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전투가 시작되기 30분 전.
라온을 제외한 5연무장 수련생 42명이 모두 서쪽 거점에 모였다.
“라온이 안 보이는군.”
버렌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루난. 라온은 어디 있지?”
“몰라.”
나무 밑동에 앉아 있던 루난이 틱 고개를 틀었다. 안 와도 상관없는 게 아니라, 무조건 올 거라 믿는 눈빛이었다.
쯧.
버렌이 쯧 혀를 찼다. 빨리 와서 작전 지휘를 해야 할 놈이 보이지 않으니 조바심이 났다.
“일단 모여. 녀석이 오기 전에 지리라도 확실하게 익혀둬.”
“예.”
“알겠습니다.”
수련생들 대부분이 펼쳐놓은 지도 앞에 모였지만, 마르타는 나무 위에서 과일을 먹고 있었고, 루난은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너희라도 봐라. 일단 이쪽….”
버렌은 수련생들에게 적이 기습을 할 만한 장소나, 위험할 수 있는 장소를 쭉 말해주었다.
다만 그렇게 진지하게 지도와 지형은 살피지 않았다.
‘뭘 해도 이길 수 있으니까.’
6 연무장에 엘리트들 몇 명이 들어왔다고 해도 대부분은 5 연무장 시험에서 떨어진 녀석들이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수련해왔고, 대련 경험도 많이 쌓여서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었다.
수련생들이 적당히 지리를 익히고, 몸을 풀었을 때 라온이 거점으로 올라왔다.
“라온.”
“수석이 지각이라니, 한심하네.”
루난이 가장 먼저 달려 나갔고, 마르타는 눈을 흘겼다.
“빨리 와서 작전을 짜지 뭘 하고 있었던 거냐!”
버렌이 발을 구르며 눈매를 좁혔지만 라온은 별 반응 없이 깃발이 박힌 곳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잖아. 너희가 6 연무장에 질 일이 있겠어?”
라온은 잘려 나간 나무 밑동에 앉아 피식 웃었다. 뭔가 자신감을 주는 것 같기도 했지만, 비꼬는 것 같기도 했다.
“흠, 뭐.”
“사실 그렇긴 하지.”
“솔직히 상대가 약해.”
“케인 님만 아니면 단숨에 쓸어버릴 수 있으니까.”
다만 수련생들은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는지 더 높게 차오른 자심감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서 다행이네. 그럼 각자 알아서 싸워봐.”
“그, 그냥 싸우라고?”
“작전 없이?”
“그냥 이길 수 있다며. 꼴사납게 작전 같은 걸 왜 짜.”
“잘 생각했어. 마음에 드네!”
살짝 당황한 수련생들의 중심으로 마르타가 뛰어내렸다.
“너희들이 나설 필요도 없이 내가 혼자 다 깨부수고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오러를 끌어 올렸다.
“너 진심이냐?”
버렌은 눈매를 가늘게 좁히고, 라온에게 다가갔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음….”
라온은 물음에 버렌이 입맛을 다셨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다.
라온과 루난이 케인을 견제하는 동안 마르타와 자신이 양쪽으로 움직이면 6 연무장의 방어선은 초토화될 테니까.
“너도 너를 따르는 방계들하고 움직여. 이후는 맡기지.”
“넌 뭘 하려고?”
“케인이 기습할지도 모르니, 여기서 깃발을 지켜야지.”
“나도 여기 있을 거야.”
라온은 뒤에 있는 붉은 깃발을 가리키자, 루난이 깃발 아래에 털썩 주저앉았다.
“좋다. 너희 둘이면 충분하겠지.”
버렌은 고개를 끄덕이고, 뒤로 물러났다. 평소 그를 따르던 방계 수련생들에게 위로 가자고 지시를 내렸다.
“우리는 아래로 가자.”
“임시 시험에서도 떨어진 녀석들쯤이야. 가볍지.”
“하긴 진검이나 들어봤겠어?”
봉신 가문의 수련생들과 추천생들은 아래쪽으로 가자며 시시덕댔다.
삐이익!
모두가 준비를 마쳤을 때 산 정상 쪽에서 전투 시작 신호가 울렸다.
이제 한쪽의 깃발이 뜯어지지 않는 한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잠깐.”
수련생들이 달려 나가려 할 때 뒤에서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뒤를 돌아보았다.
“수석으로서 마지막 작전 지시를 내린다. 너희 마음대로 하되. 상황이 좋지 않아서 후퇴하라고 명령하면 무조건 돌아오도록.”
“미안하지만, 그럴 일은 없어!”
마르타가 대지를 부수며 중앙으로 내달렸다.
“이쪽도 마찬가지다. 가자!”
버렌이 방계 수련생들을 이끌고 위쪽으로 올라갔고, 추천생과 봉신 가문의 수련생들은 아래로 달렸다.
“라온. 이길 수 있어?”
루난이 깃발을 툭툭 치며 물었다.
“저대로라면 힘들지.”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세 방향으로 달려가는 수련생들을 보며 눈을 내리감았다.
탈탈 털려서 돌아올 거야.
* * *
쿠웅!
마르타가 붉은 천을 본 황소처럼 정면으로 돌진했다.
‘혼자서 다 처리해주지.’
다른 수련생들이 나설 것도 없다. 혼자서라도 6 연무장의 떨거지들은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다.
우거진 수풀을 모조리 뚫어버리고 달려간 지 5분 정도 지났을 때 수련생 아홉 명이 보였다. 가죽 갑옷에 적힌 6이라는 숫자. 6 연무장의 수련생들이었다.
“잘 만났다!”
마르타가 혀를 핥으며 땅을 박찼다. 허공에 뜬 채로 타이탄의 오러를 둘러 주먹을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유성처럼 떨어진 주먹이 대지를 뭉개자, 6연무장의 수련생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르타 지그하르트.”
중앙에 있던 덩치 큰 수련생이 검을 들어 올리며 마르타의 이름을 불렀다.
“너희들이 선발대인가?”
마르타는 손목을 빙빙 돌린 후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귀찮으니, 한 번에 덤벼.”
“던 지그하르트입니다. 저는 방계의….”
“쓰러질 놈의 이름은 필요 없어!”
“음….”
던이라 이름을 밝힌 수련생은 도발에 걸리지 않았다. 담담한 표정으로 검을 중단에 놓았다.
“좀 하긴 하나 보네!”
마르타가 피식 웃고서 던을 향해 쇄도해 검을 내리쳤다.
콰앙!
검과 검이 부딪치며 폭발하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제자리에 선 마르타와 달리 던은 뒤로 다섯 걸음이나 밀려났고, 손을 덜덜 떨었다.
“쯧.”
마르타가 튕겨 나간 던을 보고, 혀를 찼다.
‘한 번에 보내려고 했는데.’
방금 일격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던이라는 놈은 몇 걸음 물러난 걸로 자신의 검격을 버텨냈다. 쉽게 볼 상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렵게 볼 상대도 아니지.’
마르타가 타이탄의 오러를 끌어 올려 육체를 강화했다. 기세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으음!”
“크으….”
던과 6 연무장의 수련생들이 그 기파에 신음을 흘렸다.
“귀찮게 굴지 말고, 곱게 곱게 가자!”
마르타가 흑진주 같은 눈동자를 빛내며 검을 올려 쳤다. 검에 담긴 막대한 기운이 화산처럼 폭발했다.
“3형!”
던이 검을 중단으로 내리고, 뭔지 모를 지시를 내리자, 뒤에 빠져 있던 4명의 수련생이 그의 옆으로 붙어 검을 모았다.
콰아아앙!
마르타의 검과 다섯 명의 검이 맞부딪치며 새빨간 불꽃이 치솟았다.
“크윽!”
“버텨!”
강렬한 압박에서도 수련생들은 이를 악물고 물러서지 않았다.
“피라미가 모여봤자지!”
마르타가 코웃음을 치며 검을 내질렀다. 조금 전보다 더 강한 기운이 그녀의 검날을 뒤덮었다.
콰앙!
대지가 폭발한 듯한 소리가 울리며 수련생들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후우.”
“크으.”
하지만 그들은 밀려날지언정 쓰러지지 않았다. 신음을 흘리며 끝까지 버텨냈다.
“오냐. 누가 이기나 한번 보자!”
마르타가 입술을 깨물고, 연속해서 검을 내리쳤다.
“2형! 5형!”
던은 방어 자세와 사람을 바꾸면서 마르타의 공격을 끊임없이 막아냈다.
“쯧, 다른 놈부터 조져주마!”
“그 정도는 당연히 대비되어 있다!”
마르타가 중앙에 서 있는 던을 피해 우측에 있는 단발머리 여자를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던과 수련생들이 시계바늘처럼 부드럽게 회전해 그녀의 검을 막아섰다.
“크….”
마르타가 입술을 깨물었다. 대비했다는 놈의 말대로 다른 쪽을 공격하려고 하자마자 수련생이 물러서고, 던이 앞으로 나왔다. 안으로 파고들 수가 없었다.
‘막는 연습만 한 건가?’
방어 연습만 해댄 건지 수비가 바위처럼 단단했다. 어설프게 공격했다간 오러만 동날 것 같았다.
“후, 귀찮게 하네.”
마르타가 한 발 뒤로 물러서서 타이탄의 오러를 전력으로 끌어 올렸다. 손에 든 검이 세차게 진동하며 옅은 황색 빛을 펼쳐냈다.
“나름 한다는 건 인정해주지. 하지만 여기까지다.”
“10형!”
던은 대답하지 않고, 지금까지 부르지 않았던 번호를 외쳤다. 여덟 명의 수련생이 모두 던의 뒤에 붙었다.
“소용없어!”
마트타가 땅을 박차고, 검에 가득 담긴 타이탄 오러를 수직으로 쏟아부었다.
“뒈져!”
“버텨라!”
던의 외침과 동시에 수련생들의 몸이 같은 빛으로 번쩍였다.
콰아아아앙!
산을 울리는 굉음이 터지고, 바닥의 흙모래가 분수처럼 비산했다.
“허!”
떨어져 내리는 모래비 속에서 마르타가 눈을 부릅떴다.
“버텼다고?”
던과 수련생들은 거친 숨을 내쉬고, 뒤로 사정없이 밀려났지만 단 한 명도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자신의 전력을 받아냈다.
“이런 미친 새끼들이!”
“흐아압!”
마르타가 눈에 광기를 담고 연속해서 검을 내리쳤다. 던과 수련생들은 비틀거릴지언정 검을 놓지 않았다.
“이 자식들….”
“세상의 주인공은 너만이 아니다.”
“뭐?”
“우리도 피땀을 흘리며 노력해왔다. 쉽게 이길 생각하지 마라!”
마르타의 이마에 힘줄이 섰다.
“시끄러워!”
악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남은 기운을 끌어모았지만, 던의 방어를 뚫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방어가 점점 더 단단해지는 것 같았다.
“이익!”
“우리는 네 오러와 검술을 막기 위해 계속 합을 맞췄다. 검진만 유지된다면 절대 지지 않아.”
“검진….”
놈들이 검진을 이뤘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걸 힘으로 깨부수려 했는데, 이렇게까지 막힐 줄은 몰랐다.
‘위험한데….’
마르타가 검을 옆으로 빼며 눈매를 좁혔다. 방금 너무 많은 기운을 사용했는지 오러가 떨어지고 있었다.
반면 아홉이 뭉쳤기 때문인지 6연무장 수련생들은 오러의 회복 속도도 빨랐다.
‘시간을 좀 끌어야겠어.’
좋아하지 않는 방법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힘이 빠지고 있다. 산개!”
조금 물러나서 오러를 회복시키려고 할 때 던이 검을 들고 앞으로 돌진해왔다. 눈치가 더럽게 빠른 놈이다.
“감히!”
마르타는 뒤로 빼던 검을 휘돌려 던의 머리 위로 내리찍었다.
쩡!
던이 이를 악물고 충격을 버텨냈다. 손이 바르르 떨렸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이다!”
그의 지시에 4명의 수련생이 상하좌우로 검을 날려왔다.
“칫!”
마르타가 검날을 비틀어 수련생들의 검을 모조리 튕겨냈지만, 공격은 물밀듯이 계속되었다.
‘틈이 없어.’
검을 휘두르면 던이라는 놈이 방어하고, 나머지가 다시 공격해온다. 톱니바퀴처럼 이어지는 전개에 숨 쉴 틈이 없었다.
‘젠장!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어!’
너무 쉽게 봤다. 떨거지라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준비했을 줄은 몰랐다.
쩌엉!
빈틈을 노리고 내지른 검이 던이라는 놈에게 또 튕겨 나갔다.
“후우….”
마르타가 쏘아지는 검날을 피해 거친 숨을 뱉었다.
‘망할!’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일까. 라온의 말이 생각났다. 너희라면 무조건 이길 수 있지 않냐는 말이.
‘그 새끼. 다 알고 있었을 거야.’
자신이 이렇게 고전할 걸 알고 비꼬았던 게 분명했다.
‘그러니 무조건 이겨야 하는데.’
마르타가 주먹을 바득 쥐었다. 어떻게든 뚫어서 라온의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 하는데, 길이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대로 패배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전투 중에 다른 생각을 하는 거냐!”
상대를 어떻게 꺾을지 고민할 때 방어만 하던 던이 들소처럼 돌진해왔다.
쾅!
강렬한 어깨 박치기에 마르타가 뒤로 튕겨 나갔다.
“지금이다!”
던의 지시에 수련생들이 자세를 잡지 못한 마르타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좋다! 여기서 쓰러지더라도 너희들은 조진다!”
마르타가 검을 거꾸로 들고, 짐승처럼 달려들려고 할 때 바닥에서 은빛 냉기가 피어났다.
“이, 이건!”
수풀 뒤쪽에서 보라색 눈동자를 반짝이는 루난이 튀어나왔다.
“네, 네가 왜 여기에….”
“라온이 후퇴하래.”
루난이 검으로 반원을 그리자, 땅에 그려진 냉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안 돼!”
“명령.”
“난 아직 지지 않았….”
“명령.”
“크으, 제기랄!”
마르타는 루난의 투명한 눈을 보고 손을 내렸다. 입술을 씹으며 물러섰다.
루난은 서리로 갈라놓은 던과 수련생들을 잠시 보다가 마르타의 뒤를 쫓아갔다.
“그 마르타가 물러나다니!”
“이, 이겼어! 우리가 이겼다고!”
“와아아아!”
수련생들은 지옥 주를 버틴 보람이 있다고 소리치며 환호를 질렀다.
6 연무장 수련생들의 환호는 중앙만이 아니었다. 버렌이 있던 위쪽과 방계 수련생들이 움직였던 아래에서도 들려왔다.
쿵!
수련생들이 승리의 환호를 지르고 있을 때 나무 위에서 케인 지그하르트가 뛰어내렸다.
“케인 님!”
던이 활짝 웃으며 케인에게 달려갔다.
“수고했어.”
“다른 곳도 이겼습니까?”
“그래. 예상대로 라온과 루난은 움직이지 않았고, 세 곳 모두 우리가 이겼다.”
“우와아아아!”
“진짜 이기다니!”
“아, 실감이 안 나네.”
수련생들은 서로 얼싸안으며 환한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기뻐하긴 일러.”
케인이 손을 들어 올리자, 수련생들의 웃음이 뚝 그쳤다.
“적의 깃발을 뽑을 때까지는 방심해선 안 돼.”
그의 푸른 눈동자가 별빛처럼 반짝였다.
“마지막까지 계획대로 간다.”
* * *
라온은 자신의 앞에 선 5 연무장 수련생들을 차례로 훑어보았다.
땀과 흙이 뒤덮여 거지꼴이었고, 근육이 떨렸으며, 눈동자에는 당황이 그대로 드러났다. 패잔병들의 모습 그 자체였다.
뒤늦게 온 버렌과 방계 수련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체계적인 검술을 익힌 버렌은 감각검을 익힌 수련생들에게 막혀 본래 능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계속 밀리기만 했을 거다.
“어땠지? 예상대로 쉬웠나?”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버렌은 입술을 깨물었고, 마르타는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다른 수련생들도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땅만 내려다보았다.
“너희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뭔지 알려줄까?”
라온의 붉은 눈이 달빛처럼 이지러졌다.
“너희는 세상은 멈춰 있고, 너희만 달라진다고 생각하고 있어. ‘한번 이긴 상대면 또 이길 수 있겠지. 저 녀석들 대부분은 시험에서 떨어졌으니까. 오웬 왕국에게 무시를 당했으니까. 뭘 해도 우리가 이기겠지.’ 이게 너희들의 생각 아닌가?‘
“…….”
이번에도 수련생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라온이 말했던 그대로였으니까.
“세상은 너희의 생각보다 더 빠르게 변한다. 오늘 이긴 상대에게 내일 질 수도 있고, 모레에는 상대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 그런데….”
라온의 목소리가 한층 더 가라앉았다. 지하에서 올라오는 듯 등골이 오싹한 음성이었다.
“주제도 모르고 무조건 이긴다? 상대의 전략도 모르는데 꺾을 수 있다? 혼자 가서 다 꿇릴 수 있다고? 이기긴커녕 자만심에 취해 오러와 체력을 낭비하고, 가진 기술까지 보여주고 왔지. 참 대단들 해.”
그의 시선이 버렌과 마르타를 지나 수련생 한 명 한 명을 직시했다. 수련생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 하지만 너희는 사자가 아니고, 저들은 토끼가 아니야. 저 수련생들도 매일매일 삶을 갈아 검을 닦은 검사다. 조금 앞서 있다고 무시할 자들이 아니야.”
“크으….”
“으윽….”
버렌과 수련생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창피한지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마르타도 인상을 구길 뿐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럼 지는 거야?”
뒤에 서 있던 루난이 옆으로 다가왔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지.”
라온의 덤덤한 말에 수련생들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네, 네 말대로 우리는 많은 체력과 오러를 소모했는데?”
“이미 떨어진 녀석도 4명이나 되고.”
“이건 일대일 대련이 아니라, 단체전이다. 너희들이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렸다면 기회는 있어.”
“정말이냐?”
“그 바위 같은 놈을 뭉갤 수 있다면 뭐든 하겠어!”
버렌과 마르타가 뿌득 소리가 나도록 주먹을 움켜쥐었다. 수련생들의 눈동자가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아직 눈은 살아 있네.”
라온은 열기가 피어나는 수련생들의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희들이 이길 방법을 알려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