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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10화 (10/653)

10화

아이들이 연무장을 뛰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났다.

버렌과 루난은 여전히 가장 앞에서 달렸고, 그 뒤로는 방계와 봉신 가문 그리고 추천생들이 엎치락뒤치락 끼어 있었다.

물론 160명 모두가 달리고 있지는 않았다.

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이미 한참 전에 포기해서 연무장 구석에 주저앉았고, 지금도 포기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흐아암.”

리메르는 단상 위에 드러누워 하품을 했지만, 눈동자는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61번째 녀석은 가진 체력보다 빨리 포기했군. 62번째는 체력보다 더 버텼고.’

그는 졸린 눈으로 160명의 아이들을 한눈에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리메르가 보는 건 아이들이 가진 체력이 아니었다.

‘체력만 보는 건 의미가 없지.’

아이들은 성장 환경에 따라 체력이 다르다. 솔직히 말해서 직계 둘과 상위 그룹의 20여 명을 제외한다면 다 거기서 거기다.

비슷한 체력을 가졌으면서도 어떤 아이는 숨이 차오른 즉시 포기하고, 어떤 아이는 가슴을 꼬집으면서 혹은 울면서도 끝까지 달렸다.

‘그 차이가 무엇보다 중요해.’

누군가는 쉽게 포기하고, 누군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은 작아 보이는 저 정신력의 격차가 미래엔 어마어마하게 벌어질 거다.

체력은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재능도 성장시킬 수 있다.

하지만 저런 끈기를 키우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어려서부터 포기하지 않는 아이는 미래에도 포기하지 않고, 포기가 익숙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쉽게 포기하는 법.

물론 크게 깨닫고 변하는 아이도 있지만, 그건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듯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부터 정신력과 끈기가 뛰어난 아이를 고르는 게 훨씬 편했다.

‘어느 정도 결정이 났네.’

리메르가 히죽 웃었다. 이미 반수 이상의 아이들이 포기했고, 나머지도 지쳐서 점점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시험의 끝을 준비하고 있던 리메르의 눈에 하위 그룹에서 달리는 금발의 아이가 들어왔다.

‘라온 지그하르트.’

오늘 자신의 예상을 벗어난 유일한 아이였다. 리메르의 눈동자가 별빛처럼 반짝였다.

‘이해할 수 없군.’

라온의 체력은 한참 전에 바닥난 상태였다. 육체를 짓누르는 냉기와 가빠오는 호흡에 서 있지도 못해야 하건만, 녀석은 자세를 흩뜨리지 않고 끊임없이 발을 움직였다.

‘끈기 정도가 아니야. 독기인가?’

수많은 전장을 돌며 찬란한 재능들을 봐왔다.

그 중에선 검으로 대륙에 우뚝 설 검사도, 마법으로 세상의 격을 바꿀 마법사 있었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라온처럼 버티진 못할 거다.

아예 바닥난 체력으로 계속해서 달린다? 그것도 지독한 체질을 안고 태어난 12살짜리가?

그건 생사가 걸린 전투를 수십 번 넘고서야 가질 수 있는 정신력이다. 곱게 자란 저 아이에게 어떻게 저런 독기가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음….’

리메르의 눈동자에 연무장 전체가 드리웠다.

힘을 아끼고 있음에도 가장 앞서 나가는 루난과 버렌도 대단했지만, 바닥난 체력으로 지금까지 달리는 라온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라온을 무시하던 방계와 봉신 가문의 아이들도 그에겐 지기 싫은지 침을 질질 흘리며 달리고 있었다.

“후후.”

리메르의 입꼬리가 부드러운 호를 그렸다.

“가르칠 맛 나네.”

*     *      *

“으음….”

버렌 지그하르트는 달리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한 번씩 뒤를 돌아보았고, 그때마다 인상을 찌그러뜨렸다.

‘왜지? 저놈이 어떻게 남아 있는 거냐고!’

라온 지그하르트. 가주님에게 말대꾸했던 저 건방진 놈은 예상과 달리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느리지만,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 채 끝까지 달리고 있었다.

‘달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닐 텐데….’

라온이 어떤 상태인지는 알고 있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몸에 냉기를 지녀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성장도 느리다고 들었다.

실제로 본 놈은 듣던 것보다도 한심했다. 키도 작고, 단련한 흔적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놈은 포기하지 않았다.

방계도, 봉신 가문의 아이들도, 재능을 인정받은 추천생들도 포기해서 떨어져 나가는데, 곧 죽을 것처럼 헐떡이면서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옆에 놈도 그렇고 짜증 나는군.’

유일하게 자신을 따라오는 루난도, 당연히 떨어져 나가야 할 라온도 거슬렸다.

‘좋다. 확실한 차이를 보여주지.’

버렌은 루난과 라온 모두의 마음을 무너뜨리기로 마음먹고 거칠게 발을 굴렀다.

후우웅!

오러를 운용하여 허벅지와 종이리의 근육을 증폭시켰다. 시야가 좁게 느껴질 정도의 속도로 달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저놈들이?’

라이벌이라 생각한 루난도, 라온도 반응하지 않았다.

둘은 각자의 속도를 유지한 채 달렸고, 오히려 방계와 봉신 가문의 녀석들만 조급하게 자신을 뒤쫓았다.

“쯧!”

버렌은 혀를 차고서 조금 더 속도를 올렸다. 비슷하게 달리던 루난과 큰 차이가 날 정도로 앞서 나갔고, 라온은 한참 전에 추월했다.

그래도 루난과 라온의 속도는 그대로다. 자신에게 관심도 없다는 듯 각자의 전력을 유지했다.

‘끄윽!’

자신보다 뒤떨어지는 녀석들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하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어디 끝까지 그렇게 나올 수 있나 보자.’

*     *      *

“후욱!”

라온이 거칠게 숨을 뱉어내며 미소를 지었다.

‘계속 힘이 들어와.’

체력은 한참 전에 바닥을 드러낸 것으로 모자라, 말라붙은 우물처럼 텅 비었다.

기절할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3성에 오른 불의 고리가 전해주는 단비 같은 활력 덕분에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천국이지.’

전생에서 암살자로 사육될 땐 지금보다 어린 나이에 들개에게 쫓겼다. 터지려는 심장을 움켜쥔 채 산을 내달렸었다.

결국 따라잡혀서 들개와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인 적도 있었다. 그 지옥 같은 삶에 비하면 지금은 놀이나 다를 게 없었다.

“후욱….”

라온이 가쁜 숨을 흘리며 앞을 보았다. 아직도 전력을 유지하는 방계나, 추천받은 아이들도 어디에서 보기 힘든 재능이지만, 루난과 버렌은 특별했다. 둘은 조금도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 채 채 처음부터 끝까지 안정적으로 달렸다.

괜히 천재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할 때 갑자기 버렌이 속도를 올렸다. 그는 루난을 추월하여 선두로 올라섰다.

“어?”

“버, 버렌 님이?”

“달려! 뒤처지면 안 돼!”

그를 본 다른 방계나 추천생들이 무리해서 속도를 올렸다.

“흥!”

버렌은 따라잡아 보라는 듯 루난과 자신을 보며 눈을 흘겼다.

-무엇을 하는 게냐. 도발하는데 그대로 있을 거냐? 따라잡아서 저 눈알을 뭉개놓아라.

라스가 버렌을 노려보며 바득바득 이를 갈았지만, 라온은 반응하지 않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경쟁이 아니야.’

오늘의 달리기는 경쟁이 아니라, 스스로가 가진 체력, 정신력을 보여주는 시험이다. 그리고 그걸 아는 사람은 자신 말고 한 명이 더 있었다.

‘루난 슬리온.’

두 번째로 달리는 은발의 소녀는 버렌의 독주에 관심도 없다는 듯 본인만의 속도를 유지했다.

‘이쪽이 오히려 한발 앞서 있군.’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루난이 버렌보다 정신적으로 조금 더 위에 있는 것 같았다.

버렌은 어른스러운 척하고 있지만, 그 나이 그대로 애였다. 저대로 전장에 나갔다간 금방 죽게 될 거다.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라온은 버렌이 아니라, 루난의 뒷모습을 쫓으며 연무장을 달렸다.

“라, 라온?”

“어떻게….”

“지, 지금까지 달리고 있었다고?”

무리해서 버렌을 쫓던 방계들이 뒤처지기 시작했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비꼬는 말을 하던 녀석들이다.

“허억, 허억! 무, 무슨 짓을 한 거지?”

“끄으, 말도 안 돼….”

숨을 헐떡이는 방계들은 라온에게 추월당하자 걸음을 멈추고 땅에 주저앉았다.

라온은 그들의 경악한 눈동자를 추진력 삼아 앞으로 달렸다.

‘한심하군.’

어딜 가나 입만 떠드는 놈들은 실속이 없는 법이다.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잊어버리고 계속 달렸다.

“후우….”

라온은 느린 호흡을 통해 불의 고리를 끝없이 회전시켰다.

‘고리의 성장이 빨라.’

그리 긴 시간을 달리지 않았음에도 고리의 연성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역시 불의 고리는 전력으로 활동해야 제 능력을 발휘하는 연공법이었다.

‘그래도 더럽게 힘들지만.’

불의 고리가 회전한다고 해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심장과 폐가 찌그러진 듯 조여오고, 옆구리는 단도가 박힌 듯이 아렸다.

-한심하기 짝이 없도다.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있을 때 라스가 혀를 찼다.

-본 왕의 빙의체가 될 놈이 패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 몸을 넘겨라. 당장 쫓아가서 저 파란 머리 꼬마를 통째로 얼려주마.

‘시끄러워.’

이건 따라잡기 위해서 하는 시험이 아니다.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본 왕이 눈을 뜨고 있는 한 지는 꼴은 못 본다.

‘그럼 눈 감아. 이렇게 달리는 것도 기적이니까.’

거짓이 아니다.

라스의 시스템이 있다고 해도 아직 마나 회로 내부의 냉기를 제거할 수는 없다. 불의 고리라는 기적 덕분에 지금까지 달릴 수 있었다.

-그럼 본 왕에게 몸을 넘겨라.

라스가 어제 보았던 푸른 불꽃의 형태로 변했다. 놈의 분노가 감정을 자극하여 속이 울렁거렸다.

‘하필 이럴 때….’

라온이 입술을 깨물었다. 지친 상태에서 라스의 자극이 전해지니, 어제보다 2배에 가까운 고통이 찾아왔다.

‘그래도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어.’

여기서 지친 모습을 보였다간 라스에게 약점이 잡힐 수도 있다. 최대한 침착한 얼굴로 달렸다.

‘헛짓하지 말고 다시 들어가서 잠이나 자라.’

불의 고리를 전력으로 운용하며 덤덤한 표정을 유지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다리를 굴렀다.

-크으, 대체 왜 네놈에겐 본 왕의 힘이 통하질 않는 거냐!

라스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분노의 감정을 자극했다.

“후욱….”

라온은 바닥 친 체력을 억지로 끌어 올려 라스의 정신 공격을 버텼다.

‘죽겠군….’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솔직히 말해서 당장 뒤로 넘어갈 것 같았다.

수많은 사선을 넘었던 전생의 경험과 불의 고리가 균형을 맞춘 덕분에 정말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이 지독한 놈!

‘포기하고 꺼져.’

“으합!”

라온이 라스의 기운을 밀어낼 때 단상에 드러누워 있던 리메르가 벌떡 일어섰다.

“자, 그만!”

그의 시원한 외침에 연무장에서 달리던 아이들이 발을 멈췄다.

“허억! 허억!”

“끄으윽!”

“아우욱!”

아이들은 눈이 풀린 채로 주저앉거나, 무릎을 잡고 숨을 헐떡였다.

“후욱….”

라온 역시 곧 죽을 것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괴물 같은 놈.

라스가 이를 갈며 다시 팔찌 속으로 들어갔다.

‘말했잖아. 안 된다고.’

이마 위로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시험도 힘들었지만, 라스의 공격을 버티는 게 더 버거웠다. 조금 더 달렸다간 정말 죽을 뻔했다.

‘이번 삶도 평범하진…음?’

마른 입술을 축이고 있을 때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왔다.

띵!

[체력을 넘어선 극한의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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