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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75화 (75/653)

75화

라온은 늦잠을 잔 듯한 개운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낯선 천장 아래 여러 개의 메시지가 올라와 있었다.

[극한의 전투에서 한계를 넘어선 능력을 발휘하셨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포인트 상승합니다.]

[자신보다 격이 높은 상대를 꺾으셨습니다.]

[칭호 <꺾이지 않는 자>가 생성되었습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기습을 성공시키셨습니다.]

[특성 <암습>이 생성되었습니다.]

전부 좋은 의미의 메시지들이었다.

“으음….”

라온이 눈을 깜빡이며 상체를 일으켰다. 처음 보는 통나무집 안. 아직 세부 마을에 있는 것 같았다.

“이게 다 뭐지?”

다시 한번 메시지들을 확인해 보았다. 녹전귀와의 전투 덕분에 얻은 능력치와 칭호 특성들이었다.

-그런 허접한 놈을 잡았다고 이런 보상을 주다니….

라스는 보상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이를 갈았다.

-그저 근성만 있는 멍청이일 뿐이었는데, 능력치에 칭호, 특성까지 주다니. 어처구니가 없도다.

‘네 능력이잖아.’

라온은 손바닥을 들어 냉기와 분노를 동시에 일으키는 라스를 밀어냈다.

-젠장! 직접 쓸 때는 몰랐는데, 저건 정말이지….

말을 마치지 않았어도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가 갔다.

‘확실히 사기야.’

라온이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이며 상태창을 불러왔다.

<상태창>

이름 : 라온 지그하르트.

칭호 : <꺾이지 않는 자>.

상태 : 혹한의 저주(다섯 가닥).

특성 : 분노, 불의 고리(4성) 수속성 저항력(4성), 설화의 감각(3성) 만화공(3성), 혹한의 냉기(3성), 화속성 저항력(3성), 블리딩 커스(1성), 암습(1성).

근력 : 57

민첩성 : 58

체력 : 59

기력 : 42

감각 : 64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칭호였다. <최초의 승리>에서 <꺾이지 않는 자로 바뀌어 있었다.

칭호가 바뀌어도 칭호가 가졌던 능력치는 유지되고 있었다. 새로 얻은 칭호를 확인해 보았다.

<꺾이지 않는 자>

강자와 싸워도 꺾이지 않는 정신력을 가진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능력 :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울 때 모든 능력치 3% 상승.

‘이거 진짜인가?’

라온이 눈매를 좁혔다. 3% 상승이라고 하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건 성장할수록 특별해지는 능력이다.

특히 앞으로 만날 상대들 대부분이 자신보다 강할 테니, 거의 항상 유지된다고 봐도 되는 칭호였다.

‘그럼 다음으로….’

두 번째 새로 생겨난 특성 <암습>을 보았다.

<암습(1성)>

기습이나 암살을 시도할 때 기척이 감소하고, 적에게 치명상을 입힐 확률이 증가한다.

‘암살용 특성이군.’

기척을 죽이고, 치명상 확률을 높이는 암살용 특성이었다.

‘이게 이전에 있었다면….’

녹전귀는 자신이 검을 내리치기 전에 이미 기척을 파악했었다.

만일 이 특성을 미리 가지고 있었다면 놈을 일검에 베어버릴 수도 있었을 거다.

‘뭐, 그랬다면 이 능력들을 얻지는 못했겠지만.’

힘겨운 싸움을 겪은 이후에 한층 더 강해졌으니, 전화위복이라는 게 바로 이런 때에 쓰는 말이다.

라온은 상승한 능력치를 확인한 뒤 상태창을 껐다.

‘네 덕분에 날이 갈수록 강해지네. 고맙다’

-끄으….

상태창을 보지 못한 라스가 푸른 눈을 겨누고 있었다.

-네놈은 절대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네놈의 육체를 씹고, 씹고, 또 씹은 뒤 평생 고통에 살게 하리라.

‘가능하면 얼마든지.’

이미 최악의 죽음을 겪고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라온에게 라스의 분노와 협박은 웃으며 넘길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으윽….”

라온이 기지개를 펴고 일어섰다. 능력치가 올랐기 때문인지 육체의 근육통도, 머리를 울리던 두통도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덜컥.

문을 열고 나가니, 기절할 때처럼 하늘이 껌껌했다. 아무래도 하루내내 잠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다시 만들었군.”

수련생들이 모두 함께 움직였는지 무너졌던 마을의 목책은 이전보다 더 높고 단단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라온?”

놀란 목소리에 뒤를 돌자, 루난이 맹하니 서 있었다. 세숫대야를 들고 있는 걸 보니, 방에 오는 길이었던 것 같다.

“괜찮아?”

“그래.”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푹 자고 일어났더니, 완벽하게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럼 가자.”

“어딜?”

“저녁. 모두 모여 있어.”

그녀가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음….”

라온이 배를 쓰다듬었다. 하루 이상 아무것도 먹지 않았더니, 허기가 지긴 했다.

“알겠어.”

“응.”

라온은 루난의 뒤를 따라 마을 중앙으로 향했다. 가운데에 큰 화로에서 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과 수련생들이 모여 있었다.

몇 명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경계를 서고 있는 것 같았다.

“어? 라온!”

“라온 님!”

“라온 지그하르트!”

“으, 은인이 일어나셨다!”

“은인!”

화로 주변으로 둥글게 앉아 있던 수련생들과 마을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모, 몸은! 몸은 괜찮은 거냐?”

“이상은 없습니까?”

“일어나셔서 다행입니다!”

버렌이 가장 먼저 뛰어와 눈을 크게 떴고, 그 뒤로 다른 수련생들도 쫓아와 걱정으로 가득 찬 눈으로 라온을 살폈다.

“은인!”

“마을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인!”

“저희 마을을 위해서 그렇게 싸워주시다니….”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도 달려와 무릎을 꿇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

라온은 그들 모두를 지켜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모두의 눈.

그 눈에 담겨 있는 감정들이 피부에 와닿았다. 감사, 고마움, 보답, 경외.

수련생들의 눈빛에서는 부끄러움과 고마움, 경의, 열망, 동경 등이 느껴졌다.

열망은 질시와 비슷한 눈빛이었지만, 그와 전혀 다른 감정이다.

그들은 라온을 질투하는 게 아니라, 그처럼 되고 싶다는 감정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그 뒤를 쫓고, 그 검을 추구하는 롤 모델로 라온을 고른 것이다.

“…….”

라온은 가슴 깊숙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의 눈빛을 받아들였다.

가슴이 뛴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심장을 휘감았다.

전생에서 암살자로 살아갈 때 감사와 인정, 동경의 감정 따윈 받은 적이 없었다.

그저 삶과 죽음만이 존재했다.

로베르트 가문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사람을 죽이고, 정보를 캐내도 그 인정과 보상은 데루스 로베르트를 비롯한 양지의 인간들이 받았다.

나의 삶에서 이러한 인정을 받은 것은 처음.

검술이나, 오러를 수련하면서 느끼는 성취감과는 다른 전율이 일었다.

다시 모두를 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감사하다 외치고, 수련생들은 동경과 감탄이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걱정했다.

‘그래. 앞으로는….’

라온이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앞으로의 삶은 암살자가 아닌, 검사의 삶. 이런 모습을 수도 없이 보게 될 것이다.

욕심이 난다.

더 큰 인정을 그리고 더 동경의 눈빛을 받고 싶다는 욕망이 뭉클 솟아올랐다.

앞으로는 더….

*     *      *

라온은 식사를 끝낸 뒤 촌장을 찾아갔다. 촌장은 어쩔 줄을 몰라 허리를 푹 굽힌 채 고개를 숙였다.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겠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굼벵이처럼 몸을 말은 촌장을 일으키고,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마을을 습격한 놈들이 누구인지는 알고 계십니까?”

“아, 예. 몬스터를 조종하는 에덴이라는 놈들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작은 마을에도 에덴의 악명은 퍼져 있었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왜 여기를 노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작은 마을인데….”

촌장은 이상하다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놈과 싸우면서 들은 건데, 혹시 세부 산에서 붉은 보석 하나를 구해오시지 않았습니까?”

“붉은 보석? 아, 있습니다. 제가 젊을 때 산에서 발견해서 마을로 가지고 왔지…서, 설마!”

“네. 놈들이 노린 물건이 바로 그 보석입니다.”

라온의 말에 촌장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 그럼 그 돌 때문에 이 난리가 난….”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촌장이 스스로 보석을 넘길 수 있도록 여기서는 솔직하게 말을 해줘야 한다.

“내가, 내가 마을을 망하게 할 뻔했다니! 아이고! 내가!”

촌장은 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치기 시작했다.

“그 보석이 마을에 있는 한 에덴의 귀신들이 계속해서 찾아올 겁니다.”

“보석을 땅에 묻은 이후부터 땅이 비옥해지고, 냉기가 줄어들어서 수호신처럼 모셔놨는데, 그런 일이….”

촌장의 말을 들으니, 더 확실해졌다. 고블린 왕은 강한 화속성을 지닌 몬스터. 놈이 남긴 보물이니, 마을을 따끈하게 데워주었을 것이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이라도 보석을 버려야….”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예? 은인께서?”

“에덴은 대륙의 인간을 지우려는 악랄한 놈들입니다. 버린다면 결국 놈들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으니, 제가 지그하르트로 가져가겠습니다.”

“또 그런 실례를 범할 수는 없습니다.”

“괜찮아요. 그게 지그하르트의 길이니까요.”

“아아!”

라온은 버렌이 할 법한 대사를 읊었다. 감동했는지 촌장의 눈동자가 이슬처럼 반짝거렸다.

“지그하르트는 또 한 번 저희에게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시는군요.”

“또 한 번?”

“예. 현 가주이신 글렌 지그하르트 님께서 몇십 년 전에 저희 마을을 구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은인보다 조금 더 많았을 겁니다.”

촌장은 옛날을 생각하는 듯 턱을 올려 노란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보았다.

“가주님이요?”

“예. 은인처럼 마을 전체를 구하시고, 미소를 지으시며 친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음….”

라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친절과 미소라….’

지금 글렌의 얼굴을 생각해보니, 전혀 상상되지 않는 그림이었다.

“어이구, 이 노인네가 쓸데없는 옛이야기를 했군요. 이쪽으로 오시죠. 바로 드리겠습니다.”

촌장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동쪽에 있는 본인의 집으로 향했다.

‘그 사람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군.’

라온은 얼음덩이 같은 글렌의 미소를 상상하며 촌장의 뒤를 따라갔다.

*     *      *

촌장의 집은 라온이 깨어났던 서쪽 끝이었다. 보통 촌장 집은 중앙에 있기 마련인데, 끝에 있는 건 의외였다.

“여기가 촌장님 집이었군요. 실례했습니다.”

“어휴! 아닙니다!”

촌장은 라온에게 손을 저었다.

“그런데 보통 촌장님들은 마을 중앙에 살지 않으십니까?”

“전 처음부터 여기에 살다 보니, 정이 들어서 떠나기 뭣하더군요.”

촌장은 볼을 긁적이면서 집의 마당으로 향했다.

“이곳에 묻어놓았습니다. 마을을 따뜻하게 덥혀주어서 복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흉이었군요.”

그는 마당에 있는 작은 밭을 파기 시작했다. 거의 30분가량 땅을 파고 나서야 검은색 천에 쌓인 무언가를 꺼냈다.

“그 천은….”

“저희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온 보자기입니다. 이 돌이 진한 붉은빛을 내뿜어서 보이지 않도록 감싸 놓았습니다.”

촌장은 그렇게 말하며 천을 풀었다.

화아아아!

후덥지근한 열기와 함께 강렬한 붉은빛이 어둑한 텃밭을 밝혔다. 거대한 불길을 피운 듯 세상이 밝아졌다.

‘이게 고블린 왕의 마석….’

이 마석이 에덴에게 주어진다면 고블린 왕의 능력을 가진 새로운 괴물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어르신. 일단 그걸 다시 그 천에 감….”

“그래서였군.”

보석을 다시 감추라고 말을 하려 할 때였다. 우측에서 침착하고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헉!”

라온이 촌장의 앞을 막아서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전장의 장수가 이러할까?

거칠고 사나운 인상에 육체는 흉터로 가득했다. 덩치가 굉장히 컸는데, 그 큰 체격으로 가느다란 목책을 밟고 있는 모습이 이질적이었다.

가장 시선을 끌어 모으는 건 눈이다. 샛노란 눈빛에서 머리털을 쭈뼛 서게 만드는 광기가 느껴졌다.

‘느끼지도 못했는데?’

저런 덩치가 이곳까지 올 동안 감각에 잡히지 않았다니, 보통 고수가 아니었다.

“넌 누구냐.”

“나? 글쎄?”

중년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눈앞에 녹색의 투구가 생겨났다. 둥그런 두상에, 위아래로 거대한 뻐드렁니가 드러났고, 머리 위엔 외뿔이 하나 돋아 있었다.

오우거.

숲과 산의 제왕이라는 몬스터의 얼굴이 새겨진 투구가 남자의 손에서 빙그르르 돌아갔다.

“내가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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