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66화 (66/653)

66화

라온이 눈매를 좁혔다.

‘고맙다고?’

이해할 수가 없네.

열심히 세운 전략을 가볍게 깨부수고, 일대일 대결에서도 이겼으며, 마지막엔 가슴을 후려쳤는데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는 게 이유를 모르겠다.

“모르겠다는 눈빛이네.”

케인 지그하르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난 이번 전면전에서 무조건 너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 언제 붙어도 이길 수 있도록. 대련이 결정되기도 전에 너희들의 성격과 무력을 파악해 두었으니까.”

“확실히 위협적이긴 했지.”

마르타와 버렌의 성격과 검술을 파악한 뒤 그에 걸맞은 상대와 공략법을 내놓은 건 유효했다. 루난을 보내지 않았다면 둘 다 그곳에서 쓰러졌을 것이다.

“맞아. 하지만 위협적이기만 했지. 실제로 이긴 건 아니야. 한 번의 작은 승리를 이뤘다고 다 끝났다고 생각해버렸지. 네가 나보다 감각이 좋고, 기척을 숨기는데 능하다고는 생각도 못 했고, 마르타와 버렌이 그렇게 달라질 줄도 몰랐어.”

케인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지막으로 너와의 일대일에서 내가 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회복하는 동안 연공만 해서 오러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그런 작은 불꽃에 깨졌다는 게 아직도 믿기질 않아.”

그는 지금도 만화공이 약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착각이었지만 딱히 말할 필요는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이번 전투를 통해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적 중에 나보다 어리면서도, 뛰어난 인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항상 생각하고, 항상 긴장해야겠어.”

케인의 눈을 보았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운 듯 만족스러운 눈빛이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한 말이 전부 진심이었던 것 같다.

‘직계 치고는 괜찮네.’

그의 말대로 항상 적이 능력을 숨길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고 움직여야 한다. 암살자 시절에도 모든 상황에 대비했기 때문에 최고라 불릴 수 있었다.

“그래.”

라온은 케인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식당 내부를 쭉 돌아보았다.

이제 5 연무장 수련생들과 6 연무장 수련생들은 친구라도 된 것처럼 웃고 떠들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검을 날릴 때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생각은 무슨 생각. 느낌대로 꽂는 거지. 그리고 꺼지라니까?”

짜증을 내던 마르타도 칭찬을 듣다 보니 마음이 풀렸는지 조금 반응해준다. 아주 조금….

“지그하르트의 검사가 될 자라면 그 정도 의지는 가지는 게 맞죠.”

“물론이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오른쪽에 칼을 찔려도 왼쪽도 내주는 지그하르트 검사지.”

버렌과 데칼은 술이라도 마신 듯 벌게진 얼굴로 껄껄 웃고 있었다.

사각사각.

루난은 카린과의 대화를 끝내고 과일을 먹고 있었다. 마음에 들었는지 자기 앞에 우르르 쌓아 놓고 먹는 모습이 꼭 다람쥐 같았다.

‘신기하네.’

서로 죽일 듯이 싸워놓고 지금은 저렇게 친해진 게 기묘했다.

처음 다 같이 회식을 한다고 했을 때 장례식 분위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반대였다. 지금 음식점 안은 작은 축제가 열린 거나 다를 바가 없었다.

“너도 특이하군.”

왜일까 생각하고 있을 때 치킨을 뜯어 먹은 케인이 피식 웃었다.

“뭐가?”

“조금 전까지 싸우던 놈들이 왜 저리 친해진 건지 궁금한 거 아닌가?”

“음….”

“역시.”

케인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왜인지 알려줄까? 싸웠기 때문이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왜 싸워서….”

“아니, 그냥 싸웠기 때문이 아니라, 지그하르트라는 이름 안에서 싸웠기 때문이다.”

그가 오늘 전투에 대해 떠드는 수련생들을 쭉 가리켰다.

“우린 같은 지그하르트다. 비겁한 수를 쓰지도 않았고, 서로가 서로를 이기기 위해 전력으로 부딪쳤지. 그건 검을 맞댄 모두가 알고 있어.”

라온이 눈빛을 가라앉혔다. 그 말 그대로다. 케인과 검을 부딪치며 그의 마음가짐을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는 오직 승리만을 원했었다.

“상대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털어냈으니, 이기든 지든 속이 시원할 수밖에 없지. 저 녀석들은 친한 척하는 게 아니라, 조금이지만 친분이 생긴 거다.”

케인은 그 말을 하고, 쥬스를 맥주처럼 들이켰다.

“그런가….”

조금이지만 느낌이 왔다. 왜들 저렇게 친해 보이는지 그리고 왜 자신이 이해를 못 했는지.

‘전생에선 안 이랬으니까.’

암살자 교육을 받을 때도 전면전 훈련이 있었다.

다만 이곳과 달리 훈련임에도 약한 자는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친분을 쌓는다는 것 따위는 생각지도 않았고 하루하루 살아남았다는 것에 감사하고 절망했다.

‘이게 맞는 거겠지.’

같은 이름으로 묶이고, 같은 공간에 선 사람들끼리 최선을 다해 부딪치고,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면 이런 결과가 이루어져야만 했다.

반면 전생에서 조교들이 원한 건 인간이 아닌, 말 잘 듣는 개였다. 죽고 죽이는 훈련을 벌어졌으니, 서로 의심하고, 원망하는 결과가 나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싸울 때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처럼 여유롭더니, 지금은 제 나이처럼 보이는군. 신기한 기질이야.”

케인이 고기를 씹으며 웃었다. 놀린다기보다는 재밌어하는 얼굴이었다.

“그런가.”

라온이 마주 웃었다. 물론 케인과는 다른 의미의 미소였다.

‘난 정말 아는 게 없어.’

무력은 점점 강해지고 있고, 암살 기술과 경험은 머리에 그대로 남았지만, 인간적인 부분은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도 모자랐다. 스스로를 한심해하는 웃음이었다.

“후….”

천천히 숨을 내쉬며 창밖을 보았다. 지는 해가 아릿하게 눈을 짓눌렀다.

이런 상황이라서일까. 아니면 전생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말을 들어서일까.

옛 기억이 떠오른다.

라온이라는 암호명도 없었던 시절. 살아남기 위해서 단검을 꼬나쥐고, 발악했던 시절이 뇌리에 차올랐다.

실전 훈련에서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던 아이들. 복면을 써서 얼굴조차 모르는 아이들도 그곳에 잡혀가지 않았다면 이들과 같은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나고, 즐겁게 웃고 떠들었을 거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게 죽어가는 것보다는 나은 삶을 살았을 거다. 안타까움에 손이 떨렸다.

‘그래. 그 전부는….’

데루스 로베르트.

남쪽의 선왕이자, 천검성이라 불리는 그 망할 협잡꾼 때문이다. 오랜만에 놈에 대한 분노가 가슴에 차올랐다.

“라온?”

이를 바득 깨물 때 루난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 정신이 들었다.

-쯧. 저 망할 꼬맹이가 방해를!

아쉽다는 듯 팔찌에서 라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무래도 이놈이 중간에서 감정을 살짝 자극했던 것 같다.

‘하여튼 너란 놈은.’

-자, 잠깐! 그 좋은 분노를 왜 가라앉히는 거냐! 조금 더 끌어 올려라! 원수를 갚아야지 않느냐! 본왕….

‘좀 가.’

-끄으윽! 이 놈….

라온이 라스를 팔찌 안으로 집어넣었다.

“후.”

라스가 자극을 하긴 했지만, 이 감정은 진짜다. 데루스 로베르트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일 것이다.

“괜찮아.”

“응.”

뚱하게 쳐다보는 루난에게 옅게 웃어주자, 다시 과일을 먹기 시작했다. 먹는 것도 꼭 다람쥐 같다.

“라온 지그하르트.”

어느새 닭 한 마리를 다 먹어 치운 케인이 테이블을 두드리며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제안이 있다.”

“제안?”

“가끔 이렇게 연무장끼리 대련을 해보는 건 어때? 일대일도 좋고, 오늘 같은 전면전도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컸는지 음식점이 조용해졌다. 떠들던 수련생들이 전부 이쪽을 보았다.

“음….”

쭉 아이들을 둘러보니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마르타는 하지 말라는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한 명의 의견이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 괜찮을 것 같아.”

“역시 시원하네!”

케인이 테이블을 탁치고 일어섰다.

“오오!”

“앞으로 재미있겠는데!”

“다음에는 절대 안 진다!”

“뭔 소리야 다음에도 무조건 이길 거야!”

수련생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새로운 인연을 만난 것에 모두가 즐거워했다.

“이런 시발!”

딱 한 명. 마르타만 욕을 내뱉고 라온을 노려보았다.

라온은 그녀의 시선을 무시하고, 우측 끝을 보았다. 사실 케인의 제안을 결정할 가장 중요한 인물들은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니, 여기 식비가 내기에서 진 대가가 아니라고?”

“당연하지. 내가 한 번이라도 내기에서 졌으니 밥값 내라고 한 적 있냐? 그냥 내라고 했지.”

“이미 돈도 줬잖아.”

“그건 계약금이지.”

리메르와 메툰은 오늘 수련생들의 활약이나, 반성점이 아니라 내기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그런 법이 어디에….”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 기본적으로 내기의 대가는 금화죠. 자자, 빨리 내놓으세요. 여기 밥값도 계산하시고.”

리메르가 히죽 웃으며 손을 펼쳤다.

“너처럼 돈을 밝히는 엘프는 없을 거다.”

“아, 그건 칭찬인데.”

“크으, 화병나겠군.”

메툰은 묵직한 금화 주머니로 리메르의 손을 내리찍었다.

“감사합니다. 호갱님. 아니, 고객님 다음에 또 이용해주십시오”

리메르는 돈을 챙기자마자 맥주잔을 들고 일어섰다.

“얘들아 오늘 수고했다. 내일은 쉬고, 모레 훈련장에서 보자!”

그는 손을 빙빙 돌리고 그대로 식당을 나갔다.

‘어딜 가려고.’

라온이 코웃음을 치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혼자만 이득을 챙기게 놔둘 수는 없지.’

*     *      *

“라온에게 걸기만 하면 따는구만.”

리메르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도박장을 향했다.

‘라온이 복덩이야. 복덩이.’

수련생들이 일방적으로 밀려서 조금 불안했지만, 역시 기대한 대로였다.

라온이 움직이자마자 불리한 상황이 역전되고 완벽하게 승리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라온에게만 걸면 잃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100% 딸 수 있는 도박이라니, 금송아지구만 금송아지! 매일 했으면 좋겠네.”

“세상에 그런 도박은 없습니다.”

“억?”

뒤에서 들려온 낭랑한 목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라온이 서늘한 눈빛으로 손에 든 금화 주머니를 보고 있었다.

“라, 라온? 왜 여기 있냐? 가서 더 먹지….”

“저희한테 걸어서 많이 좀 따셨나 봅니다.”

“어어….”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죠?”

“윽.”

둘 다 맞는 말이다. 라온 덕분에 많은 이득을 보긴 했다. 아니, 좀 많이.

“반.”

라온이 손가락을 들어 금화 주머니를 가리켰다.

“반?”

“저희 때문에 땄으니, 딴 돈의 반은 저희를 위해 써 주십시오.”

“바, 반이라니! 너무 많잖아!”

“어차피 내일이면 반이 아니라, 먼지만 남을 거 아닙니까.”

“3배로 딸 수도 있다고!”

“도박장에 가셔서 따신 걸 못 봤습니다만.”

녀석이 코웃음을 쳤다. 분했지만, 저 말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끗발이 바짝 선 느낌이다.

“이번엔 느낌이 좋아. 10배로 따서 그중 절반을….”

“됐습니다. 저희는 반이면 충분합니다.”

“싫어! 전부 내가….”

“그러면 앞으로 저도 협조 못 합니다.”

“뭐?”

“교관님이 도박을 어디에 거실지는 뻔하니, 일부러 질 수도 있다구요.”

“네가 그런 짓을 할 리가…음.”

리메르가 침음성을 삼켰다. 라온의 저 가라앉은 눈빛은 진심이라는 뜻이었다.

‘너, 너무 했나.’

그러고 보니 버렌과 마르타와 대련할 때도 따기만 하고, 너무 입을 싹 닦았던 것 같다.

“제게 달라는 게 아니라, 수련생들을 위한 물건을 사자는 겁니다.”

“에휴, 그래. 뭔데. 뭐가 필요하냐.”

“오늘 6 연무장 수련생들과 싸우는 모습을 보며 느낀 게 있습니다.”

라온이 처음으로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수련생들에게 필요한 건….”

*     *      *

이틀 뒤.

“어? 이게 뭐야?”

“인형?”

“이거 검술 연습용 인형이잖아”

수련생들은 연무장 좌측에 설치된 인형들을 보고 두 눈을 빛냈다.

“검술 연습용 인형?”

“그래. 인형에 검을 내리치면 그 이상의 힘으로 반탄력이 돌아오거든. 실전 연습용으로 굉장히 좋대.”

“진짜? 근데 이게 왜 갑자기 생겼지?”

수련생들은 인형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관님이 사오셨다.”

“어?”

“진짜?”

라온의 말에 수련생들이 놀란 눈으로 단상 위에 엎어져 있는 리메르를 보았다.

“이번 실전에서 느꼈겠지만, 상대와 검을 부딪치다 보면 반탄력 때문에 검을 놓치거나 손목에 부상을 입기 쉽지. 그 대응책으로 사셨을 거다.”

“헉!”

“저 도박쟁이가….”

“그럼 그저께 딴 돈으로?”

“교관님….”

수련생들이 감동을 받은 눈빛으로 리메르에게 다가갔다.

“음….”

리메르를 대놓고 싫어하는 버렌조차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그래. 열심히 쓰렴.”

리메르는 손을 흔들며 힘없이 웃었다.

‘더럽게 비싸네.’

저 인형 생각보다 비쌌다. 몇 개 사고나니 금화가 반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남은 금화는 홧김에 질렀다가 모조리 날려버렸다. 라온의 말대로 정말 빈털터리가 되었다.

다만 인형을 치며 즐거워하는 수련생들을 보는 리메르의 입가에는 얇은 웃음이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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