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54화 (54/653)
  • 54화

    라온과 수련생들은 교관을 따라 차원 관문을 통과해 하루 만에 지그하르트 영지의 최남단으로 이동했다.

    원래라면 천천히 이동하며 노숙을 비롯한 이런저런 경험을 쌓았겠지만 갑작스럽게 임무가 바뀌어서 어쩔 수 없이 최대한 빠르게 이동했다.

    첫 임무의 긴장감 때문인지 수련생들의 얼굴이 어두워진 하늘보다 더 껌껌해 보였다.

    “오늘은 저곳에서 쉬고 간다.”

    리메르가 언덕 아래로 보이는 마을을 가리켰다. 작은 마을이지만, 지붕 위로 피어나는 회색 연기가 정겨워 보였다.

    지그하르트 영지에 속해 있기에 마을 입구에는 불타는 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교관님. 휴식이 아니라, 바로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버렌이 리메르의 옆으로 나오며 물었다.

    “너희들의 꼴을 봐라. 고작 차원문을 넘는 것으로 체력을 전부 소모했는데, 추적할 수 있겠어?”

    “음….”

    버렌이 뒤를 돌아보고 침음을 삼켰다.

    차원 관문은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대신 많은 체력과 정신력을 소모한다.

    수련생 대부분은 처음으로 차원 관문을 이용했기 더 지쳐 있었다.

    “오늘 밤이 마지막 휴식이다. 내일 새벽부터 휴식이나, 취침 없이 추적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그래도 저희가 늦는다면 다른 피해가 일어날 수도….”

    “설호채 산적들은 조금이지만 남북맹에 발을 걸쳐 놓은 놈들이다. 너희들의 무력이 높다고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을 버려. 지친 상태에서 마주쳤다간 오히려 너희가 당할 수도 있다.”

    리메르의 차가운 눈빛이 수련생들에게 매섭게 내리꽂혔다.

    “출발할 때 말했지? 방심하지도, 긴장하지도 말라고. 지금 너희는 그 무엇도 되어 있지 않아. 오늘 쉬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아라.”

    “예….”

    “그럼 가자.”

    그가 먼저 마을로 향하고 그 뒤를 라온과 수련생들이 따랐다.

    “음?”

    라온이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마을 안에서 익숙하면서도 강렬한 기파가 느껴졌다.

    “교관님.”

    “왜?”

    “마을 안에 혹시 가문의 검사가 있습니까?”

    “너 진짜 감 하나는 죽여주네.”

    리메르가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느꼈어?”

    “내부에서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강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맞아. 가문의 검사가 와 있다. 혹시라도 산적 놈들이 북상해서 습격할 수도 있으니까.”

    “아….”

    지그하르트는 세력권에 있는 마을이나, 도시를 확실하게 보호하기로 유명한 집단이다. 마을 주변에 문제가 생기자마자 바로 검사를 보낸 것 같았다.

    “네 감각은 정말 신기하네.”

    “으음….”

    “흥!”

    리메르의 감탄에 버렌이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도 검사의 기척을 느끼려고 노력했고, 마르타는 별거 아니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지그하르트 검사님들이 오셨다!”

    “와아아아!”

    마을 앞에 도착하자 마을 사람들이 교관들의 전투복에 그려진 불타는 검 문양을 보고 환호를 지르고 손을 흔들었다.

    “문을 열어라!”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고, 마을의 문이 열렸다. 이곳에서 지그하르트의 이름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로베르트도 비슷했지.’

    전생에서 가끔 로베르트의 문양을 지닌 채로 움직일 때 남부의 사람들도 저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었다.

    “후우욱.”

    라온은 오랜만에 타오르는 복수심을 가슴 아래에 묻고 마을에 들어갔다. 저녁을 짓는 냄새가 잔잔하게 풍겨 나왔다.

    “지그하르트의 검들을 환영합니다. 자르텐 마을 촌장 케먼입니다.”

    회색 머리칼이 가득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리메르라고 합니다.”

    “지그하르트의 광검!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촌장은 영광이라고 말하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리메르는 웃는 얼굴로 촌장을 대한 뒤 몸을 돌렸다.

    “숙소를 안내해주신다고 한다. 오늘이 너희가 편히 잘 수 있는 마지막이다. 집합은 해 뜨기 전. 모두 늦지 말도록.”

    “저는 아직 체력이 넘칩니다. 주변 지형을 파악해놓겠습니다.”

    버렌이 손을 들어 올렸다. 눈빛이 번쩍였다.

    “좋은 기세야. 네가 미리 길을 알아둔다면 편하겠지. 근데 너 이 주변 지리 잘 알아?”

    리메르가 퉁명스런 눈빛으로 버랜을 내려다보았다.

    “지, 지도로는….”

    “이 마을 주변은 숲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도를 봤다고 해도 직접 가보면 어디가 어디인지 제대로 알 수 없지. 그런 상태에서 갑자기 산적이 기습한다면? 넌 제대로 반격도 하지 못하고 목이 날아갈 거다.”

    리메르가 버렌의 머리를 툭 치며 웃었다.

    “네 마음은 알지만 조급해지면 역으로 놈들에게 기회를 주게 된다. 말했듯이 놈들은 이 지역을 벗어나지 못해.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혀라.”

    “아, 알겠습니다.”

    버렌과 방계 수련생들이 어색한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내일부터는 쉬고 싶다고 해도 쉴 시간이 없을 테니, 푹 쉬어둬. 내일 새벽부터 바로 수색 작업을 시작한다.”

    “예!”

    “그럼 가자.”

    수련생들은 리메르를 따라 마을 회관이 있는 중앙으로 이동했다.

    *     *      *

    다음날 새벽.

    리메르가 선언한 대로 휴식 없이 남하하는 강행군이 계속되었다. 식사도 움직이며 건량으로 먹었고, 잠도 3시간 이상 자지 못했다.

    거기다 갑작스럽게 시야를 꽉 막는 폭설이 내려 수련생들의 걸음은 거북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느려졌다.

    “흐음.”

    라온이 어깨를 뒤덮은 눈을 털어내며 수련생들을 쭉 둘러보았다.

    “후우.”

    “하늘에서 내리는 똥가루 같으니라고!”

    버렌이나, 마르타도 무릎까지 차오른 눈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했다.

    “아오, 죽겠다!”

    “폭설이 대체 언제까지야!”

    “속도가 안 나.”

    두 사람이 힘들어할 정도이니, 다른 수련생들은 당연히 눈과 얼음에 막혀 허우적댔고, 이동 속도는 평소의 절반조차 되지 않았다.

    “후후.”

    딱 한 명. 루난만 즐겁다는 듯 눈덩이를 모으며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건 이 녀석이 특이한 거다.

    어쨌든 이대로라면 정말 산적들을 놓칠 가능성도 있었다.

    리메르와 교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서 지켜만 보았다.

    보호자 역으로 왔으니, 조언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결국 여기선 자신이 나서야 했다.

    “정지.”

    라온이 가장 앞으로 나오며 모두를 멈춰 세웠다.

    “많은 눈이 깔린 바닥에서는 발목에 힘을 줘선 안 된다. 속도도 느리고, 체력 낭비만 하게 돼.”

    라온은 수련생들을 쭉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발목과 무릎에 힘을 빼고, 풀잎을 튕기듯이 눈을 밟아. 가람보법을 익혔으니 조금만 연습해도 할 수 있을 거야.”

    시범을 보이듯이 눈을 부드럽게 밟고 앞으로 나아갔다. 다리가 평범하게 걸을 때보다 훨씬 부드럽게 나아갔다. 흡사 빙판을 미끄러지듯이.

    “어?”

    “와.”

    그 모습을 본 수련생들은 헉 소리를 뱉었다.

    라온은 모두가 눈 걸음을 따라 할 수 있도록 몇 번 더 시범을 보여주었다.

    “지금부터는 한 줄로 움직인다. 버렌 앞으로 나와.”

    “왜지?”

    “눈보라나 바람이 심하게 불 때는 한 줄로 움직여서 바람의 영향을 줄이는 게 기본이다. 네가 앞에서 다른 아이들을 이끌어.”

    “음!”

    이끌라는 단어에 버렌의 눈빛이 반짝였다.

    “나머지는 버렌의 등을 보고 일렬로 서.”

    가장 앞에 버렌, 중간에 마르타 후미에는 루난이 서는 한 줄이 만들어졌다.

    “선두는 한 시간마다 교체한다. 출발.”

    라온은 그 줄에 끼지 않고, 옆으로 빠져나와서 수련생들을 이끌었다.

    눈 걸음을 익힌 수련생들이 한 줄로 움직이자, 이동 속도가 2배 가까이 빨라졌다.

    “허.”

    “지, 진짜 빠르네. 평소랑 별다를 게 없어.”

    “라온은 이걸 어떻게 안 거냐?”

    “신기한 녀석이라니까.”

    수련생들은 누구보다 가뿐하게 눈을 헤치는 라온을 보며 탄성을 흘렸다.

    “제대론데요?”

    “그러게요. 가르치는 방식이 굉장히 효율적입니다. 꼭 행군이라도 해본 것처럼.”

    “힌트를 좀 주려고 했는데, 필요 없었네.”

    뒤에 있던 교관들도 라온의 등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리메르는 라온과 수련생 모두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     *      *

    라온과 수련생들은 눈폭풍을 헤치고 한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만 마을은 화마에 휩쓸려 반 이상이 꺼멓게 타 있었고, 살아 있는 생명은 아무도 없었다.

    남녀노소 이름과 얼굴을 알 수 없는 시체들로 마을 한 편이 가득했다.

    설호채 산적들이 습격했다는 그 마을이었다.

    “우우욱!”

    “우웩!”

    수련생 중 비위가 약한 아이들은 구역질을 했고, 비위가 강한 아이들도 인상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돌렸다.

    다만 라온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리메르 옆에서 시체를 살폈다.

    ‘먼저 칼로 베고 태웠군.’

    불에 타 죽은 게 아니라, 칼에 베여 먼저 숨이 끊어진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들었던 대로 놈들은 이곳을 습격해서 재물을 빼앗은 뒤 달아난 것 같다.

    ‘다만….’

    산길을 다 닦아 놓아서 돈만 받아먹으면 되는 산적 놈들이 무엇을 노리고 이곳에 습격했는지는 모르겠다.

    “너 괜찮냐?”

    계속 시체를 보고 있자, 리메르가 걱정되는 얼굴로 다가왔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아닌 게 아니라, 수련생 중에서 시체를 코앞에서 보고 있는 사람을 라온과 마르타 뿐이었다.

    ‘역시….’

    예전부터 느꼈지만 마르타는 시체를 자주 보았던 것 같다. 혹은 직접 죽였거나.

    “크읍.”

    버렌이 입술을 깨물며 다가와 시체를 살폈다. 억지로 참는 게 보였다.

    “음….”

    루난은 힘들어하면서도 시체의 상흔을 살피며 산적들의 검을 파악하려 했다.

    피를 보기만 해도 겁먹을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젠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다.

    “이게 설호채 산적들이 한 짓이다. 절대 잊지 말고 마음에 새겨라. 놈들을 만났을 때 절대 검을 늦추지 않도록. 다시 출발한다.”

    “예!”

    리메르는 마지막 조언에 수련생들의 눈빛이 시퍼렇게 번쩍였다. 첫 임무의 떨림이 분노의 기세가 되었다.

    이틀 뒤.

    라온과 수련생들은 설호채 산적들이 숨어있다고 예상되는 루텐산 지역에 도착했다.

    이틀만 더 가면 길목을 차단한 관도였고, 가문의 검사들이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기 때문에 산적들이 이 근처에 숨어있는 건 확실했다.

    “모두 주목.”

    리메르가 손뼉을 쳐서 수련생들을 모았다.

    “이곳이 우리의 거점이다. 지금부터 조를 짜서 놈들의 위치를 추적한다.”

    그가 직접 조를 짜주었다. 라온은 루난과 같은 조가 되었다.

    3명에서 4명인 다른 조에 비해서 숫자는 적었지만, 무력 면에서는 오히려 압도했다.

    “피리도 하나씩 받아 가도록.”

    리메르가 은색의 피리를 조당 하나씩 건네주었다.

    “훈련받은 사람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피리다. 위험한 일이 생기면 불어라. 너희를 지켜보던 교관들이 바로 움직일 테니까.”

    “예!”

    “다만 무조건 피리를 불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하도록 노력해봐라. 조끼리 연합을 해도 좋고, 우리의 도움 없이 한 번 붙어도 괜찮다. 다만 놈들의 검에는 자비가 없으니, 절대 방심하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수련생들은 산적들이 습격했던 마을의 참상을 되새기고 각자가 선택한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다만 라온은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서 있는 산길부터 동쪽의 루텐 산, 서쪽의 낮은 구릉과 그 옆의 빽빽한 숲을 모두 둘러보았다.

    ‘저 산.’

    그의 시선이 루텐 산을 향했다. 산에서는 이곳을 내려볼 수 있고, 그 뒤로 빠져나갈 수도 있으니, 저쪽이 정석이라면 정석이다.

    하지만 정석이기에 저 산은 아니다.

    포위망이 좁혀오고, 추적자가 있다는 걸 아는 산적 놈들이 산에 숨었을 리가 없었다.

    숲도 비슷하다. 빽빽하고 우거진 숲이라 쉽게 들키진 않겠지만 도망치기 힘들다.

    ‘그럼 아마….’

    라온이 눈이 마지막으로 구릉을 향했다. 너무 대놓고 보이는 곳이지만, 저 안쪽에 다른 지형이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저곳부터 살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라온.”

    마음을 정하고 일어났을 때 같은 조인 루난이 다가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가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왜 자신을 루난과 묶었나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여린 루난을 챙기라는 뜻 같았다.

    “이쪽으로 가자.”

    “응.”

    라온이 루난을 데리고, 구릉으로 올라갔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아무것도 없어 보였던 구릉 안쪽에 아래에서 보이지 않던 숲이 하나 있었다. 빽빽하지는 않지만, 내부가 꽤 깊어 보였다.

    시선을 낮추고 숲의 입구를 살폈다. 야생동물이 많은지 작은 발자국이 가득해서 인간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사냥꾼이나, 추적자일 뿐. 라온은 달랐다.

    최고의 암살자가 되려면 단순히 살인만 잘해서는 되지 않는다. 추적도, 감각도. 정보 수집도 전부 최상급이 되어야만 최고의 암살자가 될 수 있다.

    라온은 포기하지 않고, 숲을 천천히 나아가며 산적들의 흔적을 살폈다. 놈들은 산과 숲의 프로지만 인간인 이상 흔적이 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찾았다!’

    라온의 눈빛이 빨갛게 타올랐다. 바닥이 아니다. 어깨높이의 수풀에 사람이 지나갔던 흔적이 아주 작게 남아 있었다.

    “지금부터 숨 소리도 내지 말고 따라와.”

    “응.”

    라온은 루난의 대답을 들으며 자세를 낮췄다. 간신히 발견한 흔적을 따라 산적들의 위치를 가늠하며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정지.”

    라온이 뒤로 손을 뻗었다.

    “왜?”

    “함정이 있어.”

    바로 앞에 투명한 실로 만들어놓은 함정이 있었다. 이걸 지나가는 순간 다리가 잘리고, 안쪽에 신호가 가게 될 거다.

    ‘그런 꼴은 못 보지.’

    라온은 신호가 울리지 않도록 함정을 해제하고 전진했다.

    -그걸 보았다고?

    라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정말 뭐 하는 인간인지 모르겠군. 긴 세월을 살아온 본왕의 시선으로도 알 수가 없도다.

    ‘운이 좋았어. 햇볕에 비쳤거든.

    -흥. 웃기는 소리.

    라스는 안 믿는다며 코웃음을 쳤다.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말한 뒤 조금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산적들의 흔적이 많아졌다. 놈들의 위치를 다시 잡기 위해 바닥을 살피다가 이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이건….’

    상황과 맞지 않는 작은 발자국이 있었다. 아이의 발자국 같았다.

    ‘그 마을의 아이인가?’

    아무래도 그 마을에서 아이들을 납치해 인질로 쓰려고 한 것 같았다.

    ‘지독한 놈들.’

    숨을 내쉬어 돋아나는 분노를 가라앉혔다.

    “루난.”

    “응.”

    “지금부터는 걸음 소리도 내면 안 돼. 나처럼 걸어.”

    루난에게 소리가 나지 않는 걸음을 가르쳐 주었다. 가람보법의 응용으로 알려주니, 금방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피리는?”

    “지금은 아니야.”

    인질이 없다면 모를까. 아이들이 잡힌 상태에서 피리를 불었다간 교관들이 오며 소리를 울릴 수도 있다.

    지금 상황에선 아이들과 산적들의 위치를 보고 피리를 부는 게 맞다.

    “내가 신호를 주면 바로 피리를 불어.”

    “응.”

    루난이 피리를 꼭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라온이 앞을 가리키며 자세를 낮췄다.

    “이제 거의 다 왔어.”

    *     *      *

    자세를 낮춘 채로 10분가량 숲을 가로지르자, 산적들의 흔적이 곳곳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젠 그냥 막 다녔군.’

    구릉과 숲의 초입에는 극한으로 흔적을 줄였고, 중간에는 함정을 설치했지만, 여긴 아니다.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난잡한 흔적이 가득했다.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야.’

    주변을 살핀 라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곳에도 아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산적들이 아이를 인질로 잡고 있어.”

    “인질?”

    “그래. 일단 상황부터 파악하고, 피리를 불지, 우리끼리 움직일지 결정하자.”

    “응.”

    루난은 무슨 말을 해도 믿을 것처럼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라온이 고갯짓을 하고 기다시피 앞으로 걸어갔고, 그 뒤를 루난이 따라갔다.

    10분 정도 기었을까. 앞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라온의 눈빛이 그림자처럼 어둡게 가라앉았다.

    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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