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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70화 (70/653)
  • 70화

    촤아악!

    라온은 길잡이에게 독침을 날리려던 고블린의 목을 베었다. 뒤이어 달려드는 코볼트는 몽둥이째 갈라버렸다.

    “가, 감사합니다.”

    칸바르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여주고, 기감을 더 미세하게 퍼뜨렸다.

    ‘이번엔 동쪽이로군.’

    수련생 모두를 관찰하는 시선은 이번에 동쪽에서 느껴졌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옮겨간 것 같았다.

    ‘이제야 알겠어. 저 시선을 어디서 느꼈는지.’

    라온이 검에 흐르는 피를 털어내며 입매를 꽉 다물었다.

    ‘에덴이었어.’

    에덴은 대륙의 어둠이라 불리는 오마의 한 축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세력 중 정신 나간 걸로는 1, 2위를 다투는 미친놈들의 집단이다.

    놈들의 목적은 환원(還元).

    천 년 전 인간이 몬스터에게 사냥당하고, 타 종족에게 배척받던 그 절망의 시대를 낙원이라 여기며 그때로 돌아가 몬스터의 신을 부활시키길 원했다.

    에덴은 그야말로 미친놈들의 집단이지만, 아쉽게도 정신 나간 게 다가 아니라, 지그하르트에 뒤지지 않는 막강한 무력을 보유했다.

    놈들은 테이머처럼 몬스터를 다루기도 하고, 인간의 몸으로 몬스터의 능력을 운용하기도 했다.

    그런 기이한 힘을 다루는 방법은 대륙의 명가들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었다.

    ‘다만….’

    라온은 에덴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데루스 로베르트 덕분이지.’

    데루스가 내린 마석 탈취 임무 때문에 에덴과 부딪쳤고, 그림자 10개 조. 90명이 몰살당했었다. 그 지옥에서 살아나온 건 오직 자신뿐이었다.

    ‘근데 그놈은 그걸 어떻게 안 거지?’

    지금 생각해보면 데루스 놈은 처음부터 에덴이 몬스터의 마석을 이용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육황 중 하나인 그놈이 어떻게 그걸 알고, 왜 그 사실을 밝히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네놈.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깊고도 짙은 분노가 느껴진다.

    라스가 팔찌 위로 진한 냉기를 뿜어내며 솟구쳤다.

    “음….”

    라온이 인상을 찡그렸다. 데루스 로베르트에 대해 생각하자마자, 분노가 끓어오르는 게 다행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후….”

    한숨에 분노를 흘려보내며 지금도 쏘아지는 시선을 감지했다.

    ‘놈들은 아마 고블린 왕의 마석을 찾고 있겠지.’

    칸바르의 말대로라면 이 산에는 고블린 왕이 죽은 뒤 시간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마석이 있을 거다.

    마석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에덴 놈들이 찾는 건 네임드급 몬스터의 마석뿐이다.

    ‘몬스터들이 멍하니 있는 이유도 알겠어.’

    에덴은 자신과 수련생들이 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몬스터들을 내어주는 중이었다.

    ‘우릴 공격할 생각이 없는 거야.’

    에덴은 지그하르트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든, 우리의 뒤를 따라왔을지도 모를 교관이나 검사들을 대비해서든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중요한 물건인 것 같네.’

    이곳에 묻혀 있는 고블린 왕의 마석은 에덴에게 굉장히 중요한 물건인 게 분명했다.

    ‘일단 지금은….’

    라온은 눈앞에 다가오는 오크의 목을 베면서 눈매를 좁혔다.

    ‘어쩔 수 없이 그냥 가야겠군.’

    이 산에 있을 마석을 건드리는 순간 근처에 있는 에덴 놈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거다.

    자신은 몰라도, 수련생과 마을 사람들은 모조리 죽을 테니, 벌집을 건드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선 모른 척하고 몬스터만 잡고 돌아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몬스터들이 도망친다! 끝까지 쫓아라!”

    버렌의 힘찬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가시죠. 금방 끝날 겁니다.”

    라온은 안정을 찾은 칸바르에게 거짓 미소를 지었다. 나무뿌리를 씹은 듯 약간의 씁쓸함이 혀끝에 돋아났다.

    *     *      *

    새벽부터 시작된 몬스터 토벌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해가 지기도 전에 산 정상에 도착했다.

    “끼에에엑!”

    산 정상에 자리를 잡은 오크 주술사의 외침에 오크와 코볼트, 고블린이 뛰어든다. 흡사 녹색 벌떼가 달려드는 것 같았다.

    “이곳이 마지막이다!”

    버렌이 피에 젖은 검을 들어 하늘을 찔렀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 절대 방심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라!”

    “으아아아아!”

    버렌이 녹색 오러를 휘감은 채 앞으로 뛰쳐나갔고, 수련생들이 포효하며 땅을 박찼다.

    “흐읍!”

    라온도 뒤에 칸바르를 뒤에 둔 채 앞으로 달려가 몬스터들을 베었다. 검술 숙련도를 낮춰서 다른 수련생들과 차이가 없도록 움직였다.

    ‘계속 보고 있어.’

    이제 시선의 정체도 알았다. 에덴의 정찰병으로 ‘홍안귀’라 불리는 놈이다. 참새만 한 눈알만 떠 있는 몬스터 ‘서치 아이’의 탐색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얼마 남지 않았다!”

    버렌이 오크 주술사가 뿜어낸 불꽃을 가르며 소리쳤다. 그가 오크 주술사를 향해 짓쳐 들 때 하늘에서 거대한 검이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앙!

    산이 흔들리는 듯한 묵직한 굉음과 먼지가 동시에 퍼졌다.

    후우욱.

    먼지가 가신 그곳엔 찌부가 된 오크 주술사와 검을 땅에 박고 있는 마르타가 서 있었다.

    “내 거거든?”

    “쯧.”

    버렌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뒤를 돌았다.

    “오크 주술사가 죽었다! 잔챙이들 뿐이니, 확실하게 마무리해라!”

    “우와아아아!”

    수련생들은 첫 번째 전투를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남아 있는 오러를 모조리 끌어 올려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라온은 주변에 있던 오크들을 가볍게 베어낸 뒤 칸바르의 옆으로 돌아왔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기막을 펼친 뒤 그를 불렀다.

    “아까 고블린 왕에 관한 이야기 말입니다.”

    “아, 예.”

    칸바르는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고블린 왕이 죽인 뒤 산에서 보석이나, 보물이 나온 적은 없습니까?”

    “아, 그것이….”

    칸바르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나왔군요.”

    “예. 그렇습니다. 은인을 속여서는 안 되겠죠. 제가 어릴 적에 촌장님이 산의 정상에서 붉은 보석을 캐오신 적이 있습니다.”

    “그거 지금 어디 있죠?”

    “촌장님 집 바닥에 묻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마을이 따뜻해졌죠. 대부분은 모를 겁니다.”

    “그런….”

    라온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러면 완전히 달라지는데….’

    에덴은 이곳을 뒤지다가 보석을 구하지 못한다면 분명 세부 마을을 습격할 거다. 그 미친놈들의 참을성은 그리 깊지 않으니까.

    “우리가 이겼다!”

    “첫 번째 임무 성공이다!”

    “우와아아아아!”

    산의 정상을 차지하고 몬스터들을 베어버린 수련생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흐음!”

    버렌이 검을 든 채로 자신을 보았다. 네가 준 역할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표정이었다.

    “…….”

    라온은 버렌의 눈빛에 답하지 않고, 눈매를 좁혔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이야아아아!”

    버렌은 그걸 인정이라고 생각했는지 그 누구보다도 우렁찬 함성을 내질렀다.

    루난도 승리가 기쁜지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시끄럽네.”

    마르타는 별일 아니라는 듯 귀를 후비며 자신을 보았다.

    라온은 환호를 지르는 수련생들을 보다가 세부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색색의 지붕 위로 피어나는 연기를 보자 마음이 더 답답해졌다.

    ‘놈들이 이 산이 아니라, 마을에 마석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저 마을에 남는 건 연기뿐일 것이다.

    *     *      *

    마을에 돌아가자마자 축제가 벌어졌다.

    한동안 몬스터 걱정은 할 필요 없다는 생각에 마을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수련생 한 명, 한 명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버렌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었다. 부상자 없이 완벽하게 임무를 끝낸 덕분에 그의 얼굴은 마법등을 켠 듯 밝았다.

    “마을을 위해 힘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촌장은 뒤에 있던 라온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이 녀석이 검사님이 정말 대단하셨다고 하더군요.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처음엔 조금 못 미더웠지만, 정말 대단한 검술 실력을 지니셨습니다.”

    촌장은 칸바르를 가리키며 방긋 웃었다. 칸바르도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라온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촌장과 칸바르는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다른 수련생들에게 인사를 전하러 갔다.

    “후….”

    그들의 눈빛을 보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지금 마을 전체는 감시당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이대로 전멸이다.

    “기분 안 좋아?”

    루난이 옆자리에 앉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그녀는 품에 숨겨두었던 그 네모 상자를 꺼내려 했다.

    “아니야.”

    라온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루난은 뭔가 아쉬운 표정으로 꺼내려던 상자를 도로 넣어두었다. 아무래도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기쁨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녀의 생각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무슨 짓이냐! 아이스크림을 먹을 기회를 왜 놓는단 말이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아이스크림보다 중요한 건 없다! 당장 소녀를 불러라!

    ‘어휴.’

    라온은 놀릴 때보다 더 흥분한 라스를 억지로 팔찌에 밀어 넣었다.

    “그래서.”

    나무 위에서 들린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마르타가 사과 하나를 든 채로 아래를 내려보고 있었다.

    “네가 생각했던 대로 이루어진 건가? 뭘 원한 건지 모르겠는데.”

    “나도 잘 모르겠어.”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말할 수도, 말할 것도 없었다.

    “걱정 마라. 일이 어떻게 되든, 임무가 다 끝날 때까지는 네 지시대로 움직일 테니까.”

    마르타는 눈을 한번 마주치고서 아래로 내려갔다.

    “다 비켜!”

    음식이 차려지는 식탁의 정중앙을 가장 먼저 차지했다. 그녀다운 모습이었다.

    “우리도 가자.”

    라온은 일어서며 루난에게 턱짓을 했다.

    “응.”

    루난은 고개를 꾸벅이고 식탁으로 걸어갔다.

    준비를 단단히 했는지, 맛깔나는 다양한 음식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무리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준비한 음식은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마음껏 드셔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즐겨주세요!”

    촌장과 마을 사람들의 환호에 수련생들은 손을 치켜들면서 음식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후우-

    라온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의 웃음과 음식의 냄새 모든 것이 거북하게 느껴졌다.

    ‘내일이 중요하겠어.’

    *     *      *

    다음 날 아침.

    버렌은 수련생들을 이끌고 세부 마을을 벗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20분 넘게 따라오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잘 된 것 같군.’

    버렌은 마을의 전경이 보였던 언덕을 오르며 빙긋 웃었다.

    ‘완벽했어.’

    세부 산에 있는 몬스터들을 완벽하게 처리했고, 사망자나, 중상자도 전혀 없다. 경상자 몇 명만 나왔으니, 처음치고 완벽하게 임무를 끝냈다고 생각해도 되었다.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라온은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땅을 보며 걷고 있었다. 다시 지휘권을 달라고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당연하겠지.’

    자신의 지휘에는 틈이 없었다. 마지막에 마르타가 오크 주술사의 목을 베는 것만 빼면 완벽한 작전이었다.

    ‘뭘 보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족했겠지.’

    라온은 자신에게 지그하르트다운 모습을 보여주라고 말하며 지휘권을 넘겼다. 그가 무얼 원했든 불평 따위는 나오지 않을 거다.

    “걸음을 빨리한다!”

    버렌과 수련생들은 가슴을 가득 채우는 만족감을 느끼며 지그하르트 영지가 있는 북쪽으로 걸어갔다.

    5시간 넘게 걸어 태양이 하늘의 중심에서 살짝 내려왔을 때 조용히 있던 라온 지그하르트가 앞으로 나왔다.

    “모두 정지.”

    “갑자기 무슨….”

    버렌은 라온의 눈을 본 순간 입을 다물었다. 새빨갛게 타오르는 눈동자에 숨이 턱 막혀왔다.

    “임무는 지금부터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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