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원죄 (2)
눈을 떴을 때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편함과 고통을 느꼈다.
잘 안 움직여지는 목을 비틀어 몸쪽을 내려다보니 이게 웬걸?
팔다리에 깁스가 달려 있었다. 움직이려면 움직일 수 있겠지만, 그러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이 석고 조각들을 전부 부수지 않는 한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으음…….”
모처럼 깨어났건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천장이나 쳐다보며 시간을 죽이는 게 전부.
그렇게 멍하니 칙칙한 갈색 천장을 구경하고 있더니 비로소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왔다.
“뭔가 오랜만이네. 클레어.”
“…….”
“사람 좀 불러줄래?”
“…….”
“저기, 뭐라고 말이라도 해봐.”
“…….”
클레어는 나를 지긋이 쳐다보나 싶더니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얌전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람을 불러와 주지도 않는 건가? 아니, 무방비한 나를 죽이지 않는 걸 고마워해야 하나?
“어흠! 좀 답답하네. 창문 좀 열어줄 수 있을까?”
“하아…….”
얌전히 앉아 책을 보고 있던 클레어가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난다.
바로 내 근처까지 침묵한 채로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에 살짝 섬뜩함을 느끼기도 찰나.
그녀가 똑바로 창가로 다가가는 걸 보며 안도한다.
그런데…….
탁!
창문이 열리고.
쏴아아아아──
비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를 조용히 직시하며 창문의 미닫이 정도를 조절하는 클레어.
창문을 열어둔 채 클레어는 팔짱을 끼며 나를 지켜봤다.
“아, 그래. 내 잘못이네. 미안한데 창문 좀 닫아줄 수 있을까?”
지금 항의하는 거지?
나를 싫어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다.
“리네아 언니가 다쳤어요.”
“나도 알아.”
“당신 때문이에요.”
“그게 왜 나 때문이야? 예상치도 못한 타이밍에 등장한 그 양아치 같은 꼬맹이 때문이지.”
탁!
창문이 다시 닫힌다.
그리고는 근처에 있는 수건을 들고서는 내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내고는 밑에 깔아둔다.
병 주고 약 주고 잘하는 짓이다.
“도망치지도 않았고.”
쪼르르륵.
이번에는 물을 따라준다. 조금 전까지는 아무래도 화풀이였던 모양.
그렇게 생각한 찰나 클레어 본인이 물을 꼴깍꼴깍 마신다.
“후우. 전력을 다하지 않았죠?”
“…….”
“이게 무슨 민폐인가요?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요?”
“눈이 제법 좋네.”
“멀리서 보면 뻔히 보이는 게 있어요. 검도 쓰지 않았고 총도 쓰지 않았죠. 그렇게 전력을 다하시지 않을 거였다면 차라리 도망이라도 쳐야 하지 않았을까요?”
“할 말이 없네.”
“그런데 입을 털고 계시네요.”
“…….”
애가 이렇게까지 나쁜 아이는 아니었을 텐데……. 도대체 뭐가 이 애를 이런 독설가로 키운 걸까.
애한테 이런 악영향을 끼친 게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리네아는 착하니 그럴 리 없고 타이탄은 멍청하니 불가능하다.
“아무튼, 상처가 나을 때까지는 얌전히 계세요. 그리고 그사이에 생각 정리도 끝내시고요.”
“생각 정리는 끝났어.”
“꿈에서요?”
“어. 아니, 뭔가 말투가 이상한데. 아무튼, 결론은 나왔어.”
대답하고 보니 클레어의 조소하는 얼굴이 보였다. 비꼬는 질문이었는데 진지하게 대답해버렸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요?”
“샌드백이 되자.”
“저런, 몰랐는데 머리도 다치셨네요. 언니가 돌아오면 봐 달라고 하시는 게 좋겠어요.”
“뭐, 농담이고. 일단 뭐가 됐든 대화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해.”
“말을 듣겠어요?”
“그래서 아까 한 말이 농담이면서도 농담이 아닌 거지.”
“…….”
경멸.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다.
나를 향한 증오를 경멸이라는 감정이 뛰어넘은 순간이니까.
“내가 싫냐?”
“그럼 좋을까요?”
“네 오빠를 죽여서?”
“……입 함부로 놀리지 마세요. 어떻게, 어떻게 제 앞에서……!”
클레어가 격렬하게 반응한다.
사실 지금까지는 서로가 버크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려 해왔다.
그 화제가 상처밖에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클레어도 구태여 그 화제를 입에 담지 않으며 화를 삭였으리라.
그런데 이 상황에 내가 그 말을 꺼내버렸다. 눈을 돌리고 있던 상황을 억지로 들이밀었다.
“나를 죽이고 싶지는 않아?”
“그걸 말이라고 해요?”
나는 증오를 마주 봐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 어정쩡한 관계는 클레어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어떻게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던 내 도피이기도 했다.
이래선 안 된다.
이렇게 증오를 내버려 두고 있어봤자 불완전 연소할 뿐이다.
나는 은연중에 클레어와의 관계를 예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달라진 건 버크의 죽음 앞에서 그나마 내가 떳떳하다는 것.
나 혼자 편했을 뿐이다.
“내가 버크를 죽여야 했던 이유를 지금의 너는 알고 있을 거야.”
“…….”
클레어가 나를 노려본다.
그래, 그녀도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처럼 자신의 분노를 삭이고 있었던 게 아닌가.
나로서는 버크를 죽이는 게 맞았다. 하지만 클레어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가족이다.
옳은 일이라는 판단과 가족이 살해당했다는 증오 사이에서 번민하고 있는 게 지금의 클레어다.
“나는 그때 버크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안했어.”
그래서 말했다.
우선은 대화부터. 문제점을 찾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과정.
나는 클레어에게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던 구체적인 과정을 남김없이 털어놨다.
“그래서, 나는 버크를 죽였고.”
녀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너를 거두기로 한 거다. 내 얘기는 일차적으로 여기서 끝났다.
어떤 의미로는 변명이다.
이제 그에 대한 판결을 내려야 할 사람은 클레어다.
“그럼 이제 네가 말해봐. 왜 나를 죽이지 않았어?”
“…….”
“그 단검을 들고 나를 찔렀다면 언제든지 가능했을 텐데.”
침대 옆 탁자 위에 단검이 놓여 있다. 아무리 봐도 이 자리에 있기에는 부자연스러운 물건이다.
조금 전 들고 온 게 아니다.
클레어는 분명 책을 든 채 방으로 들어왔었다. 단검을 들고 들어왔다가 그대로 놓고 갔던 거다.
그렇다면 단검을 저렇게 두고 가도 상관없을 상황이었다는 거다.
즉, 날 죽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걸 들고 왔다는 건,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는 뜻일 테고. 지금 내가 살아있는 걸 보면 중간에 생각을 바꿨을 거라는 소리인데.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거야?”
나를 죽인다는 계획은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었을 거다.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를 녀석이었다면 진즉 그렇게 했을 테니까.
상황을 살폈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는 걸 깨달은 시점에서 저울질했던 걸 거다.
그 결과 이 기회를 틈타 내게 복수를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으나 정작 실행은 하지 못했다.
“…….”
클레어가 치마 밑단을 움켜쥔 채 울먹이기 시작한다.
“당신이……!”
아마 자신조차도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 거다.
복수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음에도 끝에 가서 그걸 번복했다.
“……당신이 오빠의 이름을 불렀으니까요.”
“내가?”
“자는 동안요. 사람 이름을 나열하기에 뭔가 싶었거든요.”
“나한테 그런 버릇이 있는 줄은 몰랐네.”
내가 부른 이름들은 내가 처리해온 마인들의 이름이었을 거다.
단순한 악인이 아닌, 버크와 마찬가지로 상황이 그들을 마인으로 만들어버렸던 상황일 거다.
그저 살아남고 싶어서 눈앞의 유혹에 굴했다. 그렇게 힘을 손에 넣고서 남에게 휘두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죽여야 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으니까.
죽이고 싶지 않은 이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 그랬다.
그런 이들을 죽이는 일 말이다.
“그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져서…….”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해야 할 일을 했다.
하지만 힘드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견디기 힘들 정도로 힘들었던 거 같다. 성녀님의 카운슬링을 받고 괜찮아졌다고 생각했건만, 아직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미처 떨쳐내지 못했던 모양.
아무래도 <침식하는 자>의 비화를 알게 된 것 때문인 듯하다.
“오빠를 죽인 게 괴로웠나요?”
“……그래. 후회하지는 않지만, 분명 하기 싫은 일이었어.”
“그렇군요. 왜 그랬어요? 그렇게 괴로워할 일을 왜…….”
“내가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당신이 하는 일이 뭔데요?”
“최악과 차악 중 차악을 선택해나가는 일이지.”
“…….”
비단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이 세상에는 그런 직업들이 많다.
누군가가 최선을 위해 노력한다면 누군가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최악을 피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차악을 마주치는 법이다.
이 세상은 동화처럼 행복한 결말이 반드시 존재하지는 않으니까.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는 건 저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클레어 라이안의 행동 원리.
“제가 슬퍼해야 한다고. 제가 오빠의 죽음에 분노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가족을 위한 마음.
설령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 이 세상에 그게 가능한 게 본인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거다.
버크의 죽음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죽음으로 만들기 싫었던 거다. 그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목적지로 삼는 건.
그녀가 버크에게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었다.
“그런데 이젠 모르겠어요. 당신을 따라다니다 보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더 모르게 됐어요.”
“나를 용서할 수 있겠어?”
“그래야겠죠. 언젠가는 그래야 하는 게 맞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안 되네요. 저는 아직도 당신이 싫고, 오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거 같으니까.”
“너나, 나나 갈 길이 머네.”
진즉에 이랬어야 했다.
서로에게 품고 있는 감정들이 어땠는지 털어놨어야 했다.
클레어가 됐든, 내가 됐든, 이제야 겨우 출발선에 선 거다.
앞으로 클레어는 증오를 용서로 바꾸기 위해 노력할 거다. 나는 그런 그녀의 그 결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죽지 마요. 제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으니까. 당신을 죽이든, 용서하든, 당사자인 당신이 살아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거니까.”
“그래, 명심하지.”
“이번처럼 멍청한 짓 두 번 다시 할 생각하지 마세요. 제 결의를 헛수고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결론이 닮았네.”
“네?”
“아니, 그냥 그렇다고.”
-이런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잔뜩 벼르고 별러서 복수의 준비를 한 상대 앞에서 그저 멍청하게 목을 들이미는 원수의 모습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난다면?
역시 성녀님의 최측근이다.
아니, 이건 성녀님이 클레어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했던 걸까?
어느 쪽일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그런 대화조차도 내가 꿈속에서 내 입맛대로 나눈 번지르르한 겉치레였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럼 어느 쪽이 됐든 네가 결정하기 쉬운 존재가 되어야겠네.”
“가급적이면 천하의 개새끼가 되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럼 기쁘게 그 목을 찌를 테니까요.”
“그럼 나는 성인이라도 목표로 해야겠네. 단검도 제대로 못 드는 너한테 죽는 건 수치거든.”
나는 클레어와 마주 보며 웃었다. 서로를 향한 조소다.
하지만 그 조소 안에는 분명 친애의 의미도 조금은 있을 거다.
“그럼 여기부터가 본론이야. 이번에 나를 이 꼴로 만든 놈이 어떤 놈인지 말이야.”
“어차피 제가 싸울 것도 아닌데 상관이 있을까요?”
“글쎄. 녀석이 어떤 의미로는 너를 닮았고 동시에 버크와 닮은 녀석이기도 하거든.”
내게 원한을 품고 있는 녀석.
원치 않게 마인이 됐고. 이단심문관에게 결정을 강요당한 녀석.
참 놀라운 일이다. 한 녀석이 그 모든 감정을 품고 있다.
“너는 어떻게 해야 할 거 같아?”
너와 비슷한 상처를 지닌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 * *
“……거, 호위가 필요했나?”
리네아의 호위를 위해 따라온 사냥꾼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리네아에게는 은혜가 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사냥꾼 길드 전체가 은혜를 입은 거다.
몸값 비싼 의사가 공짜로 진료를 해준 건 물론이고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노력하는 게 보였다.
자신도 큰 상처를 입은 상태로 말이다. 생명과 직결되는 부상은 없었지만, 사냥꾼 일을 못 하게 될 수도 있는 부상자들은 있었다.
리네아가 사람 여럿 살린 거다.
그렇기에 그녀가 도시 밖으로 약초를 채집하러 간다고 했을 때는 기쁜 마음으로 따라 나왔다.
그 약초라는 것도 부상자들을 돌보기 위한 게 아닌가.
그런데…….
“허억……. 허억…….”
리네아의 체력은 사냥꾼이 상정한 걸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수인의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리네아의 몸놀림이 가벼웠다.
산을 가볍게 뛰어다니는데 그 뒤를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숨이 찰 정도였으니 오죽했을까.
“애들 치료할 때 돌아다니던 거에 눈치챘어야 했는데.”
입에서 단내가 난다.
사냥도 이렇게 열심히 해본 적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강한 사냥꾼에게 맡길 걸 그랬다.
도시 밖의 상태에 자세했고 별다른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이라 생각했기에 따라나섰건만…….
“아이고야.”
사냥꾼은 그래도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리네아의 뒤를 따라붙었다.
물론 그런 각오와 달리 몸은 솔직했다. 머지않아 리네아를 놓친 사냥꾼은 초조한 마음으로 주변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생길 거 같지는 않다. 이미 안전에 관해서는 당사자도 조심하고 있으니 문제는 없다.
당장에 도시에서 행패를 부린 빌어먹을 꼬맹이가 도시 밖으로 나갔다는 정보도 없는 상황.
어떤 의미로는 도시 밖이 안쪽보다도 안전할 수도 있는 거다.
그렇기에 그를 움직이는 건 오로지 책임과 체면뿐.
샤샥!
“많이 기다리셨나요?”
“워메! 깜짝이야!”
그렇게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수색하고 있던 사냥꾼은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 나타난 리네아의 모습에 질겁하며 물러났다.
만약 지금 나타난 게 리네아가 아닌 마수였다면 죽었으리라.
“어흠! 다 캐셨습니까? 선생님.”
“다는 아니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걸 찾은 거 같아서요.”
“예?”
리네아는 사냥꾼의 눈앞에 자신이 캐온 약초를 들이밀었다.
사냥꾼도 알고 있는 약초였다.
타박상에 쓰는 약초로 흔하면서도 효과가 그럭저럭 쓸만해서 그도 길 가다가 보이면 몇 뿌리씩 채집하곤 하는 것들이었다.
‘이걸 왜 뽑아왔지?’
물론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흔하다는 점이었다.
이런 건 굳이 채집하러 오지 않아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그녀가 원했다면 사냥꾼 길드 차원에서 공짜로 내어줬을 거다.
그런 사냥꾼의 의문을 눈치챈 걸까? 리네아는 조용히 덧붙였다.
“이거 독초예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