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55화 (55/653)
  • 55화

    라온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기어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담처럼 시야를 막은 수풀 사이로 두 명의 산적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농담 따먹기를 하는지 자기들끼리 낄낄 웃었다.

    ‘실력은 낮아.’

    육체는 제법 발달했지만, 오러는 느껴지지 않았다.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하급 무인이다.

    둘을 넘어 그 뒤를 보았다.

    시시덕거리는 두 산적 뒤에 덩치가 큰 산적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아이 하나가 나무에 묶여 있었다.

    아이는 얇은 옷 하나만 입고 있어서 얼굴과 손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흐끅.”

    아이가 추위를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니 옆에 있던 산적이 뺨을 툭툭 쳤다. 손이 닿는 것만으로 아이는 부들부들 떨며 몸을 움츠렸다.

    쯧.

    라온이 눈매를 짧게 혀를 찼다. 이곳에 오면서 예상했던 대로 산적들은 아이를 인질로 잡고 있었다.

    적이 공격해오면 저 아이의 목에 칼을 대고 위협하려 했을 거다.

    ‘몇 명 더 있겠지.’

    하나뿐인 인질을 경계서는 곳에 둘리가 없다. 저 안쪽. 산적들이 모여 있는 곳에 다른 인질이 있을 게 분명했다.

    ‘어떻게 할까.’

    모두에게 알리고 함께 움직였다간 산적들에게 들킬 게 분명했다.

    아직 들키지 않은 지금 인질을 구하고 산적들을 암살하듯 소탕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리고 놔두기 힘들어.’

    아이의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저대로 놔두었다간 동사하게 될지도 모른다.

    “…….”

    라온이 고개를 돌렸다. 루난은 인질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지 눈동자를 떨었다.

    “괜찮아.”

    기막을 펼쳐서 소리가 빠져나가는 걸 막은 뒤 속삭였다.

    “해결할 방법이 있어.”

    “방법?”

    “대신 네가 도와줘야 해.”

    “응.”

    루난이 뭐든 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신호를 주면 일어서서 네 모습을 드러내고, 마나로 소리를 막아줘. 할 수 있지?”

    “응.”

    루난은 이유도, 방법도 묻지 않고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 내가 알아서 할게. 우리 둘이면 저 아이를 구할 수 있어.”

    “알겠어.”

    아이를 구할 수 있다고 하자, 루난의 고갯짓이 평소보다 훨씬 힘이 넘쳤다.

    “그럼.”

    라온은 루난은 그 자리에 두고, 그림자 보법을 밟아 아이가 묶여 있는 나무의 근처로 이동했다.

    “언제까지 여기 박혀 있어야 하냐?”

    “지그하르트 그 미친놈들이 벌써 검사를 파견했다잖냐. 길이 전부 막혔대.”

    “시발. 우리 다 뒈지는 거 아냐?”

    “채주가 남북맹 사람을 불렀다고 했으니, 기다리면 안내자가 오겠지.”

    산적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도 못 하고 본인들의 사정을 떠들어댔다.

    “입 닥쳐라.”

    나무 옆에 앉은 산적의 말에 경계를 서던 산적들이 입을 합 다물었다.

    ‘저 녀석은 좀 다르군.’

    나무 옆에 앉은 산적의 단전에서 오러가 느껴졌다. 그래도 소드 비기너 수준이었지만.

    라온은 한 번의 걸음으로 인질 옆에 있는 덩치 큰 산적 곁으로 이동했다.

    루난은 이미 준비를 끝내고 가는 숨을 쉬고 있었다.

    ‘후우우….’

    가볍게 숨을 고르고, 무릎을 굽혔다.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는 자세를 취하고 손가락을 들어 올려 작은 불을 만들었다.

    부스슥!

    그 신호를 받은 루난이 수풀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뭐, 뭐야!”

    “누구냐!”

    경계를 서던 산적들이 루난을 보자마자 허겁지겁 무기를 챙기고 일어섰다.

    “여자아이? 왜 여기…어?”

    나무 옆에 있던 산적이 혹시 모를 생각에 아이를 잡으려고 한 순간 라온은 이미 그의 뒤에 서 있었다.

    푸칵!

    검을 뽑음과 동시에 산적의 목을 갈랐다.

    “끄흡….”

    산적은 아이를 잡지도, 허리춤의 검을 뽑지도 못한 채 목이 떨어져 나갔다.

    목을 잃은 산적의 몸에서 피 분수가 뿜어지기 전에 라온이 땅을 박찼다.

    “무슨….”

    두 산적 중 우측에 있던 놈이 먼저 몸을 돌린다. 발목을 회전시켜 방향을 바꿨다. 우측으로 돌진해 검을 내질렀다.

    퍼억!

    라온은 산적의 심장을 베자마자, 검을 휘돌려 마지막 남은 산적의 목을 겨누었다.

    “뭐, 뭐야….”

    홀로 살아남은 산적은 목에 닿은 검을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소리를 내도, 움직여도 죽는다.”

    “끄읍….”

    눈치가 없는 건 아닌지 산적은 마른침을 삼키고 입을 다물었다.

    “루난. 아이를 풀어줘.”

    “응!”

    루난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대답해라. 거절할 때마다 뼈를 하나씩 뽑아주마.”

    라온은 산적의 팔을 꺾으며 바닥에 내리찍었다.

    “아, 알겠습니다.”

    산적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검을 휘두른 라온에게 질렸는지 고개만 끄덕였다.

    “설호채 맞지?”

    “마, 맞습니다”

    “총인원은?”

    “서, 서른아홉입니다.”

    “나머지는 어디에 있지?”

    “저 숲 안쪽에 있습니다.”

    산적은 턱으로 숲 안쪽을 가리켰다.

    ‘확실히.’

    숲 깊은 곳에서 여러 기척이 움직이고 있었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놈들은 기척을 숨기지 않았다.

    “경계 교대는 언제지?”

    “세, 세 시간 후쯤.”

    “인질은?”

    “저 안에 한 명이 더 있습니다.”

    “역시.”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 다른 인질이 있기에 저 아이를 경계를 서는 곳에 두었던 것 같다.

    ‘36명이 모여 있으면 지금처럼은 안 되겠어.’

    암살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36명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곳에서 인질을 구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라온?”

    루난이 아이에게 로브를 입히고 다가왔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는지 아이의 얼굴이 깨끗해졌다.

    “거, 검사님. 저 안에 제 동생이 있어요.”

    아이는 라온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았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아 입술에서 피가 나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말을 이었다.

    “제발 제 동생을 구해주세요!”

    “걱정하지 마.”

    루난이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라온이 전부 해결해줄 거야.”

    “루난.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그래도 해줄 거잖아.”

    “음.”

    라온은 헛기침을 했다. 루난의 눈빛은 투명했다. 완벽한 신뢰. 부담스러울 정도의 믿음에 헛기침이 나왔다.

    “산적만 처리하는 건 상관없지만 인질인 아이를 안전하게 구하려면 사람을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아. 산적 36명에 채주까지 있으니, 위험할 수도 있어.”

    “그럼 피리를 불까?”

    “그래.”

    루난이 아이의 손을 잡은 채로 일어섰다. 그녀가 뒤로 물러서서 리메르에게 받은 피리를 불었다.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세게 불었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확실히 들리지 않네.’

    피리는 바로 옆에 있어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왜 이 피리를 줬는지 알 수 있었다.

    “무음적 소리다! 전부 일어나! 추적자가 왔다!”

    피리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숲 안쪽에서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라온이 마른침을 삼켰다. 저 반응. 피리 소리를 들은 게 분명했다.

    ‘저 정도로 감이 좋은 놈이 있었다니….’

    자신조차 듣기 힘든 피리 소리를 저 멀리서 들을 줄은 몰랐다. 일이 꼬였다는 생각에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루난. 아이랑 저쪽으로 숨어.”

    라온은 서쪽의 수풀 쪽을 가리켰다.

    “라온은?”

    “여기서 시간을 끌어 볼게.”

    루난에게 대답을 하며 팔을 제압한 산적을 수풀 쪽으로 끌어당겼다.

    “괜찮으니까. 날 믿어. 그리고 혹시라도 틈이 보이면 다른 인질을 구해.”

    “알겠어.”

    괜찮다고 말하니 루난이 고개를 끄덕이고 우측 수풀 안으로 들어갔다.

    쿠구구구!

    숲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가지각색의 복장을 한 산적 34명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뭐, 뭐야! 대체 언제….”

    “이런 시발!”

    “어떤 새끼야!”

    가장 강한 기운을 가진 턱수염 장한이 죽은 산적들을 보고 이를 바드득 갈았다.

    ‘인질은…저쪽이군.’

    라온은 수풀에 숨은 채로 인질의 위치를 확인했다.

    가장 우측에 있는 산적이 어린 여자아이의 목덜미를 쥐고 있었다. 다행히 루난이 숨은 수풀 바로 옆이었다.

    “나와라!”

    턱수염 장한이 발을 구르며 눈을 부라렸다.

    “나오지 않는다면 저 녀석의 목을 베어주지.”

    그가 대도를 뽑아 인질인 여자아이를 겨누었다.

    “쯧.”

    라온이 제압한 산적의 목을 잡고, 수풀에서 일어섰다.

    “꼬마? 이걸 네놈이 했다고?”

    “그렇다.”

    “미친! 이런 어린 새끼한테….”

    “부, 부채주님….”

    목을 쥔 산적이 앞의 남자를 부채주이라 불렀다. 저 덩치가 산적들의 부두목이고, 피리 소리를 들은 놈인 것 같다.

    “무음적으로 누굴 부른 거냐.”

    놈은 리메르가 준 피리의 이름도 알고 있었다. 어딘가의 교관이었던 모양이다.

    “누굴 부르든 무슨 상관이지?”

    “어린놈이 뒈지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부채주가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인질 교환을 원한다.”

    라온은 부채주와 산적 사이의 시선을 검으로 막으며 말했다.

    “인질 교관?”

    “그 아이를 넘겨주면 이놈을 돌려주지.”

    “크하하하하!”

    부채주가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코웃음을 쳤다.

    “그딴 새끼가 뒤지든 말든 알 바 아니야. 그놈에겐 저 애새끼와 달리 인질의 가치가 없다.”

    “그래. 그렇군.”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 검을 틀어 산적의 목에 가져대 댔다.

    “말했을 텐데, 우린 그놈이 죽어도 아무 상관 없다. 이 계집아이의 모가지가 떨어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당장 검을 내려놔.”

    “글쎄.”

    왼손 새끼손가락으로 작은 불씨를 피워내 루난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 녀석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네가 아니라, 내가 정해.”

    라온이 검날로 산적의 경동맥을 베었다. 목에서 엄청난 양의 핏물이 치솟아 순간 산적들의 시야를 가렸다.

    ‘지금!’

    라온은 허리춤에 꽂아놓은 단검을 들었다. 설화의 감각과 기감을 최대한으로 열어 아이를 안고 있는 산적의 기척을 느꼈다.

    만화공의 기운을 가득 담아 산적을 향해 단검을 쏘아냈다.

    퍼어억!

    하늘로 솟구친 핏물이 가라앉을 때 이마에 단검이 박힌 산적이 쓰러지는 게 보였다.

    “이런! 염병할!”

    “마, 막아!”

    부채주와 산적들이 자유가 된 아이를 노리고 움직일 때 수풀에 숨어있던 루난이 일어섰다. 뽑아든 검에 은빛 냉기가 일었다.

    “서리연.”

    그녀가 검을 휘두르자, 달려들던 산적들의 발밑에 서리가 깔렸다.

    “저, 저년은 뭐야!”

    “냉기?”

    “속성 오러다!”

    산적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다리를 멈췄다. 그 한순간의 머뭇거림. 그거면 충분했다.

    터어엉!

    라온이 땅을 박차고 아이를 향해 튀어 나갔다.

    “멈춰!”

    중간에 있던 산적이 검을 내리쳤다.

    터엉!

    라온은 손바닥으로 검면을 쳐낸 뒤 산적의 목을 베었다. 바람을 탄 듯한 기세. 리메르를 보는 듯했다.

    “이놈!”

    부채주가 경로를 막기 위해 거대한 도를 내리쳤다.

    라온은 발목을 틀어 아이의 앞에 선 뒤 검을 내질렀다.

    쩌어엉!

    얇은 검과 거대한 도가 맞부딪쳤지만, 밀려난 건 도다.

    “크흡!”

    부채주가 이를 악물고 뒷걸음질 쳤다.

    “됐어.”

    그 사이에 루난이 다가와 여자아이를 안아 들었다.

    “세린!”

    “오, 오빠!”

    아이들은 서로 부둥켜안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이제 괜찮아.”

    루난이 아이들을 안고 뒤로 물러섰다. 드물게도 작은 미소를 지었다.

    ‘저 녀석.’

    뒤를 힐끔 보며 픽 웃었다. 루난은 이쪽의 마음을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대로 움직여주었다. 보기와 다르게 눈치가 빠른 녀석이다.

    “애새끼들 주제에! 내가 누구인지 알고!”

    부채주가 이를 바드득 갈며 도를 휘돌렸다. 그 뒤에 있는 산적들도 모두 검을 뽑아 들고 살기를 피워냈다.

    “곧 죽을 놈의 이름 따위 궁금하지 않아.”

    라온의 검 위로 만화공의 새빨간 불꽃이 타올랐다.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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