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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07화 (107/653)
  • 107화

    길가에 굴러다녀도 줍지 않을 듯한 녹슨 쇠반지. 다만 이건 이 반지의 본모습이 아니다.

    어떠한 조건과 재료가 갖추어지면 금화를 쏟아부어도 구할 수 없는 특별한 반지로 변하게 될 거다.

    -흐음,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지는구나. 봉인이라도 되어 있는 건가? 네놈의 눈썰미도 제법이로군.

    라스는 반지 안에 있는 기운을 느꼈는지 라온에게 감탄의 눈빛을 보냈다.

    “엑? 그걸 사시게요? 녹이 아주 잔뜩 꼈는데. 이거 고물상에 팔아도 은화 1개 아니, 동화 1개도 안 나올 거 같아요.”

    반명 도리안은 반지를 보고 눈매를 찡그렸다. 상인 가문 출신이라도 이걸 알아볼 눈썰미는 없는 것 같다.

    “아닐걸.”

    라온이 손가락을 흔들고서 점주에게 반지를 가져갔다.

    “이거 얼맙니까?”

    “좋은 걸 고르셨네. 근력 상승효과와 정신 정화 효과가 있는 마법 장비니까…. 5개만 주쇼.”

    5개라는 건 금화 5개라는 뜻. 마법 장비지만, 능력과 외형이 구린 걸 생각해보면 바가지 중에 상 바가지였다.

    “도리안. 가자.”

    라온이 반지를 카운터에 놓고 등을 돌렸다.

    “잘 생각하셨어요! 저런 싸구려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잠깐만!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셔야지!”

    점주가 카운터를 뛰쳐나와 앞을 막아섰다.

    “그물 한 번 던져본 건데 그렇게 가면 쓰나!”

    점주가 헤헤 웃으며 손가락을 접었다가 펴며 가격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4개! 금화 4개면 딱 좋은 가격….”

    “시간 낭비했네.”

    “아, 잠깐!”

    혀를 차고, 나가려 할 때 점주가 팔을 쫙 펴서 길을 막았다.

    “3개 반! 아니 3개!”

    그는 금화 3개 반이라고 불렀다가 라온의 표정을 보고 다시 금화 3개로 가격을 내렸다. 하지만 라온은 반응하지 않고, 상인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으윽! 두, 두 개 반.”

    “…….”

    “이게 진짜요. 나도 좀 먹고 살아야지!”

    “….…”

    “아, 알겠어! 알겠다고! 두 개!”

    “뭐, 그 정도면….”

    “에이! 아니지!”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려 할 때 도리안이 바람처럼 파고 들어왔다.

    “아저씨!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해요! 이거 딱 봐도 은화로 떼어 왔구만!”

    “엑?”

    “자, 봅시다. 이 반지에서 효과가 있는 건 근력이랑 정신력인데, 정신력이 정말 효과가 좋았으면 이런 곳에 안 있지. 그렇다고 근력이 오거 건틀릿이나 오거 링처럼 강해지는 것도 아닐 테고.”

    “어어….”

    “그럼 뽀대가 나느냐? 그것도 아니야. 저기다 버려놔도 아무도 안 주워 갈 걸요? 그러니까 우리 합의를 다시 봅시다. 에, 그니까….”

    도리안이 반쯤 정신이 나간 상인의 어깨를 붙잡고 뭔지 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딱 됐네! 금화 하나!”

    “으어어….”

    도리안의 말빨과 말수에 질렸는지 점주의 고개가 진자처럼 흔들렸다.

    “그, 금화 하나 주쇼.”

    고개를 돌리자, 도리안이 어떠냐는 듯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수고했다.”

    라온은 피식 웃었으며 카운터에 금화 하나를 내려놓았다.

    ‘실제로는 그보다 싸겠지만.’

    이 반지는 아마 은화 10개에서 20개 사이로 떼어왔을 거다. 그걸 알면서도 금화를 주는 건 이 반지의 가치가 금화 100개로도 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우, 손님들 여기 좀 와보셨수? 어려 보이는데 장난이 아니네.”

    점주가 이마에 땀을 닦으며 입김을 불었다.

    “제가 상인 가문 출신이거든요! 이런 건 빠삭하죠.”

    “어쩐지 셈이 빠르더만. 잘 가시게!”

    점주는 손을 흔들고서 카운터 앞에 주저앉았다.

    “제가 보기엔 별로지만, 도련님이 좋다면 좋은 거겠죠.”

    “네가 상인 가문 출신이 맞긴 한 거 같은데, 눈썰미는 영 별로네.”

    라온이 반지를 손에 들고 밖으로 나갈 때 상점 앞에 여우 가면을 착용한 여자와 그녀의 가드들이 서 있었다. 옷은 달라졌지만, 어제 도박판에서 보았던 그 여자였다.

    “잠시만요.”

    그녀의 시선이 오른손에 든 반지로 향했다.

    “그 반지 여기서 산 건가요?”

    어제와 달리 말투가 정중해졌다. 물론 그 안에 담긴 거만함은 그대로였다.

    “그런데요.”

    존댓말을 하기에 똑같이 말을 높여주었다.

    “그거 저한테 파세죠. 얼마에 사셨든 10배로 드리겠습니다.”

    “에엑!”

    뒤에서 미소를 짓고 있던 상인의 비명이었다.

    “도, 도련님. 파시죠. 그 싸구려를 10배로 사준다잖아요!”

    도리안이 게걸음으로 다가와 귀에 속삭였다.

    ‘이 여자….’

    여우 가면 여자의 노란 눈빛이 번들거린다. 어제의 승부욕과는 다른 감정. 탐욕이다. 이 반지의 가치를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싫습니다.”

    라온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계산을… 뭐요?”

    당연히 팔 거라고 생각했는지 여자의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안 판다고요.”

    손을 저으며 상점을 나가려 할 때 여자 옆에 서 있던 가드가 길을 막았다.

    “그럼 20배 아니 30배를 드리죠.”

    “일 없어요.”

    거절해도 가드는 길을 비키지 않았다.

    “금화 50개.”

    “아, 싫다니까.”

    점점 귀찮아져서 손을 저었다.

    “이, 이봐. 치, 친구.”

    점주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가왔다.

    “뭐, 하는 거야! 빠, 빨리 팔라고! 은화 10개짜리가 금화 50개가 됐잖아. 500배라고! 빨리 팔고 나한테도 뽀찌 좀….”

    원래 반지 가격이 은화 10개였군.

    점주는 반지를 금화 하나에 판 걸 잊었는지, 은화 10개라고 중얼거렸다.

    “난 내 물건 함부로 안 파는 체질이라서.”

    라온이 픽 웃으며 손으로 반월을 그렸다.

    “윽?”

    앞을 막고 있던 가드가 본인도 모르게 옆으로 밀려났다. 손짓 한 번에 튕겨 나갈 줄은 몰랐는지 그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이익!”

    “뭐.”

    가드가 다시 길을 막으려 할 때 라온이 진각을 밟았다. 쿵 소리와 함께 땅이 출렁였다.

    “당신들 여기가 어딘지 잊었어? 암시장에서 문제 일으키면 고달플 텐데?”

    “가만히 있어.”

    “죄, 죄송합니다.”

    여자의 말에 가드가 움직이려다 말고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이에요. 금화 100개 드리죠.”

    “거절합니다.”

    라온은 바로 고개를 젓고서 경매장으로 향했다.

    ‘최소 금화 100개라는 거네.’

    그녀가 금화 100개를 부른 것 자체가 이 반지의 가치가 그 이상이라는 뜻이다. 거기다 자신에겐 그 이상으로 필요한 물건인데 팔 리가 있겠는가.

    “꺼어억!”

    “으어헉!”

    거절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반지를 판 점주와 도리안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거렁뱅이가 도박 좀 한다고, 눈에 뵈는 게 없으신가 보네요.”

    여우 가면 여자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피식 웃었다.

    “내 물건을 안 판다고 그런 소리까지 들을 이유는 없습니다만.”

    “당신은 세상 무서운 줄을 몰라. 왜 사람들이 숙이고 사는지 잘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예요. 객사하기 싫으면.”

    그럴 리가 있나. 세상이 무서운 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건 자신이 아니라, 성질대로 행동하는 이 여자였다.

    “할 말 다했으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여우 가면 여자의 서늘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무시하고 경매장으로 향했다.

    *     *      *

    [다테의 목걸이가 금화 70개에 낙찰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경매가 시작되었다.

    경매장은 이곳 말고, 아래층에도 하나 있다. 시작 금액이 보통 금화 20개에서 50개고 경매품들의 가치도 몇 배로 높아 진짜들만 가는 곳이다.

    오늘 라온이 구하려는 블랙 버터플라이는 그리 비싼 물품이 아니기에 이곳 1층에서 경매를 진행했다.

    1층 경매답게 유일급 물건은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이 마법과 희귀 등급의 물건들이었다.

    라온이 눈에 불을 켜고, 괜찮은 물건을 찾아보았지만, 딱히 살만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뭐 상관없나.’

    오늘은 블랙 버터플라이를 사러 왔을 뿐이다. 반지를 구한 것만으로도 대박이니 이 이상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었다.

    [자, 다음 물건은 마나석을 먹는 고고한 흑색의 나비. 블랙 버터플라이입니다!]

    사회자의 들뜬 목소리와 함께 단상 위로 새장이 올라왔다. 새장 안에는 은은한 검은색으로 반짝이는 나비가 마나석에 꼭 달라붙어 있었다.

    새장을 통해 나갈 수 있지만, 나비는 마나석 주변을 맴돌고 도망치지 않았다.

    [은은한 빛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인기 있는 물건입니다. 물론 오래 살지는 못하고, 마나석이 많이 들어가지만, 아릅답기로는 이만한 게 없죠.]

    장점을 말할 때와 달리 단점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럼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지난번 블랙 버터플라이가 금화 12개에 팔렸으니, 금화 1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네. 15번 금화 2개.]

    [21번 금화 3개.]

    ….

    경매가 진행되며 여기저기서 손을 올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가격이 올랐을 때 라온도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77번 금화 13개. 금화 13개! 더 없으십니까?]

    사회자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손을 드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13개면 충분하지.’

    사실 13개도 많이 쳐준 것이다. 저들은 나비를 그저 관상용으로만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없으시면 금화 13개에 낙찰하겠습니다.]

    라온이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하고, 사회자가 망치를 치려 할 때였다. 중앙에서 누군가가 손을 들어 올렸다.

    [15개! 80번 금화 15개를 불렀습니다!]

    “음?”

    며칠 살지도 못하는 관상용 나비에 누가 금화 15개를 태우는지 보았다.

    ‘저 여자….’

    어제 도박장과 오늘 상점에서 마주쳤던 여우 가면을 쓴 여자였다.

    ‘방해하는 건가?’

    이쪽을 보고 쓱 웃는다. 반지 때와 달랐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방해를 하려는 게 분명했다.

    “저 여자 대놓고 시비를 거는데요?”

    도리안도 알아차렸는지 귀찮아질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받아줘야지.”

    라온이 다시 손을 올렸다.

    [오오! 77번 금화 17개! 17개가 나왔… 20개?]

    17개로 가격을 올리자마자, 여자가 20개를 불렀다.

    [22, 24, 26, 30! 금화 30개까지 나왔습니다! 저희 경매장에서 팔린 블랙 버터플라이 중 최고 기록입니다!]

    쯧.

    라온이 혀를 찼다. 가장 비싸게 팔렸던 게 금화 20개였는데, 30까지 올라갔다. 전부 다 저 여자 때문이었다.

    “후….”

    다시 손가락을 올렸다.

    [33개! 77번 금화 33개가 나왔습니다. 어! 80번 37개! 또 올라갑니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자가 또 손을 올렸다.

    [으아아! 40개! 77번 금화 40개입니다! 이게 꿈은 아니겠죠?]

    라온이 무지성으로 금액을 올렸다. 당장 수중에 그만한 금화는 없지만, 가져온 물건 중 몇 가지를 팔면 가능했다.

    [40개! 이제 더 없으십니까? 어? 바로요? 80번 금화 50개입니다! 이야아아아!]

    [50개! 50개! 금화 50개! 더 없으십니까? 없겠죠! 있을 리가 없죠. 블랙 버터플라이가 최고 기록을 갱신하고 금화 50개에 낙찰되었습니다!]

    사회자가 망치를 세 번 두드리고, 블랙 버터플라이가 낙찰되었다고 우렁차게 외쳤다.

    “와….”

    “이, 이게 뭐야?”

    “관상용 나비에 금화 50개를 태운다고?”

    “블랙 버터플라이 소유주만 대박 터졌네.”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은 아래로 내려가는 블랙 버터플라이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다음 물건은 희귀 등급 은빛 마나석으로 수속성 기운을 품고 있습니다. 어 바로 20개! 아니, 30개!]

    라온은 사회자가 다음 물건을 소개하자마자 금화 20개 불렀다. 기다렸다는 듯 여우 가면의 여자가 손을 들었다.

    [80번 금화 41개에 낙찰!]

    수속성 마나석까지 낙찰받은 여자가 자신을 보며 씩 웃었다. 네가 뭘 해도 소용없다는 표정이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경매에 참여했지만, 저 여자가 끼어들어 모든 물건을 낙찰받았다. 노골적으로 이쪽의 일을 방해했다.

    ‘액수의 차이가 너무 커.’

    카지노에서도 실력이 아니라, 돈으로 도박을 하던 여자다. 지금 가진 자금으로는 이길 수 없었다.

    -기분이 좋아서 참으려고 했다만, 안 되겠다. 저년의 가면을 벗기고 눈알을 뽑아라. 죽여라! 본왕에게 싸움을 걸고 있잖느냐!

    라스는 승리의 눈웃음을 흘리는 여유 가면의 여자를 보고 분노의 화신이 되어 튀어나왔다. 몸집이 커져서 경매장 전체를 뒤덮었다.

    ‘그러게 손 좀 봐줘야겠어.’

    -그렇다! 본왕에게 시비를 거는 저 눈을 뽑고, 입을 꽁꽁 열려서…어? 네, 네놈 방금 뭐라고 했느냐?

    라스는 의외의 대답에 깜짝 놀랐는지 입을 떡 벌렸다.

    ‘여긴 지그하르트가 아니야. 날 말릴 사람이 없다는 말이지.’

    라온이 빙긋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도리안.”

    “도, 도련님. 일단 진정하시고요. 저런 나비는 금방 구할 수….”

    도리안은 자신이 화가 났다고 생각했는지 손을 떨었다. 하지만 지금은 굉장히 냉정한 상태였다.

    “걱정하지 말고. 지금 나가서 야행복 좀 구해와라.”

    “야행복이요?”

    “그래. 위아래에 신발, 복면까지 시꺼먼 걸로.”

    “살 필요 없어요. 있거든요.”

    도리안은 배 주머니에서 야행복 세트를 보여주었다. 이젠 저 주머니에 뭐가 없는지가 궁금할 지경이다.

    “그런데 이건 왜요?”

    “뭘 물어. 저 여자가 산 나비 훔쳐야지.”

    “에엑? 거, 걱정하지 말라면서요!”

    “응. 걱정할 필요 없어.”

    “아주 대형 사고를 칠 생각이구만! 여기 암시장이에요!”

    도리안의 눈동자가 팽그르르 돌아갔다.

    “괜찮아.”

    라온의 눈빛에 뻘건 불꽃이 일었다.

    “안 들키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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