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이단심문관의 악마 사냥법-39화 (39/42)

39화. 원죄 (1)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게 내가 <침식하는 자>의 딸과 마주친 이후 내린 결론이었다.

우선은 정보를 모으려고 했다. 그녀와의 전초전을 통해 능력을 밝혀내고 대응책을 찾으려고 했다.

그렇게 그녀에 대한 공략법을 찾아낸 이후 루비아에서 일찍이 쫓아낸다면, 그렇게 <침식하는 자>의 곁으로 돌려보낼 수만 있다면.

앞으로 찾아오게 될 멸망의 효시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일이 막혔다.

상대가 나를 증오한다. 그 증오가 마치 연좌제처럼 이어진 것이라는 건 알지만 차마 항변할 수 없었다.

나는 모르는 과거의 일.

하지만 내게 그에 대한 책임이 하나도 없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나는…….”

그녀가 만신전이 격리해둔 마인들 사이에서 비롯된 존재라면.

그렇게 버려진 사람들의 증오가 모여 탄생한 원념이라면.

“할 수…….”

나는 과연 그들 앞에서 떳떳한가.

나는 그들이 그 끝에 어떻게 될지 예측했다. 그렇기에 버크에게도 그런 식으로 죽음을 종용했다.

때로는 죽음이 더 나을 수 있다고. 그렇게 이미 알고 있었는데.

“……없어.”

그렇기에 그 증오가 합당하지 않다고 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만신전 자체가 적이고 나는 그 누구보다도 그녀가 증오하던 만신전의 부정적인 이면 그 자체가 아니던가.

신 앞에 떳떳할 수 없다고?

그렇기에 역십자를 새긴다고?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주제에?

변명으로 얼버무리는 주제에?

“로스트 씨.”

“……이제 괜찮아.”

의식이 부상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약해져 있던 정신이 다시금 위선의 벽을 두르기 시작한다.

주변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그때마다 마차에 부딪힌 것 같은 충격이 전신을 내달린다.

몸 안에 느껴지는 신성력은 거의 바닥. 임시로나마 치료하려고 해도 한참이나 부족한 양이다.

“나는 괜찮…….”

그때 앞부분이 축축하다는 걸 깨달았다. 비가 온다는 걸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어딘가 질척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게 피라는 걸 알았다.

알아챌 수 있었지만 그에 대한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 대신 나는 이런 상황에 해야 할 말을 툭 내뱉었다.

“구해줘서 고마워.”

고통 속에서도 희미하게 피어나는 리네아의 미소를 확인한 후.

나는 다시금 잠에 빠져들었다.

*     *      *

로스트는 루비아를 노리고 왔다.

그 정도는 리네아 역시 간단히 눈치챌 수 있었다. 그저 진로상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처음부터 이쪽을 목적지로 삼았다.

그건 니다벨리르에서부터 준비해둔 일이다. 제국의 수도를 향하는 거라면 루트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로스트는 니다벨리르에서 대량의 발열석을 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리 대비하고 있던 게 분명하다.

매일 비가 내리는 도시이기에 다른 도시에 비해 발열석의 가격이 훨씬 더 비싸기 때문이다.

마치 교역을 하는 상인처럼. 광산 도시 니다벨리르에서 발열석을 사서 루비아에서 쓴다.

몸이 약한 클레어를 위한 동선.

지극히 계획적인 루트다.

“하아…… 읏!”

한숨을 내쉬던 리네아는 몰려오는 고통에 몸을 떨었다.

벌써 며칠이 지났다. 로스트는 아직도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그녀의 상처도 아직 남겨진 채.

그나마 의사인 그녀였기에 조치는 완벽했지만, 짧은 시일 내에 완전히 치료시키려면 사제의 신성 마법이 필요하다.

“언니.”

“괜찮아요.”

물론 루비아에도 사제는 있다.

만신전 소속은 아니더라도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제는 얼마든지 있다.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리네아의 상처 역시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을 터였다.

“주기만 하는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으니까. 이건 나중에 로스트 씨에게 봐 달라고 할 거예요.”

“……바보 같아요. 결국 로스트 씨를 위해서라는 소리잖아요.”

로스트가 부채감을 느끼지 않도록 그가 해야 할 일을 일부러 남겨뒀다. 리네아는 그렇게 로스트와 대등한 관계를 쌓아갈 생각이었다.

귀족인 그녀가 아는 방법이라고는 서로에게 빚을 지우는 것뿐.

언뜻 서투르기까지 한 그 방식을 보며 클레어는 혀를 찼다.

“그러면 저는 뭐가 돼요?”

“아하하…….”

“저는 줄 수 있는 건 없고 받아간 것만 잔뜩 있는데.”

클레어는 능력이 없다.

얼마 전에 릴리아의 공격을 한 번 막아 세웠다고는 하지만 그간 받아온 게 더 많았다.

리네아가 서로에게 빚을 지워두고 한다면 그녀는 반대.

서로에게 빚을 완전히 없앤 후가 되어야 비로소 그녀의 질척이는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터다.

“약초가 필요할 거 같네요.”

“마을 밖으로 나가시게요?”

“안쪽에는 자라지 않을 테니까요. 조금 떨어진 장소까지 가야 채집할 수 있는 게 있을 거예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호위를 붙여야죠. 그리고 저도 제 몸 건사할 능력은 있으니까요.”

리네아는 방긋 웃으며 품 안에 숨겨둔 단검의 손잡이를 내비쳤다.

고작해야 호신용.

하지만 그녀 손에서는 상대를 도축해버리는 무시무시한 무기다.

“그럼 잠시 다녀올게요. 타이탄 씨 돌아오면 설명 부탁해요.”

리네아는 작은 짐가방을 등에 멨다가 등의 통증 때문인지 옆으로 빗겨 메며 쓴웃음을 지었다.

타이탄은 로스트를 탈출시킬 당시 릴리아를 막아선 이후로 돌아오지 않았다. 사건 현장에는 거대한 크레이터가 남아 있었으나, 죽었을 거라고는 의심하지 않았다.

타이탄이 살해당할 거라는 생각이 잘 안 들뿐더러 분노하는 와중에도 누군가를 죽이는 걸 주저했던 릴리아의 모습 때문이다.

돌아오지 않는 건 모종의 이유가 있는 게 분명하다.

“조심히 다녀와요. 언니.”

클레어는 잠시 미소 짓는가 싶더니 종종걸음으로 떠나는 리네아를 무표정한 얼굴로 지켜봤다.

“정말…… 바보 같네요.”

로스트는 무방비한 상태다.

타이탄은 돌아오지 않았고 리네아는 도시 밖으로 외출.

그렇다면 남은 사람이라고는 클레어와 움직이지 못하는 로스트뿐.

“제가 누군지 잊어버린 거 아닌가요? 제가 왜 이 여행을 따라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을 텐데…….”

클레어는 등 뒤에 단검을 숨겨두고 있었다. 리네아가 완전히 떠난 후 그걸 자신의 앞으로 가져와 한동안 멍하니 쳐다봤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아직 마음의 정리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일지도 모른다.

“정말…… 바보 같아.”

클레어는 고개를 숙였다.

우산으로도 미처 다 막아낼 수 없는 비가 흐르고 있었다.

*     *      *

꿈을 꾼다.

몇 번이고 꿨던 꿈이다.

소소한 일상의 한순간. 그 순간 중에 하나.

“짠! 오늘은 홍차 안에 백작약, 숙지황, 당귀, 천궁, 계피와 대추를 섞은 차를 준비해봤어요!”

“그건 이미 홍차라기보다는 다른 차가 아닙니까?”

“사실 맞아요!”

“으음…….”

어김없이 홍차에 이것저것 섞은 것을 성녀님이 준비해온다.

그리고 그걸 나와 클레어가 묵묵히 처리하는 일련의 흐름이다.

다만 이날은 조금 달랐다.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벌써요?”

담담한 표정의 클레어가 성녀님이 준비한 괴식을 단숨에 비우더니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건 조금 먹기 편했던 모양.

평소보다도 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에 성녀님이 아쉬움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 이건 아마 첫 번째 기억.

성녀님이 준비한 모두와 함께 즐기는 티 타임의 첫 개시였다.

이때는 뭐, 처참했었다.

“죄송합니다만, 일이 바빠서.”

클레어는 성녀님의 섭섭하다는 듯한 말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성녀님과 함께 있는 시간보다도 나와 있는 걸 거북해했던 거다.

“큰일이네요. 두 분이 어서 빨리 친해지지 않으면 제가 부담스러워서 일할 수가 없는데.”

“원수와 피해자를 한 자리에 모은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사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버크의 죽음에 내가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그와의 약속을 어김으로써 버크는 최악의 결말을 맞이했다. 내게 버크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가 하면 아니다.

하지만 도의적인 책임을 논한다면 나 역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클레어는 그 도의적 책임과 실질적 책임 사이에 서서 내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는 걸 택했다.

사실 지금과 큰 차이는 없다.

그녀는 나를 증오하지만, 그 증오를 표현하는 일은 없었다.

“로스트 씨의 잘못이 아니에요.”

“압니다. 제 잘못이 아닌 건.”

그건 나도 알고 클레어도 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나.

도의적 책임의 문제라고.

“모든 사람이 성녀님처럼 자애로울 수는 없습니다.”

“…….”

“누군가에게는 타인을 증오하는 게 삶의 원동력일 수 있어요.”

적어도 클레어는 그랬다.

나를 미워했고 버크를 마인으로 만든 마족들을 증오했기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그녀의 원동력은 증오다. 증오를 불태워 힘을 키웠고 살아남았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에게서 이제 와 증오를 멈추라고 해선 안 된다.

그건 그렇게 살아온 당사자의 삶을 무시하는 거니까.

“이번만큼은 성녀님이 틀렸습니다. 그 아이는 저를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버텨왔으니까요.”

왜 이런 시기에 이런 꿈을 꾸게 됐는지 알 수 있었다.

클레어의 증오를 기억한다. 결코, 끊어낼 수 없는 내 원죄를 말이다.

그건 시간을 되돌려서야 겨우 완화할 수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말입니다. 저는 그 증오를 납득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그렇다. 나는 납득했다.

“그 증오의 방향이 옳지 못하다는 걸 압니다. 그 괴물 녀석이 제게 보내는 증오는 연좌제나 다름없는 불합리한 증오였습니다.”

마치 상처 입은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던 소녀를 기억한다.

모든 걸 부수며 다가와 기어코 내 목을 비틀 듯이 붙잡은 소녀를.

그 눈물을 쏟아낼 듯한 슬픔을 나는 직시하고야 말았다.

“분명 만신전 소속의 사제 중에서는 선량한 사람이 있을 겁니다. 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신실하고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런 이들이요.”

그들에게 소녀의 증오가 향한다면 나는 그걸 막아 세웠을 거다.

그건 옳지 못하니까. 그 증오의 방향은 틀렸으니까.

설교라도 했겠지. 온 힘을 쏟아부어 막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어째서인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저는 아닙니다. 소녀가 증오한 게 일개 개인이 아닌 집단일지라도, 꼬맹이가 생각하던 만신전의 부정적인 인식. 그 인식에 딱 들어맞는 게 저였으니까요.”

너무나도 광범위한 증오. 하지만 그 증오가 향해야 할 명확한 범위 내에 나는 속해있는 사람이다.

나는 미움받아 마땅한 짓을 해오고 있었던 거다.

“이건 제 원죄입니다. 그러니 저는 그 꼬맹이를 설득할 수 없어요. 저는 이미 죄인입니다.”

예전과 다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못했던 거다.

-버크 라이안, 너한테는 실질적으로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그 선택지를 입에 담았을 때.

나는 그 말의 의미와 무게를 진지하게 고찰해봤어야 했다.

관습적으로 내뱉은 말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 생각하지 못했다.

“성녀님. 성녀님이라면 어땠을까요. 그 꼬맹이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설득할 수 있었을까요?”

그래, 성녀님이라면.

내가 존경해 마지않던 그녀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나와 달리 진정 자애로운 사람이니까.

일방적인 증오를 부정하고 상처 입은 짐승을 어르고 달래 집으로 돌려보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이미 나조차도 나를 부정하고 있다.

나는 할 수 없는 일. 내가 감히 입에 담아봤자 기만일 뿐.

“■■■ 씨.”

“네.”

“노력은 해보셨나요?”

“제가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 죄를 더 뒤집어쓸 각오는 안 해보신 건가요?”

“…….”

“■■■ 씨의 말대로예요. 이미 저지른 죄는 되돌릴 수 없어요. 달라지려는 모습조차도 피해자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어요. 누군가는 자신을 상처입힌 이가 파멸로 치닫기만을 바랄 수도 있으니까요.”

성녀님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차를 그대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런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잔뜩 벼르고 별러서 복수의 준비를 한 상대 앞에서 그저 멍청하게 목을 들이미는 원수의 모습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날 거라고.”

“……그럼 싸우란 말입니까?”

“상대가 화가 났다면 그 화를 모조리 받아들일 정도로 각오를 하세요. 잔뜩 분풀이할 때까지 제대로 받아낼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 뭔가 달라집니까?”

성녀님이 찻잔을 손가락 끝으로 툭툭 건드린다.

그리고는 배시시 웃는다.

“속은 후련해지지 않을까요?”

“샌드백이 되라는 뜻이군요.”

“아니면 전의를 불태울 만한 강적이 되어주는 것도 방법이죠.”

“별로 좋은 방법 같지는 않은데.”

“그러면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어요? 이미 죄인인데.”

“하……!”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아무래도 그녀는 내가 알던 것처럼 마냥 자애롭지는 않았던 모양.

제법 따끔한 훈계에 정신이 번쩍 들 정도다.

“그럼 지금부터 뭘 해야 할까요? 뭘 해야 상대의 증오를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죠?”

“대화입니까?”

“저런, 문제가 너무 쉬웠나요?”

“답은 간단하지만, 그 답을 실천하기 힘들 거 같은데요. 상대가 제 말을 듣기나 하겠습니까?”

“옆에서 시끄럽게 조잘거리면 조용히 하라고 소리라도 치겠죠.”

“그러다가 도중에 몇 대 얻어맞고 말입니까?”

“몇 대만 맞으면 다행이게요.”

성녀님과 나는 웃었다.

별거 없는 농담일 뿐인데도 이토록이나 마음이 놓인다.

“그럼 몇 대 얻어맞으러 가야겠군요. 상대가 나의 뭘 싫어하는지 들으려면 꽤나 맞아야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클레어가 먼저 떠나고 나와 성녀님만이 남아 대화를 나누던 공간.

그래, 처음에는 이랬다.

클레어와 나의 관계는 지극히 불편했고 서로 얼굴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껄끄러워할 정도였다.

그런데 훗날 어떻던가.

성녀님이 끈질길 정도로 우리 둘이 대화할 기회를 만들어줬고 결국 별다른 대화는 나누지 않아도 함께 차를 마시는 정도가 됐다.

너무 어리석었다.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게 잘못이다.

원래 노력은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는 법인데. 몇 번이고 좌절하며 나아가는 게 당연한 건데.

“조언 감사합니다. 성녀님.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떠나가는 나를 보며 성녀님은 홀로 남은 의자에서 손을 흔들었다.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한편.

“그럼 안녕히. 나의 ■■■.”

기대감이 잔뜩 묻어나오는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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