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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00화 (100/653)
  • 100화

    “다른 시험?”

    라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그하르트 수련생의 졸업 시험은 보통 수련생들간의 대련이나, 교관이 만든 코스를 통과하는 간단한 방식이다.

    리메르의 능글맞은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보통의 시험이 아닌 것 같았다.

    “너희들은 다른 수련생보다 훨씬 경험이 많잖냐.”

    리메르가 칫칫 혀를 차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명예를 건 대련, 목숨을 건 전투, 격을 이용해서 싸우는 방법까지. 정식 검사들이나 할 법한 경험을 모두 치렀어.”

    그 말은 맞았다.

    5 연무장의 수련생들은 전생의 자신만큼은 아니지만, 로베르트 가문이나 다른 연무장 수련생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런 아이들에게 평범한 시험을 내어봤자, 전부 어렵지 않게 통과할 거다.

    “시험이라는 건 평소보다 성장을 가속화 할 수 있는 기회다. 어설픈 시험은 너희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서 시험 내용을 바꾸었다.”

    “음….”

    “확실히.”

    리메르의 설명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의 활약을 지켜보고, 함께한 수련생들은 평범한 검사가 되는 것보다 더 높은 곳을 오르고 싶어 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래서 저희가 치러야 할 시험은 어떤 겁니까?”

    버렌이 손을 들어 올리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생존.”

    리메르의 표정이 급변했다. 농담 따먹던 동네 아저씨는 사라졌다.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기운이 그의 등에 비쳤다.

    “생존이다. 너희는 지그하르트의 수련생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이름과 칼 한 자루만 가지고 외부에 나가 살아가게 될 거다.”

    “새, 생존….”

    “억!”

    “이름과 칼만 가지고 나가라고?”

    생존이라니,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시험이었기 때문에 수련생들 모두가 입을 떡 벌렸다.

    “당황하는 것도 이해해. 너희가 예상했던 졸업 시험과는 결이 다를 테니까. 하지만 이건 분명 필요한 시련이다.”

    리메르가 단상에 걸터앉으며 수련생 모두를 내려다보았다.

    “너희는 지금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다. 오웬 왕국의 수련 기사를 꺾었고, 에덴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았으며, 영약을 먹어 오러와 육체까지 성장했지. 자잘하게는 6 연무장과의 전투도 있었고. 뭐, 누군가의 힘이 크긴 했지만.”

    그가 슬쩍 눈을 돌려 라온을 살폈다.

    “그렇게 자신감이 차오른 너희들의 눈으로 세상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를 확인하고 와라.”

    “음….”

    수련생들은 당황하여 말을 하지 못했지만, 라온은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리메르의 말대로 육체와 정신 모두 강해진 수련생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실전이다.

    가문의 힘과 상관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싸우는 실전은 그들을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다만 거절도 받아들인다.”

    리메르가 눈썹을 올리며 빙긋 웃었다.

    “가문이 차려준 밥을 먹고, 가문이 설치해 준 침대에서 잠을 자던 너희들이 외부에서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이번에는 나나 교관도 따라가지 않아. 정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겁나는 사람들을 위해 다른 졸업시험도 생각해놓으마. 혹시라도 거절할 사람은 잘 생각해본 뒤 내일 말하도록.”

    “음….”

    “어, 다른 시험?”

    “그딴 건 필요 없어.”

    눈동자를 굴리며 고민하는 수련생들과 달리 마르타는 머리카락을 툭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나서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번쩍였다.

    “생존? 그딴 건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해왔어. 얼마든지 해봐.”

    마르타는 무슨 시험을 내도 상관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저도 괜찮습니다.”

    버렌이 담담한 목소리를 흘리며 앞으로 나왔다.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엔 흔들림이 없었다.

    “생존이라는 테마의 졸업시험. 교관님의 말씀대로 분명 한 단계 성장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전 받아들이겠습니다.”

    “벌써 두 명인가?”

    리메르는 씩 웃으며 두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저, 저도 하겠습니다!”

    “저도!”

    “제 이름도 넣어주십시오!”

    버렌과 마르타가 참여하자 수련생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손을 들고 참여하겠다고 외쳤다.

    “좋네. 좋아.”

    리메르는 수련생들이 참여하겠다고 할 때마다 박수를 치며 미소 지었다.

    “루난.”

    라온은 뒤를 돌아 멍하니 서 있는 루난을 불렀다. 그녀는 뭐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 리메르의 박수를 발 구름으로 리듬을 맞췄다.

    “너는 어떻게 할래?”

    “라온은?”

    “해야지.”

    “그럼 나도 할래.”

    그녀는 앞으로 나가서 수련에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수련생 42명 모두가 손을 들었고, 라온 홀로 남았다.

    “라온. 넌 어때?”

    “당연히 갑니다.”

    “흐음, 수석인 너까지 그렇게 무지성으로 대답해도 될까? 내가 너희들을 어디에 보낼 줄 알고?”

    리메르가 능글맞은 표정으로 입을 툭 내밀었다.

    “괜찮습니다.”

    라온은 그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분명 죽을 만큼 힘들겠지만, 교관님은 저희가 이겨내지 못할 시련을 내주시진 않으니까요.”

    “너….”

    확신을 가지고 한 말에 리메르의 표정이 급변했다. 좋아한다기보다는 살짝 당황한 눈빛이었다.

    리메르는 수련생 한 명 한 명의 장단점과 특징을 모두 파악하고 있고, 그에 따른 교육을 해왔다.

    얼마 전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가 움직이는 일의 대부분은 수련생을 위한 것들이었다.

    행동도, 어조도 가볍지만, 생각은 무거운 리메르를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버렌이 라온의 옆에 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으르고, 시간 약속을 못 지키고, 술과 도박에 빠져 있지만, 교육만큼은 확실하니까요.”

    “흥.”

    마르타는 고개를 돌렸지만, 딱히 별말은 하지 않았다. 버렌과 라온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내 제자들이 그렇게 생각했다니, 가슴에 찡하고 와닿네.”

    리메르는 입으로 훌쩍훌쩍 소리를 내며 우는 척을 했다. 장난으로 넘기려는 것 같았지만, 입매가 초승달처럼 변한 걸 보면 분명 기뻐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봐주는 일은 없다. 준비 단단히 해야 할 거야.”

    그가 뒤로 손을 내밀자, 교관이 서류를 건네주었다.

    “원래라면 일주일 뒤에 알려줘야겠지만, 모두 동의했으니, 너희들이 어디로 갈지 바로 알려주마.”

    “저희 전부 같은 곳에 가는 겁니까?”

    버렌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그럴 리가.”

    리메르가 손가락을 저었다.

    “너희들은 아닌척하지만 한 녀석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강해.”

    그의 시선이 라온을 향했고, 수련생들도 그 시선을 따라갔다.

    “음….”

    “그, 그렇죠….”

    “확실히 좀 그렇긴 한데.”

    리메르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는지 수련생들이 입맛을 다셨다.

    처음에는 라온을 질투하고 미워했지만, 함께 수련을 하고, 실전을 겪고, 위기를 넘기며 수련생들은 라온을 진심으로 따르고 있었다.

    “너희들의 관계가 좋아진 건 고무적인 일이지만, 일방적인 의지는 좋지 않아.”

    리메르가 부드럽게 웃으며 수련생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이번 시험을 치르며 너희 스스로가 남에게 의지가 될 수 있는 검사가 되어라.”

    “예!”

    “알겠습니다!”

    교관인 그의 진심이 느껴졌기에 수련생들은 연무장이 떠나가라 목청을 높였다.

    “자, 그럼….”

    리메르가 교관에게 받은 책자를 펼쳤다.

    “버렌 지그하르트.”

    “예!”

    “넌 서쪽 레뷘 사막이다.”

    “알겠습니다.”

    “마르타 지그하르트. 넌 동쪽 사이안 협곡. 그리고….”

    리메르는 수련생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들이 가야 할 곳을 주르륵 불러주었다.

    “…루난 슬리온. 넌 서북쪽에 있는 카탐 정글이다.”

    “네.”

    “이제 마지막이네. 라온 지그하르트.”

    모든 수련생들의 이름이 불렸고, 이제 라온 혼자만 남았다.

    “예.”

    “너는 북동쪽. 하분 성이다.”

    “하분 성….”

    라온이 눈매를 좁혔다.

    ‘징한 곳으로 보내는군.’

    하분 성은 지그하르트보다 더 북쪽에 있는 성으로 북해와 스터린 산에서 나오는 몬스터들과 1년 365일을 싸우는 전쟁터 중 하나였다.

    ‘분명 도움은 되겠어.’

    아무리 불의 고리가 있고, 만화공을 익혔어도 아직 전생의 감각을 모두 되찾지는 못했다.

    그 전쟁터에 몸을 맡기게 된다면 전생 이상의 살기와 감각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 너희가 가야 할 곳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어떻게 대비할지, 무엇을 준비할지도 직접 생각하고 결정해라. 이 모든 게 전부 시험이다.”

    리메르가 책자를 덮으며 턱을 들어올렸다.

    “예! 알겠습니다!”

    우렁차게 대답하는 수련생들의 눈빛에는 성장에 대한 기대감과 미지에 대한 걱정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다른 녀석들도 그렇지만 넌 고생 좀 할 거다.”

    리메르가 라온의 앞에 내려와 살벌한 눈빛을 보냈다.

    “거긴 칼을 집어넣을 틈이 없어서 전투의 지옥이라고 불리는 곳이니까.”

    “히이이익!”

    함께 하분 성에 걸린 도리안이 기겁하며 다리를 떨었다. 라온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지옥이라면 괜찮네요.”

    “어?”

    “지옥을 이겨내고 온다면 얼마나 강해지겠습니까. 그리고….”

    라온이 기대감으로 넘치는 눈빛을 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지옥도 겪어보았으니까.’

    *     *      *

    “그, 그거 진짜 해야 하나요?”

    졸업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별관으로 돌아가자 헬렌이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저었다.

    “하분 성은 지그하르트의 장벽 중 하나라, 강한 몬스터들이 끝없이 쏟아진다고 들었어요. 다른 시험도 준비해준다는데 꼭 그곳에 갈 필요가 있는지….”

    “이건 나를….”

    “가야지.”

    라온이 말을 하기 전에 실비아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거긴 엄청 위험한 곳인데….”

    “그래도 가야지.”

    실비아는 헬렌에게 고개를 젓고서 라온을 보았다.

    “라온이 성장할 기회니까.”

    그녀는 레이든과의 대련 이후로 라온을 더 이상 어린아이로 보지 않았다. 검사. 자격을 갖춘 검사처럼 여겨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실비아가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물잔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엄마 말이 맞아.”

    라온은 실비아, 헬렌 그리고 시녀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으며 눈을 내리감았다.

    “교관님의 말대로 이건 시험이라기보다 성장할 기회야. 기회가 왔으면 잡아야지.”

    “그래. 잘 생각했어.”

    헬렌과 시녀들은 여전히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무인의 삶을 살았던 실비아는 달랐다. 이제 자신을 확실하게 인정해주고 있었다.

    ‘편하네.’

    시녀장인 헬렌의 발언권도 강하지만, 실비아는 이기지 못한다. 그녀의 동의를 얻었으니, 앞으로 수련을 할 때 훨씬 편해질 것 같았다.

    “그럼 난 수련하러 가볼게.”

    라온은 다 먹은 접시를 옆으로 치운 뒤 일어섰다.

    “라온.”

    그가 방으로 돌아가려 할 때 실비아가 고개를 돌렸다.

    “할 거면 준비 단단히 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대비할 수 있도록.”

    “응.”

    라온은 믿음직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방으로 들어갔다.

    “마님. 정말 괜찮으세요?”

    “하아, 괜찮을 리가 있겠어?”

    실비아가 물잔을 움켜쥔 두 손을 바르르 떨었다. 하나뿐인 아들이 위험한 곳에 간다는데 마음이 놓일 리가 없었다.

    ‘다만….’

    헬렌과 달리 무인이 어떤 사람인지, 검사가 무엇에 미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싫어도 라온을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막아도 라온은 간다. 시원하게 보내주는 게 저 아이를 위해서도 옳은 일이었다.

    “그래도 전 걱정이 되네요. 너무 위험한 곳이다 보니….”

    “걱정되는 건 당연한 일이야.”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이 있어.”

    “할 일이요?”

    “그래. 라온이 돌아왔을 때 편안하게 쉴 수 있게 최선을 다해서 지금을 유지해야지.”

    그녀는 시녀들을 쭉 둘러본 후 방긋 웃었다. 어머니이자, 별관의 주인으로서 보일 수 있는 불안함을 감춘 미소였다.

    “마님….”

    시녀들은 그녀의 말에 공감하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디엘은 실비아와 헬렌을 보며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     *      *

    한 달 뒤에 전쟁터라 불리는 곳으로 떠난다는 걸 알아도 라온의 생활은 그대로였다.

    평소처럼 새벽 훈련을 하고, 5연무장에 가서 리메르와 교관들에게 교육을 받고, 저녁에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수련을 이어갔다.

    다만 그 강도는 이전과는 격이 다를 정도로 격해졌다.

    지켜보던 버렌과 마르타가 질릴 정도였고, 루난이 지쳐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

    “후우….”

    라온은 그 강한 정신력이 깎일 정도로 힘든 수련을 일주일 내내 진행한 뒤 별관으로 돌아갔다.

    모두가 자고 있을 시간이라 창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음….”

    방은 먼지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고, 옷과 침구에선 부드러운 향이 솔솔 풍겼다.

    ‘이럴 필요 없는데.’

    속마음과 달리 미소가 지어졌다.

    언제 돌아와도 편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배려해준 실비아와 시녀들이 고마웠다.

    “하아….”

    라온은 숨을 내쉬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최근 수련은 그에게도 힘들었기 때문에 잠이 솔솔 쏟아졌다.

    그대로 누우려고 할 때 침대에 있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불을 들추자, 작은 책자가 보였다.

    “이건….”

    책자를 읽는 라온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책자에는 그가 가야 할 하분 성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지리적인 정보, 나오는 몬스터들의 정보 그리고 그곳에 있는 인물들에 관한 정보까지. 이걸 누가 주었는지는 확연했다.

    ‘주디엘.’

    자신이 하분 성에 간다는 걸 안 그녀가 준비한 정보였다.

    “쯥.”

    라온은 혀끝을 적시는 씁쓸함에 입맛을 다셨다.

    “떠나기 전에 맺음을 확실하게 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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