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해를 기다리는 도시 (2)
“뭐 하는 거냐! 로스트! 날아라! 날개를 펼쳐!”
타이탄은 갑작스럽게 내던져진 끝에 바닥에 떨어진 나를 향해 가혹한 채찍질을 감행했다.
미친놈이 따로 없다. 변명을 입에 담기도 전에 내던졌다.
“로스트 일어나라, 다시 한번 해보는 거다! 너는 날 수 있어!”
“이 미친놈이…….”
너무나도 갑작스러웠기에 몸을 보호할 만한 신성 마법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게 문제.
나는 그 높은 하늘에서 떨어진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전신의 뼈마디가 시려 오는 가운데, 심지어 타이탄은 이해 못 하겠다는 듯이 나를 다그친다.
그렇게 가만히 서서 소리칠 체력이 있으면 부축 좀 해주면 좋으련만, 타이탄은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마치 아이가 걸음마를 연습하는 걸 지켜보는 보호자처럼 응원만 열심히 해댄다.
진심으로 죽여버리고 싶다.
주체할 수 없는 악의가 내 몸을 잠식하는 기분이다.
이래서 인류가 멜리스를 공략할 수 없는 거겠지.
파직!
누워서 새된 신음을 흘리는 사이 다가온 와이번들을 향해 신성 마법을 전개한다.
이번에 신성력을 대가로 빌려온 건 뇌신 인드라의 뇌정(雷霆).
파괴력은 유피테르의 번개보다 조금 떨어지지만, 번개와 함께 동반되는 천둥은 더욱 거세다.
콰르르르릉!!
반짝이는 번개와 함께 퍼지는 천둥소리에 슬금슬금 나를 집어삼키려고 다가오던 와이번들이 혼비백산으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실제로 내 근처에 있다가 바싹 타버린 녀석도 있다. 이만하면 적은 대가로 충분한 효과를 얻었다.
“끄응.”
신성 마법을 통한 치유와 함께 간신히 몸을 일으켰을 때. 못마땅한 표정의 타이탄이 다가왔다.
“왜 날지 않았지?”
“먼저 날 수 있는지를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
“저번에는 날았지 않나.”
“그건 그때만의 힘이라고 입이 닳도록 설명했을 텐데?”
그래, 나는 이미 그때 당시의 힘에 관해 설명해둔 상태였다.
이 미친 맹수가 나한테 싸우자고 하기 전에 말이다.
“힘이 그렇다고 했지, 날개까지 그렇다고 한 적은 없다. 네놈은 팔다리가 자라났다가 사라지나?”
“……인간은 원래 못 날아. 그것도 신성 마법으로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변명하지 마라!”
이 미친놈이 진짜.
“새는 언젠가 하늘을 날아야 하는 법이다. 그때까지의 여정은 분명 고통스럽겠지만, 창공을 제 마음대로 날 수 있게 된 순간 잘 됐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다.”
“아니, 그러니까 나는 새가 아니라…….”
“변명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어쩌다가 이렇게 미쳤는지 몰라.
애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너는 이미 한 번 날았다. 그러니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된다.”
“사람은 못 난다고 미친놈아!”
“그럼 저놈은 뭐냐!”
타이탄이 성을 내며 가리킨 곳에는 마차 끝부분에 걸터앉아 있는 근육질의 거구가 있었다.
물론 타이탄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의 근육이다. 다만 인간을 기준으로 하면 충분히 괴물이다.
“아, 미안. 보고 있으니 존나 재밌어 보이길래. 딱히 수상한 사람은 아니고 음……. 아니, 수상한 사람 아니라고 하면 더 수상한가? 반가워들. 수상한 사람이야.”
“네놈은 날 수 있나?”
“응? 물론 날 수 있지. 아까 나 날아오는 것도 봤잖아. 손 흔드니까 마주 흔들어줬었지?”
“그랬다.”
어딘가 건들거리는 듯한 태도의 사내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든다.
섬뜩한 눈동자와 비늘로 덮여 있는 피부의 일부. 더군다나 피막으로 이루어진 날개까지 있다.
적어도 상대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봤나? 로스트. 너도 노력하면 저렇게 날 수 있다. 이미 한 번 성공한 일이니 틀림없는 사실이지.”
“맞아. 맞아. 노력하면 날 수 있어. 지금까지 날지 못한 건 분명 노력이 부족해서라니까 그러네?”
그리고 타이탄의 인간에 관한 견해를 끔찍할 정도로 비틀고 있다.
타이탄은 미친놈이다.
그건 확실한데 미친 짓을 할 때 나름의 근거가 있는 놈이었다.
이번 미친 짓도 근거가 있었다.
평소 자기 왕국에 틀어박혀 인간과 교류할 기회가 적었던 놈이다.
그런 놈이 단기간에 하늘을 나는 사람을 둘이나 봤으면 그야 그렇게 믿을 수도 있는 일.
눈앞의 사내는 누구인가. 도대체 왜 이런 악랄한 일을 하는가.
“우선, 우리 멍청이한테 잘못된 지식을 전파하는 건 그만두시죠.”
머릿속의 정보들을 뒤적여보다 마침내 일치하는 인물을 떠올린다.
상대의 종족은 용인.
수인보다도 개체 수가 적은 오크.
그리고 그보다도 더 희귀한 종족.
평생 한 명 볼까 말까 한 종족이다. 하지만 만난 적은 없어도 짐작 가는 사람은 한두 명 정도 있다.
“그보다 너는 저거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냐?”
딱 보기에도 강자.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다가왔는데 타이탄이 아무것도 안 했다?
이상하지 않나? 원래라면 곧바로 결투를 요청했을 텐데.
“로스트, 네놈이 잘 모르는 거 같아 설명해주자면 저건 이야기가 끝난 후 결투를 하자는 뜻이다.”
“용인에게 그런 풍습이 있었나?”
“아니, 그런 풍습 없는데? 그러니까 결투도 할 생각 없어.”
“아니, 너는 해야 한다.”
“이 친구 머리가 이상한데?”
막무가내도 이런 막무가내가 따로 없다. 이젠 하다 하다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까지 부린다.
그래도 당장에 행패를 부리지는 않는다는 뜻 같아 다행이다.
“와이번을 잡으러 직접 행차하신 겁니까? 길드 마스터.”
“어? 그, 그렇지! 바로 그거야!”
바로 그거는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타이밍에 나타난 걸 우연이라고 할 생각인가?
웃기지도 않는다.
아마 상대는 <해를 기다리는 도시> 루비아의 사냥꾼 길드 마스터.
쿠루드.
알렌 와이즈와 동격의 강자.
우릴 적대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찝찝하다.
“이야, 우리 도시에는 사냥꾼이 별로 없다 보니 마스터인 내가 이런 이상 사태일 때는 직접 움직여야 하거든. 원래 이 길목은 안전해야 하는데…… 뭐, 보다시피.”
쿠루드는 씨익 웃으며 엄지를 펴 하늘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멀찍이 떨어진 위치에서 이쪽을 살펴보고 있는 와이번 무리가 보였다.
인드라의 뇌정으로 쫓아냈다고 생각했건만 거리를 유지한 채 아직 경계를 유지하고 있는 모양.
“어휴, 모여 있을 때가 기회였는데 멀리들 날아 가버렸네?”
“저런, 마수로부터 여행객을 안전하게 보호해줘야 할 사냥꾼 길드의 마스터가 평소 일을 제대로 안 했나 보군요. 저희가 이렇게 습격까지 당했으니 말입니다.”
“흐…….”
“하!”
어딜 책임소재를 넘기려고.
누구 좋으라고 그런 뻔히 보이는 수작질에 넘어갈까.
“그러지 말고 좀 도와주지? 전리품도 나눠줄 테니 말이야.”
“애초에 저희가 잡으면 저희 전리품입니다. 그걸 선심 쓰듯 나눠준다니요. 형제님의 염치없는 혓바닥에 신께서 통탄해하실 겁니다.”
“너 어느 종교 소속이냐? 내가 아는 사제님들은 다들 자비와 선행을 입에 담고 다니던데 너 어디 악신이라도 믿는 거 아니지?”
“저런, 만신전의 사제는 처음 만나보시나 봅니다. 이렇게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 걸 보니.”
“뭔……. 만신전?!”
“지금 만신전에 속한 모든 신을 모욕하신 거 아십니까?”
“아니, 나는 그렇게까지는…….”
계급장 자랑이라면 나도 어디 가서 지지 않는다. 어딜 사제라고 덤터기를 씌워 먹으려고 들어?
만신전 소속의 사제라는 건 모든 교단의 사제라는 소리기도 하다.
즉 모든 교단을 적으로 돌릴 게 아닌 이상에야 입을 조심해야 하는 게 당연한 법.
“애초에 도움이 필요하긴 합니까? 혼자서도 충분해 보이는데.”
제아무리 오지라고 한들, 마스터의 자리라는 건 땅따먹기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마스터는 일단 제국 수도, 코이누르에 있는 사냥꾼 길드 총본부에서 자격을 부여받아야 한다.
즉, 이 녀석은 제국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강자라는 거다.
용인이라는 종족을 생각해보면 아닌 게 더 말이 안 된다.
완력만 따지자면 타이탄보다 낮지만 용인은 마나 친화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괴물이다.
숨 쉬듯 마나를 느낀다.
제 몸의 일부를 움직이는 것처럼 마나를 조작할 수 있다. 오러를 완벽한 형태로 뭉칠 수 있다.
그 시점에 우리는 그런 자를 마스터의 경지라고 칭해야 한다.
그리고 눈앞의 용인은 시작점이 바로 그 마스터의 경지다.
“아니면 우리의 실력이 보고 싶은 겁니까? 처음 보는 오크도 있겠다 흥미가 동합니까? 아니면 경계할 대상인지 확인하고 싶은 겁니까. 확실하게 해주시죠.”
“…….”
그런 쿠루드가 협력을 요청한다?
고작해야 무리 지어 생활하는 와이번 무리 때문에?
웃기지도 않는다.
와이번을 토벌하러 왔다고 하기에는 무리의 숫자가 제법 된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와이번 무리에 대해 파악하지 못했으면 그건 무능하다 할 정도가 아니다.
이건 방치한 거다. 자연스럽게 길목에 둥지를 틀도록 말이다.
왜 그랬을까?
“누가 보면 일부러 와이번들 풀어놓고 오가는 사람들 실력 떠보려고 지켜본 줄 알겠습니다.”
“에이 그럴 리가.”
“그냥 타이밍이 예술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라면 됐습니다.”
“예술 같은 타이밍이네! 그런데 너희는 뭐하러 왔니?”
“관광이죠.”
“그럼 돌아가는 게 어떨까? 보다시피 여기가 좀 위험해서.”
“괜찮습니다. 이런 것도 여행의 묘미가 아니겠습니까?”
<해를 기다리는 도시>에는 영주가 없다. 대신 3년에 한 번씩 대표를 선출하는 자유도시의 형태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기로는 쿠루드는 대표가 아니었을 터다.
이 시점에 대표는 상인 길드의 마스터였던 걸로 기억하니까.
그리고 그 상인이 루비아의 마지막 마스터였다. <침식하는 자>에게 뿌리도 남기지 못한 채 루비아는 통째로 뽑혀 나갔으니까.
“내가 사는 곳에 이런 말 하기도 그렇지만, 지금은 관광을 다녀도 좋을 만한 분위기가 아니야.”
“그걸 먼저 설명하셔야죠. 자꾸 하나둘씩 빼먹고 다짜고짜 명령조로 말하는데 밑에 있는 부하들이 그거 가지고 뭐라고 안 합니까?”
“……해.”
그럴 줄 알았다. 화법이 그냥 개 같은 걸 보니 나도 성질이 나니까.
“좋아, 그럼 내 설명을 듣고 나면 선택해야 할 거야.”
“설명.”
“예이 예이 설명해드립죠.”
무슨 선택인지 말해라. 도대체가 방금 지적했는데 또 저런 개 같은 화법은 왜 구사하는 건가.
“……너희들이 저 도시에서도 무사할 수 있을 실력이 있는지 보여주거나 돌아가라는 소리다.”
“좋습니다.”
“좋아, 그럼 설명부터 할까. 지금 루비아는 대략 3개의 집단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어.”
쿠루드는 공중을 선회하는 와이번들을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는 듯이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자기 창대의 앞부분을 붙잡고 원을 세 개 그렸다.
참 초라한 모습이다.
“이건 상인 길드. 실질적으로 이 도시의 지배자들이지.”
“금권은 어딜 가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법이니까요.”
“여기는 더 그래. 자급자족이라는 게 거의 불가능한 도시니까.”
“그렇겠지요.”
<해를 기다리는 도시> 루비아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연중 비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곳이다.
과장이 아니라 제국에 흐르는 수도의 30%가 이 루비아에서 흘러 들어간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
“작물도 안 자라. 키울 수 있을 만한 가축도 없어. 그나마 특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연구자나 약사들이 찾는 이끼들뿐이지.”
다행히 이런 환경이기에 양식할 수 있는 게 있긴 하다. 비가 매일 같이 쏟아지니 별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가까워. 본디 수요보다 공급이 적었으니 값이 나왔건만, 이제 연구자들도 대부분 손을 떼버렸고 약사들은 싼값에 사려고 후려치니까.”
“그러니 상인들에게 목숨줄이 달려 있다는 소리겠죠.”
“맞아, 그들이 떠나면 이 도시는 그날로 끝이라 할 수 있지. 너 그런데 설명 안 해도 이해가 빠르네. 그냥 여기에 정착할래? 내가 높은 자리 마련해줄게.”
“됐습니다. 매일 같이 당신과 얼굴 마주 보면서 대화했다가는 화병 나서 죽을 거 같으니까.”
언제는 떠나느니 마느니 하더니 상황 파악 좀 했다고 호의적이다.
“아무튼, 그렇게 가장 강력한 집단이 바로 상인 길드야. 그리고 두 번째 집단은 바로 우리지.”
“왜 사냥꾼들이 상인 길드와 드잡이질을 하는 겁니까?”
“우리도 나름 이 도시를 먹여 살리고 있으니까. 이끼는 그렇다 해도 마수들의 소재는 우리밖에 구할 수 없잖아? 그러니 우리도 그럭저럭 세가 있어.”
사냥꾼들은 보통 도시 밖을 돌아다니며 전리품들을 가져올 거다.
그리고 그걸 상인들과 거래한다.
어떻게든 경제 기반을 유지하려고 하는 게 눈에 선하다.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일을 하고 있어. 상인 놈들이 우릴 못 배운 놈 취급해도 개의치 않았지.”
“왜 그러셨습니까?”
“응……?”
“그때 화를 내셨어야죠. 그러니 이런 제3세력의 등장에도 턱짓으로 부려 먹으러 한 거 아닙니까.”
“그렇…… 아니, 그런데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아?”
“견적이 나오지 않습니까.”
평소 못 배운 놈 취급당해도 개의치 않았다고 했다. 그 정도로 인식이 잡혀버렸다는 거다.
아마 도시 토박이들이 어떻게든 도시를 살려보겠다고 노력해온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관계가 틀어졌다. 온갖 무시에도 개의치 않았던 그들이 이제 와서?
뻔하지 않은가. 그들이 지켜보려던 도시의 안위가 걸린 거다.
“제3세력의 등장. 그로 인한 불화, 상인들이 무시하는 사냥꾼들을 호위로 고용하겠다고 금화로 후리기라도 한 거겠지요.”
“맞아.”
“싫다고 하면 앞으로는 사냥감의 소재 거래를 안 하겠다고 협박했을 테고. 울며 겨자 먹기로 도시가 아닌 상인들의 안위를 챙길지, 아니면 무시당하던 상태에서 이제 와 자신들의 가치를 내세울지.”
“그것도 맞지.”
쿠루드에게 존재하는 선택지는 그 두 가지였을 거고. 아무래도 후자를 선택했을 거 같다.
“초기대응을 잘못하셨습니다.”
무력이 곧 가치가 되는 직업이다. 아래로 보이면 끝장이다.
원래부터 아랫것으로 취급하던 상인들이 이제 와서 사냥꾼들의 항의를 인정할 리 없지 않나.
오랜 시간 쌓여온 관계의 부조화는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로 인해 도시 경제 기반은 서서히 말라붙게 되는 거다.
상인들이 소재를 사지 않으니 돈이 돌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냥꾼들이 소재를 구하지 않고 상인들의 호위라도 선다면 그 역시 같은 결과.
원래라면 적절한 선을 통한 협상이 이뤄져야 하겠지만, 평소 아랫것으로 여기던 것들을 이제 와서 동등한 위치로 보기는 불가능.
상인들 측에서 일말의 타협도 하지 않으려 했을 게 뻔하다.
뭐가 문제겠는가.
애초에 교역하던 놈들일 거다. 정 안 된다 싶으면 루비아에서 사업 접고 떠나면 그만이라는 거다.
이건 답이 없다. 사냥꾼 길드에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도시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이미 늦었습니다. 상인들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럼 우린 더 아래로 처박힐 뿐일 텐데.”
“급한 건 사냥꾼 길드 아닙니까? 보아하니 도시를 구하고자 하는 건 당신들밖에 없어 보이는데.”
“아니, 다른 방법이 있어.”
“준동한 제3세력을 두드려 잡는 거겠지요. 갈등의 원인 자체를 해결한다고 해서 이미 깊어진 감정의 골이 채워지겠습니까?”
말했잖은가.
초기대응을 잘못했다고. 사냥꾼 길드는 굽혀서 들어가면 안 됐다.
도시를 위해 교역을 해주는 상인들에게 예의를 보일지언정 호구 잡혀서는 안 됐던 거다.
“……그럼 아예 굽히고 들어가라는 거냐?”
“제3세력을 두드려 잡는 건 해야 할 겁니다. 다만 그 뒤의 대응은 앞으로 하기 나름이라는 거죠.”
이미 못 박힌 인식을 되돌리기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거다.
“자, 그럼 이제 문제의 원흉이 된 제3세력에 대해 들어봅시다.”
“뭔가 이상한데……. 우리 이거 도시에 들어올지 말지 논의하고 있던 거 맞지?”
“맞습니다. 그러니 그 위험하다는 3세력에 대한 정보를 전부 다 토해내시죠. 알아야 결정을 하죠.”
“뭔가…… 이상한데…….”
쿠루드는 긴가민가하면서도 정보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루비아에 대한 정보는 나한테도 별로 없다. 애초에 제국에서도 크게 관여하지 않는 자유도시다.
그런 상황에서 풀 한 포기 남기지 못하고 멸망한 도시.
내가 알고 있는 건 단 하나.
존재조차 몰랐던 <침식하는 자> 언터쳐블(Untouchable)의 딸로 추정되는 또 하나의 <침식하는 자>
“이상한 꼬맹이가 있어. 사실상 제3세력은 그 녀석 하나야.”
그녀가 이 도시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 그로 인해 제 영역에 움츠리고 있던 괴물이 움직이게 된다는 치명적인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