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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4화 (14/653)

14화

라온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시 연무장으로 들어갔다.

-더럽게 맛없도다. 본왕이 마계에 있을 때 이런 쓰레기 음식이 나왔다면 셰프의 머리통을 뭉개버렸을 것이다.

‘어? 맛을 느꼈어?’

-간접적이지만, 본왕은 네 감각을 공유할 수 있다. 특히 미각에 치중되어 있지. 본왕은 마계에 있을 때부터 미식가로 이름이 높아서….

‘말 더럽게 많네. 미각이 공유되어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면 되는 걸 가지고.’

-입 다물어라! 본왕은 과묵하기로 이름 높은… 윽!

‘소화 안 되니까. 좀 조용히 해.’

라온은 팔찌를 툭 쳐서 라스의 입을 막고, 단상 위를 보았다.

리메르가 낮잠을 자듯 단상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동상이라도 된 듯 미동도 없었다.

-참으로 꼴 보기 싫은 놈이로다. 저 뾰족한 귀를 뽑아버리고 싶다.

라스는 리메르만 보면 화가 솟구치는지 입에서 냉기를 내뿜었다.

‘지그하르트의 광검이라….’

리메르는 지그하르트의 광검이라 불릴 정도로 강한 무력을 지녔지만, 성격이 가볍다 못해 경박하다는 소문이 있었다.

헛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리메르의 모습을 보니, 그 정보는 무섭도록 정확했다.

‘다만 빈틈은 없어.’

저렇게 퍼질러 자고 있어도 그에게 약점은 보이지 않았다.

심각한 부상을 입어서 은퇴했다고 해도 한때 마스터였던 무력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은 모양이다.

-본왕이 네 몸을 먹어 치우는 순간 저 귀부터 뽑겠다.

‘그러던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으하함!”

리메르는 임시 수련생들이 전부 모이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일어나서 느릿하게 기지개를 폈다.

“밥은 잘 먹었나?”

“예.”

아직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의 대답은 새벽보다 축 늘어졌다.

“그럼 바로 다음 훈련을 시작한다.”

리메르는 씩 웃었다. 그의 시선이 연무장 한편에 놓인 목검을 향하자,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검은 됐고, 내가 하는 자세를 따라 해라.”

하지만 그는 아이들을 놀리듯이 목검이 아니라, 발을 어깨너비로 벌리고 무릎을 굽혔다.

“거, 검을 배우는 게 아닙니까?”

방계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외쳤다.

“아닌데?”

“저희는 검을 배울 줄 알고….”

“맞습니다. 광검께선 검으로 이름 높으신데 왜….”

“검? 검 좋지. 근데 너희는 걸음마를 배우기도 전에 뛸 수 있나?”

리메르의 입꼬리가 꼬여서 올라갔다. 시원하게 웃고 있지만, 오싹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체력도, 정신력도, 자세도 갖춰지지 않은 너희가 제대로 된 검술을 익힐 수 있을까?”

“아….”

“매번 말하지만, 내 지시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책임도 본인이 지면 되고.”

장난스러운 목소리였지만, 연무장에 침묵이 가라앉았다.

“따라올 사람은 따라오고 다른 수련을 하고 싶은 사람은 우측으로 빠지도록.”

물론 빠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그 자리에 서서 리메르를 바라보았다.

“그럼 다시 시작하지. 발을 어깨너비로 벌린 후 허벅지가 지면과 수평이 되도록 무릎을 굽혀라.”

“예!”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그 자세를 따라 했다.

“이 자세를 마보라고 한다. 말에 타는 자세라는 뜻이고, 검, 도, 창, 권. 모든 무학의 기본이 되는 자세지. 지금부터 내가 그만이라고 할 때까지 마보를 유지해라.”

“예!”

아이들은 우렁차게 외치고서 팔을 올렸다. 기본자세 중 하나였기 때문에 못 따라 하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저런 품위 없는 자세로 육체를 단련하다니, 인간이란 참으로 하찮군.

‘넌 그런 인간의 몸조차 뺏지 못했고.’

-끄윽, 그건 다른 경우….

‘나 집중해야 하니까 조용.’

라온은 꽃팔찌를 치고, 눈을 감았다.

‘중요한 시간이야.’

불의 고리를 이용하면 이런 기본 수련에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같은 시간을 수련해도 다른 아이들과 얻는 게 달랐다.

“그럼 난 좀 잘게.”

리메르는 다시 드러누워서 졸기 시작했고, 마보는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끄으응….”

“으윽!”

“이, 이거 언제까지 하는 건데!”

아이들은 지진이 난 것처럼 사지를 벌벌 떨었다. 마보가 기본자세라곤 해도 이렇게 오랜 한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루난과 버렌을 비롯한 상위 그룹의 아이들 그리고 라온은 정자세를 유지했다.

“저, 저놈 대체 뭐야.”

“어떻게 이걸 버틸 수 있냐고!”

“체, 체질이 최악이라며!”

“분명 환자라고 들었는데….”

라온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자세를 흩뜨리지 않았다. 정확한 자세만큼은 연무장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위였다.

“끄아아아!”

“지, 질 수 없어.”

“저놈이 저러고 버티는데 어떻게 멈추냐고!”

마보를 풀고 포기하려던 아이들은 하위 그룹의 라온이 버티고 있는 것을 보고 이를 악물고 자세를 유지했다.

다만 이번에도 그들의 생각과 달리 라온은 여유로운 상태였다.

‘이 정도는 가뿐하지.’

전생에선 지금보다 어린 나이에 허벅지와 등에 돌을 매고 마보를 섰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 훈련 정도야 가뿐했다.

물론 지친 육체 위로 퍼지는 냉기의 고통은 지독했다. 살이 갈라지고, 뼈가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이건 더 강해질 기회였다.

우우웅.

라온은 마보를 유지한 채 불의 고리를 회전시켜서 퍼져나가는 냉기를 육체로 받아들였다.

많은 고통을 준 만큼 상당한 양의 냉기가 흡수되었고, 불의 고리의 성취가 또 한 번 높아졌다.

이대로라면 라스와의 내기도 어렵지 않게 승리할 수 있을 거다. 물론 놈은 모르겠지만.

고오오오.

라온이 마보의 수련이라는 것을 잊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을 때 단상 위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정신을 차려보니, 리메르가 일어서서 고개를 끄덕였고, 아이들은 주저앉아서 허벅지를 밀가루 반죽처럼 주무르고 있었다.

-본 왕의 말을 언제까지 무시하는 거냐!

‘미안. 못 들었어.

-이, 이 하찮은 놈이 정말….

라스는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던지 이제야 반응하는 자신을 보고 욕을 내뱉었다.

“후욱….”

라온은 라스가 뭘 하든 말든 상쾌한 호흡을 하며 허벅지와 허리에 뭉친 근육을 풀었다.

띵!

[자신의 체력을 넘어서는 극한의 수련을 완료하셨습니다.]

[체력이 상승합니다.]

이번에도 체력이 상승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부들거리는 허벅지에 활력이 돌아오는 걸 느끼며 허리를 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버틴 녀석도, 포기한 녀석도 있다.”

리메르는 끝까지 서 있는 아이들을 보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다시 말하지만, 난 지시를 내릴 뿐 너희의 훈련에 직접 관여하진 않는다. 스스로 한계를 넘어라. 할 만큼 했다고 말하는 정신을 후려쳐서라도 버텨야 6개월 후 시험에서 합격할 수 있을 거다.”

그는 능글거리는 미소를 유지한 채 말을 이었다.

“이 말도 이게 마지막이다. 앞으로는 포기하든, 끝까지 하든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리메르는 내일 훈련을 위해 허벅지를 풀어주라고 한 뒤 사라졌다.

-자연의 신을 믿는 뾰족귀 주제에 정신론을 외치다니, 어처구니가 없도다. 정신력 따위는 압도적인 힘 앞에 무너지거늘.

‘아닌데.’

-뭐가 아니라는 게냐.

‘정신력은 중요하다고.’

라온은 다리를 풀어주면서 고개를 저었다.

-넌 진정한 힘을 느껴본 적이 없는 하룻강아지라 그렇다. 본왕의 힘을 느낀다면 당장 경배하게 될….

‘난 정신력으로 네 공격을 버텼는데?’

-보, 본왕은 아직 본래의 힘을 되찾지 못했다!

‘난 어린아이일 뿐인데?’

-그, 그건….

라스의 목소리가 젖은 수건처럼 축 가라앉았다.

‘정신력이 의미 없을 리가 없지.’

정신력과 체력은 근육과도 같다. 한계가 있지만,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

전생에서도 수많은 위기 상황을 겪었지만, 극한의 체력과 정신력을 발휘하여 살아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 가볼까.’

라온은 허벅지와 엉덩이의 근육을 풀어준 뒤 실내 단련장으로 들어갔다.

단련장 안에는 근력과 민첩성을 올릴 수 있는 단련 기구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또 수련이냐?

‘그래.’

고개를 끄덕였다. 마른오징어를 쥐어짜듯 육체와 정신력을 한계까지 몰아내야 능력치가 오른다.

자신에게 추가 훈련은 지루하거나, 힘든 일이 아니라, 기대감 가득한 순간이었다.

라온은 맨몸운동인 팔굽혀펴기와 플랭크를 비롯한 기본적인 단련부터 시작했다.

-정말이지 답답하도다. 나무에 매달린 애벌레를 보는 듯해.

‘나뭇가지를 기는 애벌레도 언젠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법이지.’

-네가 나비가 되는 유일한 방법은 본왕에게 몸을 넘기는 방법뿐이니라.

‘그건 나비가 아니라, 독을 가진 나방이지. 꿈 깨.’

손을 휘휘 젓고서 다시 팔을 굽혔다. 단순히 많은 횟수가 아니라, 근육에 자극이 되도록 팔을 느리게 굽혔다가 폈다.

가슴 근육이 끊어질 듯 아렸지만, 그 고통이 오히려 반가웠다. 지금의 통증이 훗날의 능력치와 체력이 되어줄 테니까.

팔굽혀펴기 이후에 복부 단련을 하고 있을 때 단련장으로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을 힐끔 쳐다보고서 각자 떨어져 단련을 시작했다.

루난과 버렌도 들어와서 기구들을 둘러보았다.

루난은 홀로 떨어져서 기구를 잡았고, 버렌은 자신을 지그시 노려보다가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는 목검이 놓인 곳으로 가서 목검을 잡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후우웅!

평소 버렌을 따르는 방계들은 그를 따라 목검을 잡고 각자 배웠던 검술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저놈은 검을 잡았다.

‘그러네.’

-넌 잡지 않는 건가?

‘지금은 필요 없어.’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건 검이 아니라, 기본적인 체력과 근력, 민첩성이다.

거기다 버렌을 포함한 아이들의 검술 실력은 걸음마 수준도 되지 않았다. 어설픈 실력으로 지도자 없이 검술을 수련하는 건 시간 낭비일 뿐이다.

라온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지루하면서도, 힘든 단련을 계속했다. 내일은 더 많은 발전을 이루길 바라면서.

*     *      *

루난 슬리온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본인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다른 사람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너무도 큰 실망을 하게 된 날 마음의 문을 걸어 잠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시선을 끄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건 지그하르트의 광검이라 불렸던 엘프 리메르도, 남들이 라이벌이라고 부르는 버렌 지그하르트도 아니다.

라온 지그하르트.

직계에서 쫓겨나, 방계가 된 실비아의 아들인 그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왜 눈이 가는 거지?’

처음이다. 누군가에게 관심이 가는 것도, 그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도.

‘냉기 때문인가.’

라온의 마나 회로에는 지독한 냉기가 맴돌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능력인 서리가 그의 냉기에 친숙함을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네.’

이유를 안 루난은 이제 그에게 관심을 끄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라온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성장이 빨라.’

라온의 성장 속도는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났다.

한 달 전 알현실에서 봤을 땐 근육 하나 없이 바짝 말랐지만, 지금은 약간이나마 근육이 붙은 상태였다.

‘거기다.’

어제 최하위권이었던 그는 오늘 중하위권 그룹의 속도를 따라잡았다.

하늘의 재능을 타고났다는 자신도 저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건 무리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질 않았다.

“흡!”

루난은 60kg짜리 기구를 가뿐하게 들어 올리면서 힐끔힐끔 라온을 살폈다.

“정말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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