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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79화 (79/653)

79화

리메르는 뒤늦게 출발했음에도 수련생들보다 먼저 세부 마을 근처에 도착해 있었다.

당연히 세부산을 점거하고 있던 에덴의 주구들을 파악했고, 그들을 지켜보며 고민했다.

위험요소를 치워야 하는가 아니면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지켜봐야 하는가.

‘라온을 한 번 믿어볼까?’

사실 라온이 없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에덴을 모조리 제거했을 것이다.

놈들은 목적을 위해서는 본인들의 목숨도 바치는 진짜 미친놈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라온이라는 녀석은 자신조차 파악이 되지 않는 천재다.

이번 임무를 치르며 라온과 수련생들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켜봐야겠어.’

스승된 자로서 제자들이 성장할 수 있다면 그 길을 열어주는 게 맞다.

리메르는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눈을 떼지 않은 채 마을로 향하는 수련생들을 미행했다.

그리고 그 미행에는 에덴의 탐색자 홍안귀도 있었다.

‘저녀석을 알아차릴 수는 없겠지?’

홍안귀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아이들과 멀리 떨어져 관찰하고 있었다.

기척이 조금 있다고 해도 지금의 아이들이 그걸 알아차릴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라온이 무언가를 느낀 듯 버렌에게 지휘권을 넘겨버리고, 아주 미세하게 오러를 풀어 주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저 녀석은 진짜….’

그 어느 때보다도 놀라웠다.

오러를 이용해서 주변을 기척을 파악하는 능력을 기감이라 하는데, 라온은 그 기감이 괴이할 정도로 발달 되어 있었다.

‘육각형.’

무학, 오러, 체력, 정신력에 기감까지. 라온은 검사가 가져야 할 모든 재능을 가지고 있는 원석이었다.

리메르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에덴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예상과 달리 에덴은 수련생들을 공격하지 않고, 적당히 공을 세우고 물러갈 수 있도록 몬스터들을 던져주었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군.’

아이들을 지키고 있을 교관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무언가를 노리고 아이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 같았다.

놈들은 지그하르트의 지원을 두려워하고 있어.

아무래도 아이들을 돌려보낸 뒤 이곳을 샅샅이 뒤져봐야 할 것 같았다.

라온은 누군가가 관찰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평범한 수련생 중 하나가 되어 몬스터를 죽인 뒤 마을 사람들의 환호를 받고 마을을 떠났다.

‘흐음….’

물러나는 건가.

그것도 나쁘지 않다.

본인들의 무력과 상대의 무력 차이를 알아차리고 물러나는 것도 현명한 무인의 자세니까.

다만 그 이후 라온의 움직임은 리메르의 예측과 완전히 동떨어졌다.

라온은 홍안귀가 떨어져 나가자마자 멈춰서서 모두에게 사실을 밝히고, 바로 지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다시 세부 마을로 돌아와서 마을을 공격하는 몬스터들을 보고 에덴이라는 예측까지 내놓았다.

라온의 말을 들은 리메르는 혀를 내둘렀다.

관찰자와 몬스터를 이용하는 것만 보고 에덴에 닿을 줄이야. 라온은 두뇌마저도 범인의 범주를 넘어섰다.

라온은 기다렸고, 버렌과 루난은 마을을 구하기 위해서 칼을 뽑고 뛰어들었다.

‘저게 아이들다운 모습이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달려가는 수련생들은 영웅이자, 지그하르트의 검사다운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달려오는 녹귀들에게서도 밀리지 않고 맞서 싸워 마을을 지켰다.

다만.

리메르의 시선을 끌은 건 그들이 아니라, 라온이었다.

적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뒤부터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마지막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니.

15살이 보일 수 있는 인내력이 아니다.

앞에서 싸우는 검사가 아니라, 옥좌에 올라 모두를 굽어보는 왕의 모습이 보였다.

‘왕의 자질.’

예전에 느꼈던 대로 라온은 지그하르트의 왕이 될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녹귀와 아이들의 치열한 싸움이 진행되었고, 라온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마르타가 뒤를 습격하여 결국 승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산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녹전귀가 나타나 상황이 급변했다.

수련생들은 녹전귀의 일격도 받아내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당연한 일이다.

녹전귀는 익스퍼트에 오른 강자니까.

리메르는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아이들의 바로 옆에서 검을 뽑아 대기했다.

‘지금도 움직이지 않는 건가?’

라온은 버렌과 루난, 마르타가 죽을 위기에 처했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군.’

나서기로 결정하고 녹전귀를 막으려 할 때 라온이 움직였다.

그야말로 그림자 같은 기민한 움직임. 그 누구도 알 수 없게 다가가 녹전귀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허….’

헛웃음이 나왔다. 목을 베지는 못했어도 팔을 가르는 일검은 경지에 오른 살검이었다.

녹전귀는 팔을 잃었음에도 강력한 투기를 발휘하여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나갔지만, 새로운 경지에 오른 라온의 검 앞에 주검이 되어 쓰러졌다.

‘하하하하!’

리메르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야말로 괴물. 라온 지그하르트는 대륙 제일의 검사이자, 패왕이 될 자질을 가진 아이를 가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호하고 제대로 키워야 한다.

‘정말이지 끝이 없는 녀석이야.’

웃으며 일어났다. 이제 자신의 일을 할 차례였다.

리메르는 녹전귀가 죽은 뒤 세부산을 벗어나는 홍안귀들을 모조리 제거했다. 이곳의 정보가 알려지지 않도록.

세부 마을과 세부산을 완벽하게 둘러봐서 위험 요소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돌아왔다.

기절했던 라온이 깨어났고, 전투에서 이룬 깨달음 때문인지 녀석은 한층 더 성장해 있었다. 아마 검기도 사용할 수 있을 거다.

‘저 정도면 나도 알아차릴지 모르겠는데.’

라온의 기감이라면 어설프게 숨은 자신도 찾아낼 것 같아서 조금 더 떨어졌다.

‘이제 돌아갈까.’

날이 밝으면 크레인이 불러온 지원군도 도착할 테고, 위험 요소도 없으니 이제 돌아가도 될 것 같았다.

사실 다른 무엇보다 라온의 활약을 당장 글렌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자, 그럼….’

리메르는 아이들을 확인한 뒤 가문으로 돌아갔다. 경쾌하게 보법을 밟으며 지그하르트로 향할 때 세부 마을에서 강렬한 기운이 폭발했다.

‘이 기운….’

느껴본 적 있는 기운일뿐더러, 마스터에 이른 강렬한 기파였다.

‘젠장!’

리메르가 전력을 끌어 올려 마을로 달렸다. 어마어마한 속도였지만, 굼벵이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마을에서 굉음이 들릴 때마다 가슴이 아려왔다.

그렇게 달리고 있을 때 루난과 버렌, 마르타가 보였다.

오우거 두 마리에게 습격을 당하는 녀석들을 보고, 검을 뽑았다.

촤아아악!

바람을 담은 검으로 오우거 두 마리를 동시에 베어버렸다.

리메르는 놈들의 목이 떨어지기 전에 눈으로 라온의 위치를 물었다.

루난이 눈동자로 마을을 가리켰다.

감정 표현이 옅은 아이의 눈동자에 너무도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리메르는 이를 악물고 마을로 뛰어들었다.

중간에 녹귀와 몬스터들이 달려들었지만, 모조리 베고 중심으로 향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라온은 그 작고 어린 몸으로 에덴의 괴수 광혈귀의 공격을 끝까지 버텨내고 있었다.

왼팔은 부러져 덜렁거리고, 허리가 파여나갔으며, 다리를 끌면서도 검을 놓지 않았다.

그건 감동이었고, 경외였다.

리메르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저 어린아이를. 아니, 저 어린 왕을 평생 따르고 지키기로.

후우웅!

그렇게 그의 새로운 충심이 담긴 검이 광혈귀의 주먹을 막아섰다.

“늦으셨습니다.”

라온은 자신이 올 줄 알고 있었던 듯 웃었다.

“미안하다. 늦잠을 잤거든.”

리메르 역시 평소처럼 대답했다.

“이제 맡겨라.”

그렇게 말하고서 광혈귀의 주먹을 밀어냈다.

콰아아아!

바위 같은 주먹이 얇은 검에 밀려나는 모습은 하나의 장관과도 같았다.

“지그하르트의 광검!”

“오랜만이다. 대머리.”

리메르는 광혈귀의 흉폭한 강기 앞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듯 손을 흔들었다.

“네놈이 어떻게 여길!”

“귀여운 새싹들이 너 같은 대머리에게 짓밟히는 걸 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

“임무에 너 같은 놈을 딸려 보내다니, 지그하르트도 많이 물러졌군!”

광혈귀가 붉은 강기가 어린 주먹을 좌우로 펼쳐냈다.

콰아아아아!

붉은 파도가 솟구치며 무시무시한 강기의 폭풍이 밀어닥쳤다.

“흐읍!”

리메르가 녹색 오러가 어린 검을 사선으로 내리쳤다. 강기가 배수로를 탄 물길처럼 우측으로 흘러내려 갔다.

“그 정도 강기을 간신히 흘리다니, 단전이 깨져 폐인이 됐다는 소문은 사실이었군.”

“헛소문이니까. 소식통 바꿔라. 너희 투구단은 여전히 소식이 느리네.”

“누가 보아도 네놈의 균형은 무너져 있다.”

광혈귀가 히죽 웃었다. 그저 하나의 감정 표현을 했을 뿐인데 공기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이걸 어쩌냐? 구출대가 아니라, 함께 잡아먹힐 강아지가 왔군.”

놈은 뒤에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라온에게 이죽거렸다.

“강아지인지, 지옥을 지키는 케르베로스인지는 끝까지 가봐야지!”

리메르가 우측으로 내려간 검극을 쳐올렸다. 세찬 바람이 일어나며 광혈귀의 어깨를 갈랐다.

피이익!

광혈귀의 어깨에서 핏줄기가 터졌지만,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순식간에 아물기 시작했다.

“이전의 네 검에는 지독할 정도의 살기가 어려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광혈귀가 땅을 박차고 리메르가 펼쳐낸 바람의 벽을 뚫어버렸다.

“넌 약해졌다. 네놈의 검으로는 날 벨 수 없다!”

그 말과 함께 꽉 주먹을 내리쳤다.

치이이잉!

리메르는 그 권격을 정면으로 받아내지 못하고 검을 휘돌렸다. 풍차처럼 돌아간 녹색 오러가 두터운 방패가 되었지만, 광혈귀의 강기를 버티지는 못했다.

파사삭!

녹색 오러가 깨지고 광혈귀의 주먹이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리메르는 그 자리에 없었다. 오러의 방패를 미끼로 던지고 광혈귀의 좌측으로 파고들어 검을 내질렀다.

퍼어억!

리메르의 날카로운 검격이 아래에서부터 광혈귀의 심장을 노리고 들어갔다.

“고작 그 정도론 안 된다!”

광혈귀가 포효를 내지르며 몸을 움츠리자, 놈의 갈비뼈를 뚫고 들어가던 리메르의 검이 우뚝 멈춰 섰다.

“네놈이 약해지는 동안 난 더욱더 강해졌다. 힘의 차이는 완벽하게 역전되었어!”

“칫!”

리메르가 혀를 차면서 검을 뒤로 뺐다.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검이 부러질 가능성도 있었기에 적절한 조치였다.

“크하하하!”

광혈귀가 괴성을 내지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더욱더 강해진 권격이 몰아치자 대지가 비명을 질렀다.

“무식한 놈.”

리메르는 그 권격을 감히 맞받아치지 못하고, 보법을 이용해서 회피했다.

‘저건….’

라온은 광혈귀의 난폭한 권법이 아니라, 리메르의 보법에 시선을 집중했다.

‘꼭 바람을 타는 낙엽 같군.’

리메르는 바람을 탄 꽃잎처럼 가볍게 몸을 놀려 광혈귀의 주먹을 피해냈다.

자신이 광혈귀와 싸울 때 보였던 움직임을 최고조로 이뤄낸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기습적으로 내지르는 검의 타이밍은 완벽했다.

만약 리메르의 검에 어린 기운이 강기였다면 승부는 진즉에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공격이 먹히지 않음에도 리메르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꼭 보라는 듯 광혈귀와 초근접거리에서 전투를 보였다.

‘잠깐 설마!’

라온이 눈을 부릅떴다. 리메르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걸 보고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내게 보여주고 있어.’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에게 전투 교육을 하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약해진 나도 잡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 너 그 투구 뺏기는 거 아니냐?”

“닥쳐라!”

광혈귀가 광기에 차오른 눈빛을 발하며 권격을 내질렀다. 주먹에 담긴 막대한 기운에 리메르도 섣불리 맞서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콰아아앙!

주먹 한 발에 마을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파여나갔다. 고대 전설에 등장하는 거인을 보는 듯한 무력이었다.

“제대로 덤벼라! 지그하르트의 광검!”

광혈귀는 분노에 몸을 맡긴 듯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리메르를 쫓았다.

콰아아아!

움직임은 단순했지만, 힘과 속도가 재빨라 점차 리메르와의 거리가 좁혀지기 시작했다.

“쯧, 어쩔 수 없네.”

리메르가 멈춰서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라온의 시선에 담으며 웃었다.

“교보재가 폭주했으니, 오늘 교육은 이걸로 끝내야겠어.”

“이런 미친놈이!”

“잘 봐둬라. 라온.”

라온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리메르의 말이 이어졌다.

“이게 지그하르트가 싸우는 방식이고, 네가 이뤄야 할 경지다.”

리메르의 검이 하늘을 찌르고, 그의 왼손이 땅을 가리켰다.

“검계현신.”

그 목소리는 하늘에서 울리는 듯하면서 땅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것 같았다.

“폭풍의 눈.”

진언처럼 울린 그 선언에 세계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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