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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50화 (50/653)

50화

“저 건방진 녀석은 다른 수련생보다 더 강하게 부탁합니다.”

리메르가 당당하게 나선 마르타를 가리켰다.

“알겠습니다.”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이고 오크를 소환했다. 버렌과 싸웠던 오크보다 크고 흉폭해 보이는 오크였다.

“룹 스트렝스, 룹 어질리티….”

제이크는 버렌 때보다 조금 더 많은 마력을 사용해서 몬스터의 근력과 민첩성을 올리고 통제를 풀었다.

“크아아아아!”

오크가 포효를 터트리고 황소처럼 달려들었다.

“괴물 따위가!”

마르타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땅을 박찼다. 달려드는 오크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크오오오!”

오크 역시 지지 않는 속도로 대검을 휘둘렀다.

쾅!

검과 검이 폭발을 일으키듯 부딪쳤지만 오크와 마르타는 밀려나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

땅에 다리를 박아놓은 듯 근접거리에서 서로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쾅! 콰아앙!

바위가 깨져나가는 듯한 굉음과 함께 검과 검이 수없이 부딪쳤다.

“크아아아아!”

마르타는 타이탄의 오러를 끝까지 끌어올리며 허리를 틀었다.

“크르륵!”

오크가 내리친 대검을 어깨의 강철로 튕겨내며 검을 그었다.

쩌억!

단호한 일격. 마르타의 검은 단숨에 틈을 파고들어 오크의 목을 통째로 베어버렸다.

“후욱.”

그녀는 바닥에 가라앉은 오크의 시체를 노려보다가 허리를 펴며 숨을 내뱉었다.

“저런 거 하나 잡는데, 하루를 다 쓰네. 어디 가서 나랑 같은 출신이라고 말하고 다니지 마. 수준 떨어지니까.”

“큭.”

마르타가 들어가면서 흘린 말에 버렌이 입을 꾹 다물었다. 눈앞에서 힘으로 오크를 뚫어버리고, 단숨에 숨통을 끊는 모습을 보았으니, 할 말이 없었다.

“마르타.”

라온이 뒤쪽으로 걸어가는 마르타를 불렀다.

“훈련이 끝나면 어깨를 치료하러 가라.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다.”

“…….”

마르타는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수석으로서 충고는 했으니, 이후는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고개를 돌렸다.

딱!

제이크의 손짓에 오크의 시체가 사라졌지만, 뻘건 핏물이 바닥에 새겨지고, 노린내가 연무장으로 퍼져나갔다.

“으….”

루난의 떨림이 점점 심해진다. 분홍빛 입술이 파랗게 질려갔다.

-뭐 저주를 푼다면 왜 가만히 있는 거지?

‘때가 아니니까.’

깊은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해서는 곪을 대로 곪아 썩게 놔둬야 한다. 그래야 깨끗하게 상처를 지울 수 있다.

라온은 3번째로 오크를 소환하는 제이크를 보며 손가락을 툭툭 두드렸다.

아직 부푼 물집을 터트릴 때가 아니었다.

*     *      *

수련생과 몬스터와의 목숨을 건 혈투는 계속되었다.

버렌과 마르타가 포문을 잘 열어준 덕분에 수련생들은 긴장하여 떨지언정 겁을 먹고 도망치지는 않았다.

오래 걸리기는 했어도 결국 수련생 모두가 머리나 심장 혹은 혈투를 벌여서라도 오크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라온은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연무장을 보았다. 도리안이 비명을 지르며 보법을 밟고 있었다.

“크아아아!”

오크가 괴성을 지르며 따라갔지만, 도리안의 발이 워낙에 빨라 잡지 못했다.

“흐압!”

도리안이 무섭다고 외치며 검을 내질렀다. 오크의 목이 아닌 허리가 뭉텅 베여나갔다.

“히익!”

“우어억!”

상처를 입은 오크보다 도리안이 더 놀라 펄쩍 뛰고 도망쳤다. 약이 오른 오크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다.

“저게 뭐냐?”

“어, 언제 끝나?”

“벌써 30분째야. 30분째.”

“체력이랑 발 하나는 좋네.”

“이제 라온이랑 루난만 남았잖아. 둘은 더 빨리 끝내겠지.”

수련생들은 한숨을 내쉬며 도리안과 오크의 추격전을 지켜보았다.

라온은 도리안의 발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배짱만 조금 더 있다면….’

도리안은 발도 빠르고, 검도 날카로웠지만, 겁이 너무 많았다. 저 겁쟁이 기질만 줄인다면 마르타, 루난, 버렌 바로 뒤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거다.

바스슥.

모래가 바스러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루난이 손톱에 피가 나도록 바닥의 모래를 움켜쥐고 있었다.

“으으….”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고, 입술은 하도 씹어서 상처투성이에, 손발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고 있었다.

무서운 정도가 아니라, 공포에 질린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단상 위에 있는 리메르가 눈매를 좁히고 루난을 본다. 돌려보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중일 거다.

‘그래서는 안 되지.’

지금이 고이고 고인 물집을 터트릴 가장 좋은 순간이었으니까.

라온이 일어서서 루난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떨림이 조금이지만 잦아들었다.

“무섭지?”

“…….”

루난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대답하지도 않았다.

“처음 검을 든 수련생도, 수백 번 전장에 섰던 노련한 검사도 피는 무서울 수밖에 없어.”

조금이지만 루난의 턱이 돌아갔다.

“나도 마찬가지야. 지금 싸우고 있는 도리안도. 싸웠던 사람들도 모두 무서워하고 있지.”

“정…말?”

루난에게서 말라비틀어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하지만 더 무서운 게 뭔지 알아?”

그녀가 모른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거.”

라온의 눈빛이 섬뜩하게 번들거렸다. 라온 지그하르트가 아니라, 암살자 라온의 기질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무서워서, 겁을 먹어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기만 한다면 변하는 건 없어. 어떤 일도 해결되지 않아.”

사실 두렵다.

지금의 안락한 삶에 만족하여 데루스 로베르트에 대한 복수심이 식을까 봐 겁이 난다.

또한 두렵다.

나의 복수가, 나의 행동이 실비아와 별관의 시녀들에게 좋지 않은 결과로 돌아올까 봐 무섭다.

무섭고, 두렵지만 둘 다 포기할 생각은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루스에게 복수를 하고, 실비아와 시녀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라온은 다시 다짐하며 루난에게 고개를 돌렸다.

“네게도 그런 게 있겠지.”

왼손 엄지손가락을 이빨로 씹어 상처를 냈다.

툭.

엄지손가락에 맺힌 빨간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지자, 루난이 뒤로 물러나며 이빨을 떨었다.

“아아….”

“도망가지 마. 지금이 아니라면 극복할 수 없어.”

“라, 라온. 라온!”

“피는 무섭지. 하지만.”

라온은 눕다시피 물러선 루난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그녀의 하얀 손등을 빨갛게 물들였다.

“또 아무것도 아니야. 피는 네게 어떠한 해도 입히지 않아.”

“어?”

루난은 손등에 흘러내리는 핏방울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피가 아프지도, 슬프지도, 무겁지도 않다는 걸 알고 당황한 표정이었다.

“네 오빠가 네게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는 몰라. 하지만 네가 무서워하면 할수록 그 남자의 그림자는 네게 깊게 드리울 거야.”

“아….”

루난의 손 떨림이 확실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무섭다고 도망만 쳐서는 평생 끌려다닐 수밖에 없어. 루난 슬리온. 너를. 그리고 네 가족을 지킬 수 있는 건 너뿐이야.”

라온은 진심으로 조언했다. 루난의 모습은 전생의 데루스에게 끌려다니던 자신의 모습 같았으니까.

“으아아아! 죽겠네!”

간신히 오크의 심장을 가르고 돌아온 도리안이 풀썩 주저앉았다.

“진짜 겨우 이겼어요. 죽을 뻔했습다. 크흑!”

녀석이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너 다람쥐 있냐?”

라온이 일어서며 도리안을 보았다.

“다람쥐요? 저라고 다 있는 게 아닙니다. 어? 있네.”

도리안은 이게 왜 있어?라고 중얼거리며 배 주머니에서 나무로 만든 다람쥐 조각을 꺼냈다. 빨간 눈이 인상적인 귀여운 다람쥐였다.

“받아.”

도리안에게 받은 다람쥐 조각을 루난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다람쥐를 받았다.

“조언은 여기까지. 마지막은 검으로 말해줄게.”

라온은 그 말을 끝으로 연무장으로 걸어갔다.

*     *      *

-네놈 답지 않게 나서는군.

라스는 주제도 모른다고 중얼거리며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스의 말대로 답지않게 나서버렸다.

물론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을 배려해준 타인이라는 건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내 전생이 생각나니까.

데루스 로베르트에게 세뇌를 당했던 전생의 모습이 지금의 루난과 겹쳐 보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손이 가고, 말이 나왔다.

‘그래도 이게 마지막이야.’

말로 하는 설명은 끝났다. 이젠 검이다. 이걸로 그녀가 피의 세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거기까지다.

-멍청하긴. 네놈이나 걱정해라. 다른 버러지들처럼 제대로 손을 뻗지 못할 게 뻔히 보이니까.

‘음?’

라스의 말을 듣자,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그럼 내기 하나 할까?’

-내기?

‘그래. 네가 아주 유리한 걸로.’

-무엇이냐.

‘내가 오크를 한 번에 베지 못하면 네 분노를 받을게. 딱 일검으로.’

-일검? 진심이냐?

‘물론.’

-책에서 본 조언 좀 했다고, 살생이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군.

라스가 키득 웃으며 팔찌를 진동시켰다.

-좋다. 단 일검이다. 두 번의 휘두름은 네 패배다.

녀석이 웃음이 그치며 내기 메시지가 떠올랐다.

[<분노>가 세 번째 내기를 제안합니다.]

조건 : 일검으로 강화된 오크의 목을 베기.

성공시 : 모든 능력치 +2, 랜덤 특성.

실패시 : <분노>의 감정 10포인트 생성.

‘받아들인다.’

자신의 전생이 암살자라는 걸 모르는 라스라면 이 내기를 받아들일 거라 예상했다.

‘호구가 또 왔네.’

라온이 라스에게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연무장으로 올라갔다.

“오, 네가 마지막이 아니네?”

리메르가 휘파람을 불었다. 재밌다는 듯 일렁이는 눈빛. 루난에게 했던 말을 전부 들었던 게 분명했다.

“저 녀석이 여기서 가장 강합니다. 가진 몬스터 중에 가장 강한 오크를 꺼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제이크가 입매를 꾹 다물었다. 뭔가 결정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주문을 외웠다.

우우웅!

바닥에 푸른 마법진의 파도가 일어나며 새로운 오크가 나왔다. 이전의 오크들과 비슷한 체형이지만, 근육이 더 도드라졌고, 몸 전체에 상처가 가득했다.

“크르르!”

마법진 때문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면서도 본능적인 사나움을 그대로 드러냈다.

우우우웅!

녹색과 붉은색 푸른색 마법진이 오크의 상체를 뒤덮었다. 오크의 기세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치잉!

제이크가 손목을 뻗자, 오크의 모습이 거친 외모의 남성으로 변했다.

“대련을 준비하십시오.”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왼 손목을 가볍게 돌리고, 오른 손목을 풀려고 할 때였다.

치이잉!

제이크의 마법진이 유리장처럼 깨지고, 오크가 튀어 나갔다.

“크아아아아!”

악을 내지르며 돌진해 피가 덕지덕지 붙은 도끼를 내리쳐왔다. 속도와 힘이 다른 오크와 전혀 다른 경지에 올라 있었다.

“뭐, 뭐!”

“막아!”

“이런!”

모두가 당황했지만, 라온의 눈빛은 더 깊게 가라앉았다.

‘알고 있었으니까.’

제이크의 들뜬 눈을 본 순간 이런 상황이 올 거라는 건 예상했다.

스르릉.

라온이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칼날 위로 한 송이 꽃이 피어났다. 노을빛을 받은 황금색 꽃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만화공 일화.

화령.

꽃잎이 휘날리며 대기를 가른다.

노을 아래. 또 하나의 노을이 그어지며 오크의 움직임이 멎는다.

“끄르륵….”

오크는 들어 올린 도끼를 채 휘두르지도 못하고, 목이 떨어져 내렸다.

푸칵!

겹쳐지는 황금빛 노을 아래 새빨간 핏물이 치솟고, 오크의 육중한 육체가 가라앉았다.

잔인할 정도의 아름다움. 대륙 제일의 화가가 붓을 꺾어 버릴 정도의 장관이었다.

오크를 막기 위해 달려가던 교관들, 당황하여 몸을 일으킨 수련생들도, 오크를 조종하던 제이크도 모두 말을 잃었다.

고오오오!

라온은 전생의 격을 끌어 올려 제이크를 짓눌렀다. 살인으로 업을 쌓은 암살자의 기세에 제이크가 목을 움켜쥐고 주저앉았다.

“끄르륵.”

그의 눈이 까뒤집어졌다. 더 하고 싶었지만, 아직 뒤에 루난이 남았다. 적당히 겁을 준 뒤 기세를 꺼뜨렸다.

후웅.

라온이 핏물이 어린 검날을 털어내고, 뒤를 돌았다.

“크윽!”

“망할….”

버렌은 바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갈았고, 마르타는 눈매를 좁힌 채로 입술을 비틀었다. 둘 다 굉장히 분한 듯한 표정이다.

“어어.”

“와아….”

수련생들은 벌레가 들어가도 될 정도로 입을 쩍 벌렸다. 파도를 맞은 듯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미, 미쳤네.”

“저게 대체 무슨 검이야?”

“이, 일격….”

교관들 역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멍하니 서 있었다.

그 모두를 살핀 뒤 가장 뒤에 있는 루난을 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어둠에 잠겨 있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제 네 차례야.

*     *      *

루난은 연무장에 올라가는 라온을 보며 다람쥐 조각을 꼭 끌어안았다.

‘다 알고 있던 건가?’

라온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어서 일부러 말을 아꼈다. 아무 일도 아닌 척 눈을 풀었다. 그러면 괜찮아졌다. 그냥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을 걸어주었다.

담담한 라온의 목소리가 심장을 꽉 조이고 있던 어떤 손아귀를 천천히 풀어내는 것 같았다.

피에 흐르는 손을 내밀었을 때는 무서웠다. 당장에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손을 잡았을 때 그 피가 손등을 적셨을 때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그저 잔불 같은 따스함만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피 자체는 무서운 게 아니라는 걸. 심장을 묶고 있던 검은 그림자가 조금 더 옅어진 기분이었다.

루난은 호흡을 고르고 연무장에 선 라온을 보았다. 작은 등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누구보다 넓어 보였다.

우웅!

긴장한 채로 그 등을 지켜보고 있을 때 갑자기 오크의 마법진이 사라졌다.

“크어어어!”

오크가 흉폭한 괴성을 지르며 라온에게 달려들었다.

“아, 안 돼!”

턱을 떨며 일어섰을 때 라온이 검을 뽑았다.

은색의 검날 위로 황금빛 꽃이 피어난다. 찬란한 아름다움을 빛내는 꽃이 노을을 따라 그대로 그어졌다.

두 개의 노을이 하나로 겹쳐진 순간 오크의 목에서 피 분수가 뿜어졌다.

아름답다.

어렸을 때부터 무섭고, 두려웠던 피가, 절대 그렇게 보일 수 없는 핏방울이 허공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라온이 검을 털어내고 고개를 돌렸다. 눈빛이 말한다. 이제 네 차례라고.

“응.”

루난이 일어섰다. 그녀의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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