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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63화 (63/653)

63화

“너희들이 왜 졌다고 생각해?”

라온의 나지막한 물음에 수련생들은 입을 열지 못했다.

“무력? 인원? 판단? 모두 아니야. 저쪽의 인원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무력과 전투 경험은 우리가 위지. 일방적으로 밀릴 수가 없었는데, 왜 졌을까?”

“…정보인가?”

버렌이 천천히 입을 뗐다.

“잘 알고 있네.”

라온이 버렌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6 연무장은 우리 개인의 성격과 무력 수위 그리고 북망산의 지형을 모두 파악해두고, 각각의 상대에 맞는 전략을 짰다. 반면 우리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지. 당연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하, 하지만 시간이….”

“시간이 없긴 했지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야. 솔직히 말해서 하루면 최소한의 정보는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다. 리메르 교관도 그 능력을 키우라고 일부러 하루 전에 알려줬던 거고.”

라온은 수련생들을 차례로 훑으며 코웃음을 쳤다.

“거기다 너희는 시간이 없다고 포기한 게 아니라, 가볍게 이길 수 있다고 마음을 놓았잖아. 시간은 핑계가 안 돼.”

“윽!”

“그, 그게….”

수련생들은 뚫린 입으로도 말을 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5 연무장 수련생 개개인이 강하다고 해도 저들과 압도적인 차이는 아니야. 미리 전략을 짜둔 6 연무장에게 패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이미 다 끝난 게….”

“끝나기는 무슨! 입 닥쳐.”

“흡!”

마르타가 인상을 찌푸리자, 손을 떨던 도리안이 입을 합 다물었다.

“실제로 당한 사람도 있고, 체력과 오러도 많이 빠졌지. 불리한 건 사실이야. 다만….”

라온이 6 연무장 수련생들이 공격 준비를 하고 있을 곳을 보며 두 눈을 빛냈다.

“정보가 있는 건 저들만이 아니지.”

“너 뭔가를 알고 있던 거냐?”

“6 연무장의 수석 케인 지그하르트가 지금까지 모든 지시를 내렸다. 너희에게 상성에 맞지 않는 적을 붙여준 것도 그의 솜씨지.”

“케인 지그하르트? 그 녀석이 어떻게?”

마르타가 이를 바득 깨물었다.

“케인 지그하르트는 시야와 감각이 뛰어나. 멀리서 너희들의 이동 방향을 파악한 뒤 상성에 맞는 수련생들을 보낸 거다.”

“크윽, 케인 지그하르트….”

자존심이 구겨진 버렌이 신음을 흘렸다.

“단순한 투로에 힘과 맷집이 좋은 마르타에겐 공격을 버틸 수 있는 검사를 보내서 오러를 소모 시키게 만들었고. 정직하고, 체계화된 검술을 사용하는 버렌에겐 감각검을 익힌 검사를 보내 손을 쓸 수 없게 만들었지.”

라온은 왜 5 연무장이 밀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정확하게 말해주었다.

“그럼 이길 방법은 뭘까? 간단해. 상대를 바꾸면 된다. 버렌과 마르타가 서로의 상대를 바꾼다면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지.”

“그건 안 돼! 그런 식으로 이기면 화병 나서 못 견뎌!”

“…미안하지만 나도 마찬가지다. 도망쳐서 얻을 승리 따위는 의미가 없어.”

마르타와 버렌 그리고 방계 수련생들이 모두 입을 꽉 다물었다.

“그래. 그럼 두 번째 안이다.”

라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 방식을 다르게 한다.”

“공격 방식?”

“마르타가 상대한 검진은 분명 단단하지만, 오러의 이동이 미흡해. 감각을 열어서 오러의 이동을 끝내지 못한 곳을 치면 어렵지 않게 뚫을 수 있을 거다.”

마르타에게서 고개를 돌려 버렌을 보았다.

“완벽과 체계를 추구하는 네 검은 생각 없이 그저 본능적으로 휘두르는 감각검의 좋은 먹이가 된다.”

“음….”

버렌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각검은 본능에 의지하는 검술이라, 가짜 초식에 속는 경우가 많다. 미끼로 던진 허초에 상대가 뛰어들 때를 노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수련생들은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라온을 바라보았다.

“뭐, 뭐야?”

“넌 여기에 있었잖아.”

“그걸 다 어떻게 알았어?”

“도대체가….”

이곳에 가만히 앉아만 있던 그가 모든 전장을 파악하는 모습은 6연무장에 패배한 것 이상으로 경악스러웠다.

“너 대체 뭐 하는 놈이냐?”

“무슨 감각이….”

마르타와 버렌도 놀랐던지 입을 떡 벌렸다.

“그런데 저쪽의 작전이 바뀌면 어떻게 합니까?”

도리안이 손을 올리고 질문했다. 겁이 많다 보니 걱정되는 것도 많은 것 같다.

“네 말도 일리가 있지만, 저들의 작전은 변하지 않아.”

“어째서요?”

“이미 한 번의 성공을 맛봤으니까. 그 달콤함을 아는 녀석들은 더 완벽한 승리를 위해 같은 작전을 반복할 거다.”

확신을 담은 라온의 눈빛에 수련생들의 머리가 쭈뼛 섰다.

“그런데 케인의 감각이 좋다며 놈이 빠르게 반응해서 중앙이나, 위쪽에 지원을 가면 어떻게 하려고?”

“괜찮아. 내 감각이 케인보다 더 좋으니까.

라온이 중앙에 있는 케인의 기척을 느끼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그는 이쪽으로 오게 될 거야.”

*     *      *

6 연무장 수련생들을 살피고, 5 연무장 거점으로 온 메툰이 인상을 찌푸렸다.

“거만한 아이로군.”

라온 지그하르트가 침착하고 냉정하다는 소리를 들어 조금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 없을 것 같다.

‘케인보다 감각이 좋다니, 어이가 없어.’

케인 지그하르트의 가장 큰 장점은 뛰어난 검술이나, 막대한 양의 오러가 아니다.

감각.

그는 상대의 기척과 상태를 읽는 감각과 시야가 굉장히 뛰어났다.

숨어 있는 교관의 위치마저 찾을 정도이니, 그의 감각은 이미 수련생 수준을 벗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라온이 그런 케인보다 감각이 좋다고 말했다. 솔직히 코웃음만 나왔다.

“금방 끝나겠어.”

라온과 5 연무장의 태도를 보니 예상보다 훨씬 쉽게 승리를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 회식이나 준비해주어야겠군.’

승자에겐 마땅한 보상이 따르는 법. 메툰이 6 연무장 수련생들에게 맛있는 회식을 열어주겠다고 생각하며 돌아가려 할 때였다.

“거만한 건 너 아니냐?

등 뒤에서 바람을 탄 듯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툰은 당황하지 않고, 뒤를 돌아보았다. 붉은 머리칼의 엘프가 능글맞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제야 나타난 거냐.”

“아니, 아까 전부터 와서 구경하고 있었지.”

“지각해놓고 핑계를 대는 건 여전하군.”

“아니라니까.”

메툰은 리메르의 가벼운 목소리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데 방금 한 말은 무슨 뜻이지?”

“방금 한 말?”

“나한테 거만하다고 했잖느냐.”

“아, 그거.”

리메르가 목을 긁으며 픽 웃었다.

“이쪽은 아직 칼도 안 뽑았는데, 싸움이 끝났다고 하니 거만하다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지.”

“칼도 안 뽑았다? 너희는 정면으로 부딪쳤고 이미 깨졌다. 체력도 오러의 소모도 이쪽보다 훨씬 심하지. 가망이 없다.”

“그건 네 생각일 뿐이고.”

“너도 그렇고 저 아이도 그렇고 허세를 부리는 건 똑같군.”

메툰은 수련생들에게 작전 지시를 내리는 라온과 리메르를 차례로 보며 고개를 저었다.

“케인은 교관들의 기척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감이 좋다. 이 작은 전장에서 녀석보다 뛰어난 전략을 제시할 수 있는 수련생은 없어. 기척을 파악하기는커녕 이대로 끝날 거다.”

“교관의 기척을 파악한다라….”

리메르가 히죽 웃으며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라온은 교관이 아니라, 내 기척도 파악한 적 있는데.”

“뭐?”

“네가 거만하다고 무시한 라온 지그하르트가 내가 숨어 있던 곳을 찾은 적이 있다고.”

“거, 거짓말!”

메툰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말이 안 돼.’

단전을 다쳤다고 해도 리메르는 엘프다. 기척을 감추고 숨으면 자신조차 찾기 힘든데, 저런 어린 수련생이 감지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난 거짓말 안 해.”

“개소리 마라. 네 말 중 거짓말이 아닌 걸 찾는 게 빠를 테니까.”

“아, 그럼 수정하지. 난 저 아이들에 관해서는 거짓말 안 해.”

리메르가 고개를 끄덕이고 씩 웃었다.

“음….”

메툰이 침음성을 삼키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설사 네 말대로 라온 지그하르트가 케인보다 뛰어난 감각을 가졌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승패는 이미 기울었어.”

“뭐, 확실히 힘들긴 하지. 넷이 탈락했고, 대부분 힘이 빠졌으니까. 그렇지만 라온은 날 실망시킨 적이 한 번도 없거든.”

리메르가 수련생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라온을 보면 피식 웃었다.

“네 제자들이 너처럼 마음을 놓고 있다간 순식간에 잡아 먹힐걸?”

*     *      *

한 번의 승리를 경험한 6 연무장의 수련생들을 아침과 똑같이 원을 그리고 모여 있었고, 그 중심에는 북망산의 지도와 케인이 있었다.

“이곳에 5 연무장의 깃발이 있다.”

케인이 손가락으로 서쪽 끝을 가리켰다.

“거기만 치면 끝이로군.”

“진짜 5 연무장을 이길 수 있다니, 노력한 보람이 있네.”

“이 일이 끝나면 모두 우리를 다시 보겠지.”

수련생들은 벌써 결투가 끝난 것처럼 입가에 웃음을 그렸다.

“아직 기뻐할 때가 아니라고 말했잖아.”

케인이 발을 굴러 들뜬 수련생들의 시선을 모았다.

“라온 지그하르트 그리고 루난 슬리온이 건재하다. 특히 라온은 5연무장에서 가장 강한 녀석이지. 마음 놓았다간 당하게 될 거다.”

“하지만 버렌과 마르타는 많은 힘을 소모했고, 저쪽 수련생 넷이 이미 탈락했잖아요.”

“유리한 건 사실이지만 방심하지 말라는 거다.”

“아까처럼 케인 님이 저쪽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지시를 내리면 간단하게 이길 수 있을 겁니다.”

“그래요. 믿고 있습니다!”

“음, 그렇긴 하지만….”

수련생의 말에 케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냉정한 척하지만, 아직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 드러났다.

“어쨌든 방심은 금물이다. 끝까지 전력을 다해서 싸워.”

“알겠습니다!”

수련생들이 우렁차게 대답하고 일어섰다.

“그럼 녀석들이 움직일 방식은 두 가지… 음?”

지도를 가리키던 케인이 서쪽을 보며 눈을 치켜떴다.

“온다.”

“네?”

“5 연무장 수련생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어.”

“어떻게요?”

케인은 대답 없이 눈을 감았다. 감각을 열어 다가오는 수련생들의 기운을 느끼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까와 같아. 마르타가 중앙, 버렌이 위, 나머지가 아래다.”

“아직 정신 못 차렸네.”

“지고 싶다고 빌면 지게 해줘야지.”

“라온도 버렌과 마르타는 통제 못 하는 건가?”

“다 끝났네.”

수련생들은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5연무장 수련생들을 비웃었다.

“처음 계획대로 간다. 버렌 지그하르트와 방계들은 데칼과 2, 3조가 마르타는 던과 1조 그리고 아래는 푸욘. 나와 카린은 라온과 루난을 대비한다.”

“알겠습니다!”

6연무장 수련생들이 우렁차게 대답한 뒤 정해진 상대를 꺾기 위해 달렸다.

“이쪽도 끝낼 준비를 하자.”

케인이 일어서며 뒤를 힐끗 보았다. 카린이 고개를 끄덕이고 검을 뽑았다.

“그럼 어느 쪽이 제일 먼저…음?”

그는 아래쪽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루난도 움직였군.’

아래 방향에서 냉기의 기척이 느껴졌다. 루난 슬리온이었다.

“카린.”

“맡겨주세요.”

카린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루난이 움직인 방향으로 달려 내려갔다.

‘카린이라면 막을 수 있겠지.’

카린은 루난과 같은 상위 봉신가의 후계자다. 루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쉽게 밀리진 않을 거다.

쾅! 콰앙!

중앙에서 묵직한 바위가 맞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마르타와 던이 다시 격돌하는 소리였다.

쿠어아앙!

얼마 지나지 않아 위쪽에서도 버렌과 데칼이 부딪치는 쨍한 소리가 울렸다.

“자아, 보자.”

케인은 호위 두 명을 세운 뒤 눈을 감고, 기감을 넓게 열었다.

혹시라도 밀리는 곳이 있다면 지원을 보내야 하기에 위, 중앙, 아래 전부 오러를 뿌려 전투 상황을 파악했다.

어?

세 방향을 모두 살핀 케인이 눈을 부릅떴다.

“뭐, 뭐야! 왜 다 지고 있어!”

위, 중앙, 아래할 거 없이 모두 5연무장에 밀리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있나?”

오전과 똑같은 상대와 싸우는데 일방적으로 밀리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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