수 있었다.

“후우우우….”

라온이 긴 숨을 뱉어내며 눈을 떴다.

‘됐어.’

처음이라 거리가 짧고, 오래 유지할 수 없었지만, 감은 잡았다. 조금만 더 연습한다면 확실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아쉬워하지 말거라. 글래시아는 본왕이 직접 만들어낸 감각 특성. 쉽게 익힐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니라. 이곳에 있는 1년간 열심히 익히면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라스는 당연히 감을 잡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원래 오래 걸린다고 말해주었다.

‘1년은 너무 긴데?’

-그것도 본왕이 옆에 있어서 짧게 잡은 것이다.

‘음, 그러면 내기할까?’

-내기?

‘6개월 안에 내가 글래시아를 익히나, 못 익히느냐로.’

-으음, 6개월….

라스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뜸을 들였다. 지금까지 계속 졌으니, 혹시나 하고 고민하는 것 같았다.

‘좋아. 그럼 5개월.’

-콜이니라!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내기를 받아들였다.

[<분노>가 내기를 제안합니다.]

조건 : 5개월 안에 글래시아를 습득하기.

성공 시 : 모든 능력치 +4, 특성 중 하나의 등급 상승.

실패 시 : <분노>의 감정 10포인트 생성.

“받아들인다.”

-내기는 성립되었다.

라온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내기야 어쨌든 글래시아가 대단한 능력은 맞는 것 같아.’’

-당연하다. 본왕이 직접 만든 것이니까!

라스는 칭찬을 듣자마자 활짝 펴진 얼굴로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대우받기를 참 좋아하는 녀석이다.

‘그럼 다른 냉기의 운용법도 있는 건가?’

-물론이다! 냉기를 뿜어내는 건 기초 중에서도 기초일 뿐. 좋다. 오늘 본왕이 냉기의 사용 방식에 대해 확실히 교육을 해주마!

라온은 냉기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라스를 보며 옅게 웃었다.

참으로 뜯어먹을 게 많은 물고기였다.

*     *      *

“신병!”

라스가 냉기의 사용법 교육을 시작하려 할 때 라딘이 앞으로 오라는 듯 손짓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은 이 주변에서 묵는다.”

라딘이 두꺼운 손가락으로 가지만 남은 나무를 가리켰다.

“당연히 불을 피울 수는 없다. 짐승은 불을 보고 도망가지만, 몬스터는 오히려 달려드니까. 그럼 이 추위를 어떻게 버텨야 할까?”

“두꺼운 매트를 깔고, 오리털 이불을 덮고 잡니다!”

도리안이 냉큼 손을 들어 올렸다.

“…….”

라딘과 정찰병들은 순간 말을 잃고 도리안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지금 그런 게 어디 있어!”

“저한테 있는….”

“너! 네가 말해봐!”

도리안이 배 주머니에서 매트를 꺼내려고 할 때 라딘이 얼른 라온을 가리켰다.

“땅을 파고 들어가야겠죠.”

“그래. 정답이다.”

라딘이 극과 극이라고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어떤 땅을 파야 하지? 이 지랄맞은 추위 때문에 이곳의 땅은 돌덩이처럼 얼어 있잖아.”

“찾아보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세를 낮췄다. 손으로 눈을 쓸며 땅을 확인했다.

‘그 흙을 찾으면 되겠지.’

이렇게 추운 지역의 땅은 대부분 바위처럼 단단하지만, 중간중간 빈틈이 있는 곳이 있다.

그런 곳을 공토라고 하는데 아래가 비고, 흙이 부드러워 땅을 쉽게 팔 수 있었다.

‘찾았다.’

나무의 좌측 부분에 흙이 살짝 올라와 있었고, 색이 약간 연했다. 이 아래는 중간중간이 비어 있고, 흙이 부드러워서 어렵지 않게 굴을 팔 수 있을 것이다.

“여깁니다.”

“쯥….”

라온이 공토를 두드리자, 라딘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왜 여길 파야 하지?”

“색이 연하고, 구릉처럼 약간 올라온 형태를 보면 전형적인 공토….”

“너 진짜 잘났다.”

“예?”

“잘났으니까. 먹고 싶은 것도 많겠어!”

“어….”

“아주 모르는 게 없으셔!”

라딘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애매한 눈빛으로 콧등을 구기며 불만을 토해냈다.

“맞으면 일단 땅을 팔까요?”

그가 손을 부르르 떨 때 도리안이 큼지막한 삽 2개와 포대를 어깨에 걸치고 다가왔다.

“그 삽이랑 포대는 또 어디서 났냐?”

“가져왔죠.”

녀석이 본인의 배를 통통 두드렸다.

“너희들 대체 뭐야!”

라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한 놈은 모르는 게 없고, 한 놈은 만물상이고! 진짜 뭐 하는 놈들이냐고!”

“에이, 그 정도는 아니구요.”

도리안은 칭찬이라고 생각했는지 헤죽 웃었다.

“끄으윽, 위가 아파….”

“대장님. 혼은 나중에 나겠습니다. 이곳에서 묵을 거면 더 늦기 전에 자리를 잡죠. 말씀대로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라온이 도리안이 든 삽 하나를 들었다.

“됐어! 우리가 정찰 올 때마다 이용하는 곳이 있으니까!”

라딘은 징그러운 놈들이라고 말하고서 눈으로 장식한 듯한 하얀 숲으로 들어갔다.

“신경 쓰지 마. 칭찬이니까.”

“가르칠 게 없어서 심통이 난 거야.”

“정말이지 애 같다니까.”

“가끔은 모르는 척 좀 해줘. 불쌍하잖아.”

정찰병들은 낄낄 웃으며 라딘을 따라 움직였다.

“특이한 사람이네요.”

도리안은 삽을 도로 배 주머니에 넣으며 입맛을 다셨다.

라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가 제일 특이해….

*     *      *

정찰병들을 따라 숲 외곽으로 움직이니, 눈처럼 하얀 천막을 깔아 놓은 땅이 보였다.

천막을 걷어내고 땅굴로 들어가자, 열두 명 모두가 잘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라온과 정찰병들은 짐을 정리한 뒤 도리안이 가져온 부드러운 빵으로 배를 채웠다.

딱딱한 육포 대신 빵을 먹은 덕분에 정찰병들에게 도리안의 이미지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솟구쳤다.

-본왕의 입맛에도 나쁘지 않은 빵이니 당연하겠지.

라스는 한동안 거지발싸개 같은 것만 먹을 줄 알았는데, 다행이라고 중얼거렸다.

“이제 불침번을 정해야 하는데….”

라딘이 조금 남은 빵조각을 입에 넣고 일어섰다.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라온이 손을 들어 올렸다.

“짬도 안 되는 녀석이 어딜 초번초에 설려고! 10년은 일러. 인마!”

라딘이 잘 걸렸다는 듯 검지를 흔들었다.

“초번초와 말번초는 짬 순으로 끊는 거야! 넌 딱 중간이니까. 나서지 말고 있어.”

“알겠습니다.”

“그렇게 여유롭게 웃지도 말고! 내가 네 하급자 같잖아.”

“네.”

“끄응….”

가볍게 미소 짓자, 그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물러섰다.

“지금부터 불침번을 정한다. 초번초는….”

라딘은 직접 불침번을 정해주었다. 다만 짬 순으로 끊는다는 말과 달리 그는 초번이나, 말번이 아니라, 라온과 함께 세 번째에 일어나게 되었다.

‘나쁜 사람은 아니로군.’

지금까지 그의 언행을 보면 후배에게 알려주지 못해서 안달 난 사람 같았다. 자신이 다 알고 있으니, 알려줄 게 없어서 폭발했던 것 같다.

“저 도련님.”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도리안이 옆으로 슬쩍 다가왔다.

“저 사람 진짜 특이해요. 저희 밉보이지 말죠.”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네놈이 제일 특이하다.

이번에는 라스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굴 밖에서 불침번을 서던 라딘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이름 말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요상한 녀석은 어두운 숲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     *      *

‘특이한 놈이야.’

지식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그걸 실전에서 적응시키는 능력도 뛰어났다. 처음 보는 타입이라 어떤 놈이지 제대로 판단이 되지 않았다.

“으흠.”

라딘이 굴에서 나와 라온의 옆으로 다가갔다. 말이나 붙여보려고 했는데, 녀석은 눈을 감고 있었다.

‘어? 요놈 잘 걸렸다!’

이 괴물 같은 놈도 불침번을 서다가 조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하며 라온을 깨우려 할 때였다.

번쩍!

라온이 눈을 떴다. 열화처럼 타오르는 빨간 눈동자를 보자 순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

“대장님.”

녀석은 서늘한 목소리를 흘리며 일어섰다.

“어, 어!”

“지금 이곳으로 몬스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모, 몬스터?”

“예. 확실합니다.”

라온의 목소리엔 흔들림이 없었다.

“그걸 어떻게 알지?”

“제가 감이 좀 좋습니다. 북해에서 올라온 수속성 몬스터가 땅속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땅속에서 움직이는 수속성 몬스터….”

라딘이 마른침을 삼켰다. 상어의 머리통에 두더지의 발톱을 가진 수속성 몬스터 샤크몰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놈들은 여기 안 오는데….’

놈들이 땅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 맞지만, 스터린 산이 지척인 이 숲까지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음….”

혹시나 해서 땅에 귀를 대보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라온은 꿈과 현실을 착각한 것 같았다.

‘역시나.’

여유로운 척했지만, 신병이 긴장하지 않을 리 없었다. 허술한 모습을 보니, 이제야 사람처럼 보였다.

“샤크몰을 말하는 거지?”

“예.”

“이 숲은 스터린 산에서 내려오는 몬스터들의 영역이라 샤크몰들은 이곳으로 오지 않아. 꿈 깨 인마.”

라딘이 가는 미소를 지으며 라온의 어깨를 쳤다. 하지만 나무껍질처럼 굳은 녀석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진짜입니다.”

“나도 진짜야.”

고개를 저으며 땅을 가리켰다.

“사크몰이 움직일 때는 땅이 흔들리지만, 지금은 미동도 없잖냐.”

“곧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하아, 첫날이니, 불침번에서 좀 졸았다고 뭐라고 할 생각 없….”

라딘이 마른침을 삼키고 벌떡 일어섰다. 얼어붙은 땅에 흔들림이 일기 시작했다.

“뭐, 뭐야! 진짜였다고?”

샤크몰이 다가올 때의 진동과 소리가 분명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마, 말도 안 돼….”

“일단 사람들부터 깨우세요. 곧 도착할 겁니다.”

“너, 너는!”

“여기서 시간을 끌겠습니다.”

“크으. 네, 네가….”

“빨리 가세요.”

“알겠다! 절대 무리하지 마!”

라딘이 굴로 내려갔다.

“일어나! 샤크몰이 오고 있다!”

“예? 누구요?”

“샤, 샤크몰? 샤크몰이 왜 여길 와!”

“나도 모르겠으니까. 일단 일어나라고!”

정찰병들은 의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바로 일어나서 전투 준비를 갖췄다.

“지, 진짜 몬스터가 온 거예요?”

당황하여 안절부절못하는 건 도리안뿐이었다.

“빨리 준비해서 나와!”

라딘이 쇠뇌와 칼을 들고 굴 밖으로 나왔다. 라온과 샤크몰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할 때 전방의 땅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거대한 괴수가 튀어나왔다.

“샤, 샤크몰!”

상어의 머리통에 두더지의 발톱, 인간의 몸뚱이를 가진 북해의 몬스터 샤크몰이었다.

“크헉!”

물러서서 쇠뇌를 쏘려고 할 때 굴 입구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끼아아아!”

샤크몰은 기괴한 비명을 터트리고 수십 개의 발톱이 돋아난 손을 내리치려 했다.

‘빌어먹을! 일단 팔을 주고…어?’

팔 하나를 미끼로 삼아 물러서려 할 때 샤크몰의 목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푸카아악!

샤크몰의 머리통이 생선 대가리처럼 잘려 나갔다.

이빨을 떨며 고개를 들자, 새까만 하늘 위로 두 개의 붉은 달이 떠 있었다.

“아….”

달이 아니다. 라온의 붉은 눈동자였다.

“거기서 움직이지 마세요.”

“너, 넌 대체….”

“제 말을 믿지 않으셨으니….”

라온은 더운 피가 흘러내리는 검을 든 채 등을 돌렸다.

“제 검은 믿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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