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날이 밝았다.
라온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짐을 챙겨서 별관을 나왔다. 실비아와 시녀들은 정원 앞에 일렬로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녀올게.”
라온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실비아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혼자 가서 다행이야.’
연무장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수련생뿐이라 다행이었다. 만약 실비아와 함께 갔다면 오늘 연무장에 도착 못 했을 거다.
“실비아 님. 그런 표정으로 도련님을 보내실 건가요?”
“으음….”
헬렌의 가벼운 꾸중에 실비아의 굳은 얼굴이 슬며시 녹아내렸다.
“라온.”
실비아가 모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라온의 앞에 섰다. 여전히 걱정되었지만, 이젠 포기란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보았으니까.’
라온은 지난 한 달 동안 마나 회로에서 퍼지는 냉기를 견디면서 단 하루도 단련을 쉬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입김을 내뿜으며 매일같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인내하며 노력한 아이를 시무룩한 얼굴로 보낼 수는 없었다.
“라온. 잘하고 와.”
실비아는 걱정으로 울렁이는 감정을 다잡고 미소 지었다.
“응.”
라온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등을 돌렸다. 그는 그대로 5 연무장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괜찮겠지?”
“많이 나아지셨잖아요. 잘되면 훈련을 통과해서 돌아오실지도 몰라요.”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아.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그게 가장 좋긴 하죠.”
실비아와 헬렌은 멀어지는 라온의 등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훈련 통과 따윈 필요 없으니, 무사히만 돌아와 달라고 기도했다.
* * *
5 연무장은 외부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벽이 직사각형 형태로 설치되어 있어서 꼭 길쭉한 상자 같았다.
입구에서 오른쪽에는 곱게 간 흙이 깔린 야외 훈련장이 있었고, 좌측에는 지붕이 있는 실내 단련장이 있었다.
라온은 연무장을 쭉 둘러본 뒤 중앙에 선 아이들을 훑었다.
‘듣던 대로 숫자가 많군.’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음에도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연무장 곳곳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지그하르트의 직계나 방계만이 아니라, 봉신 가문이나 외부에서 데리고 온 추천생들도 있어서 매번 이 정도 인원이 모인다고 들었다.
‘이번엔 더 많다고 했었지.’
헬렌이 올해는 사람이 많아서 6 연무장도 가동한다고 말해줬었다.
바삭.
뭔가 부서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녹색 머리칼에 얼굴이 동그란 아이가 복부에 달린 주머니에서 과자를 꺼내 먹고 있었다.
“드실래요?”
라온이 멍하니 보고 있자, 주머니에서 다른 과자를 꺼내 내밀었다.
“아니, 괜찮아.”
“넵.”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번에는 네모난 빵이 튀어나왔다.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몸을 풀려고 할 때 뒤에서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쟤 맞지? 팔다리 비실비실한 거 봐. 툭 치면 부러지겠네. 훈련할 수는 있나?”
“환자면 대충하는 척하다가 도망가지. 왜 나서서 귀찮게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난 가주님에게 직접 따지는 모습을 보고 눈 감았다. 주제를 몰라. 지가 직계인 줄 아는 거지.”
방계의 아이들이 다 들리도록 비난을 해댔다. 이미 소문이 쫙 퍼졌는지, 라온을 노려보는 아이들이 많았다.
“팔찌는 또 저게 뭐야?”
“꽃무늬 팔찌?”
“나잇값도 못 하네.”
방계들은 팔목에 걸린 라스를 보고 킥킥 비웃었다. 이 팔찌는 다른 사람에게도 보이는 모양이다.
-저거 설마 본 왕을 말하는 것이냐.
잠이 든 것처럼 조용했던 라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니까 팔찌 모양 바꾸라고 했잖아.’
-고귀함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버러지들이로다. 무엇을 하는 게냐. 당장 저놈들의 대가리를 깨부숴라.
라스의 목소리가 끓는 물처럼 지글거렸다.
‘뭐하러?
-본 왕만 건드린 게 아니라, 네놈에게도 시비를 걸었는데 참는다는 거냐?
‘넌 무슨 일인지도 모르잖아.’
-그딴 건 상관없다! 본왕을 똑바로 보기만 해도 눈알을 뽑아버려야….
‘난 너처럼 미치지 않았어.’
이 미친놈에게 몸을 넘기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흐음.”
라온이 고개를 돌려 방금 주둥이를 놀린 방계 아이들을 보았다. 그들은 잠시 찔끔했지만, 뭐 어쩔 거냐는 듯 턱을 쭉 내밀었다.
‘전생이라면 무시했겠지.’
전생의 자신이라면 못 들은 척하고 몸을 돌렸을 거다. 암살자가 시선을 끌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번 생은 암살자가 아니라, 라온 지그하르트로서 살기로 마음먹었다. 무시할 이유가 없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라온은 서늘한 눈빛을 발하며 입을 놀린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직접 올 줄은 몰랐던지 얼굴에 당황이 비친다.
“어?”
“무, 무슨 말을….”
“모기처럼 앵앵거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으음.”
“그, 그게….”
방계의 아이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서로 눈치를 보았다.
‘역시.’
이 아이들은 그저 부모가 하던 걸 그대로 따라 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법 따윈 없었다.
“앞에서 못 할 말은 뒤에서도 하지 말라는 말 안 배웠어?”
“다, 닥쳐!”
“몰락해서 별관에 박혀 사는 주제에 감히!”
“네놈은 직계가 아니라, 방계다!”
“너희도 방계다. 감히라는 말은 상대가 너보다 낮은 위치에 있을 때 하는 말이지. 너희는 내게 그 단어를 뱉을 자격이 없어.”
라온의 목소리는 고조되지도, 가라앉지도 않았다. 사실을 말하는 단순한 어조였다.
“크으으!”
방계 세 놈이 금방이라도 덤빌 것처럼 다리를 벌리고 주먹을 말아쥐었다.
뚜둑.
라온이 손가락을 풀었다.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몸을 풀고, 시선을 끄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네놈을….”
“그만!”
방계 놈들이 달려들려고 할 때 우측에서 서릿발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발의 미소년이었다.
-저놈은 뭔데 방해냐. 머리를 부숴라.
‘버렌이었던가.’
판별식에서 최고의 재능을 보여주었던 직계였다.
“곧 훈련이 시작될 텐데 뭐 하는 짓이지? 외부의 인원들 앞에서 지그하르트의 이름에 먹칠을 할 셈이냐?”
그는 예상과 달리 세 놈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모두를 질책했다.
“버, 버렌 님!”
“죄송합니다!”
라온에게 달려들려던 방계들은 버렌의 한 마디에 고양이 앞의 쥐처럼 고개를 숙였다.
“네놈은 여전히 주제 파악을 못 하는군.”
방계들의 사과를 받은 버렌이 라온에게 다가왔다.
“너 따위는 언제라도 걷어낼 수 있는 먼지에 불과해. 별관에서도 쫓겨나기 싫으면 쥐 죽은 것처럼 조용히 살아라.”
버렌은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내며 인상을 구겼다.
‘쥐새끼 같은 놈!’
눈앞의 덜떨어진 놈은 한 달 전 가주님의 시선을 독차지했다. 그것도 제 능력이 아니라, 상황을 이용해서.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건 능력이 없는 놈이고, 두 번째로 싫어하는 건 주제를 모르고 건방진 놈이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그 둘 모두 포함되었다.
훈련도 제대로 못 하고 떨어져 나갈 낙오자 따위가 가주님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만으로 짜증이 일었다.
“훈련에 참여할 생각이 없으면 당장 꺼져라. 아니, 그냥 나가. 네놈이 훈련을 통과할 가능성은 없으니까.”
버렌의 비난에 방계의 아이들이 비웃음을 흘렸다. 그들이 속 시원한 얼굴로 돌아가려 할 때 라온이 한 발 앞으로 나갔다.
“개소리를 해도 참 맛대가리 없게 하네.”
라온이 턱을 모로 틀었다. 삐딱한 표정으로 버렌과 눈을 마주쳤다.
“네가 뭐라도 되나?”
“뭐?”
“넌 직계일 뿐 어떠한 지위도 없다. 별관에서 쫓아내? 수련생 신분조차 안 된 네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 네 아버지에게 가서 이르면 그나마 가능성 있겠네.”
“방계 놈이 감히….”
버렌의 주먹에 녹색의 바람이 깃들었다. 그가 살벌한 눈으로 다가올 때 연무장의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쾅!
바르르 떨리는 문을 넘어 적발의 남자가 들어왔다. 뾰족한 귀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외모를 가졌다. 신비로운 분위기가 경쾌한 기세와 함께했다.
“벌써 싸우냐? 젊다 못해 어려서 그런지 당돌하네.”
그는 히죽거리며 연무장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저자가 여기에 있었나?’
라온이 눈매를 좁혔다.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남자. 지그하르트의 광검이라 불렸던 엘프 검사 리메르였다.
‘은퇴했다고 들었는데….’
단전에 부상을 입어 물러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흐흥!”
리메르는 자신과 버렌을 한 번씩 쳐다본 후 연무장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단상 위로 올라갔다.
“크음….”
버렌은 살짝 입술을 깨물고서 몸을 돌렸다. 어쩔 수 없이 봐주지만, 앞으로 조심하라는 표정 같았다.
“반갑다.”
단상의 중심에 선 리메르가 씩 웃었다.
“너희들의 수련을 총괄할 수석 교관 리메르라고 한다.”
목소리가 가볍다. 경박하기보다 바람처럼 경쾌한 느낌. 리메르는 여유로운 미소를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훈련 참여자는 160명. 교관은 8명. 너희 모두를 가르치기엔 숫자가 좀 많지? 그래서 줄이는 게 좋겠어. 딱 4분의 1로.”
리메르의 여유로웠던 미소에 농축된 장난기가 어렸다.
“주, 줄인다고요?”
“그것도 4분의 1?”
“그게 무슨 소리….”
아이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기초 수련에 참여하는 인원을 거른다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말 그대로 옥석을 가리자는 거지. 난 소수라도 제대로 된 검사를 키워보고 싶거든.”
리메르는 상품을 고르듯 아이들을 보며 손가락을 휘저었다.
“에엑, 저, 저는 오라고 해서 온 건데….”
아까 과자를 내밀었던 녹색 머리 아이가 들고 있던 빵을 떨어뜨렸다.
“전 지그하르트의 방계입니다! 수련생이 되기 전부터 거른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맞습니다! 저희 모두는 가문에서 참여하라는 말을 듣고 온 겁니다!”
“아아, 난 무식해서 직계고, 방계고. 그런 거 몰라.”
리메르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 연무장에선 내가 룰이다. 불만 있으면 내게 권한을 넘겨준 가주님에게 따져.”
수석 교관이 아니라, 흡사 뒷골목 양아치를 보는 듯한 느낌이지만, 외모가 좋으니 멋스러워 보였다.
‘거른다라….’
라온이 턱을 긁적였다. 리메르는 상대의 기질과 잠재력을 느끼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들었다. 그 능력을 이용하여 아이들을 고르려는 것 같았다.
-저 건방진 놈은 무엇이냐.
‘뭐?’
-감히 본왕을 내려다보다니, 마음에 들지 않도다. 저 엘프 놈의 귀를 뽑아버려라.
‘네 눈에 마음에 들 사람이 있을까?’
라스는 그 이름대로 모든 것에 분노했다. 좋아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본왕이 마계에 있을 때는 그 누구도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마족들이 경배하는 진정한 군주의… 이, 이놈!
‘시끄러.’
라스의 혓바닥이 길어지기 시작해서 팔찌를 툭 쳤다.
“그럼 바로 시험을 시작하지.”
리메르는 새끼손가락에 붙은 귀지를 훅 불었다.
“너희는 무학을 익히는데,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재능입니다!”
“튼튼하고 유연한 육체입니다!”
“굳건한 단전!”
“검술과 오러 연공법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이미 시험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손을 들고 각자가 생각한 중요한 요소를 외쳤다.
“재능, 육체, 단전, 검술 다 옳은 말이야. 하지만 그것들은 벽과 지붕이다. 그 아래에 잘 다져놓아야 할 토대가 있지. 바로 체력과 정신력이다.”
“아….”
“음….”
아이들은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는지 손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 중 무학을 배운 녀석도, 배우지 않은 녀석도 있을 테니,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시험을 치르겠다.”
아이들을 가리키던 리메르의 손가락이 스르륵 움직여 야외 연무장을 가리켰다.
“내가 그만이라고 할 때까지 연무장을 뛰어라. 전력으로!”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명이 움직였다. 라온과 함께 판별식을 치렀던 직계 버렌과 봉신 가문 슬리온의 루난이었다.
“이익!”
“가, 가자!”
“달려!”
그 둘을 따라 다른 아이들도 연무장을 뛰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말아라. 본왕에게 명령을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
라온은 라스의 말을 무시하고 신선한 공기로 폐를 채웠다. 앞에서 뛰고 있는 아이들을 따라 땅을 박찼다.
‘확실히 다르군.’
루난과 버렌은 이미 한참 앞을 달리고 있었다. 가볍게 달리는 것 같음에도 다른 사람들이 쫓아오지 못할 속도를 냈다.
오러의 질이 뛰어나고, 특별한 속성을 가져서가 아니라, 어린 나이부터 육체와 정신을 단련했기 때문이다.
-크흠, 이미 달렸으면 가장 앞으로 가라. 왜 맨 뒤에 있는 거냐.
‘네가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지고 싶지 않을 뿐이니라.
‘이건 경쟁이 아니야.’
라온이 단상 위에 걸터앉아 휘파람을 부는 리메르를 보았다. 저자는 다른 사람의 잠재력과 기질을 본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을 살피진 않을 거다.
“후욱….”
라온은 차오른 숨을 뱉어내며 두 눈을 빛냈다.
‘이건 버티는 자가 이기는 시험이야.’
그건 대륙 그 누구보다도 자신 있는 일이었다.
* * *
“확실히 버렌 님과 루난 님이 독보적이군.”
“속도만 빠른 게 아니야. 안정성도 있어. 지금 속도도 전력이 아니니, 저대로 몇 시간이고 달릴 수 있을 거다. 열두 살에 저 수준이라니, 장래가 무섭다. 무서워.”
단상 아래에 선 두 명의 교관은 달리는 아이들을 살피며 잡담을 나누었다.
“올해는 방계 수준도 높네. 제대로 교육해서 보낸 모양이야.”
“추천생들도 마찬가지야. 잘 골라왔는지 뛰어난 아이들이 많아.”
그들은 버렌과 루난만이 아니라, 뒤에서 달리는 아이들도 하나하나 평가했다.
“음….”
아이들 모두를 살피던 교관들은 후위 집단에서 달리는 라온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따라가지 못하는군.”
“환자잖아. 저 정도로 뛰는 것도 대단한 거야.”
“음, 벌써 지쳐 보이는데. 금방 떨어지겠어.”
교관들은 예상했다는 듯 덤덤한 표정으로 다른 아이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다만 그들의 뒤에서 콧노래를 부르던 리메르의 시선은 라온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신기하군.’
라메르의 녹색 눈동자가 찬란한 빛을 발했다.
‘저런 녀석은 처음 봐.’
자신은 다른 일족보다 더 호화로운 자연의 축복을 받아 다른 사람의 상태와 잠재력을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 재능으로 파악할 수 없는 인간은 대륙의 최강자들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그 생각이 처음으로 변했다.
가장 앞에서 뛰는 루난과 버렌도, 그 뒤에서 이를 악물고 뛰는 방계와 추천생들도 자신의 눈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떻게 클지, 어떻게 강해질지 모두 보였다.
딱 한 명. 라온 지그하르트만 제외하고.
‘왜 보이지 않는 거지?’
먹구름이 낀 듯 그의 미래가, 그의 잠재력이 보이지 않았다.
재능이 없어서? 그런 경우가 아니다. 자신보다 강한 자를 보는 듯 인지를 벗어났다는 뜻이었다.
“재미있군.”
리메르가 빙긋 웃었다. 지루해진 시대. 정말 오랜만에 흥미로운 인간이 나타났다.
* * *
“저거 봐라.”
“건방 떨더니, 꼴찌?”
“꼴찌라는 말도 과해. 금세 떨어져 나갈 테니까.”
방계의 아이들은 하위 그룹에서 달리는 라온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별관에서 곱게 자란 놈이 제대로 달릴 리가 없지.”
“저 당황한 표정 좀 봐라.”
“10분도 못 버티겠네.”
세 사람 외에 다른 아이들도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다만 라온의 심각한 표정은 힘들거나 지쳤기 때문이 아니었다.
‘수련인데 그냥 달리기만 한다고?’
전생에서 체력 단련을 할 땐 뒤에 굶주린 짐승을 풀어놓았다.
체력이 다 할 때까지 달리기만 하라니, 그 시절에 비하면 누워서 떡 먹기나 다름없었다.
너무 쉬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