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23화 (23/653)

23화

꿀꺽.

주디엘이 마른침을 삼켰다.

‘어, 어째서 저 아이가 여기에….’

침대에 누워 자고 있어야 할 라온 지그하르트가 왜 자신의 뒤에. 그것도 칼을 겨눈 채로 나타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으으….’

상황을 파악하고 싶었지만, 호수에 비치는 붉은 눈동자를 본 순간 생각은커녕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아이가 아니라, 수백, 수천의 생명을 베어낸 살인마와 눈을 마주친 기분이다. 심장이 꾹 우그러들었다.

“별관에 돌아온 첫날부터 감시의 눈길이 느껴지더군.”

“흡….”

첫날이라면 자신의 시선을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어렸을 때부터 첩자 교육을 받아와서 기척을 죽이고, 존재감을 감추는 것만큼은 그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정체가 발각되고, 뒤를 잡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입을 벌려라.”

“아아….”

라온 지그하르트의 말은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주디엘은 어깨를 덜덜 떨며 입을 벌렸다.

“끄어억….”

벌어진 입을 통해 라온 지그하르트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그 손가락에 걸려 있던 무언가가 목구멍을 타고 식도로 넘어갔다.

“캬학!”

송곳으로 식도와 위를 뚫어버리는 듯한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으흑….”

불을 삼킨 것처럼 뱃속의 열기가 식질 않았다. 복부를 쥐어 뜯어버리고 싶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차박.

라온 지그하르트는 배를 잡고 버둥거리는 자신을 놔두고, 호수로 들어가서 감색 종이를 가지고 왔다.

스르륵.

종이를 펴는 그의 눈동자는 어둠을 담은 듯 무겁게 가라앉았다.

“평범한 종이가 아니로군.”

“크흡….”

주디엘은 입을 꽉 다물었다. 통증이 지독했지만, 첩자로서 자존심이 있다. 이대로 굴복할 수는 없었다.

“…….”

라온 지그하르트는 자신의 눈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 흙, 불, 바람.”

그는 갑자기 원소를 말하기 시작했다. 종이의 내용을 살필 방법을 찾는 것 같았다. 다만 그걸 왜 입으로 내뱉는지는 모르겠다.

“…햇빛, 달빛.”

“….”

답은 달빛이었지만, 주디엘은 반응하지 않았다. 혀를 씹으며 뱃속을 으깨는 듯한 고통을 견뎠다.

“달빛이었군.”

“어…?”

순간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자신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정답을 말했다.

‘뭐, 뭐야! 어떻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고통을 참고만 있었을 뿐이다. 종이의 비밀을 어떻게 알아차렸단 말인가.

그는 몸을 돌려서 종이에 한참 동안 달빛을 쏘아낸 뒤 그 내용을 확인했다.

“여러모로 조사 한번 잘했군. 이건 어디로 가는 거지?”

“으….”

라온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이젠 고통보다도 무서움이 더했다. 목덜미를 조여오는 듯한 공포감에 허리가 아려왔다.

“아리스 지그하르트.”

그는 재촉하지 않았다. 글렌 지그하르트의 첫째 딸 이름을 불렀다.

“카룬 지그하르트, 데니어…. 카룬 지그하르트였군.”

“허억!”

주디엘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비명을 터트렸다.

“다, 당신 뭐야!”

미지에서 오는 두려움에 턱이 덜덜 떨렸다.

‘이, 이 아이는 대체!’

표정 관리와 인내력은 첩자가 될 때 가장 먼저 배우는 요소다.

저런 어린아이가 훈련받은 자신의 눈빛을 보고 정보를 빼가다니,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

라온 지그하르트는 여전히 말없이 자신을 굽어본다. 서슬 퍼런 눈빛을 피해 고개를 숙이다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표정으로 읽는 게 아니라면?’

그의 눈은 표정을 살피지 않았다. 그저 고통받는 자신을 지그시 보고 있을 뿐이었다.

‘설마….’

배를 찢을 듯한 고통 그리고 생각을 읽는 듯한 라온의 모습에 머릿속으로 저주 하나가 스치고 갔다.

“내, 내게 레이지 웜을 먹인 겁니까?”

“레이지 웜을 알고 있었나?”

라온 지그하르트의 표정이 처음으로 변했다. 너 따위가 그걸 알고 있냐는 눈빛이었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끄어어억!”

구역질이 나왔다.

‘레, 레이지 웜이라니!’

레이지 웜은 최악이라 불리는 저주 중 하나다. 술자가 먹인 벌레가 몸에 들어가면 위치만이 아니라, 무슨 감정을 가졌는지도 파악된다.

가장 지독한 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술자가 원할 때 지독한 고통을 주면서 죽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밖에 없어. 레이지 웜이야!’

이 지독한 고통, 생각을 읽는 듯한 라온 지그하르트의 모습으로 볼 때 입에 들어간 건 레이지 웜이 분명했다.

“어, 어떻게 당신이 레이지 웜을….”

이제 13살이 된 아이. 그것도 평생 병을 앓아온 아이가 레이지 웜을 사용했다는 게 의심 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 없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라온 지그하르트가 종이를 흔들며 자신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으….”

그 말이 맞다. 레이지 웜이 몸에 들어간 이상 반항도, 도주도 생각할 수 없으니까.

“카룬 지그하르트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는 건 중무전의 첩자라는 뜻이겠지. 계획은 7달 전 판별식 때부터였을 테고.”

“……!”

주디엘이 눈을 부릅떴다. 그것도 맞다.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경위는 7달 전 판별식에서부터였다. 다시 한번 레이지 웜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아주 자세히 조사했군. 나야 그렇다 치고 어머니와 헬렌, 다른 시녀들까지.”

라온 지그하르트는 달빛에 반짝이는 글씨들을 보며 빙긋 웃었다. 그 웃음에 어린 살기에 등골이 축축하게 젖어갔다.

‘거, 건드려선 안 될 인간을 건드렸어.’

쉬운 임무라고 생각했다.

별관엔 무인도 없고, 사람들은 선하다. 어린 라온과 폐인이 된 실비아의 정보를 모아오는 임무이니, 누워서 떡 먹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별관엔 괴물이, 그것도 지독한 살의를 가진 괴물이 살고 있었다. 그의 붉은 눈을 마주치고 있으면 당장 목을 매달고 싶었다.

“끄으윽….”

팔의 살을 쥐어뜯었다.

라온에게서 전해지는 창백한 살기에 얼굴 피부가 찢어지는 것 같았고, 레이지 웜이 있는 장기는 터질 지경이었다.

“내, 내용을 바꾸겠습니다. 사실이 아닌….”

“그럴 필요 없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종이를 아래로 내려 달빛에 비치는 글자를 지웠다. 다시 종이를 접은 뒤 호수 위에 띄워놓았다.

“어, 어째서….”

“지금 정보를 수정해도 내 정보는 결국 카룬에게 전해진다. 그리되면 네가 무능하다는 것만 알리는 꼴이 되겠지.”

“흡!”

그가 무릎으로 앉으며 자신과 눈을 마주쳤다. 피처럼 뻘건 붉은 눈. 손발이 바르르 떨렸다.

“보고 주기는?”

“저, 정기보고는 2주일입니다.”

“오늘 내가 버렌을 꺾었으니, 정기보고가 더 빨라질 거다. 아마 1주일로 바뀌겠지.”

“아, 예….”

주디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라온과 같은 생각을 했었다.

“지금부터 넌 이중 첩자다. 바로 들킬 정보는 내어주고, 들키지 않을 중요한 정보는 숨겨라. 반대로 그쪽의 중요 정보는 내게 가져와.”

“아, 알겠습니다.”

지금의 공포를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돌아왔을 땐 쓸만한 정보가 있길 기대하지.”

그는 그 말을 마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으윽….”

하지만 아직도 그의 붉은 눈이 자신의 심장을 노려보고 있는 듯했다.

털썩.

주디엘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참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고, 고통이….”

어느새 고통도 사라졌다. 라온 지그하르트가 레이지 웜을 제어한 것 같았다.

‘괴물….’

반항할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죽음보다 공포스러운 존재가 별관의 어둠에 몸을 감추고 있었으니까.

“으으!”

주디엘은 입술을 깨물고서 숙소로 달려갔다. 라온이 남긴 공포는 목덜미에 돋아난 닭살처럼 그녀의 심장에 깊게 박혔다.

*     *      *

-언제 레이지 웜을 소환한 거냐.

“그건 레이지 웜이 아니야.”

방으로 돌아온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뭐?

“일시적으로 극한의 통증을 일으키는 독을 먹였을 뿐이다.”

전생에 레이지 웜에 당하긴 했지만, 기억도 없을 때라 소환 방법 따윈 모른다. 주디엘에게 먹인 건 고문에 사용하는 독일 뿐이었다.

“레이지 웜 따위는 있어도 안 써.”

그런 지독한 저주를 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눈앞에 그 벌레가 있었다면 발로 으깨버렸을 거다.

-그럼 그 독은 어디서 났지?

“만들었다.”

-아까 주방이랑 창고에 갔던 게 그럼….

“맞아.”

독의 조합법 정도는 외우고 있기에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들로 변형된 독을 만들었다.

-잠깐. 넌 그놈의 생각을 모두 읽지 않았느냐.

“그랬지.”

-레이지 웜도 없이 그걸 어떻게 알았다는 거냐.

“몇 가지는 예측, 몇 가지는 그녀의 상태를 보고.”

-상태를 보았다? 놈은 계속 같은 표정이었는데?

라스의 푸른 불꽃이 요동쳤다. 상태를 보고 정보를 알았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다.

“난 알 수 있어.”

전생에서 20년 넘게 암살자로 살아왔다. 고문을 해본 적도 있었기 때문에 주디엘의 생각을 읽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13살짜리가 인간에게 공포를 심는 방법을 알다니, 본왕이 마계에 있을 때도 본 적 없는 일이다.

맞는 말이다.

전생에서 암살자로 살아온 시간이 없었다면 주디엘이 정보를 모으는 걸 알지도 못했고, 이런 방법을 쓸 수도 없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전생의 삶이 나름 도움이 되고 있었다.

“어쨌든 카룬 지그하르트였단 말이지.”

라온이 침대에 앉으며 카룬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가 왜 주디엘을 넣었는지, 대충 예상은 간다. 판별식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에 이쪽의 정보를 파악하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그는 선택을 잘못했다.

자신만을 관찰했다면 모를까 별관에 있는 실비아와 헬렌을 비롯한 시녀들까지 관찰범위에 끼워 넣다니,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

-그런데 왜 정보를 바꾸지 않았지?

라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왔다.

-그 여자가 적은 종이엔 네가 냉기를 많이 이겨냈다는 정보와 뛰어난 오러 연공법을 구해왔다는 정보가 담겨 있었다. 그걸 지워야 하지 않나?

“그건 어차피 피라미 정보야. 뒤통수를 치려면 그 정도는 넘겨줘야지.”

그는 손가락으로 침대보를 쓱 훑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가 내 진짜 정보를 중무전에 보내다 보면 정보에 대한 신뢰가 쌓일 거야. 그렇게 쓸모없는 정보를 보내주다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거짓 정보를 보내면 카룬 지그하르트를 잡아먹을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거야.”

-허….

라스가 헛바람을 흘렸다. 그 짧은 순간에 그런 생각을 했다니, 역시나 이놈은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네놈은 역시 13살이 아니다. 뱃속에 백 년 묵은 능구렁이가 가득 차 있어.

“고작 능구렁이?”

라온은 라스를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능구렁이가 아니라, 암살자지.’

그것도 최고의 암살자.

*     *      *

루난 슬리온은 본가로 돌아왔어도 단련을 쉬지 않았다.

시험 날 라온 지그하르트가 보여준 움직임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안 돼.”

집에 있는 기구로 단련을 하자, 연무장에 있을 때와 다르게 들 수 있는 무게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기구만이 아니다. 오래달리기나, 다른 체력 단련도 평소보다 잘 되질 않았다.

“음….”

골똘히 생각해보았지만, 답은 하나다.

“라온 지그하르트.”

라온이 없다. 항상 옆에 붙어 다니던 그가 없기에 평소처럼 힘을 내기 힘들었다.

최근엔 라온에게서 풍기는 시원한 향기가 더 좋아져서 자신도 모르게 냄새를 맡는데, 그 탓도 있는 것 같았다.

‘필요해.’

루난 슬리온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단련장을 나왔다.

“루난?”

슬리온 가의 가주 로칸 슬리온은 가문의 연무장을 떠나는 루난을 보고 눈매를 좁혔다.

“아빠랑 같이 수련하기로 했잖아. 어딜 가는 거니?”

“라온한테.”

“라온? 서, 설마 라온 지그하르트?”

“응.”

“그, 그 녀석에게 왜 간다는 거니? 그것도 아빠랑 같이 훈련하기로 한 지금?”

로칸 슬리온은 평소의 침착함을 잃어버리고, 말을 더듬었다. 간신히 시간을 내서 막내딸과 놀려고 했는데 갑자기 라온에게 간다고 하니,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냄새도 있고, 수련도 있어.”

“어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갈게.”

루난은 의복에 묻은 먼지를 툭툭 치고서 단련장을 나갔다.

“자, 잠깐만! 수련은 여기서 아빠랑 하면 되잖아!”

“가서 해야 해”

루난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계속 간다고만 하다니, 서, 설마 라온이 네게 무슨 짓이라도 한 게냐?”

“무슨 짓?”

그녀는 멍하니 고개를 내려 라온과 함께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도와줬지.’

라온이 직접 도움을 주진 않았지만, 그의 옆에 있기만 해도 훈련이 잘되었으니, 도움받은 게 맞았다.

“응. 했어.”

“끄으윽! 라온. 네 이놈!”

로칸이 바드득 이를 갈았다.

‘감히 내 딸을 협박해?’

루난의 짧은 대답에 로칸의 상상력이 하나의 그림을 그렸다. 라온에게 협박을 당해서 덜덜 떠는 딸의 불쌍한 모습이 그의 뇌리를 잠식했다.

“아이고! 가주님! 여기 계시면 어떻게 합니까! 오늘 업무는 절대 미뤄서는 안 되는….”

“당장 내 검을 가져오라!”

로칸은 자신을 찾으러 온 집사에게 호통을 쳤다.

“엑? 거, 검이요?”

“루난. 나도 가마! 그놈을 그냥 둘 수는 없겠어!”

로칸이 눈을 부라렸다. 당장에 지그하르트의 별관을 박살 낼 기세였다.

“어? 어?”

집사가 입을 쩍 벌렸다. 저 딸 바보가 오늘은 또 무슨 사고를 치려는 건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뭐 하는 게냐! 내 검을 가져오라 하지 않았느냐!”

“자, 잠시만요! 가주님! 저랑 이야기 좀….”

“이야기는 필요 없다! 검과 징벌만이 있을 뿐!”

“어후….”

집사는 루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생각을 알 수 없는 맹한 눈으로 로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저 말수 없는 아가씨로는 이 일을 해결할 수 없었다.

‘이걸 해결할 사람은 그분밖에 없어.’

그는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서 저택으로 들어가 검 대신 마님을 찾아갔다.

*     *      *

“그러니까 라온 도련님이 네 수련에 도움을 줬다는 거지? 협박이 아니라.”

“응.”

어머니인 클라라의 말에 루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보.”

클라라의 보랏빛 눈동자가 서늘한 빛을 발하며 좌측으로 돌아갔다.

“아, 아니, 난 당연히 혀, 협박이라도 당한 줄 알았지. 그냥 간다고만 하니까. 이건 누구라도 오해를 했을 거야. 암! 그렇고말고!”

금방이라도 지그하르트로 돌격할 것 같았던 로칸은 어깨를 반으로 접은 채 구석에 쭈그려 있었다.

“시끄럽고. 가서 일이나 해요.”

“아니, 오늘은 우리 루난이랑 놀기로….”

“쓰읍.”

“아, 알겠어.”

“이따가 가서 확인할 테니까. 일 처리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면 각오하세요.”

“으, 응. 걱정하지 마.”

로칸은 그 큰 덩치를 축 늘어뜨리고 저택으로 돌아갔다.

“루난.”

“응?”

“라온 도련님께 고맙다고는 했니?”

“과자 받았을 때 했어.”

“수련을 도와줬을 때는?”

“안 했어.”

“후후.”

클라라는 고개를 젓는 루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럼 다음에 만났을 땐 고맙다고 하렴.”

“근데 아빠가.”

“음?”

“아빠가 남자한테는 먼저 말을 걸지 말라고 했어.”

“아하!”

클라라가 빙긋 웃었다. 집사는 그 웃음을 보며 오늘 로칸이 밤새 잔소리를 들을 거라는 걸 확신했다.

“아빠 말은 잊으렴. 남자도, 여자도 상관없어. 도움을 받았으면 고맙다고 인사하는 게 당연한 예의란다. 알겠니?”

“응.”

“그럼 오늘은 아빠 말고, 엄마랑 수련할까?”

“응.”

루난은 클라라와 함께 연무장으로 들어가며 라온의 덤덤한 얼굴을 생각했다.

‘고맙다고 해야지.’

그에게 먼저 말을 걸 생각을 하자, 아주 조금 가슴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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