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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45화 (45/653)

45화

오웬 왕국의 사절단이 떠난 이후에도 수련생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서서 라온의 뒷모습만 지켜보았다.

매일매일 라온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항상 물처럼 부드럽게만 움직여서 저렇게 빠르게 움직이고, 강한 검격을 쏟아낼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어, 어어….”

“저렇게 강했다고?”

“어, 어째 점점 차이가 벌어지는….”

수련생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단상 위에서 시원한 손뼉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수고했다.”

리메르가 단상 위에 걸터앉은 채로 씩 웃었다.

“갑작스러운 대련에도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오웬 왕국의 수련 기사와 대련할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련생들은 오히려 대련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럼 다행이고.”

리메르는 씩 웃으며 허공에서 발장구를 쳤다.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뭐, 다 끝났으니까. 몇 가지 말해줘야지. 일단 오늘 너희와 붙었던 오웬의 수련 기사들 있지? 걔들 단순한 수련 기사가 아니다.”

“네?”

“그럼 어떤….”

그가 잠시 말을 멈추자, 수련생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 녀석들 오웬 왕국이 각 잡고 키우는 정예들이야. 그대로 성장한다면 근위기사나, 은기사가 될 인재들이지.”

“헉!”

“근위기사와 은기사!”

“어쩐지 너무 강했어….”

수련생들이 입을 쩍 벌어졌다.

정예 중의 정예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오웬 왕국의 근위기사단과 은기사단이다.

근위기사는 왕성에서 국왕을 지키는 방패. 은기사는 왕국을 위협하는 적을 베는 칼.

두 기사단은 오웬왕국의 최정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련생들은 그런 곳에 들어갈 것이 확실시되는 수련 기사들과 비슷하게 싸웠다는 것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아이들과 비슷하게 싸웠다는 건 충분히 칭찬받을 일이다. 모두 자기 자신에게 박수!”

“이야야야!”

“와아아아!”

“우리가 이겼다!”

수련생들은 양손을 들어 올리며 환호를 터트렸다.

“흐흠!”

“수석 교관님.”

리메르가 기분 좋게 환호성을 즐기고 있을 때 중앙에서 손 하나가 올라왔다. 버렌이 비틀거리면서 일어서 있었다.

“그들과 다시 싸워볼 수 있습니까?”

버렌의 표정은 바로 앞에 적이 있는 것처럼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누가 보면 진 줄 알겠네.”

“이기지 못했으면 진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자세야.”

리메르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와 붙었던 수련 기사는 미래의 근위기사 단장이라고 했었다. 네가 계속 발전해나가면 만나기 싫어도 만나게 되겠지. 물론 그때는 수련 기사가 아니라, 기사일 테지. 그러면….”

“전 검사가 되어야겠군요.”

버렌의 녹색 눈동자에서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잘 알고 있네.”

“하나만 더.”

“뭐지?”

“저와 붙은 수련 기사가 미래의 근위기사 단장이라면 삼왕자는 뭡니까? 왕족 수준의 검술이 아니었습니다.”

버렌의 질문은 타당했다. 아무리 15살이라고 해도 삼왕자의 무력은 기이할 정도로 강했다.

“삼왕자는 미래의 왕국제일검이라고 하더군.”

“헉!”

“와….”

리메르의 답변과 동시에 연무장에 침묵이 찾아왔다. 수련생들은 부릅뜬 눈으로 라온을 돌아보았다.

훗날 왕국제일검이 될 거라 칭해지는 자를 가볍게 꺾어버린 라온은 대체 무슨 괴물이냐는 표정이었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평소보다 체력을 많이 썼으니, 돌아가서 쉬도록.”

리메르는 다시 손뼉을 치고 단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수련생들의 눈동자에는 라온에 대한 놀라움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     *      *

라온은 경악이 어린 수련생들의 눈빛을 뒤로하고 가장 먼저 연무장을 떠났다.

평소라면 돌아가라고 해도 남아서 훈련을 하겠지만, 지금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빠르게 숙소로 향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바닥에 앉아서 꽃팔찌를 툭툭 두드렸다.

화아아아!

팔찌에서 푸른색 냉기가 꽃봉오리처럼 피어났다. 다만 냉기는 분노에 찬 듯 바르르 떨었다.

-빌어먹을!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지고 너한테 질 수가 있는 거냐! 왕족이라 믿었건만 멍청하고 하등하도다!

라스가 방 전체를 서늘한 냉기로 채우며 이를 갈았다.

-본왕이 그놈이었다면 너는 지금 얼음덩어리가 되어 갈기갈기 찢어졌을 거다. 가진 힘도 이용 못 하는 주제에 왕자? 한심하기 짝이 없어!

라스는 본인이 마계의 왕이다 보니 왕자에게 친근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내기에 진 게 굉장히 분했는지 분노와 수다가 동시에 터졌다.

-본왕이 마계에 있을 당시 더 적은 마나로도 큰 적을 손쉽게 제압했다. 나중에 군주 대 군주 대결에서는….

“아, 네. 거기까지.”

라온이 팔찌를 치자, 라스의 말이 끊겼다.

‘저건 무조건 끊어야 해.’

‘본왕이 마계에 있을 때’라는 말이 나오면 일단 끊고 봐야 한다. 저걸 들어줬다간 내일 아침에나 보상을 받을 거다.

“떠드는 건 나중에 하시고 내기 보상이나 주시지?”

-이건 사기다. 그놈이 가진 힘도 이용 못 할 줄 몰랐다.

사실 삼왕자는 잘 싸웠다. 만화공이 오러의 양과 상관없는 무지막지한 위력을 발휘했을 뿐.

“그래서 안 주려고? 마계의 군주나 되셔서?”

-본왕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인간인 줄 아느냐. 말한 건 지킨다. 그게 사기라도!

[<분노>와의 내기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승리 보상이 지급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4포인트 상승합니다.]

능력치가 올랐다는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감전된 듯 전신이 잘게 떨렸다.

“후우우우.”

육체와 정신이 단번에 성장하는 이 희열은 매번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을 만큼 황홀했다. 이 보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임무라도 할 수 있었다.

꾸욱.

주먹을 꽉 쥐어보았다. 능력치 4포인트가 한 번에 오르니, 악력과 근육의 탄력에서도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다.

<상태창>

이름 : 라온 지그하르트.

칭호 : 최초의 승리

상태 : 혹한의 저주(여섯 가닥)

특성 : 분노, 불의 고리(4성), 수속성 저항력(4성), 설화의 감각(2성) 만화공(2성), 혹한의 냉기(2성), 화속성 저항력(2성).

근력 : 47

민첩성 : 47

체력 : 48

기력 : 36

감각 : 58

이번 보상만이 아니라, 계속 수련한 덕분에 능력치가 많이 상승해 있었다. 높아진 수치 때문에 상태창만 봐도 뿌듯함이 밀려왔다.

-쯧.

라스는 보이지도 않는 상태창을 쭉 살피며 짧게 혀를 찼다.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은 눈빛이다.

-좋냐?

‘좋아.’

라온이 고민도 없이 즉답했다.

-그리 좋아할 필요 없다. 네가 아무리 강해진다고 해도 결국 본왕의 빙의체에 불과하니까. 본왕이 이루지 못한 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녀석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중얼거리며 냉기를 뿜어냈다.

“아, 그래.”

피부 위로 서리가 내릴 정도로 온도가 내려갔지만, 수속성 저항력 때문에 차갑지도 않았다.

“열심히 해봐.”

가볍게 어깨를 털어 라스를 밀어내고 일어섰다.

-본왕을 무시하지 마라. 100년이 걸려서라도 네놈의 육체를 차지할 터이니.

‘네.’

-끄아아악!

라온은 라스의 냉기가 화산처럼 폭발하기 시작했을 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무시라고?

무시를 할 리가 있겠는가.

라스는 적이다. 그것도 가장 위험한 적.

매일 불의 고리를 연성하고, 육체와 정신을 단련하는 이유가 놈에게 몸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다.

여유 있는 척하지만, 방심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허무한 죽음은 한 번이면 충분하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복수하기 위해서 더 강해져야 한다.

라온은 숙소를 나와 모두가 떠난 연무장으로 돌아가 밤새 검을 휘둘렀다.

*     *      *

라온이 오웬 왕국의 삼왕자와 대련을 한 지 세 달이 지났다.

차기 왕국제일검이라는 삼왕자를 가볍게 꺾었지만, 라온은 승리 따위는 이미 지난 일이라는 듯 수련에만 몰두했다.

수련생들은 요즘 라온에게 수련 귀신이니, 수련 천재니 하는 별명까지 붙였다. 물론 뒤에서만 부르지만.

“이제 검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네.”

“저 인간 더 강해진 거 같지 않냐? 뭔가 검술도 보법도 더 자연스러워졌어.”

“더 강해진 거 같은 게 아니라, 강해졌겠지.”

“질린다. 질려.”

방계 수련생들은 홀린 듯이 수련에 몰두하는 라온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조금은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턱도 없겠어.”

“그러게. 이쪽도 신발 밑창이 헤지도록 수련했는데….”

수련생들은 오웬 왕국과의 대련이 아니라, 라온이 마르타를 꺾었을 때부터 감격해서 수련 시간을 많이 늘렸다.

열심히 수련했으니, 라온과의 실력 차이가 조금은 줄어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실력 차이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압도적인 차이만 벌어졌다.

“이거는 그니까….”

“재능 차이지.”

“그래. 가지고 태어난 재능이 달라. 노력해도 안 되면 어쩔 수 없….”

“고작 신발 하나 헤졌다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응?”

각진 목소리에 수련생들이 뒤를 돌았다.

“헉!”

“어어….”

“버, 버렌 님!”

버렌이 팔짱을 낀 채로 입매를 비틀고 있었다.

“재능이라는 멋진 단어 하나로 상대를 높이면 참 편하지. 최선을 다 해도 안 된다고 나 자신을 합리화시킬 수 있거든. 그런데 말이야.”

그는 수련생들을 스쳐 지나가며 말을 이었다.

“그건 신발 한 개가 아니라 열 개 정도는 뜯어먹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

그 말은 수련생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에게. 라온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모르고 그를 질투했던 과거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마, 맞습니다.”

“죄송….”

“내게 죄송할 건 없다. 너희들의 인생이니까.”

버렌은 수련생들의 뒤에 있던 수련검을 챙겨서 연무장 중앙으로 행했다.

“버렌 도련님. 조금 부드러워지신 거 같지 않냐?”

“예전이라면 아예 무시했을 텐데….”

“야. 온다. 입 다 물어!”

“흡!”

수련생들은 좌측에서 걸어오는 마르타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턱.

마르타는 수련검을 꺼낸 뒤 어깨에 걸쳤다. 어깨에 닿을 듯한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연무장으로 가다가 멈춰 섰다.

“저놈이 부드러워졌다고?”

그녀는 수련생들에게 노골적으로 한심한 눈빛을 보냈다.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인데 부드러워졌다니, 너희들 눈깔은 썩은 오크만도 못하네.”

마르타는 비웃음을 흘리고서 검을 휘돌리며 연무장으로 걸어갔다.

라온과 루난은 쉬지도 않고 몸을 움직였고, 버렌과 마르타는 그 둘에 지지 않겠다는 듯 강력한 기세를 일으키며 검을 내리쳤다.

“어우, 숨 막혀.”

수련생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5 연무장엔 괴물이 산다. 그것도 4마리나….

“그래. 그렇지만.”

수련생 중 한 명이 본인의 수련화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실력을 늘리기엔 여기만 한 곳이 없지 않냐.”

“음, 그건 그렇지.”

“맞아.”

다른 수련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5 연무장에 온 뒤로 실력이 느는 속도가 훨씬 빨라진 건 확실했다.

“우리도 가자.”

수련생들은 짧은 휴식을 끝내고 수련검을 쥔 채 연무장으로 들어갔다.

“좋구만.”

리메르는 그들의 뒤편에 있는 나무에 걸터앉아 빙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둥들이 잘 버텨주니, 알아서들 따라가잖아.”

연무장 중앙에서 검을 휘두르는 라온, 버렌, 루난, 마르타를 차례로 보았다. 색이 다른 네 아이가 전력으로 달려가니, 뒤에 있는 아이들이 그 길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저 넷은 교관 이상으로 아이들의 실력 발전에 큰 역할을 해주었다.

“흐음.”

리메르는 나무에 걸터앉은 채 손가락으로 붉은 머리를 빙글 돌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실전을 시켜봐도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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