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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이단심문관의 악마 사냥법-36화 (36/42)

36화. 침식하는 자 (1)

쿠루드는 로스트 일행들을 루비아까지 안내했고 내친김에 같은 사냥꾼인 그들을 사냥꾼 길드로 데려오기까지 했다.

다만 그 과정이 묘한 흐름과 함께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뭐냐 이거.”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길드 내 결투장 한복판.

객관적인 실력 확인이 필요할 때 쓰는 일종의 결투장이었고. 자신은 그 위에 올라서 있었다.

실로 교묘한 흐름이었다.

이것저것 얘기하다 보니 그냥 지나치긴 힘들 거라는 말이 나왔다.

첫인상은 조금 독특하긴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다. 제아무리 사제라고 한들 험악해질 수 있다.

그래서 의심하지 못했다.

조금 피로해 보이는 사내의 부드러운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당연한 느낌. 그가 만신전의 사제라는 확고한 직위까지 갖춘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니 자신들도 루비아에 체재하는 동안에는 어느 정도 협력하겠다는 말이 나오자 역시 사제는 사제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덧 서로의 합을 맞춰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와아아아아!!”

어디까지나 합을 맞춰보자는 말이었지 이렇게 콜로세움의 검투사 같은 상황이 될 일은 아니었을 터.

“흠.”

눈앞에는 거대한 망치를 비롯한 무기들을 점검하고 있는 오크.

이유는 모르겠지만, 관중이 된 채 소리치고 있는 사냥꾼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광기가 흐르는 분위기까지.

누가 만든 분위기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쯤 되면 뺄 수도 없다.

상대를 철저하게 쓰러트리지 않으면 관중석 쪽에서 야유와 함께 난동을 부릴 듯한 분위기다.

쿠루드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대기석에 앉아 있는 로스트 일행의 모습을 살폈다.

연초를 입에 물고 있는 게 상당히 권태로워 보였다.

아까까지의 부드러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이미 일 끝났다는 듯한 노골적인 분위기.

“한 수 부탁하지.”

“음…… 그래.”

이렇게 사람이 몰려든 와중에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쿠루드에게도 길드 마스터의 체면이라는 게 있다.

안 그래도 최근 일 때문에 여러모로 눈총을 사는 상황.

-특별할 것도 없어. 녀석의 발길질 한 번에 이렇게 됐지. 덕분에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니까?

쿠루드는 자신이 말했던 치부를 떠올리고서는 이를 갈았다.

너무나도 절묘한 한 수다.

관객을 모은 게 그 증거다.

잠깐 인사시킨답시고 루비아의 사냥꾼들을 소개해준 게 이렇게 돌아왔다.

“평소와 같이 끔찍한 짓을 저지르셨군요. 로스트 씨.”

“원래 선교와 선동은 한 글자 차이인 법이야. 그러니 사람은 늘 상대에게 진심이어야 하는 법이지. 나는 진심으로 호소했을 뿐.”

거짓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들로 선교하지 않는다면 어떤 말도 그저 선동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이건 선교였나요?”

“선동이지.”

“……로스트 씨는 신에게 죄송하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

“좋은 질문이야, 리네아.”

로스트는 품에 소지하고 다니는 이단심문관의 가면을 꺼내 썼다.

“안 그래도 송구스러워서 가면에 역십자를 새긴 거거든.”

어쩌겠는가.

로스트는 본디 신에게 송구스러워할 만한 일을 떠맡는 자.

교단의 뒤처리 전문반이니까.

리네아는 로스트의 일면을 알아갈수록 한숨이 나왔다. 비밀이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사람을 몰아세우는 게 보통이 아니다.

사제인 것치고는 성격이 너무 더럽다. 물론 그가 소문으로나 듣던 이단심문관이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비가 거세지니 비옷에 빗방울 안 세게 좀 더 잘 여며.”

“네.”

비가 거세지자 로스트가 우산을 펼쳐 클레어에게 씌워주는 모습을 보며 리네아는 점점 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평소 하는 짓은 그래도 성직자로서의 면모는 확실히 있다.

아마 그 간극의 낙차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리라. 그렇기에 리네아가 단언할 수 있는 건 하나.

‘나쁜 사람은 아닌데.’

고작 그 정도뿐.

정작 그녀가 로스트에게서 알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는 단 하나도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리네아가 로스트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멍청한 놈이. 조력자를 찾으랬더니 웬 뱀 같은 놈을 데려왔구나.”

성격 고약해 보이는 노인이 로스트 일행 사이에 들어왔다. 값비싼 장신구와 의류만 봐도 보통 인물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냥꾼으로는 보이지 않는군요.”

“그럼 이 나이 먹고 내가 창칼이라도 들겠느냐?”

“건강관리를 잘하셨다면 그것도 아니라고 단언할 수는 없죠.”

“그래서, 나는 오늘내일한다고 말하고 싶은 게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르신. 아직 정정해 보인다는 뜻이었습니다. 축복이라도 걸어드릴까요?”

로스트는 갑작스레 말을 걸어온 깐깐해 보이는 노인의 힐난에도 불구하고 여유롭게 대응했다.

마치 올 줄 알았다는 듯한 태도였기에 리네아는 이번에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상인. 맞으십니까?”

“맞다. 저놈이 그런 것도 설명하더냐? 그랬으면 당장에 머리를 후려쳐야 하는데.”

“아뇨, 그저 사냥꾼 중에 상인 편을 드는 자들이 있다면, 상인 중에도 사냥꾼 편을 드는 사람이 한두 명은 있겠지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게 아니면 교착 사태까지 갈 수도 없을 테니까요.”

상인과 사냥꾼들.

무력을 내려놓고 보면 서로 간의 힘의 차이는 너무나도 극명하다.

“네가 저놈보다는 낫구나. 그래, 우리 뱀 새끼. 무슨 속셈인고?”

“속셈을 묻기 전에 적어도 자기소개는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상인 길드 루비아 지부의 마스터 앤이다. 애송아. 이제 네 차례구나? 뭐 하는 놈인고?”

“로스트라고 합니다. 뭐, 보다시피 신실하고 선량한 사제 일을 하는 사람이지요.”

“요즘 사제는 어른 앞에서 연초나 뻑뻑 피워도 된다더냐?”

로스트는 앤의 말에 싱긋 웃더니 그대로 연초를 내려놨다.

트집이나 다름없는 말이었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지킬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건 뭔 꼴이지?”

“뭐, 이쪽 일행의 스트레스 관리를 조금. 일에는 제대로 협력할 테니 그리 화내지 말아 주시죠.”

“협력, 너희들이 그 꼬맹이 앞에서 뭘 할 수나 있을까?”

“지금부터 그걸 확인하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객관적인 능력 차이를 확인해보는 걸 선행해야죠. 상인이면 알지 않습니까?”

“알지. 정확한 계산 없이 일하는 멍청이였으면 상인을 할까.”

“그겁니다. 전 상인은 아니지만, 계산 정도는 하려는 겁니다.”

“사제도 계산한다더냐? 나중에 가서는 신도 숫자로 나누겠구나?”

“하하! 재밌는 농담이십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대화.

리네아는 슬그머니 클레어의 옷자락을 잡아끌며 거리를 벌렸다.

독사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가 물리면 큰일. 연약한 초식 여우인 그녀는 이런 위험한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능했다.

“뭐 일단 보면서 얘기하시죠. 제법 재밌는 구경거리 아닙니까? 오크와 사냥꾼 길드 마스터의 결투. 둘 다 희귀 종족인 건 둘째치고 한쪽은 마나를 수족처럼 다루지만 한쪽은 마나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정반대의 성향까지.”

“혀가 길구나. 그런 식으로 다른 놈들을 구슬린 게냐?”

“당연히 다른 사냥꾼들에게는 더 많은 약을 쳤지요.”

“솔직한 건 마음에 드는구나.”

앤의 얼굴은 하는 말과는 달리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누가 봐도 비꼬는 거였으나 로스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앤 역시 그런 로스트를 힐끗 쳐다보는 한편 말을 이어갔다.

“그럼 애송아 똑바로 계산하는 게 좋을 게다. 너희들이 협력하겠다고 한 상대가 어떤 수준일지.”

“쿠루드 길드 마스터에 대한 평가가 생각보다도 후하시군요.”

타이탄과 쿠루드 길드 마스터 간의 결투가 시작되고.

그 후한 평가의 이유가 드러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연중 비가 쏟아지는 회색의 도시, 루비아에 특화된 회색의 오러가 환경에 녹아들어서였다.

로스트도 예상한 일이긴 했으니 생각 이상으로 파악이 힘들었다.

자잘하게 쪼개진 오러의 파편은 빗속에 녹아들기 시작한 진눈깨비처럼 구분을 힘들게 했다.

쏟아지는 빗방울 모두를 피할 수는 없는 노릇.

타이탄은 쿠루드의 맹격에 금세 피투성이가 됐다.

“노력하던 걸 봐왔으니 평가가 후할 수밖에 없지. ……그리고 그러니 더욱 절망스러운 게야.”

그런 일방적인 상황에 앤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결과는 난 것 같구나.”

쿠루드는 강하다.

그리고 그런 쿠루드를 가지고 논 게 바로 그 괴물이다.

그저 떼를 쓰는 어린애. 그런 애한테 당해버렸다.

쿠루드의 자존심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유치한 촌극이다. 애송아, 너도 괜히 연고도 없는 곳에서 그런 경험하지 말고 얼른 떠나거라.”

“어떻게든 도시를 구하시려는 쿠루드 길드 마스터와 달리 상당히 회의적이시군요.”

“괜찮다. 사실 그리 큰 문제도 아니야. 그 꼬맹이는 결코 사람을 죽이지 않으니까. 조금 고생하면 될 일이지. 타지에서 온 너희까지 끌어들일 만한 일은 아니다.”

“저와는 생각이 다르시군요.”

“어떤 생각이?”

“첫째로, 결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콰아앙!

그때를 기점으로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던 타이탄의 반격이 시작됐다. 특유의 완력으로 쏟아낸 일격이 경기장 바닥을 후벼 파듯 돌과 바위를 흩날렸다.

자잘한 오러라면 그 힘의 작용범위 역시 좁을 수밖에 없다.

얕더라도 넓게 퍼트리면 막아내지 못할 것도 없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모조리 피할 수는 없어도 비를 막아내는 건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다.

“우의도 좋지만, 이 도시에는 비를 피할 공간이 필요하겠군요.”

로스트는 젖어 들어가기 시작한 자신의 소매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의로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다.

그리고 그건 우산도 마찬가지다.

어떤 방식으로든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옷자락을 적신다.

지금 이 도시의 상황이 그렇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 서부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남이 신경 쓸 만큼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하셨습니까? 가랑비를 맞고 있다가는 옷이 젖는 것만이 아니라 감기에 걸릴 겁니다.”

“금방이라도 그칠 빗줄기를 대비하겠다고 지붕을 치는 것만큼 호들갑은 따로 없다. 애송아.”

“비가 그치겠습니까?”

떼를 쓰는 어린애. 그 말이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도시에서의 패악이 질려 금세 폭주를 멈출 수도 있겠지.

그 끝에는 새로운 재미를 찾기 위해 도시를 떠난다는 발상까지 떠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도시에서 몇 년이고 더 눌러앉아 있다면? 애초에 루비아여야 했던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 않나.

로스트는 이 비가 쉽사리 그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러니 우의도 우산도 아닌 비를 피할 지붕을 마련하려는 거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뭐든 임시방책에 불과하다.

“하……! 이제 보니 우연이 아니었군. 우연이 아니었어! 그 꼬맹이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지?”

“그 정체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상세한 내용은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쿠루드 길드 마스터가 말해준 정보가 도움이 됐죠.”

앤은 확신이 담긴 로스트의 말에 혀를 찼다. 상인의 직감이 말해준다. 상대는 우연히 루비아에 온 게 아니라 노리고 찾아온 거다.

애초에 겸사겸사나 협력하는 게 아니라 본 목적이 그쪽이었다.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연보다는 훨씬 더 신뢰가 생긴다.

“애송아. 너는 역시 사제보다는 사기꾼이 직업에 더 맞겠구나.”

“그럴 리가요. 저는 사제가 천직입니다.”

“그래서? 신실한 사제 양반. 그 미친 꼬맹이의 정체가 뭐라던가?”

로스트는 상인 특유의 이채 어린 눈빛을 띠기 시작한 앤의 얼굴을 보며 조용히 가면을 뒤집어썼다.

문뜩 저 멀리서 이쪽을 주시하며 광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는 보라색 머리의 소녀가 보였다.

한순간 피가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침식하는 자의 피붙이.”

이렇게 소란스러운 장소에 있음에도 눈에 확 띈다.

하나둘 타이탄과 쿠루드 간의 결투를 향하던 사냥꾼들의 시선이 조금씩 뒤를 향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향하는 험악한 시선에 껄렁한 느낌으로 지붕 위에 걸터앉아 있던 소녀가 히죽 웃는다.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무슨 일이 터지면 대륙을 뒤엎어서라도 데리러 올 만큼 애지중지하는 아픈 손가락입니다.”

몸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침식이 요동치고 있었으니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이질은 숨길 수 없다.

앤은 조용히 뒷걸음질 쳤다.

로스트는 직감했다.

상대는 말로 해서 알아들을 만큼 이성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겠군.”

“그럼 고래 싸움을 대비하시죠. 등이 터져도 목숨은 건져야죠.”

“그래야겠어.”

앤은 멀리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호위들을 불러 모으는 한편 조용히 뒷걸음질로 도망쳤다.

뒤를 보여서는 안 된다.

그건 마치 맹수와 만났을 때 행하는 행동 같았다.

떼를 쓰는 어린애? 차라리 그랬다면 귀엽기라도 했을 거다.

눈앞에 있는 건 인간의 모습을 취했을 뿐인 짐승이다.

그리고 그 짐승은 갑작스럽게, 당돌하게. 어떠한 전조도 없이 마주치게 된 미증유의 재앙처럼.

“으히히히히히!”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게 무대 위로 난입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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