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5화 (15/653)
  • 15화

    라온은 정규 훈련을 끝낸 뒤 바로 실내 수련장으로 향했다.

    다른 아이들은 숨을 헐떡이며 쓰러져 있었지만, 그는 가볍게 숨을 뱉어내고 바로 가슴 근육을 단련하는 기구에 앉았다.

    ‘괜히 전설로 내려오는 연공법이 아니야.’

    몸은 지친 상태였지만, 불의 고리가 심장을 휘돌며 체력과 정신력을 회복시켜주었다.

    체력을 끝까지 쥐어짜서 훈련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다시 전력으로 움직이게 만들다니, 대륙 최고의 보물 중 하나라 불리는 이유가 있었다.

    “후욱….”

    라온은 어제보다 무게를 5kg 높게 맞추고 기구를 들어 올렸다. 대흉근이 제대로 자극받을 수 있도록 천천히 움직이고, 가동범위는 최대한으로 늘렸다.

    탁.

    여섯 세트를 끝내고 일어났을 때 옆 기구에 누군가가 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평소 주변에 오는 사람은 배에 주머니를 붙이고 다니는 요상한 녹색 머리뿐이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루난?’

    옆 기구에 앉은 사람은 긴 은발을 쓸어내리는 루난 슬리온이었다.

    루난은 라온보다 훨씬 무거운 무게를 설정하고서 기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후우웅!

    그녀가 기구를 들어 올리는 자세는 라온과 거의 흡사했다. 횟수나, 무게가 아니라, 근육의 자극에 신경을 썼다.

    -저건 무엇이냐.

    ‘나도 몰라’

    라온은 루난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리를 떠났다. 근육에 세밀한 자극을 주기 위해서 다른 운동 기구에 앉았다.

    “흐읍!”

    무게를 조절한 뒤 기구를 들어 올렸다. 최대한의 무게 이상을 치면서 불의 고리를 돌렸다.

    “후욱!”

    원래라면 현재 무게에서 10kg을 빼야 하지만, 불의 고리 덕분에 지금의 무게를 들어 올리면서 더 많은 횟수를 시행할 수 있었다.

    팔과 가슴이 떨릴 정도로 운동한 후 기구를 내려놓았을 때 또 옆에 누군가가 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렸다. 예상대로 루난이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자신보다 더 무거운 무게를 설정한 뒤 기구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얘가 왜 이래?’

    라온이 눈매를 좁혔다. 수련생은커녕 리메르에게도 별 관심을 가지지 않던 루난이 왜 자신을 따라 같은 자세로 기구를 움직이는지 모르겠다.

    ‘착각인가?’

    생각해보면 큰 근육 다음에 작은 근육을 단련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저 우연이 겹쳤다고 생각하면서 일어났다.

    혹시나 모른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어깨 단련용 기구로 향했다.

    끼이익!

    무게를 맞추고 어깨의 자극을 느끼며 기구를 들어 올렸다. 가볍게 한 세트를 끝냈을 때 앞으로 루난이 걸어왔다.

    그녀는 자신을 지그시 내려보다가 옆자리에 앉아서 무게를 조절했다. 이번에도 더 무거운 무게였다.

    “흐읍!”

    그리고선 앞만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기구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저런 도발을 받고서도 가만히 있다니!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꼬리를 말 셈이냐.

    ‘도발이라….’

    라온이 고개를 돌려 루난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관심 없다는 듯 앞만 보면서 기구를 사용했다.

    ‘무슨 생각이지?’

    처음과 두 번째는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어깨 운동까지 쫓아오는 걸 보면 따라오는 게 분명했다.

    다만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었다.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가운데, 그 빛은 맹해서 의도를 모르겠다.

    -모른다고? 너보다 내가 낫다고 시비를 걸고 있지 않느냐. 당장 면상에 주먹을 날려라!

    라스에겐 애고, 어른이고, 여자고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 이름답게 모든 것에 분노했다.

    ‘좀 가만히 좀 있어.’

    라온은 라스의 분노를 무시하고 일어서서 스쿼트를 시작했다. 역시나 루난은 옆에 따라와서 더 무거운 무게로 허벅지를 굽혔다.

    “뭐, 뭐지?”

    “왜 저 둘이 붙어 있는 거야?”

    “루난 님이 왜 저 떨거지를 신경 쓰는 거냐?”

    단련장에서 훈련하던 아이들은 라온의 옆에 붙어서 훈련하는 루난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뿌득.

    검술 수련을 끝낸 뒤 방계들과 함께 단련장으로 들어온 버렌은 그 모습을 보고 이를 갈았다.

    “으음!”

    “루난이 왜 저기에….”

    방계들은 라온의 옆에서 단련하는 루난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흐음.”

    라온은 옆에서 모두의 관심을 받는 루난을 보았다.

    달빛처럼 반짝이는 은발과 새하얀 피부. 이목구비는 얇으면서도 뚜렷하다. 그림에서나 볼 수 있을 아름다운 얼굴이지만, 눈빛은 나사가 빠진 듯 맹하게 보인다.

    “혹시 나한테 할 말 있어?”

    루난이 한 세트를 끝냈을 때 다가가서 물었다.

    “…….”

    그 말을 들은 루난은 신기한 생물을 보는 듯이 한참 동안 자신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다시 기구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무게를 더 늘려서.

    ‘나도 모르겠다.’

    라온은 어깨를 으쓱이고서 기구에서 일어섰다. 곧 질릴 테니, 그냥 놔두고 할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갑자기 루틴이 변해서 무얼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뒤에서 작은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루난이 보라색 눈동자로 자신의 이곳저곳을 훑고 있었다.

    “할 말 있으면 그냥 해.”

    “…….”

    루난은 대답하지 않고 자신과 눈만 마주쳤다. 낮잠 한숨 때린 고양이 같은 눈이었다.

    “하.”

    라온은 낮게 숨을 뱉고서 다른 운동 기구를 향해 다가갔다. 루난은 기다렸다는 듯 그 뒤를 따라가서 똑같은 기구를 사용했다.

    *     *      *

    루난 슬리온이 라온 지그하르트를 관찰하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음.”

    그녀는 실내 단련장에 들어오자마자 라온을 찾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가장 빠르게 단련실에 들어가서 기구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어제보다 무게가 더 올라갔어.’

    라온이 들어 올리는 기구의 무게는 어제보다 5kg이 늘어났다. 사실 그 정도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운동을 열심히 한다면 무게를 늘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그 무게가 하루마다 늘어난다면? 그건 정상적인 성장이 아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대부분은 모르겠지만, 라온 지그하르트는 지난 일주일 동안 10kg가 넘는 무게를 올렸다. 아이의 성장이 빠르다고 해도 이건 말이 되지 않는 수치다.

    ‘환자라고 했는데….’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팔다리는 나뭇가지처럼 약했다. 하지만 버티고 견디는 건 이 연무장의 그 누구보다 끈질겼다.

    ‘자세 때문일까?’

    라온이 기구를 들어 올리는 자세는 다른 사람과 조금 달랐다. 특이한 자세 때문에 저런 성장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정한 루난은 가슴 운동을 하는 라온의 옆 기구에 앉았다. 그리고서 라온이 보여주었던 자세대로 기구를 들어 올렸다.

    ‘음.’

    딱히 별다른 건 느껴지지 않았다. 근육이 조금 더 자극되는 정도일까.

    ‘별거 없네.’

    딱히 큰 의미 없다는 생각에 원래 자세대로 무게를 들어 올리려고 할 때였다.

    ‘어?’

    라온에게서 풍겨오는 뭔지 모를 시원한 향기를 들이마시자, 들고 있던 기구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뭐지?’

    근력과 민첩성이 단숨에 늘어난 듯한 기분. 원래라면 힘겹게 들어야 할 무게가 가뿐해졌다.

    다만 잠시간 자신을 바라보던 라온이 떠나가자 그 특이한 감각이 바로 사라졌다.

    “아….”

    루난은 아쉬운 얼굴로 다음 기구로 향한 라온의 등을 바라보았다.

    ‘혹시.’

    루난은 라온을 따라 바로 그의 옆자리로 이동했다. 평소보다 더 무거운 무게를 설정한 뒤 들어 올렸다.

    “으윽….”

    무리였던지 기구를 들어 올리기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라온이 운동을 시작하면서 흘러나오는 시원한 기운에 다시 무게가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진짜였어.’

    평소에 들 수 있는 무게보다 10kg은 무거운 기구를 들다니, 기분만이 아니다. 정말 능력이 강화된 것 같았다.

    “흐읍!”

    능력 이상의 무게를 치고 있지만, 어깨와 팔에 조금의 부담도 없었다.

    기분 좋게 운동을 끝내고 나니 앞에 라온이 서 있었다.

    “할 말 있어?”

    금발적안. 지그하르트의 증거를 그대로 담은 소년이 물었다.

    “아니.”

    루난은 고개를 저었다. 라온은 잠깐 자신을 쳐다보다가 다음 기구로 향했다.

    ‘계속 붙어 다녀봐야겠어.’

    루난은 고양이처럼 긴 눈을 빛내며 라온의 뒤를 쫓았다.

    더 무거운 기구로 단련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시원한 향기가 더 끌렸다.

    *     *      *

    리메르는 지그하르트의 본관을 뒤에 솟구친 산을 올랐다.

    “쯧.”

    산 중턱에 놓인 평평한 바위로 올라가려던 그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제 낮잠 바위에 매일같이 오시다니, 손주가 어지간히 걱정되시는 모양이네요.”

    그의 말에 바위 위에서 한 자루 검처럼 날카로운 인상의 노인. 글렌 지그하르트가 내려왔다.

    “…….”

    글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희미하게 보이는 산등성이를 바라보았다.

    “흥.”

    리메르는 콧방귀를 끼고서 바위에 등을 기댔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없이 떨어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에휴. 그냥 물어보면 되지. 꼭 그렇게 무게를 잡으셔야 합니까?”

    리메르가 한숨을 내쉬고 글렌이 앉아 있는 바위로 뛰어올랐다.

    “아이들은 잘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의외라고 생각할 정도로 빡세게 단련하고 있죠.”

    “의외?”

    “훈련을 아이들의 자율에 맡겼습니다.”

    “그건 알고 있다.”

    “사실 12살에서 13살인 아이들의 의지력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일주일만 지나도 대부분 설렁설렁 수련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처음 이 훈련을 결정했을 때 160명 중 20명만 뽑을 생각으로 결정했으니까.

    “생각보다 훨씬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가주님의 손자 덕분에요.”

    “손자? 버렌말이냐?”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좀 하지 마세요. 라온 말입니다.”

    “난 연무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네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아 달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 진짜.”

    리메르가 붉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손주가 걱정되어서 기다리던 노인네가 아무것도 모른 척하는 게 답답했다.

    “그 녀석. 가주님이나, 실비아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글렌의 눈빛은 그대로였지만, 목소리는 확연하게 변했다.

    “육체도, 정신도 약하니, 다치지 않도록 빠르게 떨어지기를 바라셨지 않습니까.”

    “그런 적 없다. 차별하지 말라고 했을 뿐이지.”

    “어쨌든 저도 라온을 최대한 빨리 떨어뜨리려고 했습니다.”

    리메르의 푸른 눈동자에 삭풍이 몰아쳤다.

    “하지만 그 아이 괴물이었어요. 정신력이 일반적인 인간이 아닙니다. 수십 혹은 수백 번의 전장을 다녀온 무인보다 뛰어난 수준입니다.”

    라온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봐온 수많은 재능 중에서도 특별했다. 매일 아침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봐야 할 정도로.

    “수련이 시작되었을 때 라온은 160명 중 최하위권이었지만, 3주가 지난 지금 중위권에 안착했습니다. 이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제가 무슨 생각까지 했냐면. 라온이 사실 환자 아니라, 힘을 숨기고 있었다고 상상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죠. 그 아이의 몸엔 지금도 지독한 냉기가 흐르고 있으니까.”

    요즘은 훈련 중에 라온에게만 시선이 간다. 그 아이는 정말 수련의 한순간, 한순간에 전력을 쏟아부었다.

    “요즘엔 라온만 따로 불러서 개인 훈련을 시켜볼까 고민이 될 정도입니다.”

    열심히 준비한 수련에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임해주니, 라온에게 조금 더 정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정도인가?”

    “녀석은 겨울나무처럼 몸에 서리가 올라와도 멈추질 않아요. 다른 녀석들도 그 모습에 자극받아서 더 열정적으로 수련하고 있죠. 5연무장의 자극제랄까요.”

    “흐음….”

    글렌이 무표정으로 턱을 긁적였지만, 입꼬리가 옅게 올라서는 건 숨길 수가 없었다.

    “제 예상과 다르게도 합격할 아이들의 숫자가 상당할 것 같습니다.”

    그는 귀찮게 되었다고 중얼거렸지만, 눈매는 웃고 있었다.

    “라온의 몸에 무리가 가지는 않은 건가?”

    글렌은 침묵하다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음….”

    리메르는 들리지 않게 침을 삼켰다.

    ‘예상 이상이군.’

    글렌이 라온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따로 물어볼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막내딸에게 주지 못한 애정이 라온에게 옮겨 간 것 같았다.

    “그게 좀 이상합니다. 무리하고 있는 건 확실한데, 신기할 정도로 금방 회복되더군요.”

    “너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건가?”

    “그렇다니까요. 제 눈을 피하는 건 대륙십천 빼고, 처음입니다.”

    리메르가 대답을 하며 턱을 갸웃거렸다. 다른 사람의 잠재력이나, 상태를 누구보다 잘 봐왔지만, 라온은 예외다.

    솔직히 말해서 대륙 최강의 반열에 오른 글렌보다 라온이 더 신기했다.

    “리메르.”

    “예?”

    “넌 라온의 담당 교관이 아니라, 5 연무장의 수석 교관이다. 라온만 생각하지 말고, 가문에 힘이 되어줄 아이들 모두에게 관심을 가져라.”

    글렌은 위엄 가득한 말을 내뱉고서 산 아래로 내려갔다.

    “하.”

    리메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라온 이야기만 듣고 가면서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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