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53화 (53/653)

53화

<블리딩 커스(1성)>

적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해서 출혈이 발생했을 때 1할의 확률로 상대의 육체 능력을 감소시킨다.

“오!”

특성의 설명을 본 라온이 탄성을 흘렸다.

1할의 확률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특성이었다.

“능력치에 특성까지 진짜 아낌없이 주는 나무네. 고맙다.”

모든 능력치 2에 근력과 민첩성 기력이 추가로 상승했다. 거의 모든 능력치가 3이 오른 효과에 새로운 특성까지.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별명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별 특성도 아니로군. 저 정도라면 본왕이 가진 능력 중 최하급이다.

“그거야 쓰는 사람 나름이지.”

라온이 씩 미소 지었다. 라스는 냉기를 사용하지만, 자신은 검을 사용하고 기습에 능하다.

전생의 기술과 경험을 이용한다면 <블리딩 커스>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딱 좋아.”

라온이 어깨를 돌리며 일어섰다. 다시 겉옷을 걸치고 숙소 문을 열었다.

-뭐냐.

“수련 좀 하러 가려고.”

-또?

“육체의 변화를 확인하고, 적응해야지.”

-네놈 때문에 본왕도 잠을 못 자지 않느냐!

“나중에 자.”

-이런 용암에 튀겨 죽일!

기분이 좋으니, 라스가 내뱉는 욕설과 저주도 음악처럼 들렸다. 콧노래를 부르며 연무장으로 달려갔다.

*     *      *

두 달 뒤 새벽 공기가 스산한 연무장.

라온은 가장 먼저 연무장에 나와 검술을 수련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렌과 마르타가 거의 동시에 들어왔다.

“쯧!”

“저건 진짜 잠도 없나….”

버렌은 혀를 차고 바로 검을 쥐었고, 마르타는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풀었다.

“하암.”

아침에 약한 루난은 느지막하게 나와 어린 참새처럼 하품했다.

시리아의 어둠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는지 눈동자가 예전보다 밝아졌다. 그래도 맹하긴 했지만.

뒤늦게 나온 수련생들도 가볍게 수다를 떨며 훈련 준비를 했다.

그렇게 평소와 같은 하루가 시작될 때였다.

콰앙!

연무장 문이 거칠게 열리고 리메르가 들어왔다.

“교관님. 문은 차는 게 아니라, 여는 겁니다.”

“괜찮아. 내 거니까.”

리메르는 콧등을 찡그린 버렌에게 손을 휘젓고 단상 위로 가뿐하게 올라갔다.

“훈련 중이니 귀만 열어놓고 들어라.”

그는 손뼉을 쳐서 시선을 모아놓고 훈련을 계속하라 지시했다. 아직 어린 수련생들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걸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익스퍼트도 아니고!”

“그냥 빨리 말이나 해줘요!”

수련생들은 먼저 말을 하라고 손을 흔들었다.

다만 라온은 검술에 집중을 하면서도 리메르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있었다.

“그럼 말하지. 너희들에게 임무가 내려왔다.”

“헉!”

“임무!”

“임무요?”

임무라는 단어에 수련생들의 눈동자가 별을 박아 놓은 듯 번쩍였다. 방계들은 당연했고, 버렌이나 마르타도 입을 벌렸다.

물론 라온은 계속 검을 휘둘렀고, 루난은 그 옆에서 멍하니 하품했다.

“그래. 너희들의 첫 번째 임무다.”

“우와아아아!”

“임무다!”

“드디어 실전인가?”

“후우, 후우….”

수련생들 반응은 다양했다. 기대감에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주먹을 움켜쥐기도 했으며, 흥분하여 숨을 헐떡이기도 했다.

“물론 너희들만 가는 건 아니다. 물가에 애들만 보낼 수 없으니, 나와 교관들이 함께 가게 될 거다.”

다들 예상했는지 수련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첫 임무라….’

라온은 리메르의 말을 들으며 전생의 첫 임무를 떠올렸다.

‘8살이었던가.’

지금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에 홀로 임무를 떠났다. 살인은 아니었지만, 적진에서 정보를 캐내는 임무였기에 위험도는 굉장히 높았고, 실제로 죽을 뻔했었다.

첫 임무에 교관들이 따라간다니, 역시 지그하르트는 생각보다 냉정하지만은 않은 가문이었다.

“이, 임무는 뭔가요?”

도리안이 입술을 떨며 손을 들어 올렸다. 5연무장 최고의 겁쟁이답게 벌써 겁에 질려 있었다.

“지그하르트 보호 구역을 조금 벗어난 곳에 설호라는 이름의 산채가 하나 있다.”

산에 세워진 산적들의 소굴을 산채라고 말한다. 설호채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걸 보면 규모가 큰 곳은 아닐 거다.

“남북맹에 살짝 걸쳐 있던 놈들로, 산길을 열어 약간의 통행료를 받아먹고 살았는데, 최근 들어 행패가 심해졌다. 상인들의 물품을 모조리 뺏거나, 죽이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하더군.”

“그럼 임무는 산적 소탕이군요!”

“제대로 된 임무잖아!”

“산적이라….”

“오마 중 하나인 남북맹에 걸쳐 있다잖아. 위험할 수도 있어.”

남북맹은 지그하르트가 속한 육황과 대립하는 오마 중 하나다.

남서쪽을 가득 채운 테루칸 산의 산적들과, 북동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레이블 강의 수적들이 하나로 뭉친 도적들의 세력이다.

남북맹에 속한 산적과 수적들은 대부분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강자로 평범한 산적과 수적을 생각하고 덤볐다간 단숨에 목이 날아갈 거다.

특히 남북맹을 이끄는 남북맹주는 산적과 수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초고수로 대륙십천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수련생들은 첫 임무 그리고 남북맹이라는 이름에 긴장했는지 마른침을 삼켰다.

“자자, 아직 내 말은 안 끝났어.”

리메르가 다시 손뼉을 쳤다.

“너희들의 말대로 임무는 산적 토벌이었다.”

“…이었다? 그거 과거형 아닙니까?”

“맞아. 토벌이었는데, 어제 바뀌었거든.”

“예?”

“왜, 왜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왜 임무가 바뀐 거죠?”

“산적 놈들이 산채 남쪽에 있던 마을을 습격해서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불까지 지른 뒤 도망갔으니까.”

평소 리메르와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에 수련생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우리의 임무는 산적  토벌이 아니라, 설호채 산적의 추적 및 말살이다.”

수련생들은 리메르의 가라앉은 눈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출발은 언제입니까?”

버렌이 손을 들어 올렸다.

“오늘 저녁이다.

“저녁이면 너무 빠른 거 아닙니까?”

“말했듯이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산채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도망친 산적을 추적해야 하기에 시간이 많지 않다. 그리고 가문의 임무에 빠르고, 느리고는 없어. 내려오면 그저 따를 뿐이다.”

“…그 말이 맞군요. 죄송합니다.”

버렌은 드물게도 인정하며 고개를 숙였다.

“너희들에게 가장 익숙한 건 수련검이지만, 임무에도 그걸 쓸 수는 없지.”

리메르가 눈빛을 보내자 교관들이 검을 다섯 자루씩 가지고 왔다.

“오크와 실전을 치를 때 주었던 진검이다. 무게도, 검신의 형태와 길이도 너희들이 사용하던 수련검과 같지. 오늘부터는 그 검을 사용하도록 해라.”

“진검….”

“조, 좀 떨리네.”

“뭘 떨어. 당연히 거쳐야 할 관문인데.”

수련생들은 한 명씩 진검을 받았다. 정도는 다르지만 모두 손을 떨었다.

“라온. 네 검이다.”

“감사합니다.”

라온이 두 손을 올려 진검을 받았다. 수련검과 같은 무게라고 했지만, 기분 탓인지 조금 더 무거운 것 같았다.

리메르는 옅게 웃고서 다시 단상 위로 올라갔다.

“지그하르트의 문양은 새겨져 있지 않지만, 그 검은 가문에서 내려온 진검이다. 임시지만 너희를 지그하르트의 검사로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지그하르트의 검사….”

“인정이라니.”

수련생들이 진검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임시라도 지그하르트의 검사는 검사. 어떤 상황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준비를 단단히 하도록.”

리메르는 돌아가서 출발 준비한 뒤 저녁 식사 전에 다시 모이라고 말했다.

“저희가 준비해야 할 건 무엇입니까?”

버렌이 그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그건 직접 생각해라. 임무만이 아니라, 임무를 준비하는 이 순간도 네 성장과 경험이 되니까.”

리메르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대꾸했다.

“음, 확실히 그렇겠군요.”

버렌은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섰고, 리메르는 그대로 휴게실로 들어가 버렸다.

“흐음….”

라온은 리메르의 표정을 보고 방금 한 말이 그의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귀찮았네.’

좋은 말이지만, 대답해주기 귀찮아서 방금 지어낸 게 분명했다.

‘나랑은 상관없지만.’

라온은 수많은 임무를 완수했던 최고의 암살자였다. 추적과 척살을 위해 필요한 준비물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조금이지만 떨리네.

정말 오랜만에 임무라는 말을 들어서일까. 살짝 가슴이 뛰었다.

*     *      *

라온은 짐을 챙기기 위해서 별관으로 돌아갔다. 정원을 가꾸던 실비아와 헬렌이 벌떡 일어나 미소를 지었다.

“이 시간에 웬일이야? 설마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건 아니고.”

“너무 단호하네.”

실비아가 옅게 웃으며 다가오다가 멈춰 섰다. 시선이 라온의 허리춤에 걸린 진검을 향했다.

“그 검은….”

“임무가 떨어졌어.”

“예? 임무요?

“이, 임무? 수련생에게 무슨 임무가….”

실비아가 눈을 부릅뜨고, 헬렌이 쥐고 있던 손질용 낫을 떨어뜨렸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 교관이랑 같이 가는 첫 임무니까.”

“아….”

교관이랑 함께 가는 임무라고 하자, 실비아와 헬렌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벌써 첫 번째 임무를 할 때가 됐다니, 우리 아들 다 컸네.”

허리를 숙여 껴안으러 다가오는 실비아를 피했다.

“지금 엄마를 피한 거야?”

“미안하지만 시간이 없어. 오늘 저녁이 출발이야.”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민망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바로 간다고? 무슨 임무인데?”

“범죄자 추격?”

“어떤 범죄자?”

“도둑.”

실비아와 헬렌이 걱정할 것 같아서 산적이 아니라, 도둑이라고 말했다.

“도둑이라고 해도 방심하면 안 돼.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무는 법이니까.”

“알겠어.”

“추적이면 꽤 걸릴지도 모르겠네.”

“그러게요. 음식을 준비해야겠어요.”

도둑을 쫓는다고 말하자 두 사람의 긴장이 조금은 풀린 것 같았다.

“그럼 일단 육포부터 담자.”

“네. 영양용으로 말린 과일이랑 빵도 좀 챙겨야겠어요.”

실비아와 헬렌은 음식은 본인들에게 맡기라고 말하고서 그대로 별관으로 들어가 버렸다.

라온이 분주해진 주방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해진다. 임무에 대한 약간의 흥분과 긴장도 가라앉았다.

‘내 것만 챙기면 되겠는데.’

실바아나 헬렌이 먹을 거 하나는 잘 챙겨주기 때문에 식량은 딱히 챙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러면….’

범죄자들을 추적할 준비물과 의복, 신발, 로브 정도만 챙기면 된다.

라온은 방 안으로 들어가서 가벼운 배낭에 임무에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집어넣고, 침대 밑에 두었다.

“흐음….”

바닥에 앉아 불의 고리를 운용하여 마음을 가라앉혔다.

‘남북맹 소속이 아니라, 걸쳐 있는 거면 그리 강하지는 않을 거야.’

첫 번째 임무로 내려온 이상 산적들의 무력은 그리 높지 않을 거다.

‘관도는 이미 막혔을 테니, 산에 숨은 산적들과 싸우는 모양새가 되겠지.’

산적의 주 무대는 산. 아무리 이쪽의 무력이 강해도 산에서 그들을 찾고 상대하는 건 쉽지 않다.

처음에는 수련생들이 산적들을 찾지 못할 테고, 결국 교관들이 이끈 이후 산적과 만나 싸우는 방식이 될 것이다.

‘그럴 필요는 없지.’

아무리 훈련의 일환이라고 해도 임무는 임무. 홀로 범죄자들을 잡던가, 죽인다면 분명 보상이 내려올 것이다. 실적을 쌓아야 하는 자신에겐 분명한 기회였다.

“후….”

라온이 불의 고리로 정화한 탁기를 뱉어내며 눈을 떴다.

한 번 해보지 뭐.

*     *      *

그날 저녁.

라온은 부둥켜안고 놓아주지 않는 실비아 때문에 예상보다 늦게 연무장으로 향했다.

수련생들이 먼저 와 있었는데, 대부분 긴장하여 목각인형처럼 굳어 있었다.

버렌은 주먹을 꽉 말아쥔 채 하늘을 보고 뭐라 중얼거렸다. 들어보니 이번 임무에서 꼭 공을 세우겠다는 뜻이었는데,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반대편 의자에는 마르카가 앉아 있었다. 다리를 꼰 채로 눈을 감고 있다가 옆에 수련생이 지나가면 눈을 부라렸다. 평소보다 거친 모습을 보니, 그녀도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반면에.

루난은 멍하니 서서 손에 든 아이스크림 상자만 보고 있었다. 먹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 먹을 거 아니라면 배낭에 넣는 게 좋지 않을까? 손을 쓸 수 없잖아.”

“…응.”

루난은 라온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스크림 상자를 배낭에 넣었다.

살짝 눈망울이 떨린다. 아이스크림 상자가 손에 없다는 것에 작은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다.

‘대단하네.’

버렌이나 마르타도 긴장하고 있는데, 루난은 평소 그대로다. 그녀의 관심을 끄는 건 오직 아이스크림이 깨지냐 마느냐인 것 같다.

어이없는 모습이지만, 시리아의 세뇌에서 확실하게 벗어난 것 같아서 안심되었다.

-나중에 소녀가 아이스크림을 꺼낼 때 나를 부르거라.

‘하.’

라스가 새로운 맛을 먹고 싶다고 중얼거릴 때 리메르가 문을 걷어차고 들어왔다. 평소와 같은 넝마가 아니라, 제대로 된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교관들과 함께 단상 위로 올라갔다.

“정렬!”

라온이 단상 앞에 서서 지시를 내리자, 수련생들이 줄을 맞추어 섰다.

“수련생 43명. 열외 없습니다.”

“좋아.”

리메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준비는 됐나?”

“예!”

수련생들은 긴장을 잊기 위해서 연무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지금부터 실전이다.”

리메르가 일어섰다. 항상 그의 입가를 장식하던 미소가 사라졌다.

“우리가 쫓는 놈들은 수십의 생명과 재산을 강탈하고, 한 마을을 불사른 뒤 도망친 극악의 범죄자들이다.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만나는 순간 바로 목을 날려라. 내가 허락한다.”

“으음….”

“으….”

태풍이 치솟은 듯한 강렬한 기세에 수련생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밖은 전쟁터이자, 지옥이다. 방심하지 말고, 항상 마음을 굳게 다져라.”

“예에!”

수련생들은 바짝 긴장한 채로 처음보다 더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고 긴장해서도 안 된다. 긴장하면 몸이 굳고 평소의 움직임을 이뤄낼 수 없으니까. 방심하지 말라고 했지. 긴장하라고는 하지 않았어.”

“하아아….”

리메르가 다시 웃음을 흘렸다. 어깨를 토끼 귀처럼 세운 수련생들이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 수석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의 시선이 중앙에 선 라온을 향했다. 부드러운 웃음. 믿음과 신뢰가 엿보이는 눈빛이다.

“라온 지그하르트. 잘 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라온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긴장도, 방심도 없는 잔잔한 눈빛에 리메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긴장할 필요도, 방심할 필요도 없지.’

내가 다 끝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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