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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31화 (31/653)

31화

라온이 천천히 눈을 떴다. 단전에 확실하게 뿌리를 내린 뜨거운 기운에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드디어.’

라스의 거센 방해를 뚫고, 만화공의 오러를 만들었다.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크고, 정심한 오러의 덩어리를.

‘만화공이 전부가 아니지.’

용암을 둥글게 뭉쳐놓은 듯한 만화공의 오러 옆에 북해의 빙하를 건져 올린 것 같은 냉기가 모여 있었다.

숯가마의 열기를 이용해서 라스의 냉기를 밀어냈을 때 만들어진 우연의 산물이었다.

‘이게 이렇게 전화위복이 되나?’

만화공 오러의 크기는 예상보다 2배 이상 컸고, 그 옆에 냉기의 오러까지 생성되었다.

목숨을 걸고, 지독한 고통을 버틴 대가가 상상을 훌쩍 뛰어넘어 돌아왔다.

“후우우.”

라온은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았다.

[<만화공>을 습득하셨습니다.]

[특성 <만화공(1성)>이 생성됩니다.]

[<만화공>이 강렬한 열기를 받아 2성에 도달했습니다.]

[<만화공(2성)>의 효과로 특성<화속성 저항력(2성)>이 생성됩니다.]

만화공이 만들어지자마자 2성에 올랐다는 메시지였다.

‘이럴 줄 알았어.’

단전에 안착된 만화공의 기운이 예상보다 훨씬 커서 단번에 2성의 성취에 올랐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바로 꽃을 피워낼 수 있겠네.’

만화공이 2성에 올랐을 때부터 사용할 수 있는 일화(一花)이자 일화(一火). 그 능력을 바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대감에 미소를 지을 때 두 번째 메시지가 올라왔다.

[<혹한의 저주>의 냉기 두 가닥이 녹아내립니다.]

[체질 <저질 체력>이 사라집니다.]

[녹아내린 냉기가 응집되어 특성 <혹한의 냉기>가 생성되었습니다.]

[<분노>의 막강한 냉기를 받아 <혹안의 냉기가 2성에 도달했습니다.]

“오.”

탄성이 절로 나왔다.

혹한의 저주 두 가닥이 녹아내리고, 저질 체력이 사라졌다는 메시지였다.

이것만으로 대단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 아래였다.

마나 회로의 냉기가 뭉쳐 혹한의 냉기라는 특성이 생겼다는 메시지. 만화공의 오러 옆에 있는 냉기의 오러가 바로 이 혹한의 냉기였다.

‘냉기라….’

사실 마나 회로의 냉기를 배출하지 않고, 받아들이려고 한 건 수속성 저항력을 높이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생각도 하지 않은 혹한의 냉기라는 보상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당황스러웠다.

아직 내용을 다 파악하지도 않았는데, 세 번째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위기 상황에서 <분노>가 펼친 방해를 이겨내셨습니다.]

[극한의 정신력을 보여준 대가로 모든 능력치가 3포인트 상승합니다.]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능력치가 올라갔다. 팽창한 뒤 수축한 육체와 정신에 다시 한번 뜨거운 희열이 찾아왔다.

‘꿈인가.’

그저 만화공을 익히려고 했을 뿐인데, 만화공 2성, 냉기 2성에 능력치까지 상승했다.

라스의 방해 덕분에 몇 년 동안 수련해야 할 경지를 단번에 이루었다.

-이런 빌어먹을!

메시지를 끄며 미소를 지을 때 라스에게서 억눌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네놈은 무엇이냐! 어떻게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거냐고!

평소 근엄한 척하는 말투도 사라졌다. 라스는 말 그대로 분노가 폭발한 상태였다.

‘나한텐 안 된다고 했잖아. 뭘 해도 소용없어.’

라온은 허세를 부리며 손을 저었다.

-말이 안 돼! 이건 말이 안 된다고! 본왕이 마계에 있을 때도 이런 굴욕은 없었다.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질 수가….

‘이제 포기해라.’

여유로운 척하고 있지만, 아까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3달 동안 숯가마를 돌아다니며 주변의 기운을 읽어 둔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조심해야겠어.’

오늘로 확실해졌다. 조금 친해졌다고 해도 라스는 분명한 적이다. 놈에게는 절대 약점과 비밀을 들켜서는 안 된다.

“괘, 괜찮으냐?”

라스가 부르르 떨고 있을 때 발칸이 다가왔다. 그의 눈동자가 튀어 나갈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라온이 몸을 일으켰다. 능력치가 오르고, 두 종류의 오러가 생성되자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럼 얻은 게냐?”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발칸의 입술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예. 덕분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전에 생성된 오러 덕분에 무얼 해도 힘이 넘쳤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가마가 무너졌네요.”

라온이 무너진 숯가마를 가리켰다. 저 단단한 숯가마가 저리 붕괴된 건 자신의 탓이었다.

“괜찮다.”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일 때 발칸이 어깨를 툭 치고서 가마로 다가갔다.

“문제가 없으면 그걸 되었다. 숯가마 따위야 다시 만들면 그만… 음?”

픽 웃으며 무너진 숯가마를 살피던 발칸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이건….”

그가 무너진 숯가마를 뒤적이다가 아궁이 근처에서 금빛으로 반짝이는 숯 세 개를 집게로 들어 올렸다.

‘뭐지?’

백탄, 흑탄은 봐왔지만, 저렇게 금색으로 빛나는 숯은 처음 보았다.

“아!”

생각났다. 처음 만났을 때 발칸은 백탄과 흑탄이 아닌 금탄을 만든다고 했었다. 저 황금빛을 보니, 저게 바로 금탄인 것 같다.

“기연은 네게만 있었던 게 아니었던 것 같군.”

“아.”

“이게 금탄이다. 백탄보다 강한 열기를 가졌고, 흑탄보다 지속력이 좋은 장인의 숯.”

발칸이 금색 열기를 뿜어내는 숯을 강철판 위에 내려놓았다.

“10년 넘게 이 숯을 만들고자 했는데, 이렇게 성공하다니. 인생이란 정말 모를 일이로군.”

그는 황홀한 얼굴로 금탄을 바라보았다.

“네 덕분이다. 고맙구나.”

“저는 딱히 한 일이 없습니다.”

“네가 연공을 할 때마다 가마의 불꽃이 요동을 쳤고, 네 호흡에 불길에 생명이 돋아났다. 난 평생 망치만 들어 온 무지렁이지만 네가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있어. 이건 네 덕분이다.”

딱히 한 게 없다고 말을 하려 할 때 발칸의 말이 이어졌다.

“네 목표는 무엇이지?”

“목표?”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왜 묻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진중한 눈빛을 보자 대답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목표라….’

연공을 하며 다짐했듯이 길의 끝에 있는 건 당연히 데루스에 대한 복수다.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실비아다. 그녀가 행복하게 지내기를 원했다.

그걸 위해선….

흉악할 정도의 강함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절대 쓰러지지 않는 강함이 필요했다.

불의 이미지를 잡을 때처럼 꺼지지 않는 불꽃과 같은 맥락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검사가 되고 싶습니다.”

“꺾이지 않는다? 애송이의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니군.”

발칸은 피식 웃었다. 비웃음이라기보다는 기꺼운 웃음 같았다.

“라온 지그하르트.”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발칸 나름의 인정인 것 같았다.

“네가 개인 검을 가지려면 몇 년이 남았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3년에서 5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지그하르트 무인이 보급용 검이 아니라, 자신의 검을 가지기 위해선 기초 수련을 끝내고, 검사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대략 3년에서 5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렇군.”

발칸은 그 정도라면 버틸만하겠어라고 중얼거렸다.

“꺾이지 않는 마음을 세웠을 때 날 찾아와라. 이 녀석들은 그날을 위해 아껴두고 있으마.”

발칸은 강철판 위의 금탄을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검을 만들어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은퇴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은퇴 번복은 꽤 흔한 일이지.”

그가 빙긋 미소 지었다. 처음 보았을 때 피로와 허탈함으로 가득했던 주름살에 생기가 차오르는 것 같았다.

“죽지 마라.”

발칸이 가볍게 손을 흔들고서 산을 내려갔다. 3개월간 얼굴을 마주한 것 치고는 너무 가벼운 인사였지만, 그답기도 했다.

“음.”

햇발을 등지는 발칸의 등은 처음 본 것보다 30년은 젊어 보였다.

‘어쨌든 잘 됐군.’

라온이 손을 펼치자, 뱀의 혓바닥처럼 새빨간 불꽃이 타올랐다. 만화공의 오러였다.

처음부터 2성에 오른 덕분에 제어할 필요도 없었다. 만화공의 불길은 완벽하게 자신의 의지를 따르고 있었다.

화아아.

주먹을 움켜쥐자 불길은 사라지고, 가는 열기만이 남았다.

‘이번에는…음?’

혹한의 냉기를 끌어 올리려고 할 때 우측 나무 위에서 아주 미세한 기척이 느껴졌다.

산새나 작은 산 동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작은 기척이지만, 라온은 그게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이제 나오시죠.”

라온이 나무 위롤 보며 손바닥을 탁탁 털었다. 시선을 고정하고 있자, 아무것도 없었던 나무 위에서 리메르가 원숭이처럼 떨어져 내렸다.

“에, 알고 있었어?”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에 알았습니다.”

“쯧, 역시 그랬나? 불을 보고 깜짝 놀라서.”

리메르가 짧게 혀를 찼다. 그의 녹색 눈동자엔 확연한 놀라움이 남아 있었다.

“계속 보고 계셨습니까?”

“아니, 오늘이 처음인데.”

그는 웃고 있었지만, 평소 같은 여유로움은 없었다. 거짓말을 들킨 아이의 표정이다.

‘하긴 당연한가.’

리메르는 수련생을 여기에 맡겨두고 내팽개칠 정도로 모진 사람이 아니었다. 지난 3달간 꾸준히 지켜보았던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라온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라니까. 참.”

리메르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눈을 돌렸다.

‘특이해.’

감사하다니까 오히려 좋아하지 않고, 민망해한다. 이 엘프도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좀 늦었지만, 오러가 생겼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딱히 늦었다고 생각은 안 하지만요.”

라온이 손가락 위로 붉은 불길을 펼쳐냈다. 그 모습을 본 리메르가 얼굴을 찡그렸다.

“오러를 만들자마자 사용하다니.”

그는 질린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평범한 거 아닙니까?”

“오러를 익히자마자 사용하는 놈은 처음 보는데?”

리메르는 보통 일주일에서 한 달은 지난 후에 오러를 능숙하게 사용한다고 중얼거렸다.

“이제 내려가라. 수련 시간에 늦기 전에 도착해야지.”

리메르는 라온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서 미소 지었다.

“교관님은 안 가십니까?”

“난 저거 정리하고 가려고.”

폭삭 내려앉은 숯가마를 가리켰다. 불길은 사라졌지만, 아직 열기는 남아 있었다.

“저도 돕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리메르는 고개를 젓고서 몸을 돌리려는 라온을 붙잡았다.

“난 교관이니까 지각해도 괜찮지만, 수련생이 지각하면 안 되지.”

“…….”

라온이 그게 뭔 개소립니까? 라는 표정이 되었지만, 리메르는 손부채질을 하며 무시했다.

“어쨌든 내가 다 처리하고 갈 테니까. 내려가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한 번 더 고개를 숙인 뒤 산을 내려갔다.

“후.”

리메르는 라온이 내려간 걸 확인한 뒤 숯가마를 보았다. 발칸이 처음부터 불이 번지지 않게 만들어서 저걸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이곳에 남은 이유는 저 가마 때문이 아니었다.

“이제 나오시죠.”

라온이 자신을 부를 때처럼 위를 올려다보며 그 남자를 불렀다.

허공이 소리 없이 출렁이더니, 흑색 장포를 두른 금발의 노인이 내려왔다. 글렌 지그하르트였다.

“구경은 잘하셨는지요?”

“…….”

글렌은 말없이 무너진 숯가마와 라온이 앉아 있던 자리를 살펴보았다.

“손주가 걱정되어서 매일매일 찾아오셨는데, 이제 마음이 좀 놓이시겠네요.”

“그런 적 없다.”

그는 고개를 젓고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우우웅!

글렌의 손짓에 따라 무너진 가마의 잔해가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쿠구구구!

잔해들이 장미 넝쿨처럼 동그랗게 꼬여 압축되더니, 그대로 지워져 버렸다.

바닥이 시꺼멓게 탄 자국만 아니라면 이곳에 가마가 있었다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 어마어마한 오러 운용 능력이었다.

“숯가마 내부의 열기를 먹어 치운 덕분인지 오러의 양과 순도가 장난이 아닙니다. 거기다 안착시킨 오러를 바로 운용했죠. 역시 대단한 재능입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글렌은 라온이 내려간 산의 오솔길을 내려보며 눈을 내리감았다.

“녀석은 자신에게 주어진 굴레마저 제 것으로 만들었다.”

*     *      *

지그하르트 남쪽엔 불빛이 꺼지지 않는 마을이 있다. 야장들의 도시. 대장장이들이 밤낮으로 망치를 두드리는 미르탄 마을이다.

마을의 가장 안쪽엔 공처럼 둥그런 형태의 공방이 있다. 10년 넘게 불이 들어오지 않았던 그 대장간에 불이 들어왔다.

“뭐야! 전 촌장의 공방에 불이 들어왔어!”

“촌장이. 아니 전 촌장이 돌아왔다!”

“돌아왔다니? 은퇴했잖아!”

“그 영감 고향으로 돌아간 거 아니었어?”

일하던 대장장이, 잠을 자던 대장장이, 출장을 가려던 대장장이까지. 모두가 전 촌장의 공방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물었다. 왜 돌아왔는지를.

“약속을 했다.”

미르탄 마을의 전 촌장이자, 대장장이의 전설이 된 발칸이 대장간의 먼지를 털어냈다.

“그날이 올 때까지 몸을 만들어 둬야 해.”

그는 망치를 들고, 불을 지피며 시원하게 웃었다.

“진천검을 뛰어넘을 검을 만들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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