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43화 (43/653)

43화

리메르는 대련장 위에서 마주 선 라온과 삼왕자를 보고 히죽 웃었다. 두 사람의 대련이 기대되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물론 보상도.’

대련 이후에 오웬에게 얻을 내기 보상의 기대는 덤이었다.

그는 라온이 진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즐거워 보이는군.”

타르탄 공작이 표정 없이 다가와 옆에 섰다.

“즐겁지. 어린 재능들이 전력으로 부딪치는 걸 보는 게 즐겁지 않을 리 있나.”

“미친 검귀가 많이도 변했군.”

“너 같은 망나니도 때깔 좋은 공작이 되었는데, 나라고 그대로겠냐.”

리메르가 타르탄 공작을 보며 피식 웃었다.

“어제 왕자님께 다가온 것도 전부 이 대련을 위해서였겠지?”

“물론.”

“대체 무슨 생각이냐. 너답지 않게 왜 그런 거추장스러운 짓을 하는 거지?”

타르탄 공작이 몸을 돌리며 강렬한 압박을 보내왔다. 허튼 수작을 부리면 당장에 검을 내리칠 기세였다.

“저 녀석들이 성장할 기회잖냐. 오마라면 모를까. 다른 육황의 아이들과 싸울 일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리메르는 타르탄을 돌아보지 않으며 대답했다. 가벼운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진중함이 가득했다.

“…진심이냐?”

“그래.”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정말 변했군.”

타르탄은 쩝 입맛을 다시며 대련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 대련에 나선 수련 기사들은 전부 오웬에서 밀어주는 아이들이다. 그들과 비슷한 수준이라니, 꽤 수준이 높군.”

“당연하지. 누가 키웠는데.”

“흥, 잘난 척은. 그런데 저 아이….”

그가 대련장에서 손목과 발목을 돌리며 몸을 푸는 라온을 가리켰다.

“아니, 저 괴물은 뭐냐. 존재감이 흐릿해서 나도 놓칠 뻔했다. 검술과 보법의 연계가 수련생 수준이 아니야.”

“역시 뱁새눈은 아니네.”

리메르가 낄낄 웃으며 반대편에서 여유를 부리는 삼왕자를 가리켰다.

“그런데 알고 있으면서 왜 경고를 하지 않은 거지? 삼왕자는 라온이 버리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만.”

“저분은 오웬 왕국의 미래가 되실 분이지만 아직 패배를 모르신다. 안전한 곳에서 당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타르탄이 라온의 무력을 파악하고도 삼왕자에게 언질을 주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그는 삼왕자에게 패배를 알려주어 한층 더 높이 올라가길 바랐다.

“다만 삼왕자님은 강하다. 저 천재 검사라도 쉽게 꺾지는 못할 거다.”

“글쎄….”

리메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은 좀 많이 달라.”

“고집은 변하지 않았군”

“그럼 내기 하나만 더 할까?”

“또?”

타르탄이 인상을 찌푸렸다.

“내기 한번 더럽게 좋아하는군.”

“그럼 간단한 술 내기로.”

“좋다. 그런데 어떤 내기를 하겠다는….”

리메르가 손가락 다섯 개를 들어 올렸다.

“라온이 너희들의 희망을 다섯 합 안에 끝낼 거야.”

“개소리! 저 녀석이 강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다섯 합은 무리다!”

타르탄이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쥐었다.

“그럼 내기하자고. 콜?”

“좋다! 얼마든지 받아주마.”

“역시 화끈하네.”

리메르가 키득 웃으며 손을 비볐다.

‘오랜만에 공짜 술 좀 먹겠는데.’

*     *      *

“흠.”

오웬 왕국의 삼왕자 그리어 드 오웬은 바로 앞에 있는 라온이 아니라, 대련장 아래에 있는 루난과 마르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싸울 맛 나겠어.’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저 둘 그리고 세툰과 호각의 승부를 보였던 청발의 남자에게만 관심이 갔다.

바면 마주 선 방계에겐 조그마한 관심도 없었다. 얼굴은 기깔나게 잘 생겼지만, 그뿐이다. 느껴지는 무력이 너무 평범했다.

‘최대한 빨리 끝내야겠어.’

앞에 있는 방계에겐 오러를 사용하는 것도 아까웠다. 육체의 힘만으로 가볍게 꺾은 뒤 다음 대련에서 전력을 발휘하기로 마음먹었다.

“준비가 끝났으면 대련을 시작하겠습니다.”

리메르가 앞으로 다가와 손을 들어 올렸다.

“마지막 대련. 시작!”

“흐읍!”

그가 손을 내리자마자 그리어가 검을 뽑았다.

터엉!

땅을 박차고 라온의 정면으로 돌진했다. 검을 내리쳐 단번에 끝내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

눈앞에 있던 라온이 찰나의 순간 사라졌다.

‘어, 어디에…흡!’

라온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우측에서 살벌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검!’

그리어는 검에서 이는 바람을 느끼고 급히 고개를 숙였다.

후웅!

라온의 수련검이 머리칼을 스치는 오싹함에 소름이 돋아올랐다.

“치잇!”

그리어가 몸을 회전시키며 오른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후웅!

라온의 위치를 계산한 정확한 검격. 하지만 이번에도 라온은 그 자리에 없었다.

스스윽.

놈은 뱀이 땅을 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좌측으로 이동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뭐, 저런!’

그리어가 이를 악물었다. 재빠르게 왕국 보법을 밟아 라온의 뒤를 쫓았다.

“흐아압!”

물러서는 라온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강대한 기운이 담긴 검이 대지를 향해 쏟아졌다.

‘끝났어!’

피할 공간을 막아선 뒤 내리친 공격이다. 도망칠 공간은 없었다.

“어?”

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라온과 눈을 마주쳤다. 조금의 동요도 없이 정지된 눈을 본 순간 등골 사이로 소름이 돋아올랐다.

터엉!

라온의 몸이 갈대처럼 휘며 앞으로 나아가고, 검이 반월을 그리며 회전했다.

그의 검과 함께 세상이 돌아갔다.

뭔지 모를 상황에 입만 벌리고 있을 때 등에서 강렬한 충격이 느껴졌다.

“커헉!”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 이게 무슨….”

지끈거리는 머리를 들어 올렸다. 라온이 자신보다 한참 위에 서 있었다.

그리어는 그제야 본인이 대련장 밖에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끄으윽…아!”

삼왕자는 등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참으며 고개를 들어 올리다가 굳어버렸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라온의 붉은 눈. 그걸 본 순간 이 땅의 절대자 글렌 지그하르트가 떠올랐다.

‘저, 저놈이야.’

삼왕자는 마른침을 삼키며 손을 떨었다.

‘진짜는 저놈이었어!’

*     *      *

“이것 참.”

리메르가 웃음을 참듯이 입을 가리며 타르탄을 보았다.

“어쩌나? 다섯 합도 아니고, 두 합만에 대련이 끝나버렸네.”

“…….”

타르탄은 대답하지 않았다. 쓰러진 삼왕자가 아니라, 라온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그만이 아니다. 이 연무장에 있는 모두가 경악한 눈으로 라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

타르탄은 한참 뒤에서야 헛바람을 뱉으며 허리를 폈다.

“저건 뭐냐. 무슨 보법을 저렇게 부드럽게 밟는 거지? 검술 역시 완벽한 타이밍에 들어갔어. 내가 본 게 전부가 아니었다니.”

타르탄의 시선은 여전히 라온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보여준 보법과 검술은 수련생의 그것을 이미 벗어나 있었다.

강력한 무력이 아니라, 그 순간에 맞는 적절한 움직임으로 삼왕자를 꺾었다는 게 더 경악스러웠다.

라온이라는 아이는 가진 실력 이상의 것을 발휘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라온이 이길 거라고.”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삼왕자께서 제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저렇게 쉽게 질지는 몰랐지만….”

“술집 예약해 놓을 테니까. 저녁에 보자고, 나 비싼 술만 먹는 거 알지?”

“쯧!”

“자, 잠깐!”

타르탄이 혀를 차고 고개를 돌리려 할 때 삼왕자가 버둥거리며 일어섰다.

“아, 아직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는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다시 대련장으로 올라갔다.

“와, 왕자님!”

“호오.”

타르탄은 당황한 눈빛으로 삼왕자에게 다가갔고, 리메르는 턱을 긁적이며 흥미로워하는 미소를 지었다.

“이러시면 안….”

“공작. 난 아직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소!”

삼왕자는 말리려던 타르탄을 제치고 앞으로 나왔다.

“본래의 힘을 처음부터 썼다면….”

“아, 시벌! 존나게 찌질하네!”

마르타가 대련장에 발을 걸치며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왕자라는 놈이 승패도 인정 못 하고 왜 그렇게 비벼대. 꼭 어떤 놈을 보는 것처럼.”

그녀는 고개를 돌려 가만히 있던 버렌을 내려보았다.

“윽….”

버렌은 했던 일이 있었기에 입술을 깨물고 인상을 구겼다.

“넌….”

“어이, 왕자 나리. 내가 지금 최대한 좋은 말만 해주고 있거든. 쌍욕 박기 전에 짐 싸서 꺼져.”

마르타는 뒤에서 버렌이 노려보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삼왕자를 조롱했다.

“말을 함부로 놀리지 마라. 이분이 누구신 줄 알고….”

“그쪽이 오웬의 왕위 계승자면 나도 지그하르트의 직계야. 꿇릴 게 없거든.”

마르타는 타르탄 공작의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만!”

리메르가 대련장 위로 올라가 손을 펼쳐서 두 사람의 얼굴을 가렸다.

“대련이 끝나긴 했지만, 당사자들이 어떤지는 이야기되지 않았으니, 물어보자고. 라온.”

“예.”

계속 가만히 있던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할래? 네가 당사자니까 직접 결정해.”

라온은 천천히 몸을 돌리며 턱을 틀었다.

“교관님이 이번 대련에 내기가 있다고 하셨죠. 승부는 났고 더 싸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끄윽….”

삼왕자가 말아쥔 주먹을 바르르 떨었다.

“왕자님. 그만하고 가시….”

“패한 건 인정한다!”

타르탄 공작이 말리는 손을 뿌리치고 삼왕자가 앞으로 나왔다.

“난 네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싸우기 전부터 무시했다. 민망하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어. 하지만 이대로 떠난다면 평생 후회하게 될 것만 같다. 한 번만 다시 싸워다오!”

삼왕자가 검을 내려놓고 고개를 직각으로 숙였다.

“와, 왕자님!”

타르탄 공작이 다가가 일으키려 했지만, 왕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음….”

라온은 삼왕자의 푸른 눈을 통해 그의 진심을 느꼈다.

‘고개를 숙이다니.’

오웬 왕국의 삼왕자. 그것도 타르탄 공작의 호위를 받는 왕자라면 지지 세력이 단단하다는 뜻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대놓고 사과를 할 줄은 몰랐다.

“야. 삼왕자고 자시고. 추한 짓 그만하고 꺼….”

“마르타.”

“칫.”

라온의 부름에 마르타가 혀를 차고 뒤로 물러났다.

“음….”

타르탄 공작은 그 모습을 보고 침음성을 삼켰다.

‘그저 무력만이 아니라니….’

자신에게도 덤비려 들었던 저 직계 여아를 말 한마디로 물러서게 했다. 저 라온이라는 아이를 잘못 보고 있던 건 삼왕자만이 아니었다.

“좋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대련장 뒤로 물러섰다.

“다만 이게 마지막입니다.”

“무, 물론이오!”

삼왕자는 더 이상 말을 놓지 않았다. 무인으로서 존중하겠다는 뜻 같았다.

“준비된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리메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대련장 위로 올라왔다.

“으음….”

삼왕자는 갑옷 안에서 사자 모양의 목걸이를 꺼내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내 무언가를 결정한 듯 이를 악물고 목걸이를 그대로 뜯어버렸다.

우우우웅!

그의 중심에서 막강한 풍압이 치솟으며 그의 기세가 거의 두 배 가까이 부풀었다. 단순히 오러만이 아니라, 단련된 육체의 기운마저 느껴졌다.

“저런 기운을 숨기고 있었다고?”

“허!”

버렌과 마르타는 삼왕자에게서 뿜어진 막강한 기세에 눈썹을 찡그렸다.

“사, 삼왕자님! 그건….”

“힘을 숨기고 있을 때가 아니오. 저자와 전력을 다해서 싸우고 싶소.”

삼왕자는 이 사이로 바람을 흘리며 검을 들어 올렸다. 방심 따위 없이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다는 의지를 표정으로 보여주었다.

-상대가 힘을 숨기는 것도 모르다니, 멍청한 놈이로다.

‘그래도 이길 수 있어.’

-오러의 양이 너보다 훨씬 많고, 육체의 완성도도 저쪽이 위인데 이길 수 있다고?

‘그럼 내기라도 할까?’

라온이 턱을 까딱였다.

-하! 물론이다! 얼마든지 받아주마.

라스가 코웃음과 동시에 내기 메시지가 올라왔다.

[<분노>가 내기를 제안합니다.]

조건 : 오웬 왕국의 삼왕자 그리어 드 오웬에게 승리.

성공시 : 모든 능력치 +4

실패시 : <분노>의 감정 10포인트 생성.

‘받아들인다.’

메시지가 뜨자마자 내기를 받아들였다.

‘호구가 또 왔군.’

지그하르트 도박장의 호구가 리메르라면 라온의 호구는 라스였다.

나오려는 미소를 참고 검을 뽑았다. 처음부터 삼왕자가 힘을 숨기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승리의 의지를 세우고, 숨겨둔 힘을 개방한 삼왕자와 싸우면 수련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 두 번째 도전을 받아들인 건데, 예상과 달리 호구 한 마리가 붙었다.

“그럼 가겠소.”

삼왕자가 끌어 올린 힘을 다리에 집중하여 진각을 밟았다. 대련장 한 축을 무너뜨리며 맹수처럼 돌진해왔다.

“이번엔 싸울 맛 좀 나겠군.”

얻을 게 있으니까.

라온이 앞으로 나아가며 휘돌린 검을 내리쳤다.

콰아아아앙!

하늘처럼 푸른 오러에 휩싸인 삼왕자의 검과 붉은 불꽃을 두른 라온의 검이 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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