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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7화 (17/653)

17화

라온은 세면을 마치고, 물기에 젖은 눈으로 햇살이 내려서는 창가를 바라보았다.

“오늘인가.”

6개월이 지나 5연무장의 수련생을 선발하는 날의 아침이 밝았다.

원래라면 연무장에서 먼지를 마시며 달리고 있을 시간이지만, 시험 당일인 덕분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수건으로 젖은 얼굴을 닦고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 라스가 말을 걸어왔다.

“왜?”

-본왕과의 내기를 기억하고 있느냐.

“물론.”

라온이 훈련복을 입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호구가 되어주겠다는데 그걸 잊을 리가 있겠는가.

-네 성장이 인간치고 빠름은 인정하지만, 그 둘을 따라잡지는 못했지. 본왕의 감정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었느냐.

라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3달 동안 뛰었음에도 루난과 버렌을 추월하진 못했으니까.

하지만 시험은 다르다. 그들과 대련을 하든, 지금까지 단련한 체력을 보여주든 상관없다.

자신에겐 전생의 경험과 불의 고리가 있다면 시험이 무엇이든 이길 자신이 있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지.”

-그렇게 허세를 부려도 소용없다. 본왕이 네놈의 영육을 차지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도다.

‘그니까 그렇게 되면 말하라고.’

-그 자신감이 언제 꺼질지 기대하고 있으마.

‘그럴 일은 없어.’

라온은 손을 휘휘 저었다.

‘적과의 동거도 쉽진 않네.’

요즘엔 라스가 훈련 중에 분노를 일으키는 것보다, 말이 많은 게 더 귀찮았다.

마계의 군주라는 놈이 왜 저렇게 말이 많은 건지 모르겠다.

‘물론 장점도 있지만.’

라스의 방해를 이겨낸 덕분에 꽤 많은 능력치를 얻었다. 고통이 좀 있긴 하지만,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나 다를 바가 없었다.

<상태창>

이름 : 라온 지그하르트.

칭호 : 없음.

상태 : 혹한의 저주(여덟 가닥), 저질 체력, 운동능력 저하, 마나 감응력 저하.

특성 : 분노, 불의 고리(3성), 수속성 저항력(3성)

근력 : 25

민첩성 : 24

체력 : 23

기력 : 15

감각 : 44

상태창의 수치만 오른 게 아니다. 실제 육체 능력도 크게 성장해서 예전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움직임이 가능해졌다.

-끄음, 본왕의 상태창….

신음을 흘리는 라스와 달리, 라온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서 로비로 나갔다.

-곧 죽을 얼굴들이로군.

‘그러게.’

라스의 말대로 로비에 있는 아이들은 전장에 끌려가는 병사들처럼 걱정 가득한 얼굴이었다.

‘오늘 시험 때문이겠지.’

리메르는 어떤 시험을 낼지, 시험의 난이도가 어떻게 될지, 얼마나 통과할지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최선을 다하면 통과할 수 있다고만 했으니, 아이들이 저렇게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자신도 환생자가 아니었거나, 불의 고리가 없었다면 저들과 같은 표정으로 침울하게 앉아 있었을 거다.

-전장에 서기 전부터 패배한 닭의 얼굴을 하다니, 한심하도다.

‘쟤들은 어리잖아.’

라온은 음울한 분위기의 아이들을 둘러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네놈도 어리지 않느냐.

‘나는 달라.’

-흥. 인간들은 항상 본인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법이지.

‘…….’

라스의 도발에 답하지 않았다. 환생자라는 비밀을 말해줄 필요는 없으니까.

스르륵.

숙소 옆에 붙어 있는 5 연무장으로 걸어갈 때 뒤에서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질리지도 않고 오는군.

“흠….”

라온이 눈을 가늘게 뜨며 뒤를 돌았다. 은발이 어깨 위로 흘러내리는 보랏빛 눈동자의 여자아이가 따라오고 있었다.

“루난.”

루난 슬리온이었다. 그녀는 자율 훈련에 따라붙는 것으로 모자라 이젠 숙소에서도 쫓아오고 있었다.

“할 말 있어?”

“없어.”

루난이 맹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뒷짐을 진 채로 어색하게 눈동자를 돌렸다.

“후.”

라온은 한숨을 내쉬고 몸을 완전히 돌렸다. 루난은 여전했다. 말없이 따라붙은 뒤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훈련을 똑같이 따라 했다.

‘왜 날 따라다니는지 원.’

실제로 보여주는 능력은 자신보다 버렌이 더 위다. 화려한 검술, 뛰어난 육체 능력에 나름 리더십도 있다.

하지만 루난은 그에겐 조금도 관심이 없었고 자신만 쫓아다녔다. 먹이를 주고 난 뒤 따라붙는 골목의 고양이를 보는 느낌이다.

‘근데 난 먹이도 주지 않았잖아.’

과자를 주긴 했지만, 그 주인은 도리안이다. 해준 건 아무것도 없는데 왜 어미를 쫓는 새끼 오리처럼 따라오는 건지 모르겠다.

‘특이한 녀석이야.’

라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 앞에 도착했을 때 녹색 머리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도, 도련님….”

루난 다음으로 자신의 옆에 붙은 도리안이었다. 그는 오한이 든 것처럼 손발을 바들바들 떨었다.

“넌 또 왜 그래. 어디 아파?”

“그, 그게 아닙니다. 오늘이 시험이지 않습니까. 걱정돼서 진짜 한숨도 못 잤습니다. 으으.”

도리안의 눈 밑은 숯덩이를 바른 것처럼 새까맣게 물들었다. 피곤이라는 단어 자체가 눈 아래에 박혀 있었다.

“너 정도면 충분할 텐데?”

라온이 도리안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는 항상 덜덜 떨면서 겁을 먹지만, 재능과 끈기는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제 능력을 발휘하면 떨어질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시험이 뭔지도 모르겠고, 전 무지하게 약해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우엑!”

도리안은 손톱을 씹으며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헛구역질까지 한다. 엄살이 아니라, 정말 겁을 먹은 얼굴이었다.

-버리지 중에 상 버러지다. 당장 저놈의 대가리를 부수거라.

‘언제는 마음에 든다며.’

-본왕에게 겁쟁이는 필요 없도다.

“괜찮을 거다.”

라온은 격려가 아니라, 사실을 말하고서 도리안을 지나갔다. 그는 소심한 성격과 달리 토하면서도 훈련을 완수해왔다. 무슨 시험이든 헤쳐나갈 수 있을 거다.

“리, 리메르 님은 한 말을 지키는 사람이에요. 옥석을 고른다고 하셨으니, 저 같은 돌멩이는 바로 떨어질 겁니다.”

“그럼 떨어지던가.”

“엑! 라온 님!”

라온은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어차피 타인이다. 필요 이상의 조언을 해줄 필요는 없었고, 녀석과 말을 하다 보니 그 우울함이 옮을 것 같았다.

“음.”

연무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할 때 옆에서 다가오는 버렌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자신과 루난, 도리안을 보고 눈에 불꽃을 피워냈다. 원수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아.”

라온이 탁한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에 제대로 된 인간이 없어.’

전생에도 미친 놈이 많았는데, 이번 생도 별 차이 없는 것 같았다.

-저놈의 눈깔을 뽑아라.

‘이놈까지 포함해서….’

*     *      *

“라온!”

“라온 도련님!”

라온이 연무장에 돌아가서 몸을 풀고 있을 때 우측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헬렌?”

실비아와 헬렌 그리고 별관의 시녀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라온!”

실비아는 달려오자마자, 새가 알을 품듯이 자신을 꽉 끌어안았다.

“세상에!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굴이 반쪽이 되었잖아! 괜찮니? 아픈 곳은 없어?”

그녀의 가는 눈동자에 둥그런 눈물이 고였다. 다만 그녀의 말과 다르게 근육과 살이 쪘으면 쪘지, 마르진 않았다.

“아니, 엄마 난….”

“힘들었지! 정말 고생 많았어. 흡!”

6개월이 지났음에도 실비아는 여전했다. 자신의 말은 듣지 않고, 몸만을 걱정했다.

-어미 앞에서는 네놈도 애 같기는 하군.

‘시끄러.’

라스는 재밌는 장면을 보았다며 클클 웃었다.

“도련님. 고생 많으셨어요.”

헬렌은 살포시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뒤에 있던 시녀들도 대단하다고 말하며 방긋방긋 웃었다.

“시험에 합격한 것도 아닌데 무슨.”

라온이 얼굴을 긁적였다. 별것도 아닌 일을 칭찬하니, 민망해서 볼이 간지러웠다.

“6개월이나 버티신 거죠.”

“그게 대단한 거예요!”

“맞아요. 대단한 일을 해내셨어요.”

헬렌과 시녀들은 멈추지 않고 칭찬을 해왔다. 바로 탈락해서 돌아올 줄 알았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여긴 어떻게 온 거야?”

라온은 얼굴을 비비는 실비아를 밀어내며 헬렌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늘 시험은 보호자도 참관할 수 있도록 허가되었습니다. 저희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도 오셨죠.”

헬렌의 손을 따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연무장 곳곳에서 아이들과 부모들이 회포를 풀고 있었다.

“근데 이 아이는….”

실비아는 라온의 뒤에 서 있는 루난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루난은 실비아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얘도 참 대단하네.’

루난은 실비아와 헬렌 앞에서도 뒤를 따라다니는 걸 멈추지 않았다. 재능보다 저 성격이 더 놀랍다.

“루난!”

루난과 실비아가 눈을 마주치고 있을 때 좌측에서 두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가워 보이는 은발을 뒤로 넘긴 중년인이었다.

‘로칸 슬리온.’

봉신 가문 슬리온의 가주이자, 루난의 아버지인 로칸 슬리온이었다.

-저 맹한 꼬마의 표정은 끝까지 변하질 않는구나.

라스의 말대로 루난의 눈빛은 아버지인 로칸을 6개월 만에 보고도 맹했다.

“아빠?”

“여기서 뭘 하는 게냐. 가자!”

로칸 슬리온은 자신과 실비아를 노려보고서 루난의 손을 잡고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갔다.

-…많은 인간을 봐왔지만, 저건 참 특이하다.

‘그러게.’

끌려가면서도 자신을 보고 있는 루난의 모습에 헛웃음이 터졌다.

“루난이면 슬리온가의 막내지? 너랑 판별식 같이한.”

“맞아.”

“친구가 됐나 보네?”

실비아가 방긋 웃었다. 어떻게 친해졌는지 알려달라며 다시 얼굴을 들이밀었다.

“친구는 아니야.”

라온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친구가 아니라고? 그럼 무슨 사인데?”

“글쎄….”

솔직히 루난과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다. 친구가 뭔지도 잘 모르겠고.

“아들. 다가오는 사람들하고는 친하게 지내. 억지로 밀어내려고 하지 말고.”

실비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런 적 없어.”

다가오든, 밀든 그저 신경을 쓰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지 말고 나중에 별관에 한 번 데리고 와.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 테니까.”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

“어우, 정말 죽겠… 어? 라온 도련님의 어머니십니까?”

적당히 넘어가려고 할 때 헛구역질을 하던 도리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가왔다.

“맞아. 넌 누구니?”

“도, 도리안이라고 합니다! 도련님께 많은 신세 지고 있습니다! 인사 박겠습니다!”

도리안은 정말 땅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숙였다.

“어머!”

“오, 도련님!”

실비아와 헬렌이 헤벌쭉 웃는다. 자신에게 도움을 받은 아이가 있다는 게 기쁜 것 같았다.

“라온 도련님이 왜 이렇게 잘 생겼나 했더니 어머님을 닮으셨군요. 정말 미인이십니다!”

도리안은 배 주머니에서 꽃을 꺼내 실비아에게 내밀었다. 겁먹었을 때는 한마디도 못 하더니, 이럴 때는 말도, 행동도 청산유수다. 뭐 하는 놈인지 모르겠다.

“호호, 고마워.”

실비아가 꽃을 받으며 웃었다. 눈이 반달이 된 걸 보니, 정말 좋아하고 있었다.

“그만 가라.”

“왜 그래.”

라온이 도리안을 툭툭 쳐서 밀어내려고 했지만, 실비아가 끼어들었다.

“도리안. 라온이 어떻게 지내는지 좀 말해줄 수 있니?”

“무, 물론입니다. 라온 도련님은 최하위 그룹에서 최상위 그룹으로 올라가 5 연무장의 역사를 새로 쓰신 분입니다. 보는 사람이 감동하게….”

“후우!”

시험의 긴장을 수다로 풀 생각인지 도리안의 말이 끊기질 않았다. 시험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피곤해졌다.

-말이 더럽게 많은 인간이로다.

너만큼은 아니야.

“…그렇게 저와 하위 그룹의 추천생들은 라온 도련님이 자세를 알려주신 덕분에 중상위 그룹으로 올라올 수 있었죠. 다, 다른 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지금 급해서!”

도리안이 고개를 꾸벅이고서 화장실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세상에나….”

“라온 도련님!”

헬렌과 시녀들은 감격한 얼굴로 두 손을 모았다. 조금만 더 들었으면 눈물을 흘렸을 기세였다.

“다른 아이들을 돕는 것도 좋지만, 넌 괜찮아? 아직 추위를 많이 타잖아. 숙소는 따뜻해? 아픈 곳은 없어?”

하지만 실비아의 눈동자에는 감동보다 걱정이 더 드러났다. 정말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건강해.”

라온이 씩 웃으며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그래도 실비아의 걱정 어린 눈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힘들면 언제라도 그만둬도 돼.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말고, 네 마음을 따라야 해. 알겠지?”

“응.”

크게 고개를 끄덕이자, 실비아의 얼굴에 드러나던 걱정이 조금 가셨다. 그녀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아들의 몸만 걱정하는 어머니였다.

“근데 헬렌.”

살짝 고개를 튼 실비아의 눈매에 작은 장난기가 돋아났다.

“네. 실비아님.”

“라온 말이야. 못 본 사이에 더 귀여워진 것 같지 않아?”

“물론입니다. 누구 아들인데요.”

“그렇지! 라온! 엄마가 한 번만 더 안아….”

“윽! 자, 잠깐만!”

라온이 다가오는 실비아에게서 뒷걸음질을 치려고 할 때였다. 연무장 입구 쪽에서 막대한 기파가 일어났다.

‘이 기운….’

라온이 이를 악물고 연무장의 정문을 바라보았다. 갈색의 문 뒤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느껴졌다.

쿠웅!

연무장의 문이 활짝 열리고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남자가 나타났다.

“가, 가주님을 뵙습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글렌이었다. 지그하트르의 주인을 마주한 사람들이 모조리 무릎을 꿇었다.

‘저 사람이 왜 여길.’

“아버지?”

“으음!”

실비아와 헬렌 역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멀리서 느껴지던 기운이 저 인간이었나. 이 시대에도 저런 놈이 있었다니….

라스가 깨어난 이후 처음으로 감탄을 터트렸다. 그에게도 글렌이라는 남자의 무력은 놀라운 모양이다.

-이미 격을 달리하는 무력이다. 극과 탈을 넘어섰군.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

‘시간? 그게 무슨 말이지’

-…….

라스는 대답하지 않고, 글렌을 바라만 보았다.

“음.”

라온이 다시 눈동자를 돌려 글렌을 보았다. 그는 아이들과 부모들을 찬찬히 둘러본 후 단상 위로 올라가 리메르가 앉던 의자에 앉았다.

“엑?”

연무장 담벼락을 넘어오던 리메르는 그 모습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가주님이 여길 왜….”

글렌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리메르를 노려보았다.

“가문의 미래를 선발하는 행사다. 내가 오지 못할 곳에 왔나?”

“그건 아니죠. 아주 잘 오셨습니다.”

리메르는 어색하게 웃으며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글렌에게 고개를 꾸벅이고, 종종걸음으로 단상 위에 올라갔다.

“느긋하게 시작하고 싶었는데, 가주님께서 오셨으니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겠네요. 바로 수련생 선발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뒤로 물러나라 말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잘하라고 말한 뒤 멀찍이 물러섰다.

“라온.”

실비아의 부름에 라온이 뒤를 돌았다.

“다치면 안 돼.”

“도련님. 무리하지 마세요.”

실비아와 헬렌은 여전히 잘해라가 아니라, 몸을 조심하라는 걱정을 남기고 물러났다.

-나약하기 그지없다. 너랑은 어울리지 않는군.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은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걸 원하지 않고, 자신의 건강만을 걱정해주었다.

‘여전히 적응이 안 돼.’

실적만이 중요하던 전생의 사육사들과 너무도 다른 모습에 아직도 적응되지 않았다.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리메르가 자신을 보면서 씩 웃고 있었다.

“그럼 남녀노소. 지그하르트 모두가 궁금해하던 수련생 선발 시험의 내용을 공개하겠습니다.”

리메르가 단상 위에 선 채로 손을 털었다. 평소처럼 가벼운 모습이었지만, 그에서 피어나던 작은 기세가 광활한 날개를 펼쳤다.

쿠구구구!

글렌 지그하르트만큼은 아니지만, 연무자 전체를 휘감은 막강한 기세에 부모들이 인상을 찌푸리고, 아이들이 몸을 움츠렸다.

터억!

리메르는 경쾌하면서도, 웅장한 걸음으로 연무장의 중심으로 걸어갔다.

“내 기세를 뚫어라.”

그는 바로 앞에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서늘한 안광을 빛냈다.

“그게 나의 시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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