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라온은 광아검 수련을 마치고 별관의 방으로 돌아왔다. 훈련은 끝났지만 달아오른 육체와 정신의 열기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대단한 검술이야.’
-그런 짐승 같은 검술이 뭐가 좋다는 게냐.
라스는 잡스러운 검술이라고 툴툴거렸다.
‘단순한 짐승이 아니야. 날카로운 발톱을 지니고, 머리를 쓸 줄 아는 우두머리 호랑이지.’
감각검은 전투의 후각을 키워 상대의 약점을 노리는 검술. 대부분 극단적인 공격형 검술이라 허초에 말려들거나 반격을 당하는 경우가 흔했다.
‘광아검은 다르지.’
광아검은 그런 평범한 감각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상대의 허초에 속지 않고, 없는 빈틈을 만들어내는 검술이다. 성취가 높아진다면 상대가 누구라도 방어를 뚫고 검을 박아넣을 수 있을 것이다.
-감각 하니까. 생각나는군. 본왕이 마계에 있을 때 타고난 감각으로 마족들을 쓰러뜨리는 강한 꼬마가 나타났다. 하지만 본왕이 누구인가. 마계의 왕이자, 분노의 군주. 가볍게 냉기를 뿜어내서 그 마족을 굴복….
‘아흠.’
라온이 입을 떡 벌리며 하품했다. 라스의 수다를 듣고 있으니, 갑자기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들어라.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다!
‘내 피와 살은 아니니까.’
손을 흔들며 무시할 때 똑똑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노크만큼이나 낮은 음성으로 대꾸하자 문이 열리고 주디엘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그녀가 침대 아래에 부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떠나기 전에 정리할 일이 있어서 불렀어.”
“말씀하십시오.”
라온은 무표정한 주디엘을 보며 눈을 내리감았다가 떴다.
“첫날 네게 먹였던 레이지 웜은 가짜다.”
주디엘의 목이 살짝 떨렸다. 놀란 반응이라기 보다는 역시라는 느낌이다.
“알고 있었나?”
“확신하진 않았고 의심 정도였습니다.”
“의심?”
“예. 사실 도련님의 진짜 얼굴을 처음 보았던 날은 공포에 질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게 거짓이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그녀가 턱을 들어 올렸다. 가라 앉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 그저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했지만, 별관의 사람들의 따스함에 조금씩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상한 요구를 할 거라 생각했던 도련님도 저를 인간적으로 대해주셨고, 중무전에 의심을 받지 않을 방법을 마련해 주셨죠.”
주디엘의 굳은 입매가 치즈처럼 느슨해졌다.
“그래도 도련님에 대한 경계는 풀지 않았습니다. 마님이나 헬렌님에게 보여주시는 조금 어른스러운 아이다운 모습이 다 연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몇 가지 일을 겪으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흠.”
“실비아 님에게 보여준 얼굴도, 저를 협박했던 눈빛도 모두 진짜였습니다. 당신은 그저 이 별관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라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디엘의 말대로다. 그녀를 협박했던 것도, 겁에 질리게 만든 것도, 이중첩자로 만든 것도 모두 별관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도련님이 레이지 웜을 쓸 정도로 사악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틀렸다. 데루스 로베르트 때문에 레이지 웜은 평생 쓸 생각이 없지만, 별관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일도 할 수 있었다.
“다만 그건 의심일 뿐. 이렇게 말씀해주시지 않았다면 확신은 하지 못했을 겁니다. 왜 말씀하신 겁니까?”
주디엘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변했으니까.”
“예?”
“네가 날 지켜봤듯이 나도 널 지켜봤다.”
라온은 담담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별관의 특별함 덕분인지. 가면을 쓴 채 연기하던 네 얼굴에 진심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건….”
“넌 이미 나한테 정체를 들켜서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었다. 무슨 짓을 해도 내 한마디면 쫓겨나거나 죽으니까. 그런 네가 엄마와 헬렌을 몸으로 감싸려 들었지. 그때의 넌 연기가 아니었어.”
주디엘의 몸이 움찔했다.
“네가 진짜 모습을 보여주었듯이 나도 진실을 밝혔을 뿐이다.”
“…….”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라온은 가만히 앉아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팔려 왔을 때 헤어져서 어디에 있는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언젠가 만나게 해준다는 말에 그들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기에 젖은 주디엘의 목소리가 가슴에 와닿았다.
‘비슷하군.’
동생이 있고, 납치가 아니라 팔려 온 거였지만, 주디엘의 사연은 전생의 자신과 비슷했다. 왜 그녀의 눈빛이 익숙했는지 이해가 갔다.
“구해주지.”
“예?”
주디엘이 깜짝 놀라 고개를 홱 들었다.
“봐서 알겠지만, 난 맞고만 있는 성격이 아니야. 카룬 역시 나와 별관을 노리는 걸 포기할 생각이 없을 테니, 언젠가는 부딪친다.”
카룬은 단순히 정보를 케는 정도가 아니라, 실전 훈련 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려고 마법사까지 매수했었다. 그런 그가 쉽게 물러날 리 없다.
“카룬과 결착을 맺고 나면 네 동생을 찾아주마.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가족을 잃어버린 적은 없지만,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는 알 것 같았다. 자신에게도 소중한 사람이 생겼으니까.
“네가 믿건 믿지 않건 상관없다.”
전생의 나와 너무도 닮은 삶을 사는 그녀를 구제해주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었다. 한 번 실패했기에 더더욱.
주디엘은 팔로 땅을 짚은 채 한참 엎드려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눈매는 여우처럼 가늘어졌고, 빨간 입술이 축 내려갔다. 조금의 웃음기도 없는 얼굴. 이전에 본 그녀의 진짜 표정이다.
“한 가지만 여쭈어보겠습니다. 제가 카룬 지그하르트에게 도련님에 대한 정보를 전하면 어쩌시려고 레이지 웜에 대한 사실을 밝히신 겁니까.”
“안 그럴 거 같아서.”
네 눈빛이 나와 똑같았으니까.
“어이가 없는 대답이군요.”
“그래서 할 건가?”
“…따르겠습니다.”
주디엘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평소의 다정함이 조금 느껴지지 않는 마른 낙엽처럼 건조한 목소리였다.
-끝났군.
‘그래.’
첩자가 진짜 얼굴과 목소리를 드러낸다는 건 진심으로 복종을 했다는 뜻이다. 라스의 말대로 주디엘은 진짜 내 사람이 되었다고 봐도 좋았다.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라도 말씀해주십시오.”
주디엘은 가주에게 하듯 정중한 예를 차렸다. 죽어 있던 눈빛에 하얀 선이 빛났다.
“내가 없는 동안 별관을 부탁한다.”
“예.”
그녀는 다시 고개를 꾸벅이고 방을 나갔다.
“후….”
라온은 침대에 드러누우며 한숨을 내쉬었다.
‘좀 다르군.’
주디엘과는 비슷한 삶을 살았지만, 원하는 건 달랐다. 자신이 자유를 원했던 것과 달리 그녀는 동생을 구하길 원했다. 어떻게 보면 더 힘들지도 모른다.
“할 일이 많네.”
실비아를 직계의 위에 올려야 하고, 데루스의 목을 베어야 하며, 시리아에게서 루난을 떼어놓아야 하고, 주디엘의 동생도 구해야 한다.
“방법은 하나로군.”
-그게 무엇이냐.
“내가 강해져야지.”
몸을 일으키고, 벽에 놓아둔 수련검을 허리에 찼다.
-뭐하는 거냐. 설마….
“그래. 수련하러 가야지.”
라온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열었다.
-수련에 미친놈이로다! 마계에도 네놈 같은 별종은 없다! 잠 좀 자자! 잠 좀!
* * *
2주가 지나고 생존 시험을 떠나는 날 아침이 밝았다.
라온은 오랜만에 진검을 허리에 차고, 낡은 코트를 걸쳤다. 복장만 보면 검사라기보다 용병이나 모험가 같았다.
마지막으로 경량화 마법이 걸린 배낭을 매고 방을 쭉 둘러 본 뒤 나갔다.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피식 웃으며 현관을 열었다.
실비아와 헬렌 그리고 시녀들이 입구 앞에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도, 도련님. 이제 가시는 거죠. 안 가시면 안 되죠….”
헬렌이 훌쩍이며 도시락과 육포를 비롯한 식량을 챙겨주었다.
“도련님. 조심하셔야 해요.”
“절대 무리하지 마세요.”
“힘들면 도망치시구요.”
시녀들은 말 한 마디와 준비해 둔 여행 물품들을 건네주었다. 미리 다 챙겼지만 전부 받아 배낭에 넣었다.
“고마워.”
“잘 다녀오시길.”
주디엘도 인사를 하며 무언가를 담은 보자기를 주었다.
라온은 시녀들의 인사를 모두 받고서 가장 끝에 선 실비아에게 다가갔다.
“라온. 잘 다녀와. 엄마는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을 게.”
그녀는 기다린다고 말하며 웃었다. 시녀들 모두가 눈물을 글썽였지만 홀로 미소 지었다.
“응.”
실비아가 어떤 마음으로 웃는지 알고 있었기에 라온은 고개를 숙이며 그녀를 가볍게 안았다.
“그럼 다녀올게.”
라온은 떨리기 시작하는 실비아의 눈가를 문질러주고 몸을 돌렸다.
“도련님! 조심하세요!”
“건강하게 돌아오셔야해요!”
“밥 굶지 마시구요!”
뒤에서 들려오는 시녀들의 목소리에 손을 흔들어 화답하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고작 1년 가지고, 뭘 그리 걱정이 많은 건지 모르겠군.
‘위험한 곳이니까.’
주디엘을 제외한 모든 시녀들은 자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저 별관에 있었다. 아들 같이 생각하던 아이가 위험한 곳에 간다고 하니,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본왕은 수천 년의 삶을 살며 지독하고도 지독한 위험과 싸워왔다. 인간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그렇군요.’
-제발 좀 들어다오. 이건 정말 중요한….
‘예. 예.’
라스를 놀리며 연무장 문을 열였다. 수련생들과 교관 모두가 중앙에 모여 있었다.
“늦어!”
단상에 걸터앉아 있던 리메르가 씩 웃으며 손짓했다.
“전부 왔으니, 다시 한번 너희들의 졸업 시험을 발표한다. 기간은 1년. 각자 정해진 장소에서 살아남아라. 간단하지?”
“그, 그 장소가 정상이 아니잖아요!”
라온과 함께 하분 성에 가는 도리안이 입술을 바들바들 떨었다.
“쉬우면 시험이 아니지.”
“으으윽!”
“진짜 얄미워….”
“추가로 너희들은 지그하르트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한다. 성을 버리고 이름만 사용하도록. 직업은 용병이나, 수련 검사 정도로 정하면 될 거다.”
리메르는 한번 고생해보라고 말하며 허공에 발장구를 쳤다. 인상을 찌푸리는 수련생들을 쭉 둘러보며 시원한 미소를 흘렸다.
“마지막으로 솔직하게 말해주마. 너희들의 실력은 이미 신입 검사와 큰 차이 없다. 이 시련을 이겨낸다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 거다.”
진중해진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 수련생들이 허리를 곧게 세웠다.
“그리고 이건 선물이다.”
리메르가 단상 앞에 있는 사자의 머리가 그려진 상자를 가리켰다. 교관이 뚜껑을 여니, 회색 장갑이 수십 개가 들어 있었다.
“오웬 왕국을 이겼을 때 받기로 했던 기사 장갑이다. 늦지 않게 와서 다행이야.”
그가 장갑을 만지며 씩 웃었다.
“가벼운데다가 손과 손목의 보호 효과도 있지.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물건이니, 고맙게 받도록.”
리메르는 직접 장갑을 챙겨서 수련생들에게 하나하나 나누어주었다.
“음.”
장갑을 손에 낀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딱 맞아서 검을 쓰는데, 조금의 불편함도 없었다. 수공업으로 이름 높은 오웬의 물건다웠다.
“몸 건강히 다시 보기를 바란다. 이상.”
다시 단상 위로 올라간 리메르가 빙긋 웃었다.
“정렬.”
라온의 지시에 수련생들이 단상 앞에 줄을 맞춰 섰다.
“교관님께 경례.”
“감사했습니다!”
수련생들이 교관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진심이 담긴 외침에 연무장이 들썩였다.
“성장해서 돌아와라. 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리메르와 실비아와 같은 말을 하며 연무장을 떠났다. 교관들도 한 마디씩 격려하며 그 뒤를 따랐다.
라온이 몸을 돌려 수련생들을 보았다. 각자의 의지가 다져진 눈빛들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특별히 할 말 없다.”
“엥?”
“야! 오늘까지 그럴 거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수석이면 한마디는 해야지!”
“평소에는 말 잘하면서!”
많은 것을 함께 하며 가까워진 수련생들은 화난 원숭이처럼 발을 굴러댔다.
“그럼 한마디만.”
라온이 손을 올리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교관의 말을 듣듯 빳빳하게 목을 들었다.
“첫 실전에서 살아남은 무인들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우연이었지만 우린 진짜 실전을 겪었다.”
수련생들의 눈빛이 1년 전 광혈귀와 마주했던 때로 돌아갔다. 공포를 느끼는 이도, 호승심을 느끼는 이도, 아쉬움을 느끼는 이도 있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모두 살아남고, 임무를 완수했지. 대륙의 속설처럼 너희는 죽지 않는다. 5연무장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강해져서 돌아와라.”
“으아아아아!”
“이겨서 살아남자!”
“가즈아!”
수련생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함성을 터트렸다.
라온은 뜨거워진 수련생들을 보며 옆으로 물러섰다. 이제 각자의 시간이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버렌이 긴장 어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이 1년. 죽을힘을 다해서 성장할 거다. 돌아오자마자 네게 대련을 신청할 테니, 날 실망시키지 마라.”
“또 도망치려고?”
“그, 그건! 네놈이 날 죽이려고 드니까. 그런 거고!”
당당했던 목소리가 배고픈 아이처럼 줄어들었다.
“그런 적 없어. 그냥 검술 수련을 했을 뿐이지.”
“어쨌든! 먼저 간다. 무조건 강해져라! 내가 네놈을 따라잡고 만족할 수 있게!”
그는 어딜 가든 지그하르트 검사답게 살라고 외치며 떠나갔다. 그와 함께 가는 크레인이 고개를 까딱였다.
“야.”
이번에는 마르타가 다가왔다. 콧등을 잔뜩 좁힌 상태였다.
“난 빚도 원수도 잊지 않아. 너한테는 둘 다 있으니 까먹을 수가 없지.”
“그래.”
“둘 다 갚아야 하니까 가서 뒈지지마라. 뒈지면 찾아가서 죽여버릴 테니까.”.
“아, 그리고 엄마가 고기 고맙다고 하신다. 다음에 별관으로 오래.”
“이럴 때 그런 말을….”
“잘 다녀와라. 죽지 말고.”
“큽.”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너도 죽지 마. 절대!”
마르타는 손가락을 겨눈 채 마지막 말을 남기고 홀로 연무장을 나갔다.
흥흥.
이젠 귀엽게까지 느껴지는 콧소리. 뒤를 돌아보니 예상대로 루난이 서 있었다.
“자.”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 상자를 내밀었다.
-아이스크림 소녀여! 너는 본왕이 세계를 지배할 때도 특별히 챙겨주도록 하겠노라.
라스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생각에 입맛을 길게 다셨다. 그는 매번 아이스크림을 주는 루난에게는 큰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 먹으라는 것 같아서 뚜껑을 열려고 할 때 루난이 상자를 통째로 내밀었다.
“다 가져가라고?”
“응.”
-오오! 아이스크림 소녀여! 본왕이 너를 첫 번째 하녀로 임명하겠다. 너는 모르겠지만….
‘좀 가라.’
라스는 주접을 떠는 라스를 팔찌에 밀어넣었다.
“이거 다 줘도 돼? 넌?”
“여기.”
루난이 가방에서 아이스크림 박스를 꺼낸다. 하나, 둘, 셋, 넷. 네 개였다. 네 상자를 보여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어떠냐는 표정이다.
“대단하네.”
라온은 피식 웃으며 가방에서 수제 육포를 꺼내 루난의 상자 위에 올려주었다.
“직접 만든 거라 맛있을 거야. 가다가 심심할 때 먹어.”
루난은 육포 주머니를 맹하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나도 고맙다.”
“응.”
얼음처럼 굳어 있던 그녀의 입매가 살짝 올라갔다.
“잘 다녀와.”
루난은 풍선을 흔들듯이 손을 돌리고 연무장을 떠났다.
그렇게 수련생들은 하나둘씩 떠나갔고, 연무장엔 라온과 도리안만이 남았다.
“으으, 가기 싫어. 진짜 싫어.”
벌써 겁에 질린 도리안이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러면 다른 곳 좀 들릴까.”
라온이 도리안의 뒷덜미를 잡아 올렸다. 녀석은 눈물을 흘리기 직전의 상태였다.
“에? 예? 어딜요?”
“상업도시 카멜룬.”
남쪽을 가리키며 웃었다.
“싸우기 전에 장비 좀 든든하게 맞추고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