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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71화 (71/653)

71화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버렌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떴다.

“말 그대로다.”

라온은 앞으로 걸어 나가 수련생 모두와 눈을 마주쳤다.

“아직 임무는 끝나지 않았어.”

“그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모든 몬스터를 잡고, 뒤처리까지 끝냈는데 왜 임무가 끝나지 않았다는 건데!”

“우리의 임무는 뭐였지?”

“어? 그건….”

버렌이 인상을 찌푸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몬스터 토벌과 마을의 보호.”

“그래. 우리의 임무는 몬스터 토벌만이 아니라, 마을의 보호도 있었지.”

“그니까 그게 끝났잖아! 몬스터를 모두 잡았으면 된 거지!”

“아니.”

라온이 고개를 저으며 지금까지 걸어온 세부 마을 쪽을 보았다.

“우린 조금 전까지 감시당하고 있었다. 감시의 시선이 떨어진 건 1시간 전이고.”

“어?”

“그, 그게 무슨!”

“정말이십니까?”

깜짝 놀란 수련생들이 벌떡 일어섰다.

“교, 교관이겠지.”

버렌이 억지로 입매를 비틀었다. 감시의 시선이 있었다는 걸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우릴 감시하기 위해서 온 교관이 분명….”

“교관의 기척이라면 누구인지 내가 모를 수가 없어. 그 기척은 우리만이 아니라, 마을까지 전체적으로 관찰했다. 거기다….”

라온이 지나온 길을 가리켰다.

“우리가 마을에서 반나절 거리에 떨어지자마자 기척이 사라졌어. 그것도 마을 쪽으로.”

“그러면 다른 적?”

버렌이 입을 떡 벌렸다. 떨리는 눈으로 마을 쪽을 보았다.

“그 말 정말이야?”

그간 조용히 있던 마르타가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섰다.

“확실해.”

“그럼 그 시선을 언제부터 느꼈지?”

“마을이 보이는 언덕에 도착했을 때부터.”

“잠깐! 그럼 버렌에게 지휘권을 넘겼던 게….”

“맞아. 그 시선을 더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내 기척을 감췄어.”

“허….”

마르타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이 녀석은 대체 뭐야….’

라온의 말을 들은 순간 머리털이 쭈뼛 섰다.

자신조차 느끼지 못한 시선과 기척을 느끼고, 버렌을 수석으로 바꾼 뒤 수련생들의 사이에 숨어 그 시선을 파악했단다. 감각과 심계가 놀라워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그게 나한테 지휘권을 준 이유였다고?”

“네가 지휘권을 가져가면 나 이상으로 수련생들을 잘 다룰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나, 난….”

“넌 내 기대 이상으로 제대로 된 수석의 모습을 보여줬어. 덕분에 놈들은 널 수석이라 생각하고, 내 존재는 느끼지도 못했지. 네 말대로 지그하르트다운 모습이었다. 돌아가게 된다면 널 부수석으로 임명해달라고 건의해보지.”

“그게 아니다.”

버렌은 고개를 숙인 채로 입술을 떨었다.

‘젠장!’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난 내가 잘한 줄 알고….’

완벽한 지휘 덕분에 라온이 할 말을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녀석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감시자를 견제하기 위해서 뒤에 숨어 있던 거였다.

수석 지휘권이라는 작은 것에 매몰되어 있는 동안 라온은 훨씬 멀고 높은 곳을 보고 있었다.

으드득.

다만 웃긴 건 라온의 칭찬을 듣자, 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부끄러움과 뿌듯함이 어우러진 요상한 기분이었다.

“너희는 모르겠지만, 오크와 고블린, 코볼트는 협동을 할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다. 우릴 감시한 놈들이 어떤 수를 썼을 거다.”

라온은 에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만 풀어냈다.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마을의 보호. 그 감시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이상 우리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

짐을 챙기고 일어섰다.

“지금부터 세부 마을로 돌아간다. 이전처럼 다 알리면서 가는 게 아니라, 그 누구도 눈치챌 수 없도록 조용히 움직인다.”

모두를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위장 도구가 있다면 좋겠지만, 챙기질 않았으니, 일단 걸음걸이라도….”

“저, 저 있는데요.”

반쯤 넋이 나가 있던 도리안이 손을 들어 올렸다.

“뭐가?”

“군장을 가리는 가림막이랑, 옷에 수풀을 걸칠 수 있는 밴드가 있습니다.”

“한두 개여선 안 돼. 오히려 눈에 띌….”

“다 있는데요.”

도리안은 배 주머니에서 가림막과 밴드를 우르르 꺼내놓았다. 이걸 전부 가지고 다니다니 뭐 하는 놈인지 모르겠다.

“이걸 어떻게….”

“혹시 몰라서 가져왔습니다.”

“혹시 몰라서 위장 도구 40개를 가지고 다녀?”

“준비성은 철저해야죠.”

“어, 어쨌든 잘했다.”

“넵!”

도리안은 유일하게 라온의 칭찬을 듣고 히죽 미소 지었다. 물론 다시 마을에 가서 싸우게 될지 몰라서 금방 얼굴이 어두워졌지만.

“양은 충분하니까. 연무장에서 배운 대로 위장을 시작해라. 10분 뒤에 다시 이곳으로 모여. 그리고….”

라온은 가장 먼저 가림막을 두르며 고개를 들었다.

“크레인.”

“어? 어어!”

“넌 당장 지그하르트 지부로 달려가서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해.”

“내, 내가?”

“발이 빠르니까.”

도리안이 더 빠르지만, 그가 필요한 일이 있을 수도 있었다.

“아, 알겠어!”

인정을 받은 기쁨일까. 크레인이 냉큼 고개를 끄덕이고 마을과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라온은 달려가는 크레인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지금부터는 내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라. 거부는 없어.”

*     *      *

“모두 돌아갔습니다.”

눈알이 새겨진 복면을 쓴 남자가 무릎을 꿇었다.

“확실한가?”

녹색 투구를 든 젊은 남자가 고개를 틀었다.

“예. 반나절 동안 승리에 취해서 돌아가는 걸 확인하고 왔습니다. 혹시 몰라서 반대편도 확인했지만 특별한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시작해도 되겠군.”

젊은 남자는 피식 웃으며 아무런 무늬도 없는 투구를 들어 머리 위에 착용했다.

“환원.”

남자의 주문 같은 말에 오크 투구 안에서 녹색 쇳물이 흘러내렸다.

촤아아!

쇳물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남자의 몸에 달라붙어 갑옷과 같은 형태를 갖췄다.

치이이익!

팔과 가슴에 거대한 근육이 부풀었고, 손가락은 차돌처럼 단단하게 여물었으며, 다리는 나무뿌리처럼 두꺼웠다.

평범한 기사의 갑옷이 아니다.

오크. 그것도 오크 돌격대의 최전방에 서는 오크 투사의 모습을 딴 기괴한 갑주였다.

번쩍!

오크 투사 투구의 안쪽에서 살의로 가득한 붉은 눈이 번쩍였다.

“크라라라!”

남자의 목구멍에서 기괴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 낼 법한 소리였다.

“우오오오!”

포효에 호응하듯, 그의 뒤에서 오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고오오!

남자는 붉은 기운이 어린 손으로 세부 마을을 가리켰다.

“크라라라!”

“갸아아아!”

오크들은 악다구니를 내지르며 땅을 뛰어 내려갔다. 그들의 움직임은 수련생들에게 당할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나웠다.

“크르르.”

오크 투사의 갑주를 착용한 남자는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파도처럼 밀려가는 몬스터들을 바라보았다.

*     *      *

라온과 수련생들은 세부 마을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에 도착했다.

“아직 아무런 일도 없는데?”

버렌은 마을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마을에선 평온함을 비추는 연기만 올라오고 있었다.

“기다려봐.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고, 몸도 낮춰.”

“음….”

라온의 지시에 버렌은 입을 꾹 다물고 허리를 숙였다.

“지금부터 숨 소리를 내는 것도 조심해. 들키는 순간 전멸당할 수도 있으니까.”

“으음….”

“흐읍!”

수련생들은 손으로 입을 꾹 막고 눈동자를 떨었다.

“전멸은 무슨….”

“뭐가 나와도 상관없잖아. 우린 지그하르트인데….”

반면 라온의 말을 믿지 못하는 몇몇 방계들은 입을 삐죽거렸다. 그들은 첫 승리에 도취 되어 자신감이 최고조에 올라 있었다.

“조용히 해. 불평은 확실해지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

버렌이 나서고 나서야 방계들이 입을 다물고, 주저앉았다.

“육포로 미리 배를 채워두고, 방한복도 입어. 밤이 추워도 불을 피울 수 없으니까.”

수련생들은 자그마한 불평을 하면서도 라온의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

그렇게 세부산 쪽으로 해가 지고, 어둑한 밤이 찾아왔다.

깜깜한 산 아래. 수백 개의 붉은 빛이 번쩍였다. 루비 같은 빛과 함께 녹색 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흐읍!”

“오, 오크! 몬스터들이다!”

“지, 진짜였어?”

수련생들은 오크들의 흉악한 눈빛을 보고 침을 꼴깍 삼켰다.

“으음….”

버렌이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세부산과 그 주변까지 확실하게 수색했고, 그 어떠한 몬스터도 발견하지 못했다. 저 정도 숫자의 몬스터가 이렇게 빨리 나타났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 말대로였어.’

라온의 말대로 몬스터가. 그것도 토벌한 놈들보다 더 흉폭하고, 강한 몬스터가 우르르 쏟아지고 있었다.

땡땡땡!

목책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마을 사람이 경종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이 내려앉은 듯했던 마을에 불이 켜지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젠장!”

버렌이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검을 뽑고 탁한 숨을 내뱉었다.

“가자.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끝을….”

“앉아.”

라온은 서늘한 눈으로 턱짓했다.

“뭐?”

“말했지. 우릴 지켜본 시선이 있었다고. 그건 몬스터 따위가 아니라, 인간이다. 놈들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

“그, 그렇지만 세부 마을의 병력으로는 저 숫자의 오크를 막지 못해!”

“그렇다고 해도 대기 한다. 자칫 잘못하면 이쪽이 전멸이야.”

이건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정확한 판단이다. 적의 숫자와 무력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이상 움직여서는 안 된다.

“네가 말했잖아! 우리의 임무는 마을의 보호라고! 그럼 지금 움직여야지!”

“교관님이 포기나, 물러나는 것도 임무의 한 선택이라고 하셨지. 지금은 움직일 때가 아니야.”

“나, 난 못 참아.”

버렌이 검을 쥔 손을 바르르 떨었다.

“저들을 저렇게 죽이는 건 지그하르트 검사가 보일 법한 모습이 아니다!”

그의 녹색 눈동자에 오크들의 돌진이 아릿하게 어렸다.

“맞아.”

“우린 지그하르트다. 약자의 위기를 보고 물러나서는 안….”

“저들이 에덴이라고 해도?”

강렬한 의지로 타오르던 수련생들 사이로 라온의 냉정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에, 에덴? 오마의 에덴?”

“저게 그 미친놈들이라고?”

“에덴이 몬스터를 조종하는 건 유명하지. 놈들이 아닌 이상 저 정도 몬스터가 갑자기 나타날 일은 없어.”

“어….”

“오, 오마라니….”

오마의 에덴라는 소리에 수련생들의 눈동자가 침식되듯이 흐릿해졌다. 모두 아는 것이다. 에덴라는 존재가 얼마나 강하고 무시무시한 세력인지를.

“에덴의 강함은 알고 있다. 하지만 놈들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어. 지그하르트의 이름을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버렌이 피나도록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런 놈들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칠 수는 없다. 여기서 저들을 위해 검을 드는 게 내가 생각한 지그하르트의 검사다.”

“아예 도와주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야. 상황을 파악한 뒤 싸울 수 있다면….”

“그러면 늦어. 그동안 저 마을 사람 절반은 죽게 될 거다.”

그는 흔들리는 눈으로 라온을 바라보았다.

“난 말이다. 너를 인정했다. 네 노력을 확인한 후 마음속으로 네가 나보다 지그하르트의 이름에 걸맞은 놈이라고 인정했단 말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야! 네가 막으면 싸워서라도 저 마을에 가겠다.”

버렌이 그대로 검을 뽑았다. 잘 닦인 검이 달빛을 받아 그의 단호한 얼굴을 비췄다.

“모두 따라오지 않아도 좋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녀석만 따라와라!”

그는 진한 녹색의 오러와 단단한 의지를 휘감은 채 언덕 아래로 달렸다.

“우리도 가자. 오마 놈들에게 지그하르트의 검을 보여주자!”

방계들이 모두 일어섰다. 검조차 뽑지 않고 버렌의 뒤를 쫓았다.

쯧.

라온이 짧게 혀를 찰 때 옆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있었다.

“나도 갈게.”

루난은 검에 시퍼런 냉기를 휘감은 채 언덕 아래로 뛰어내렸다.

“함께 하겠습니다!”

봉신 가문의 수련생들도 검을 뽑아 들고 그녀의 옆에 붙었다.

“우, 우리도 가자!”

“그래. 우리도 지그하르트의 수련생이야!”

버렌과 루난의 신념에 물든 평민 수련생들도 검을 뽑아 마을의 불길을 향해 내달렸다.

“…….”

라온은 말없이 뒤를 돌았다. 도리안과 임시 수련생일 때부터 자신을 따르던 수련생들만 남고 모두 마을로 내려갔다.

반수 이상이 떠났지만, 라온은 당황하지 않았다.

‘예상했으니까.’

수련생들이 저런 녀석들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저들이 내려가는 것도 계획의 일환이었다.

특히 루난에게는 내려가서 버렌을 도와주라고 오러 메시지까지 보냈다.

다만 가장 의외인 사람이 남아 있었다.

“넌 왜 안 갔지?”

라온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는 마르타를 돌아보았다.

“말했잖아. 이번 임무에서는 어떤 말을 해도 네 지시를 따르겠다고.”

검은 눈동자를 빛내며 말하는 그녀에게 진심이 느껴졌다. 그녀 나름의 신념이 세워진 것 같았다.

“그런가.”

라온이 픽 웃었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할 거지? 여기서 관망만 할 건가?”

“아니. 우리도 간다.”

라온이 고개를 젓고 일어섰다. 오크들은 어느새 마을의 목책 앞에 도착해 있었다.

사람들의 공포와 오크들의 광기가 붉은 안개가 되어 피어나는 것 같았다.

“물론 저 녀석들처럼 대놓고 가진 않고 기척을 죽인다.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게 몸을 풀어두도록.”

라온의 지시를 내리고 세부 마을이 아니라, 세부산의 중턱을 노려보았다. 저 안에서 강렬하면서도 짙은 살기가 일렁거렸다.

‘저곳에 있군.’

수련생들을 막을 수 있었지만, 놔둔 이유는 하나다.

저곳에 있는 놈이 누구인지 알았으니까.

오크 투사의 힘과 투쟁심을 빌려온 괴물이 산의 중턱에서 마을을 굽어보고 있었다.

정면에서 싸운다면 쉽지 않은 상대지만 암살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시선만 끌어준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어.’

라온은 하늘에 뜬 달처럼 붉은 눈을 빛내며 손목을 돌렸다.

‘오늘은 긴 밤이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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