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3화 (13/653)

13화

“내기?”

라온의 눈매가 가늘게 내려갔다.

“무슨 내기를 하자는 거지?”

갑작스럽게 내기를 하자고 하니, 라스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긴장할 필요 없다. 본왕은 거짓말을 하지도, 널 속이지도 않는다. 직접 보여주마.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분노>가 첫 번째 내기를 제안합니다.]

조건 : 정식 수련생 시험을 수석으로 통과.

성공 시: 모든 능력치 +2, 임의선택 특성.

실패 시: <분노>의 감정 10포인트 생성.

읽어보니, 어떤 의미인지는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내기를 해서 이긴다면 라스의 능력을 넘겨준다는 것 같았다.

“리메르가 말했던 정규수련생 시험을 수석으로 통과하라는 건가?”

-그렇다. 놈이 수석은 반드시 뽑는다고 했으니, 결과는 확실하게 나오겠지.

“음….”

다만 몇 가지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임의선택 특성은 뭐지?”

-본왕이 가지고 있는 특성 중 하나가 네게 주어질 거다. 물론 네 하등함에 맞춰 단계가 격하하겠지만.

“특성이라….”

라온은 기름을 부은 듯 푸른 불길로 타오르는 라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매번 스스로를 마계의 왕이라 칭했다.

그 말을 믿을 수는 없지만, 특별한 존재임은 분명했다. 임의로 주더라도 쓸모 있는 능력이 나올 가능성은 높았다.

“하나 더. 이게 가장 중요한데 실패 시에 분노의 감정 10포인트가 생긴다는 건 뭐지?

-말 그대로다. 본왕이 가진 분노의 감정이 네게 생성된다.

“그 말은 네가 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는 건가?”

-그 정도는 아니다. 본왕이 네게 넘기는 분노의 감정은 티끌에 가깝다. 가랑비 수준이지. 다만….

라스의 목소리에 노골적인 기대감이 녹아내렸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본왕의 분노를 받아들이다 보면 네 정신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언젠가 그 감정을 통제할 수 없게 될 거다.

“그걸 노리는 거였나?”

라온이 차가운 눈으로 라스를 내려보았다. 놈은 자신의 육체를 한 번에 빼앗는 것을 포기하고, 차근차근 강탈하려는 것 같았다.

-너도 상태창의 능력치에 따라, 네 육체가 변한다는 건 깨달았겠지. 이 내기를 받아들인다면 네 복수에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다.

라스는 분노의 왕답지 않게 침착한 목소리로 내기를 받아들이라 말했다. 처음으로 이놈에게 짜증이 일어났다.

‘그런데 왜 이런 내기를 하지?’

본체의 존재를 확인했으니, 그 힘을 끌어와서 자신의 정신을 불복시키면 그만일 텐데, 왜 이런 귀찮은 수를 쓰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말했듯이 본왕의 본체 능력은 네게 연결되어 있다. 그 힘을 끌어 올 수만 있다면 당장에 네 몸을 가져갔겠지.

라스는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대꾸했다.

“거짓말한 건 없나?”

-본왕은 마계의 군주다. 다른 건 몰라도 거짓말 따윈 하지 않는다.

“후….”

라온이 가는 한숨을 뱉어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라스는 분명 미친놈이었지만, 질문에 대해서는 항상 솔직하게 답을 말했다.

“먹을 수밖에 없는 독 사과인가.”

모든 능력치가 2나 올라가고 특별한 능력 하나가 생긴다고 하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반면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물론 쌓이면 위험하겠지만.

“흐음….”

5 연무장엔 뛰어난 아이들이 많았다. 루난과 버렌은 말할 것도 없고, 방계와 추천생들도 독특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평범한 아이라면 수석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거다.

하지만 자신은 환생자다.

시험이 무엇이든, 아이들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나든 전생의 삶을 이용한다면 절대 지지 않는다.

“좋다. 받아들이지.”

-좋은 선택이다.

[<분노>와의 내기를 받아들이셨습니다.]

라온은 떠오르는 메시지 사이로 라스와 눈을 마주쳤다. 놈은 웃고 있었다. 본인이 이길 거라는 확신이 담긴 미소였다.

그래서 똑같이 웃어주었다.

네 생각대로는 안 될 거야.

*     *      *

다음날 새벽.

버렌이 연무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해가 뜨지 않은 시간임에도 그의 머리는 곱게 빗어 올라갔고, 훈련복은 빳빳하게 다려져 있었다. 그야말로 귀족스러운 모습이었다.

“음?”

볼 때마다 과하게 인사를 하던 크레인과 몇 명의 방계가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왜 저러는 거지?’

왜 저러나 생각할 때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설마 건드린 건가?’

버렌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라온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개인적으로 건드리는 건 위대한 지그하르트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짓거리다.

‘한심한 것들.’

멍청이들에게 한마디 해주려고 다가가려 할 때 문이 열리고, 라온이 들어왔다.

“음?”

그런데 너무 멀쩡했다. 한대도 얻어맞지 않은 것처럼 멍이나,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어제보다 오히려 더 당당해 보였다.

“흡!”

“힉!”

반대로 크레인을 비롯한 방계들은 라온을 보자마자, 꼬리를 만 개처럼 몸을 돌려 구석에 처박혔다.

‘뭐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버렌이 마른침을 삼켰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이봐.”

참지 못하고 덜덜 떠는 방계들에게 다가갔다.

“버, 버렌 님!”

크라인을 비롯한 방계들은 입을 동그랗게 벌리며 고개를 숙였다.

“왜 그렇게 떠는 거냐.”

“그, 그게….”

“으음!”

방계들은 자신이 아닌 그 뒤에 서 있는 라온을 보고서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눈동자에 드리운 건 확연한 두려움이었다.

‘내가 아니라, 라온을 두려워한다고?’

라온이 무엇을 했기에 이들이 이렇게 겁에 질렸단 말인가.

“아,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별일 아닙니다.”

“헤헤!”

방계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역으로 얻어맞은 건가?’

그것 말고는 없다.

방계 녀석들은 라온을 교육하겠다고 찾아가 역으로 맞고 온 게 분명했다.

버렌은 등을 돌려 라온을 보았다. 그는 어제와 똑같이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조용히 서 있었다

‘나름 능력을 숨기고 있었다는 건가?’

코웃음이 나왔다. 재능도 없는 환자 놈이 힘을 숨겨봐야 티끌일 뿐이니까.

‘발악해봐라.’

어차피 밑바닥인 건 변함이 없으니까.

*     *      *

라온은 목을 풀다가 어제 ‘대화’를 나눈 방계들과 눈을 마주쳤다.

“윽!”

“끕!”

방계들은 악마라도 마주한 듯 기괴한 신음을 흘리고서 뒷걸음질을 쳤다.

“어?”

“뭐지?”

어제만 해도 대놓고 욕하던 방계들이 주춤하는 모습에 다른 임시 수련생들의 눈동자에 의문이 비쳤다.

라온은 코웃음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버렌이다. 조롱 혹은 비웃음이 어린 시선이 노골적이었다.

‘뭘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버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가 훤히 보였다. 재능 없는 놈이 발악해봐야 의미 없다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아주 큰 착각이지.’

불의 고리가 있는 자신에게 재능 따위는 의미가 없다. 임시 수련 기간이 끝날쯤에는 버렌 정도는 한참 추월해 있을 거다.

-저 뱀 눈깔이 짜증 나는구나. 뽑아버려라.

‘또 시작이네.’

-본왕이 마계에 있을 때 함부로 눈깔을 돌리는 놈들은 모조리….

‘좀 조용히 해.’

라온이 팔찌를 툭 쳤다.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라스의 말이 끊겼다.

-이, 이놈이 진짜!

‘말 진짜 많네.’

라스의 말을 무시하며 불의 고리를 운용하려 할 때 연무장의 문이 열렸다.

쿠웅!

삐걱거리는 문이 넘어 리메르와 교관들이 들어왔다.

교관들은 정확하게 오와 열을 맞췄지만, 리메르는 잔걸음을 걸어 단상 위로 올라갔다.

“잘 잤나?”

리메르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씩 웃었다.

“예!”

임시 수련생들은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우렁차게 대답했다.

“너희가 평소 체력을 단련했다고 해도 나름 전력으로 달렸으니, 꽤 힘들었을 거다. 그러니까….”

리메르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뛰어라. 전력으로!”

“네?”

“오, 오늘도요?”

“인간의 체력은 끝까지 사용하면 할수록 그 한계가 늘어난다. 전력으로 달려라. 내가 그만이라고 말할 때까지.”

아이들이 찡그리고 있을 때 어제처럼 두 사람이 먼저 땅을 박찼다. 루난과 버렌이었다.

파아앙!

두 사람은 어제와 달리 체력을 비축하지 않고, 가진 전력을 다해 뛰었다.

“으으!”

“또 달리기라니!”

오늘은 무언가를 배울 거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짜증을 내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또 뜀박질인가? 지루하다. 이따위 수련 없이도 강해질 수 있다. 너와 적의 피를 보면….

‘난 좋은데.’

라온이 라스의 말을 끊었다. 폐에 새벽 공기를 담아내고서 땅을 박찼다.

-좋다고? 모래를 마시며 끝없이 달리는 게?

‘달릴수록 강해질 수 있으니까.’

-멍청한! 네가 본왕에게 몸을 넘긴다면 1년 안에 최강자가 될 수도….

‘그게 내가 아니면 아무 소용도 없지.’

라스의 헛소리를 한마디로 끊어내고 발을 놀렸다.

‘어제보다 더 빨라졌어.’

민첩성과 체력이 올랐기 때문인지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어제 훈련이 끝나갈 때가 되어서야 따라잡을 수 있었던 방계와 몇몇 추천생들의 속도를 처음부터 따라갈 수 있었다.

“어?”

“으음….”

“라, 라온?”

중하위 그룹의 아이들이 자신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네가 왜 여기에 붙어 있냐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성장이 빨라.’

라온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그들과 나란히 달렸다. 불의 고리만이 아니라, 능력치가 있으니, 성장 속도가 가히 마법과도 같았다.

다만 전력으로 뛰고 있음에도 버렌과 루난은 점점 멀어져갔다. 확실히 저 둘의 재능과 수련양은 지금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환경이 나쁘지 않아.’

전력을 사용하도록 만들어주고, 앞에는 따라잡아야 할 아이들이 많았다. 수련하기엔 최고의 환경이었다.

라온은 단상에서 졸고 있는 리메르를 보았다. 한없이 가벼운 듯한 남자지만, 수련 방법은 확실했다.

‘당신의 수련. 잘 이용해주지.’

*     *      *

“그만!”

새벽부터 시작된 달리기는 태양이 뜨고 나서야 멈추었다.

“끄어억!”

“허어억!”

“하악!”

아이들은 누구 하나 할 거 없이 연무장에 드러누워 숨을 몰아쉬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전력으로 달렸기 때문에 어제와 달리 제대로 서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새벽 수련은 이걸로 끝이다.”

“새, 새벽….”

“오전도 아니고, 새벽….”

새벽 수련이 끝났다는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새벽은 공기도 맑고, 마나를 더 쉽게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너희가 정식 수련생이 된 이후에도 계속 달릴 테니, 빨리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리메르는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끝없이 달리는 아이들을 표현하는 제스처였다.

“그럼 아침 식사를 해라.”

“이렇게 달렸는데, 무슨 식사….”

“바, 밥 못 먹어!”

“들어가겠냐고!”

아이들은 드러누운 채로 앓는 소리를 읊었다.

“힘들어도 먹는 게 좋다. 이후에도 수련이 계속되니까. 속이 비면 버티지 못해. 다만 이번에도 선택은 너희의 몫이다.”

리메르는 마지막 말만 남기고 알아서 하라는 듯 사라졌다.

“이렇게 뛰고 바로 밥을 먹이다니….”

“머, 먹긴 먹어야겠어. 나중에 토하더라도.”

아이들은 비틀거리면서 식당으로 들어갔다. 새벽부터 훈련이 거셌기 때문인지 식사는 기름지지 않고, 가벼웠다.

따뜻한 스프와 부드러운 빵, 담백한 고기와 몇 가지 채소가 전부였다.

“음식 한 번 처참하군.”

“그래도 이거면 먹을 수는 있겠어.”

방계의 아이들은 식판에 든 음식을 가만히 보고 있는 라온을 보았다.

“저기 봐라.”

“안 먹고 있네.”

“별관에서 귀하게 크셨는데, 저런 게 들어가겠냐.”

“하긴 서열은 최하위면서 환자라 대우만 받았을 테니까.”

아이들은 낄낄대며 라온을 비꼬았지만, 라온은 이번에도 그들의 예측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밥을 줘?’

훈련이 끝났다면 모를까. 훈련 중에 식사를 받은 적은 전생에서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보다 어린 나이에 잡초를 뜯어 먹든, 짐승을 사냥하든 직접 해결했기 때문에 밥을 주는 건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여기 정말 최곤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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