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이단심문관의 악마 사냥법-35화 (35/42)

35화. 해를 기다리는 도시 (3)

1년 365일 비가 내리는 도시.

나름의 특수성이 있기에 관광 도시로도 제법 유명한 편인 루비아는 둔탁한 회색의 공간 속에서도 나름의 활기를 자아냈다.

연중 비가 내린다는 게 뭐가 좋겠느냐마는 다른 곳에는 없는 특별함이라는 게 아무래도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모양이다.

그렇게 루비아는 교역과 관광업, 그에 미약하게나마 사냥꾼들의 소재 수집까지 더해 성장했다.

그리고 그 모든 건 인구의 유동성을 기준으로 잡은 그림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됐다.

단 한 명의 존재로 인해 도시의 기반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제3세력의 출현. 그로 인한 상인들의 피해. 오랜 시간 축적되온 인식 차로 인한 갈등의 골.

더군다나 폭력적인 성향과 무차별적인 테러로 인해 유동 인구마저 줄어들 게 뻔한 상황.

“그건 괴물이었어. 적어도 겉보기로 판단해선 안 될 괴물.”

“그랬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래. 당연한 일이지. 상인들의 요청이 없다고 해도 자고 나란 도시에서 활개를 치는 녀석을 가만히 내버려 둘 정도로 사냥꾼들이 어른스러울 거라 생각해?”

하긴, 그렇게 어른스러운 사람들이었다면 사냥꾼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거다.

무력을 쓸 수 있는 직업은 널리고 널렸으니 말이다. 융통성이 있는 녀석이었다면 애초에 사냥꾼 대신 상단의 호위를 했겠지.

그게 성격이랑 맞지 않으니 사냥꾼을 선택한 거 아니겠는가.

“처음에는 3명이었다.”

난동부리는 꼬맹이가 있다는 소리에 근처의 주정뱅이 사냥꾼이 훈계하기 위해 나섰다고 한다.

“3명 모두 떡실신을 당했지. 그런데 술에 취한 놈들이 당해봤자 그놈들을 멍청한 놈 취급하지 상대를 경계하는 놈들은 없거든.”

“추가로 피해가 나왔겠군요.”

“그렇지. 그 떡실신 당한 3명이 이번에는 동료 사냥꾼들까지 불러서 우르르 달려들었어.”

“몇 명?”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20명 언저리였던 거 같아.”

“적지 않은 숫자군요.”

“그렇지.”

루비아의 도시 규모를 생각해 보면 사냥꾼의 1/10은 동원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 우르르 몰려간 인원 전부가 사냥꾼일 리는 없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번에는 다르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지. 무차별적인 파괴와 폭력을 일삼는 데 더해 사냥꾼 20을 골로 보낼 수 있는 녀석을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직접 나섰습니까?”

“그래.”

쿠루드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소맷자락을 걷어 올렸다.

멍으로 얼룩진, 군데군데 용의 비늘이 박혀 있는 팔뚝.

아니, 박혀 있는 게 아니라 본디 용의 비늘이 있었으리라.

그 대부분이 앞선 전투로 인해 모조리 손상당했다.

처참하게 깨진 용의 비늘만 봐도 상대의 무력이 짐작 간다.

“특별할 것도 없어. 녀석의 발길질 한 번에 이렇게 됐지. 덕분에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니까?”

쿠루드의 시선이 한순간 뒤에 서 있는 타이탄을 향했다.

그 시선의 의미는 뻔하다.

“솔직히 저 친구와 비교해도 어떨지 잘 모르겠는데. 정확한 힘은 모르겠지만 말이야. 보이는 대로라고만 생각해도 그렇다고.”

과연, 이미 단순한 신체 능력 면에서도 괴물이라는 소리인가?

타이탄과 비교할 수 있을 거라는 시점에서 상대는 이미 괴물.

만약 녀석이 내가 기억하는 <침식하는 자>와 같은 능력까지 지녔다면 이건 해결 불가능한 문제다.

“그밖에 다른 점은 없었습니까?”

“몸도 재빠른 녀석이라 유효타를 먹이는 게 불가능했는데 공격 자체도 맞질 않았어. 마치 안개를 붙잡는 것처럼 흩어지더군.”

“대놓고 괴물이군요.”

“그래, 그건 인간이 아니야.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고위 사령이 아닐까도 생각해봤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렇다기에는 지나치게 생명력이 넘치는 느낌이었거든.”

쿠루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신체 능력부터가 용인을 가볍게 찍어누를 정도인데 공격을 맞춰도 유효타를 줄 수 없다.

“그런 놈이 있는 장소야. 솔직히 너희들이 도와줬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하지만, 나도 염치는 있어. 이대로 돌아가는 걸 추천하지.”

“염치를 따지기에는 하늘에 떠 있는 게 너무 위협적이군요.”

“사람 물리려고 풀어놓은 거야. 애초에 다가오지 않으면 공격도 안 해. 저놈들을 뚫고 올 수 있을 정도가 아니면 애초에 루비아에 들어오지 않는 게 나을 테니까.”

“가뜩이나 망해가는 도시인데 그런 짓을 해도 괜찮은 겁니까?”

“사람이 다치는 것보다는 낫지.”

생각보다 된 사람이다.

자기 주관을 배제한 채 오로지 객관적인 판단을 했다.

하긴 그러니 길드 마스터라는 위치에도 오를 수 있었겠지.

“그놈은 하루가 멀다 않고 행패를 부리고 있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부수고 때리지.”

“어린애 같군요.”

“그래, 딱 어린애야.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떼를 쓰는 어린애. 그런데 그런 어린애에게 말도 안 되는 힘이 쥐어져 있다는 게 문제지.”

순수라는 건 선할 때도, 악할 때도 있는 법. 아무래도 루비아에 스며든 녀석은 후자인 듯하다.

“어린애한테 얻어맞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어떨까 하는 게 내 생각이야.”

“그렇다는데?”

일단 묻는다.

앞선 일들과 달리 나는 이번 일에 대해 확신이 없다.

니다벨리르에서도 최소한의 정보는 있었건만 루비아에서 얻은 정보는 쿠루드가 말해준 게 전부.

나머지는 직접 얻어내야 할 정보인데 상대가 상대다.

<침식하는 자>의 성질을 생각해 보면 <미래를 그리는 자>는 차라리 귀여운 수준.

더군다나 자신을 억제하고 있던 피노키오와 달리 이번에 만날 녀석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주변에 해악을 부리기까지 한다.

“그럼 제국으로 가는 건가?”

타이탄이 묻는다.

녀석의 목적지는 제국의 수도다. 거기서 애매하게 끝나버린 알렌 와이즈와의 결투를 바란다.

“그건 조금 힘들지.”

“어째서지?”

“여길 거쳐 가지 않으면 시간 관계상 한참 돌아가야 하거든. 준비해둔 물자도 거의 떨어졌으니 루비아에 들어서지 못하면 왔던 길을 한 차례 되돌아가야 해.”

그리고 되돌아간 지점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루비아에 도착하기 전에 들렸던 마을까지는 최소 일주일 거리.

더군다나 루비아를 거치지 않은 길을 찾으려면 그 마을보다도 더 뒤쪽까지 물러나야 한다.

“결국, 들어가야 한다는 걸 왜 물어보나? 기만이라도 할 생각인가? 로스트. 머리 깨지고 싶나?”

“네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으니까 물어본 거야. 그리고 여기에 너만 있냐? 리네아도 있고 클레어도 있는데 물어봐야지.”

“어, 저는 괜찮아요……. 습한 곳은 조금 그렇지만, 니다벨리르보다는 쾌적할 테니까요.”

리네아는 물 흐르듯 넘긴다.

애초에 그녀의 여행에는 이렇다 할 목적이 없다. 우릴 따라나선다는 게 목적 그 자체이니 여기서 괜히 새로운 제안을 할 리가 없다.

“하고 싶은 대로 하시는 게?”

클레어 역시 비슷한 상황.

녀석은 반쯤 얹혀살고 있고 우리의 도움 없이는 홀로서기가 불가능하니 제 주장을 펼칠 리가 없다.

그래, 실상을 따지자면 타이탄의 말이 맞다.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에게만 해당하는 문제.

“그렇다고 하는군요. 아무래도 들어가야겠습니다.”

“그러냐…….”

눈앞의 쿠루드에게는 이런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내 목적이 쿠루드에 있는 그 녀석이라는 걸 알려봤자 괜한 의심 사기 딱 좋은 상황 아닌가.

“그럼 어쩔 수 없지. 여기까지 왔으니 그래도 길 안내는 해줄게.”

쿠루드는 창을 어깨에 걸치고는 그대로 앞장서 걸어갔다.

다만 하늘에는 여전히 와이번 무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저건 계속 그대로 두실 생각인 겁니까?”

“아까도 말했듯이 다가가지 않는 이상에는 사람을 덮치지 않아. 더군다나 나와 있을 때도 마찬가지지. 그렇게 조정해둔 녀석이니까.”

“그렇군요. 그런데 그 ‘사람’의 범주에 오크도 포함됩니까?”

“어……?”

느긋한 태도로 걸어가던 쿠루드가 한순간 멈춰 선다.

아무래도 확신이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사이 여기를 주시하고 있던 와이번 무리가 타이탄을 향해 서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잘 훈련받았다곤 하나, 육식 마수가 아닙니까.”

사람을 덮치지 않는다고 한들,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오크까지 덮치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

“저런. 덮치려나 봅니다.”

쿠루드는 졌다. 다만 죽지는 않았다. 그에 더해 상대에게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그리고 그건 동시에 상대에게 유효타에 가까운 공격을 성공시킬 수는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그의 실력이야말로 내가 상대해야 할 녀석의 실체에 가장 근접해있는 힘일 터.

“불쌍한 관광객들이 습격당하기 전에 해결해주시죠.”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서라도 한차례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

이 멍청한 듯하면서도 사람 좋은, 이상하게 타이탄을 닮은 녀석을 굴리려면 알아둬야 하지 않겠는가.

“이 개 같은 새…….”

쿠루드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     *      *

쿠루드는 강했다.

정말 상상 이상으로 강해서 반대로 깜짝 놀랄 정도로 말이다.

오러를 완벽한 형태로 다듬을 수 있는 마스터의 경지.

그걸 최소한의 출력으로 최대한의 힘을 발휘시켰다.

마치 빗방울처럼 흩어진 작은 오러의 조각들이 제각각 와이번들의 몸에 틀어박혀 숨통을 끊었다.

오러의 색은 옅은 회색.

루비아라는 도시의 환경을 생각해 보면 환경에 녹아들어 가시성도 거의 없을 터였다.

그렇기에 와이번 무리 정도로는 그의 힘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게 불가능했다. 아무래도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 할 거 같은데…….

“훌륭한 공격이었다. 그래서 결투는 언제 하지?”

“안 해!”

그 부분은 이 녀석을 이용하면 잘 해결될 것도 같다.

*     *      *

주적주적 쏟아지는 빗줄기.

그런 회색의 풍경을 창밖 너머로 지켜보는 존재가 있었다.

클레어와 비슷한 나이일까?

대충 길어 방치한 듯 여기저기 삐죽거리는 보라색 머리카락은 바닥에 닿을 듯이 흐트러져 있었고 눈은 섬뜩할 정도로 붉었다.

마족과 마인의 상징으로도 여겨지는 그 눈동자는 클레어와 달리 명확할 정도로 섬뜩한 느낌.

가볍고 활동성 편한 가죽옷 위로는 검은색 코트가 걸쳐져 있었고 후드에는 마치 사자를 연상시키는 듯한 털이 달려 있었다.

“흠…….”

소녀가 그 후드를 눌러쓰자 마치 검은색 사자가 사냥을 위해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느껴졌다.

“으히히히.”

소녀는 쏟아지는 빗줄기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해맑은 미소와 함께 자유롭고 가벼운 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그녀는 <침식하는 자> 언터쳐블의 수양딸. 이 세상에서 유일한 그 괴물의 동족.

“정말 이상해.”

휘릭!

춤을 추듯 한 바퀴 회전한 소녀는 자신의 뒤에 대충 던져져 있는 무리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날뛰는 그녀를 막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다.

이렇게나 폭력으로 응징하고 있음에도 포기할 줄을 모른다.

그 점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폭력과 파괴는 즐겁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에 대항하듯 덤벼드는 자들을 상대하는 건 더욱 즐겁다.

그녀는 그동안 너무나도 억압된 공간 속에서 살아왔다.

그렇기에 그 반동 때문인지 격렬한 삶 속에서야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있지? 너무 이상해서 재밌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그것에 선악은 없다.

그녀가 아는 선악의 기준은 고작해야 사람을 죽이는지 마는지.

그렇기에 죽이지만 않는다면 뭘 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순수한 악의(malice).

“으히히히히히!”

소녀의 감정에 따라 요동치듯 변질된 보라색 기운이 흘러넘쳤다.

마기, 단, 그녀는 다른 마인이나 마족들과는 조금 달랐다.

마인이되 마인이 아니고.

마족이되 마족이 아니며.

악마이되 악마가 아닌 존재.

본디 마인이 된 존재는 자신에게 마기를 부여해준 존재의 명령을 거부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명령은 상위의 존재에 가까워질수록 확고해진다.

하지만 소녀는 아니었다.

소녀와 소녀의 아버지는 다르다.

그들은 악마의 속박에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자신만의 존재를 확고하게 갖춘 이들.

이른바 초월자였다.

“모르겠네.”

소녀는 웃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참극의 의미를 모른 채 그저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소녀는 그렇게 방긋방긋 웃으며 쏟아지는 빗줄기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때려눕힌 이들이 어떻게 되건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저 즐거웠다. 그저 기대됐다.

짜증이 났으며 화가 났다.

지금 그녀가 느끼는 감정의 뜻이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다.

그걸 파악하기에는 소녀가 너무나도 미숙했다. 그렇기에 소녀는 그저 의문을 표했다.

“왜 아빠의 기운이 느껴질까?”

소녀, 릴리아라고 불리는 그 악동(惡童)은 지금 막 루비아에 들어선 ‘침식’을 느낄 수 있었다.

무분별하던 소녀의 행동 원리에 명확한 목적이 새겨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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