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82화 (82/653)

82화

“불굴의 의지?”

-하필….

라스의 목소리에 짜증이 어렸다. 불굴의 의지라는 특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럼 괜찮은 특성인가 본데?’

라스가 싫어한다면 좋은 특성일 수밖에 없다. 라온이 기대감을 가지고 상태창을 불러왔다.

<상태창>

이름 : 라온 지그하르트.

칭호 : <꺾이지 않는 자>.

상태 : 혹한의 저주(다섯 가닥).

특성 : 분노, 불의 고리(4성), 수속성 저항력(4성), 설화의 감각(3성) 만화공(3성), 혹한의 냉기(3성), 화속성 저항력(3성), 블리딩 커스(1성), 암습(1성), 불굴의 의지(1성).

근력 : 62.

민첩성 : 63.

체력 : 56.

기력 : 47.

감각 : 66.

분노 : 10.

보상 덕분에 능력치가 오른 것을 확인한 후 새롭게 생긴 특성 <불굴의 의지>를 살펴보았다.

<불굴의 의지>

육체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충격을 받았을 때 일시적으로 정신력을 상승시켜 고통을 감소시킨다.

설명을 보자마자,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 특성이 있다면 라스의 분노를 가진 상태에서도 이전처럼 버티는 게 가능하다.

“운이 따라주는군.”

-운이 아니라, 본왕이 만든 시스템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라스가 메시지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너무 잘 만들어도 탈이로군.’

처음 저 시스템을 제작할 때 특성의 경우 현재 가장 필요한 능력부터 생성되도록 만들었다.

그 시스템의 특성 생성 조건이 라온에게도 작용해서 현재 가장 필요한 불굴의 의지가 생겨난 것이다.

-쯧.

짜증이 확 돋았다.

‘이제 놈을 공략할 수 있을 줄 알았거늘….’

라온이 분노의 감정을 받아들여 이제야 놈에게 먹힐 칼날이 만들어졌는데, 저 특성 때문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후우….’

라스가 끓어오르는 감정을 가라앉혔다. 멍청하게 분노를 일으켜 놈의 능력치를 올려주는 건 이제 사양이다.

‘시간은 많아.’

조금씩이지만 능력의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있고, 라온에게 분노의 감정도 심어놓았다.

녀석이 인간치고는 빠른 성장을 보여주고 있지만, 결국 승자는 자신이 될 것이다.

‘기다려라. 네놈의 육체와 영혼은 나의 것이다. 영겁의 시간 동안 빙하 속에 가둬주마!’

라스가 차게 식은 눈으로 라온을 노려보았다.

“쯧쯧.”

라온이 라스를 보며 혀를 찼다.

“표정 보니까. 또 헛생각하고 있네.”

-헛생각을 하는 건 네놈이겠지. 인간 주제에 본왕의 높고도 고고한 사고를 어찌 이해한단 말이냐.

“뻔해. 참고 기다려서 내 육체를 먹고, 영혼은 빙하에 가두겠다고 다짐했겠지.”

-억!

라스가 입을 떡 벌렸다.

-네놈. 독심술까지 익혔단 말이냐!

“지금까지 듣고 본 게 있는데 모를 리가 없지. 네 생각이나 움직임은 내 손바닥 안에 있다.”

라온이 길쭉한 오른손을 쫙 펼쳐서 흔들었다.

-인간 따위가 감히!

라스는 조금 전에 라온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걸 까맣게 잊고 분노를 폭발시켰다.

콰아아아아!

한층 격이 올라간 라스의 냉기가 파도가 되어 라온에게 밀어닥쳤다.

“으음.”

라온이 안쪽 입술을 깨물었다.

‘이거 장난 아닌데….’

부상을 입은 상태라고 해도 통증의 정도가 이전보다 훨씬 심해졌다. 날카로운 고드름으로 전신을 찌르는 듯한 감각.

수속성 저항력이 4성인데도 아찔할 정도의 고통이라니, 라스에게 분노의 감정을 받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후욱….”

네 개의 불의 고리를 공명시키며 이가 바드득 갈릴 정도의 고통을 참고 또 참았다.

[감내하기 힘든 고통을 느꼈습니다.]

[불굴의 의지가 발동됩니다.]

그 메시지와 함께 정신과 육체를 짓누르던 고통이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오늘 본왕이 네놈과의 악연을 끊어버릴 것이다!

라스는 전력을 다해서 분노와 냉기를 일으켰지만, 놈의 감정을 받아들이기 전처럼 버티는 게 어렵지 않았다.

[심각한 부상 상태에서 라스의 빙의를 버텨내셨습니다.]

[감각 능력치가 1포인트 상승합니다.]

메시지와 함께 정신이 조금 더 깨끗해졌다.

-빌어먹을. 어떻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라스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며 수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분노의 군주가 아니라, 양아치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말했잖아.”

라온은 픽 웃으며 오른손을 저었다.

“넌 나한테 안 된다고. 뻔히 보인다니까.”

다만 속이 편하지는 않았다.

‘놈의 힘이 강해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라스의 기운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놈보다 빠르게 강해지지 않는다면 결국 놈에게 먹히게 될 거다.

“후우.”

-크으으!

라온과 라스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씹어 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     *      *

다음날.

라온은 정오가 다 되어서야 깨어나 밖으로 나왔다.

마을을 보니, 조금이지만 복구 작업이 진행되어 있었다. 지부의 검사들과 수련생들이 밤과 아침 사이에 마을을 정비한 것 같았다.

“일어났군.”

목책 근처에 있던 지부장 부르카스가 라온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눈빛은 어제와 달랐다. 마치 자신을 신비로운 생물처럼 보는 듯했다.

다른 수련생에게 자신이 녹전귀를 베고, 광혈귀와 전투를 치렀다는 사실을 들은 모양이다.

“몸은 괜찮은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라온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메르가 대체 뭘 뿌린 건지 모르겠는데, 부러진 뼈가 붙고, 뜯겨나간 허리와 허벅지에 살이 차오르고 있었다.

돌아가서 회복에 집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단한 일을 해냈다. 15살에 녹전귀를 베고, 광혈귀와 싸워 살아남다니, 업적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니야.”

부르카스가 마른침을 삼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아니, 업적 그 이상이지.’

아직 검사조차 되지 못한 수련생이 에덴의 녹전귀를 베고, 광혈귀와 10분가량 싸웠다고 말하면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이 소식을 가지고 가문으로 돌아가도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다.

붕대를 감은 라온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저렇게 심한 부상을 입어 놓고서 고통을 느끼는 표정이나, 약한 소리는 하지도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저 나이에 저런 참을성과 무력을 갖추게 된 건지 놀라울 따름이다.

“이곳은 우리가 맡을 테니, 너는 수련생들을 이끌고 가문으로 돌아가라. 임시조치는 했지만, 너를 포함해서 부상이 심한 녀석들도 많다. 돌아가서 제대로 치료를 받아라.”

“알겠습니다.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지그하르트 아니냐.”

부르카스가 옅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럼.”

라온은 살짝 고개를 숙인 후 다른 수련생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부르카스는 라온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광혈귀에게서 버틴다라….’

익스퍼트 중급인 자신도 광혈귀에게 5분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라온이 수련생들을 도망치게 한 후 홀로 10분을 싸웠다는 게 놀랍기도 했고, 감동적이기도 했다.

‘커 보이는군.’

자신의 반도 안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의 작은 등이 너무도 커 보였다.

‘어찌 됐든.’

부르카스는 하늘의 정중앙에서 세계를 비추는 태양을 올려보며 웃었다.

‘가문이 난리가 나겠어.’

*     *      *

“라온.”

루난이 먹이를 본 강아지처럼 라온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그녀는 자신의 전신을 살피고서 눈을 축 내렸다.

“아프지?”

“이제 괜찮아.”

라온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거짓이 아니라, 통증은 정말 많이 줄어들었다.

“정말?”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응.”

루난의 입꼬리가 아주 짧게 올라갔다. 이제 이 녀석도 감정의 표현이 조금 늘어난 것 같았다.

“가문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모두에게 출발 준비를 하라고 전해줘.”

“알겠어.”

그녀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다른 수련생이 있는 곳을 뛰어갔다.

“바로 돌아가는 건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버렌이 조용히 다가왔다.

“그래. 지부장님이 뒤처리를 해줄 테니, 돌아가라고 하셨어.”

“하, 우리 교관은 대체 어디에 갔는지!”

버렌은 인상을 찌푸리며 바닥을 걷어찼다.

“몸은 정말 괜찮은 거냐?”

“부상이 낫진 않았지만, 회복기에 들어섰다.”

“확실하게 나아라. 완벽한 상태의 널 내가 꺾어야 하니까.”

“그걸 보고도?”

“그걸 봤기 때문이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바위를 얹은 듯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난 포기하지도, 물러나지도 않는다. 걸을 수 없다면 기어서라도 네 뒤를 쫓겠어.”

목소리에도 단단한 의지가 깃들었다. 이번 임무를 통해 버렌도 한층 성장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음?”

“네가 냉기의 오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녀석들의 입을 막았다. 네가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비밀을 밝힐 놈은 없을 거다.”

“아.”

라온이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거기까지 생각해줬다고?’

이제 오러가 두 가지라는 게 밝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버렌이 먼저 수련생들의 입을 막아 준 모양이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놀랄 필요 없어. 네게 목숨의 빚이 있으니,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이다.”

버렌이 콧등을 긁적이고 몸을 돌렸다.

“출발 준비는 내가 하겠다. 넌 쉬고 있어.”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다른 수련생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저렇게 변할 수가 있나.’

버렌은 처음 만났을 때 질시에 가득 차 있던 아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바뀌었다.

5 연무장의 기적은 자신이 아니라 저녀석일지도 모르겠다.

“흠.”

라온은 짐을 챙긴 뒤 마을의 중심 부근으로 향했다.

“그쪽은 제대로 수리해야 하니까. 일단 나무만 쌓아놔!”

경상을 입은 촌장이 마을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위로 쌓으면 위험하니까. 옆으로… 어! 은인!”

그는 라온을 발견하고, 재빠르게 달려왔다.

“괘, 괜찮으십니까? 저 때문에 큰 부상을….”

“촌장님 탓이 아닙니다.”

“이 못난 놈을 살리느라, 그 괴물에게 맞으셨지 않습니까. 정말 뭐라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촌장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

라온은 고맙다고 말하는 촌장을 바라보며 광혈귀와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했다.

‘그때….’

광혈귀가 공격을 해온 순간 자신도 모르게 촌장을 껴안고 뒤로 물러섰다. 부상을 입을 걸 알면서도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내가 왜 그랬을까.’

사실 따지고 보면 필요 없는 일이었다.

촌장에게 고블린 왕의 마석을 받았고 사정도 들었으니, 딱히 살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부상을 입으면서까지 그를 구해냈다.

‘달라지고 있어.’

실비아 때문인지, 리메르 때문인지, 아이들 때문인지, 환경 때문인지.

어찌 됐든 자신도 변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변화가 그리 싫지 않았다. 텅텅 빈 목각인형에 감정의 옷이 입혀지는 느낌이었다.

“일어나세요.”

라온은 옅게 웃으며 부들대는 촌장을 일으켰다. 노쇠한 눈에 감격과 감사가 담겨 있었다.

“말했던 대로 이 보석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놈들을 불러 모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물론입니다!”

촌장은 위아래로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먼저 말을 꺼내시진 말고, 혹시라도 보석을 찾는 사람이 오면 지그하르트에서 몇 가지 물건과 함께 가져갔다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촌장은 흡사 신의 계시를 받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렇게 말하는 거지? 다 말해주면 되지 않느냐.

‘모르는 게 나아.’

이 보석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챙겨가서 에덴 놈들이 보석을 노린다는 정보를 지워야 한다.

‘이 정보는 비싸게 팔릴 거거든.’

라온이 씩 웃었다. 글렌에게 에덴의 정보를 비싸게 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     *      *

수련생들은 마을 사람 모두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세부 마을을 떠났다.

버렌은 부상 당한 라온 대신 앞에서 수련생들을 이끌었고, 루난은 아기 오리처럼 라온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마르타는 평소처럼 홀로 걸었지만, 생각이 많은 듯 눈동자가 탁해져 있었다.

라온은 수련생들의 중앙에 서서 주변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능력치 덕분에 감각이 늘어났어.’

녹전귀를 잡은 업, 광혈귀와 맞선 업 그리고 라스에게 뜯어낸 능력치 덕분에 감각 수준이 꽤 올라갔다.

이전보다 감각 범위가 늘어나, 숨은 사람의 기척을 잡기도 쉬워졌다.

지금이라면 홍안귀가 숨어있어도 그 위치를 금세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나 모를 에덴의 습격에 대비하며 계속해서 기감의 범위를 늘리자, 감각에 한 사람이 잡혔다.

‘리메르!’

리메르가 가진 그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그는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수련생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긴 당연한가.’

에덴 혹은 다른 세력의 습격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가 남아 있는 건 불 보듯 뻔했다.

후욱.

갑자기 리메르의 기척이 촛불 꺼지듯이 훅 가라앉았다. 자신이 알아차린 것을 감지한 모양이다.

‘특이한 사람이라니까.’

라온은 픽 웃으며 기감을 지우고 수련생들을 따라갔다.

잠시 후.

수련생들이 지나간 오솔길의 나무 위에서 리메르가 내려섰다. 그는 숫제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 괴물 같은 놈….’

라온이 이 며칠 동안 정말 말이 안 될 정도로 큰 성장을 이뤘다고 해도 제대로 은신한 자신을 감지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소식을 알려주면 어떤 반응을 하려나?”

그는 글렌의 엄숙한 얼굴을 생각하며 히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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