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라온이 입맛을 다셨다.
‘제대로 걸렸군.’
진혼검을 얻은 이후 요기를 사용하는 방법이 오러를 운용할 때와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혼검이 길을 보여주기에 요기를 사용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자신에겐 제대로 쓰지 못하는 힘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혹한의 냉기.
만화공의 검술로 화속성 오러는 그 장점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었지만, 혹한의 냉기는 아직까지는 오러뿐 그를 다룰 만한 능력을 익히지 못했다.
광혈귀와 싸울 때도 느꼈지만, 자신은 혹한의 냉기를 완벽하게 다루지 못했다. 만화공의 검술, 연성검술 혹은 루난을 따라 해봐도 어색함만 느껴졌다.
‘냉기를 다룰 방법이 필요해.’
세상에서 냉기를 가장 잘 다루는 존재는 자신의 팔뚝에 세를 놓고 사는 분노의 군주다.
다만 라스가 냉기 사용법을 좋게 알려줄 리가 없다.
분노를 받으라고 하던가, 무릎을 꿇고 빌라던가, 민트초코로 욕조를 채우라는 등 이상한 요구를 할 게 뻔했다.
‘그래서 사전 작업이 필요했지.’
진혼검과 친해지고, 더 많은 대화를 하며 서로에 대해 공감을 하자, 라스는 그사이에 끼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했다.
2주가 흐르며 소외감과 불안감을 느낀 녀석은 결국 먼저 다가와 덥석 미끼를 물었다.
본인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보물인 냉기 사용법을 내민 것이다. 하지만 라온의 반응은 덤덤했다.
‘지금은 낚싯대를 들어 올릴 때가 아니니까.’
라스는 호구지만, 바보는 아니다. 여기서 즉답을 하고 관심을 보인다면 상황을 의심하고, 냉기를 가르쳐준다는 말을 번복할 게 뻔했다.
‘조금 더 뜸을 들여야지.’
힘 좋은 고기를 잡을 때도 바로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간 대가 부러지거나, 낚싯줄이 끊어진다.
지금은 양쪽으로 스윙을 하면서 고기의 힘을 뺄 때였다.
‘냉기의 사용법?’
라온은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되물었다.
-그, 그렇다. 본왕이 볼 때 네놈은 냉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흠….’
-네놈 정도의 능력이면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확실히 만화공의 오러를 운용할 때보다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긴 해.’
-맞다! 본왕이 조금만 도와준다면 네놈은 그 어떤 인간보다 뛰어난 냉기를 운용할 수 있을 것이니라. 냉기의 사용법은 한 가지가 아니니까!
라스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말이 빨라졌다. 마치 뒤에서 누가 쫓아오고 있는 것처럼.
‘그런데 너 냉기를 잘 쓸 수 있긴 해? 내가 본 건 으아아악! 소리를 지르면서 냉기를 뿜어내는 것뿐인데?’
-그, 그건 본왕에게 육체가 없기 때문이다! 육체만 있었다면 더 세밀한 운용을 보여주었을 것이야!
‘뭐, 나쁘진 않은데….’
라온이 살짝 목을 돌렸다. 라스가 솜사탕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은 채 자신을 보고 있었다.
-잘 생각해 보아라. 언제까지 냉기를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결국에는 모두에게 그 정보가 드러나게 될 테니, 제대로 쓸 방법을 익혀두는 게 네놈에게도 좋을 것이다.
‘그 말도 맞긴 하지.’
-본왕이 마계에 있을 때 수많은 마족이 찾아와 냉기의 운용법을 알려달라고 빌었었지만, 누구에게도 그 비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네놈에게는 천고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니….
‘말 길어지니까. 또 졸려오네.’
라온인 쓱 고개를 돌리고, 이불을 목까지 올렸다.
-끄으으윽!
‘일단 잘 테니까. 나중에 얘기하자고.’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라온 지그하르트! 네놈은 지금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본왕의 냉기 운용은 천금을 주고도, 목숨을 걸어서도 배울 수 없는 기예이니라! 지금이 아니라면….
‘아흠. 잔다.’
끝없이 떠드는 라스를 밀어내고, 옅게 미소를 지었다.
‘조만간 배울 수 있겠네.’
라스가 저렇게 나온다는 것 자체가 불안하다는 증거. 녀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심을 다 해서 냉기 운용법을 알려주게 될 것이다.
라온은 지금까지 잘했다는 뜻으로 진혼검을 살짝 두드려주었고, 진혼검은 그 뜻을 알아차린 듯 살짝 몸을 떨었다.
* * *
라온은 점박이 강아지처럼 핏자국으로 가득한 낡고, 누런 성벽을 올려보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시체를 태운 냄새와 피비린내, 짐승의 노린내가 가득하다. 비위가 강한 사람이라도 구역질이 나올법한 환경이었다.
“끄으으윽!”
도리안이 새까맣게 탄 벽을 부여잡고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라온은 녀석의 등을 두드려주며 다시 성벽을 올려보았다.
“이곳이 하분 성인가….”
전투의 흔적으로 가득한 성벽과 채 꺼지지 않은 전장의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이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상황인지를 알 수 있었다.
여긴 말 그대로 끝이 없는 전투의 지옥이었다.
-흐아아아! 본왕이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전장의 공기로다!
라스는 혈향과 시체의 썩은 내가 마음에 드는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어, 엄마. 불효자는 먼저 갑니다! 저, 저는 가문을….”
“정신 좀 차려.”
반쯤 죽어가는 도리안을 데리고 성문 앞에 섰을 때 성벽 위에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의 머리가 불쑥 올라왔다. 짧게 친 보라색 머리칼과 차가운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누구냐.”
“지원 나온 용병입니다.”
라온은 리메르에게 받았던 용병패를 보여주었다.
“이름은?”
“라온과 도리안입니다.”
그 이름을 들은 남자의 눈빛에 이채가 돌았다. 자신과 도리안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문을 열어라.”
“문을 열어라!”
지위가 있는 건지 남자의 지시에 하분 성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시체 타는 냄새는 줄었지만, 피비린내는 더 심해졌다. 성 내부에서도 많은 싸움이 있었던 것 같다.
“라온과 도리안.”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우측을 보았다.
조금 전 성벽 위에 있던 남자가 옆에 서 있었다. 키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체격이 단단했고, 허리에는 두꺼운 검을 패용하고 있었다.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늦었군.”
예상대로 그는 자신이 지그하르트에서 온 수련생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건 괜찮은 건가?”
남자는 다리 잡은 개구리처럼 축 처진 도리안을 보고 눈매를 좁혔다.
“늘 있는 일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라온은 도리안을 슬쩍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테리안이다. 앞으로 부사령관이라고 부르도록.”
“예.”
“따라와라.”
“알겠습니다.”
“끄윽….”
다리가 풀린 도리안의 목덜미를 잡고 테리안의 뒤를 따라갔다. 성 중앙에 세워진 5층 건물에 들어가자, 기사와 검사,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눈빛이 다르군.’
무력 자체는 지그하르트 검사들에 비해 모자랐지만, 이쪽을 보는 눈동자에 탄탄한 힘이 어려 있었다.
수많은 사선을 넘어온 거센 전사들의 기세. 저들을 보니, 지금 이곳이 전장의 한복판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이쪽이다.”
테리안을 따라 노후 된 계단을 올라갔다. 5층에 도착하자 흑목으로 만든 두꺼운 문이 보였다.
“그곳의 용병이 왔습니다.”
“들어오라.”
테리안이 노크를 하고 목적을 말하자, 안에서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끼이익!
경첩이 뒤틀린 듯한 거친 소리와 함께 낡은 문이 열렸다.
방은 넓었지만, 내부는 텅 비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출했다. 하분 성 주변 지도와 서적이 가득한 책장을 빼면 사령관실이 아니라, 평범한 병사들의 방에 들어온 기분이다.
고오오오!
누렇게 변색이 일어난 책상에서 회색 머리칼의 노인이 일어섰다. 키는 작았지만, 눈빛에 담긴 힘과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거인과 마주한 듯한 압도적인 존재감에 손끝이 떨려왔다.
‘이 남자가 밀랜드 브라이던.’
북쪽의 거인이라 불리며 이 낡고 헤진 성을 20년 넘게 사수해온 하분 성의 수호자가 바로 이 작은 노인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제대로 된 장수의 눈빛이로구나.
‘너도 느꼈어?’
-그렇다. 수십 년 동안 한 우물을 판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이니라, 본왕이 마계에 있을 때도 저런 충실한 부하들이 산더미처럼….
‘그래.’
-좀 들어! 본왕을 무시하지 말라!
라스의 말이 길어져서 무시하고 고개를 돌렸다.
“라온 지그하르트. 맞나?”
밀랜드의 음성은 목이 갈라졌다고 생각될 정도로 허스키했다. 원래 그렇다기보다 목을 다친 것 같았다.
“예.”
“마, 맞습니다.”
라온은 담담하게, 도리안은 질겁하며 대답했다.
“이 성에서 너희들의 신분을 아는 건 나와 부성주뿐이다.”
밀랜드가 고갯짓으로 왼쪽에 서 있는 테리안을 가리켰다. 부성주는 밀랜드의 아들인 것 같았다.
“리메르가 왜 너희들을 이곳으로 보냈는지는 알고 있다. 많은 경험을 쌓고 돌아오길 바랐겠지. 하지만 이곳에 훈련이나 교육 따위는 없다.”
밀랜드의 목소리에 단단하게 세운 신념이 어렸다. 이 성을 평생 지켜온 거인의 기파에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친절할 교관도, 따뜻한 밥과 잠자리도 없다. 있는 거라곤 뼛속까지 스며드는 찬 바람과 끝없는 싸움뿐이지. 편안한 생활을 바란다면 당장 돌아가도록.”
“지, 진짜 돌아가도 되… 읍!”
“상관없습니다. 저희는 강해지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어떤 전장과 상황도 받아들이겠습니다.”
라온은 바로 포기하려는 도리안의 입을 막고, 앞으로 나왔다.
“눈빛은 마음에 드는구나.”
말과 달리 밀랜드는 조금도 웃지 않았다.
“그 눈이 언제까지 갈지 지켜보마. 지금부터 너희들의 신분은 병사다.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해라. 찰스!”
밀랜드가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를 지르자, 수염을 길게 기른 중년인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이 두 놈. 3번 정찰대로 보내도록.”
“용병을 정찰대에 넣다니 별일이군요.”
“일단 이것저것 시켜볼 생각이다.”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와라.”
라온은 기절한 것처럼 멍하니 서 있던 도리안을 들고서 찰스라는 남자를 따라 나갔다.
쿠웅!
무게감 있는 문이 닫히고 사령관실에는 밀랜드와 테리안만 남았다.
“한심하더군요.”
테리안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무엇이 말이냐.”
“보셨지 않습니까. 라온이라는 놈은 놀러 온 것처럼 여유로웠고, 도리안은 겁에 질려 몸에 힘이 풀렸습니다. 도움은커녕 문제만 일으킬 녀석들입니다.”
“음….”
“둘 다 겉멋만 들어서 주렁주렁 검만 매달고 있고, 라온은 손목에는 꽃팔찌까지 찼더군요. 전사의 마음가짐이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돌려보내시지요. 저들을 봐주다가 병사들만 다칠 겁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구나.”
밀랜드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테리안을 보고 옅게 웃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키는 이 성을 우습게 본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다만….”
밀랜드의 눈빛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
“사람을 겉보기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둘은 어렵기로 소문난 지그하르트의 훈련을 통과했고, 지금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있다. 보이는 것처럼 어리숙한 녀석들이 아니야.”
“그건 그렇겠죠.”
테리안은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을 삐죽 내민 채 고개를 끄덕였다.
“판단은 두 사람을 지켜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 선입견부터 가질 필요는 없어.”
“알겠습니다.”
“그런데….”
밀랜드는 입맛을 다시며 책상 서랍에서 편지 하나 꺼냈다.
“두 녀석의 정보를 2주마다 알려달라는 이유를 모르겠군.”
“귀하게 키운 지그하르트의 전력이 걱정되니 그렇겠죠.”
“그럴 수 있지. 다만 이건 리메르나, 5 연무장에서 온 게 아니야.”
“예?”
“지그하르트 가주전에서 보낸 편지다. 두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전부 알려달라더군.”
“가주전이라면 부, 북패왕께서?”
“그래. 그분께서 이런 요구를 한 적은 처음이라 이유를 모르겠다. 그것도 자세히 서술하라고 되어 있으니, 쯧.”
“허! 정말 무슨 일인지….”
두 사람이 글렌의 의도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가벼운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3번 정찰대장 라딘. 사령관님의 부름에 밥을 먹다 말고 달려왔습니다!”
설원처럼 하얀 겉옷을 두른 30대 남자가 들어와 경례했다.
“그렇게 어필해도 줄 건 없다.”
“하하.”
스스로를 라딘이라 말한 남자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
“3번 정찰대에 신병 두 명을 보냈다.”
“오, 손이 부족한 건 또 어떻게 아시고.”
“그렇게 좋아할 필요 없다. 금방 다른 곳으로 보낼지도 모르니까.”
“그 말씀은 결국 보낸다는 말이군요. 아, 좋다 말았네.”
“어차피 우리의 전력이 될 병사들이다. 죽지 않게 확실하게 교육해.”
“그럼 바로 정찰을 뛰어야죠. 실전이 가장 확실한 교육이니까요.”
라딘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몬스터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 영역을 벗어나는 경우도 많으니, 주의하도록.”
“저 3번 정찰대장입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는 다시 이마 위에 손을 올리고, 방을 나갔다.
“바로 출동이라니, 괜찮겠습니까?”
“괜찮을 거다. 그 도리안이라는 겁쟁이는 모르겠다만, 라온이라는 녀석은….”
밀랜드가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픽 웃었다.
“보통이 아니었거든.”
* * *
라온과 도리안은 찰스라는 검사의 안내를 받아 정찰대의 숙소에 도착했다. 방이 많은지 도리안과 둘이서 지낼 수 있는 2인실이었다.
“으으!”
도리안은 아직도 피비린내에 적응하지 못하고 손을 떨었다.
“여, 여기 생각 이상을 위험한 거 같은데요? 무슨 시체로 산을 쌓아!”
“마음 좀 가라앉혀봐.”
“도련님도 보셨잖아요. 아까 그 피 냄새와 시체 냄새. 몬스터만이 아니라, 주, 죽은 사람도 많았다구요!”
“항상 말하잖아. 불안하고, 힘들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고. 너 그러다간 안 죽을 상황에서도 위험해.”
“으읍!”
도리안이 헙 입을 막고, 코로 천천히 숨을 쉬었다.
“일단 짐부터 풀어. 한동안은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으니까.”
“예….”
녀석은 찔끔 나온 눈물을 닦고, 침대의 매트를 내려놓았다.
배 주머니에서 폭신한 매트와 따스한 이불을 꺼내 침대에 놓고, 옆에는 하늘색 천을 걸어놓았다.
“장식까지 해?”
“분위기가 너무 칙칙하잖아요. 꼭 장례식장에 온 것처럼. 근데 뭘 해도 기분이 별로네.”
그는 천을 이리저리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 그 안에 황금색 천도 있냐?”
“당연하죠.”
도리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금빛 천을 꺼냈다.
“녹색.”
쓱.
“파란색.”
척.
“분홍색.”
착.
색을 말하면 바로 그에 맞는 천을 꺼냈다. 준비성이 경악스러운 녀석이다.
“도련님도 이거 깔고 주무세요. 그런 침대에서 주무시면 허리 나가요.”
도리안은 훌쩍이면서 자신에게도 매트와 이불을 꺼내주었다.
“고맙다.”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를 정리하려 할 때 문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신병들. 정리는 끝냈나?”
새하얀 옷을 입은 30대 초중반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오며 씩 웃었다.
“너희들이 속한 3번 정찰대의 대장 라빈이다.”
“라온이라고 합니다.”
“도, 도리안이에요….”
라온은 담담하게, 도리안은 입술을 떨면서 고개를 숙였다.
“얼굴들이 좋네. 그, 근데 저 매트랑 이불은 어디 있었냐?”
“제, 제가 가져왔는데요?”
“허….”
도리안이 손을 들자, 라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런 인간은 처음이라고 중얼거렸다.
“어쨌든 정리는 나중에 하고 일단 겉옷을 걸쳐라.”
“예?”
“출동 명령이 떨어졌거든.”
라딘이 씩 웃으며 가지고 온 하얀색 설상복을 던져주었다.
“오늘은 너희가 앞으로 정찰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서 정찰 능력과 판단력 그리고 감각을 볼 것이다.”
그는 겁을 주듯이 셋 중 하나라도 모자르면 금방 죽을 거라고 떠들어댔다.
“히익!”
도리안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지만 라온은 달랐다. 옅게 웃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지금 정찰 능력과 감각을 보신다고 하신 겁니까?”
그건 이 하분 성에 있는 그 누구보다 자신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