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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7화 (27/653)

27화

“후욱!”

버렌 지그하르트는 벽력권의 형을 차례로 펼쳐낸 뒤 거친 숨을 뱉어냈다.

‘쉽지 않네.’

2단계인 진승권은 본관에 있을 때 배워놓아서 어렵지 않게 통과했지만, 3단계 벽력권의 습득은 쉽지 않았다.

기본 권법안에 고급 묘리가 어우러져 있어서 익히기 난해한 권법이었다.

‘그래도 다음 주 정도면 끝낼 수 있겠어.’

본관에 있을 때 권법 기초를 확실히 익혀둔 덕분에 점점 자세가 잡혀갔다. 벽력권을 익힌 지도 2주가 넘었기 때문에 다음 주 안에 통과할 수 있을 거다.

‘그럼 다시.’

버렌은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다시 벽력권의 수련을 시작했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수련복이 젖어서 몸에 달라붙을 때까지 권법을 반복하던 그가 자세를 바로 했다.

후웅!

천천히 숨을 돌리고 있을 때 우측에서 거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긴 흑발의 미소녀가 세차게 수련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마르타 지그하르트.’

마르타는 한참 전에 권법을 끝내고 가장 먼저 검술에 진입했다.

완벽한 자세와 정립된 형태.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수준의 검술이다. 성격은 지랄맞지만, 실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마르타의 진도는 수련장 누구보다 빠르고, 실력 역시 가장 뛰어나다. 교관 모두가 깜짝 놀랐을 정도.

하지만 그런 그녀의 표정에는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뒤에서 굶주린 맹수가 쫓아오는 것처럼 짜증과 긴장이 가득 찬 표정으로 검술을 펼쳐냈다.

‘하긴 저럴 수밖에 없지.’

버렌이 미간을 찌푸리며 반대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그가 있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하루 만에 칠형권의 형태를 잡고, 진승권의 습득을 10일 만에 끝낸 괴물이 뒤에 있으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을 거다.

어이가 없지만, 지금 라온은 자신과 똑같이 벽력권을 수련하고 있었다.

후웅!

라온이 내지르는 주먹에 공기가 휘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고, 땅을 구르는 발에 연무장의 바닥이 들썩인다.

그의 손짓과 발짓엔 벽력권의 묘리가 확실하게 스며들어 있었다.

‘괴물 같은 놈.’

주변에서 천재이니, 괴물이니 소리를 듣고 자라왔지만, 그걸 남에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건지 모르겠어.’

수련생이 되기 전 진승권을 한 달 동안 익혔는데도, 3일의 추가 수련을 끝내고 나서야 벽력권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때도 빠르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한 달 동안 익혀도 대단하다는 말이 나왔는데, 라온은 고작 10일 만에 그 경지를 따라 잡아버렸다. 그것도 단순히 형만 익힌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묘리까지 권법에 담아냈다.

‘저대로라면.’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검술로 넘어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

버렌이 가는 한숨을 뱉었다. 사실 라온을 살피며 놀란 건 그의 재능만이 아니다.

‘노력과 정신력.’

라온은 훈련 시간에 단 한 번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입에선 차디찬 냉기가 흘러나오면서 전신은 땀에 젖는다.

제삼자가 보아도 정상을 벗어난 몸 상태건만 녀석은 그 어떤 훈련도 포기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나, 끝까지 하겠다는 말을 쉽게 하지만 그걸 실제로 이루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놈은 하지.’

라온은 매번 가진 모든 걸 소모해가며 훈련에 최선을 다한다.

리메르가 말했던 자신의 한계를 넘어 실력이 가장 빨리 느는 방법을 그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볼 때마다 놀라게 만들어.’

라온을 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감탄이 나온다. 녀석은 이 수련장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지그하르트의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버렌. 손이 멈췄다. 쉬려면 휴식장에 가라!”

“아닙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교관의 외침에 버렌이 고개를 숙였다. 한숨을 뱉으며 머리에 가득 찬 상념을 흘려보냈다.

‘그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라온에게는 절대 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녀석의 정신력을 본받아서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파앙!

버렌은 정신을 집중하며 꽉 말아쥔 주먹을 내뻗었다.

*     *      *

후웅!

눈앞에 적이 있는 것처럼 광기를 담아 검을 내리치던 마르타의 손이 멈췄다. 그녀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검을 꾹 말아 쥐었다.

‘짜증 나.’

이 연무장에서 유일하게 검을 잡고 있음에도 참기 힘든 짜증이 밀려왔다.

‘이건 모두….’

마르타가 입술을 깨물며 눈길을 돌렸다. 허연 입김을 뱉으며 주먹을 날리는 놈이 보였다.

라온 지그하르트. 놈을 보자,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벌써 벽력권에 들어갔다니.’

자신이 검에 진입하는 동안 라온은 두 가지의 권법을 모두 습득하고, 벽력권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버렌이나, 루난처럼 권법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모를까. 처음 익혀서 저런 발전 속도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망할….’

뒤에서 쫓아오는 전율적인 재능. 언제 선두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공포에 숨이 막혔다.

‘저 자리는 내 거였는데.’

지그하르트에 입양된 이후 추격자는 항상 자신이었다.

천재라고 우쭐대고 잘난 척하는 직계와 방계들을 추월하여 놈들이 절망하는 모습을 비웃어왔다.

‘하지만….’

이번에 그 역할이 반대가 되자, 쫓긴다는 두려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깨달았다.

후웅!

마르타는 점점 더 거대해지는 라온의 존재감을 지우기 위해서 검을 내리쳤다.

짜증이 가득 담긴 수련검의 칼날이 허공을 찢어발겼다.

그녀는 중천에 뜬 태양이 서산에 걸릴 때까지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후욱….”

마르타가 긴 숨을 뱉으며 검을 내렸다. 종일 검을 휘두르고 나니, 답답했던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우측을 보자마자 다시 인상을 쓰게 된다. 라온의 권법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하고 있었으니까.

‘저 망할 놈은 지치지도 않나?’

극한의 집중력을 유지한 채로 하루종일 수련하다니, 악바리도 저런 악바리가 없었다. 뒷골목에서 살 때 본 적 없는 종류의 인간이다.

“쯧.”

마르타는 해가 떨어진 걸 확인한 후 몸을 돌려 연무장을 나섰다.

“수고하셨습니다.”

“응.”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집사 카멜이 고개를 숙여왔다. 대답할 힘이 없어서 고개만 끄덕였다.

“아가씨.”

카밀이 걸음을 빠르게 맞추며 마르타를 불렀다.

“그리 조급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최근 놀라운 모습들을 보여주어서 모두 잊고 있지만, 라온 도련님은 큰 약점을 가지고 계십니다.”

카멜은 기합 소리가 들려오는 연무장을 힐끔 보고서 빙긋 웃었다.

“병 말하는 거야? 그놈은 독종이라 통증 따윈 신경 쓰지 않아.”

“그게 아닙니다.”

“그럼 뭔데”

“라온 도련님은 오러에 대한 재능이 최하 수준입니다.”

“뭐?”

“아가씨께서 입양되기 전이니 모르시겠지만, 판별식에서 라온 도련님의 마나 감응력은 최저 수준으로 나왔습니다.”

카멜은 단전을 가리키며 빙긋 웃었다.

“현재 5 연무장에서 오러를 익히지 못하신 분은 라온 도련님 한 명 아닙니까?”

“맞아.”

마르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달 전에 리덴 연공법을 배운 수련생들은 모두 단전에 오러를 안착시켰다.

카멜의 말대로 수련생 중에서 오러를 익히지 못한 사람은 라온뿐이다.

“동패로 얻을 수 있는 연공법이라고 해봐야 중급에서 중상급. 린덴보다 조금 뛰어난 연공법이죠. 그런데도 아직 연공법을 습득하지 못한 걸 보면 그분의 마나 재능은 판별식에서 나온 대로 최저 수준일 겁니다.”

“아!”

“아무리 검술과 권법에 재능이 있어도 오러에 대한 재능이 미약하다면 제대로 된 무인이 될 수 없습니다.”

카멜은 인자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랬군.”

마르타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턱을 끄덕였다.

‘오러에 대한 재능이 없는 거였어.’

라온이 가진 무학적 재능이 너무도 뛰어나서 잊고 있었지만, 놈은 지금까지도 오러를 익히지 못하고 있었다.

오러 재능이 약한 무인은 반쪽짜리라는 말이 있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무학에만 재능을 몰아받은 반쪽짜리 무인이었다.

“후후.”

웃음이 절로 나왔다. 지난 시간 동안 잠까지 설쳤던 불안감이 단숨에 사라졌다.

“괜한 걱정이었네. 신경 쓸 필요 없는 놈에게 관심을 줬어.”

마르타는 쇳덩이를 뺀 것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직계 수련장으로 향했고, 카멜은 그 뒤를 따르며 의미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     *      *

라온은 잠시도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벽력권의 묘리와 흐름을 몸과 정신에 때려 박았다.

등 뒤에서 식은땀을 흘러내리고, 입에선 눈처럼 하얀 김을 뿜어졌다. 누가 봐도 지친 기색. 하지만 그의 얼굴은 태양을 마주한 듯 밝았다.

“후.”

라온이 마른 입술을 축이며 옅게 웃었다.

‘점점 즐거워지는군.’

교관이 보여준 움직임은 1mm의 오차도 없이 머리에 새겨지고, 그 흐름과 형태가 육체를 통해 재현된다.

무학을 익히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인지 전혀 몰랐다.

‘당연한 건가.’

전생에선 무학이 아니라, 생존법과 살인법만을 배웠다. 성장하는 건 오직 사람을 죽이는 방법뿐이었다.

오러를 늘리고, 살인검을 수련하는 건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의 숨통을 끊기 위한 것이었다.

내 한 몸이 으스러지고, 찌그러져도 적을 죽일 방법만을 몸과 정신에 새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칠형권도, 진승권도, 벽력권도 기초적인 권법이지만, 그걸 배우고 익히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를 위한 발전이니까.’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 누군가의 명령을 들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수련을 하게 되니, 힘들어도 웃음만 나왔다.

‘고통도 견딜 만해.’

통증만 따지자면 마나 회로의 냉기 때문에 지금이 전생보다 더 고통스럽다. 하지만 성장한다는 고양감에 몸을 멈출 수 없었다.

불의 고리가 맹렬하게 회전하며 무학의 흐름을 파악하고, 육체를 강화한다.

권법만이 아니라, 육체와 정신까지 성장하는 게 느껴지니, 훈련이 즐겁기만 했다.

-그런 기초적인 몸부림을 익혀서 어디다 쓰려는 것이냐. 본왕에게 몸만 넘긴다면 당장 대륙의 정점에 서게 해주마.

‘거기에 내 의지가 없다면 아무 소용도 없어.’

아무 의미도 없이 남의 명령을 따르는 건 전생의 삶으로 충분하다. 몸을 넘겨서 얻게 된 최강 따위는 필요 없다.

-멍청하군. 너처럼 허약한 놈은 평생을 노력해도 그 위치에….

‘흐흠.’

기분이 상쾌하니, 라스의 개소리에도 웃음이 나왔다.

파앙!

라온은 라스의 말을 리듬 삼아 벽력권의 자세를 순서대로 펼쳤다. 수련을 통해서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조금이나마 배워나가는 것 같았다.

후우웅! 후웅!

전력을 다해 주먹을 내지르고, 잠시 호흡을 조절할 때 수련생 중 하나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저, 저기 수석님. 하나만 여쭈어봐도 괜찮겠습니까?”

“뭐지?”

“그 진승권의 마지막 자세가 잘 안 되는데….”

“우측 발을 조금 더 벌려. 다리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라온은 수련생의 자세를 보자마자, 문제를 파악했다.

“아! 감사합니다!”

수련생은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섰다. 단번에 이해했는지 지적한 부분을 고쳐 제대로 된 자세를 잡았다.

“와, 한 번에 고쳐졌어!”

“권법의 천재라니까!”

“교관보다 더 잘 보는 거 같아.”

수련생들은 서로의 자세를 확인한 뒤 라온에게 감탄의 시선을 보냈다.

라온은 수련생들이 놀라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해가 질 때까지 권법 수련을 한 뒤 숙소로 돌아갔다.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끝내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 오러 연공을 준비했다.

날이 갈수록 성취가 폭발하는 권법과 달리 만화공의 습득은 지지부진했지만, 라온의 표정은 덤덤했다.

‘처음부터 오래 걸릴 줄 알았으니까.’

머릿속에 든 만화공의 내용을 모두 훑어보고 깨달았다.

만화공은 불의 고리처럼 전설급의 연공법이다.

제대로 익힌다면 적수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막강한 오러를 사용할 수 있으니, 습득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건 당연했다.

‘거기다 냉기도 함께 흡수하고 있으니까.’

라온은 만화공의 열기만이 아니라, 마나 회로 내부의 냉기도 함께 운용하고 있다.

상반되는 두 기운을 동시에 순환시키는데, 그 기운이 쉽게 단전에 안착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걱정할 필요 없어.’

당장의 성취가 느린 건 맞다.

하지만 만화공을 습득하고, 냉기를 모두 흡수했을 때의 보상이 어마어마할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불안한 마음은 전혀 없었다.

‘첫 번째 꽃을 피워낼 때가 기대되네.’

라온은 만화공의 화염에서 피어날 꽃 한 송이를 그리며 눈을 감고, 연공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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