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이단심문관의 악마 사냥법-33화 (33/42)
  • 33화. 해를 기다리는 도시 (1)

    호프 공작령.

    자신의 집무실에서 업무를 하고 있던 벨리알. 즉, 월스레스 호프는 돌연 느껴지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으음…….”

    업무가 고돼서일 리가 없다.

    이건 뿌려놓은 근원에 해당하는 권능 하나가 뿌리뽑혔다는 증거다.

    “이것 참…….”

    월스레스 호프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최대한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장악하고 있던 <미래를 그리는 자>가 당한 거다.

    생명이 깃든 물건. 처음에는 단순한 흥미였지만,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생물이라는 걸 깨달은 시점.

    기존에 인류 멸망을 위해 작업하고 있던 나라를 통째로 무너트리면서까지 씨앗을 심어뒀다.

    본디 멸망시키기 위해 만든 나라라고는 하지만, 피노키오를 얻기 위해 시기를 앞당기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렇게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 갑작스럽게 파괴당했다?

    “그놈. 그 가면 놈.”

    처음 봤을 때부터 거슬렸다. 그렇기에 은연중에 처리하려고 했다.

    해서, 메즈를 보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메즈는 이동 중 흑마법사들을 증오하는 <헤매는 자>와 마주쳤다.

    메즈는 시련 정도까지는 아닐지라도 그 아래는 될 수 있을 잠재력을 지닌 개체였다. 그런 개체가 어이없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때는 그저 어이가 없었다.

    그저 그놈이 운이 좋은 놈이라고, 자신이 운이 없었다며 생각하며 다음 기회를 모색하기로 했다.

    오판이었다.

    “그래……. 두 번 연속으로 우연이 일어날 리는 없지.”

    <헤매는 자>가 때마침 그 자리에 나타난 것도 그렇게 계획된 일이었을 수도 있다.

    네크로폴리스의 주인, 헤카테는 과거 만신전과 연이 있었으니 그 연이 아직 끊기지 않았다고 생각해보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언제든 밟아 죽일 수 있는 개미라고 생각해선 안 됐다.

    거슬린다고 생각한 즉시 리스크를 짊어져서라도 죽여야 했다.

    “때를 놓쳤어.”

    죽일 수 있을 때가 있었다.

    직접 나서서 그 목을 비틀어 꺾어버리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녀석의 이동 방향을 알고 있을 때 손을 써뒀어야 했다.

    촤르륵!

    월스레스는 지도를 펼쳤다. 대지 대부분이 한 나라의 이름으로 물들어 있는 나라가 보인다.

    제국, <에덴>

    그가 크고 작은 나라들을 섭렵하고 내부에서 망가트리며 그 씨앗을 먹여 키운 최고 걸작.

    사실상 세계정복을 이룩했다고 할 수 있을 위치에 있는 나라.

    처음부터 멸망을 위한 방아쇠로 삼기 위해 만든 나라다.

    그걸 만들기 위해 수백 년에 달하는 세월을 쏟아부었다.

    덕분에 지도는 에덴의 이름 아래 대부분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다.

    “어디……. 확인해볼까.”

    그리고 그 붉은색 대지 위에 수많은 검은 점들이 찍혀 있었다.

    그가 세워놓은 씨앗들. 때가 되면 발아해 붉은색을 모조리 검은색으로 물들여버릴 멸망의 효시.

    그중 가장 아름답게 피어날 예정이었던 씨앗이 하나 사라졌다.

    툭.

    벨리알은 한점을 가리켰다.

    그의 정적이자, 무력 외의 면에서는 가장 큰 걸림돌인 존재.

    대마법사, 에이지 포리스의 영지.

    그 가면의 사내는 여기서 만났다.

    그가 심어놓은 크고 작은 씨앗 중 하나를 확인하러 갔을 때였다.

    만신전의 사제라는 것들은 본디 세상 곳곳에 벌레처럼 기승이기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연히 사내가 자신이 심어놓은 씨앗 하나를 발견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거슬리는 걸 내버려 두지 않는 그다.

    당연히 처리하려고는 했다.

    그저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을 뿐.

    가볍게 여겨 움직여야 할 기물의 종류를 착각하고 말았다.

    툭.

    다음에 가리킨 건 메즈가 <헤매는 자>와 마주친 장소.

    이 시점에 그는 움직여야 했다.

    그저 불쾌하게 여길 게 아니라 <헤매는 자>와의 충돌까지 고려해 직접 움직여 놈을 죽여야 했다.

    툭.

    그리고 마침내 가리킨 장소가 니다벨리르를 향했다.

    “흐음…….”

    포리스 영지와 네크로폴리스 그리고 니다벨리르까지의 길.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사내는 포리스 공작령에서 출발해 네크로폴리스가 움직이는 장소를 지나 니다벨리르에 도착했다.

    시간대도 얼추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얼추……. 확신하기에는 조금 부족하군.”

    퍼즐이 맞물리지 않는다.

    포리스 공작령에서 출발해 네크로폴리스에 도착했을 시간을 계산했을 때는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다만 그다음이 미묘하게 맞물리지를 않는다. 기존의 이동속도를 고려해봤을 때 아무리 봐도 도착과 해결까지의 시간이 너무 짧다.

    “탈 것을 바꿨다……?”

    그렇다면 말은 된다.

    기존의 이동 수단을 중간에 바꿨다면 불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이동 수단을 바꿀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길 가다가 몬스터라도 잡아서 길들였을까? 그런 게 가능했다면 진즉에 했을 거다.

    그렇다면 네크로폴리스에서 탈 것을 구하기라도 했을까? 아니, 언데드들의 자유의지를 존재하는 헤카테의 성향상 그런 탈것을 준비해준다는 건 말도 안 될 일이다.

    툭, 툭.

    심증은 있는데 확신이 없다.

    가면의 사내와 <미래를 그리는 자>를 공략한 이가 동일 인물이라고 확신할 조각이 부족하다.

    그걸 확인하고자 움직이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혹시라도 둘이 다른 인물이라면 오히려 앞으로의 계획에 혼선이 생길지도 모를 일.

    “아니지. 둘이 같은 인물이라는 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군.”

    중요한 건 누군가가 자신의 계획을 방해했다는 사실 뿐.

    포리스 공작령과 니다벨리르. 두 곳에 심어놨던 씨앗이 뽑혔다면 이미 상대가 이쪽의 계획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보는 게 옳다.

    그게 억측일 뿐일지라도 그렇게 생각해두는 게 당연히 이득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상대가 이쪽의 계획을 안다는 걸 전제로.

    어떻게 알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어디까지 아는가.

    툭, 툭, 툭.

    월스레스는 지도를 두드렸다.

    상대의 행방은 니다벨리르에서 끊겼다. 다음 행적이 어디로 향할지 확인하기에는 타이밍을 놓쳤다.

    “흠.”

    곧이어 월스레스는 니다벨리르에서 출발해 도착할 수 있을 도시들을 향해 하나하나 선을 그었다.

    어떤 마을을 거쳐 어디를 향하는지까지 계산해보면 최소 40가지 이상의 경우의 수가 나온다.

    거기에 이동속도 역시 가늠할 수 없으니 선택지는 더욱 많다.

    “과연 어디까지일지…….”

    월스레스는 수많은 경우의 수중 몇 가지를 간추려냈다.

    상대가 이쪽 계획을 알고 있을 경우를 가정해보면 최소 다섯.

    그리고 상대가 정확히 ‘자신’에 대해 알고 있을 경우가 하나.

    “끌끌끌.”

    전자 같은 경우에는 크게 문제 될 게 없다. 그가 심어놓은 씨앗이 한둘이 아니니 그중 몇 개가 들켰다고 해서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필요불가결한 계획, 은밀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어야 할 계획까지 알고 있다면?

    그것도 최근 우연히 일어난 일로 인해 세운 일종의 ‘가정’을?

    그건 계획을 알고 있다는 수준이 아니다. 상대는 정확히 자신의 존재를 꿰뚫어 봤다는 소리가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비로소 기존에 뭉개뒀던 의문이 튀어나온다.

    “어떻게 알고 있는고?”

    수천 년을 그림자 속에서 숨어지냈다. 신들의 전쟁에 대한 역사는 진즉에 지워버린 지 오래다.

    자신이 직접 지우지 않더라도 멍청한 인간들이 이단심문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열심히 지워댔다.

    그러니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고작해야 셋 정도.

    그마저도 정확히 자신을 알고 있는 존재는 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둘이 자신에 대해 누군가에게 털어놨을 리는 없다.

    필연적으로 자신의 존재 역시 까발려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자신이다. 자신이 상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럼 어떻게?

    “미래를 봤던가. 아니면 시간을 거슬러 왔던가.”

    불가능한 일.

    하지만 그게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라면 그것밖에 없다.

    그는 단순히 불가능하다는 걸로 가정을 지우지는 않는다.

    애초에 신이 개입된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 두 가지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국면에서 중요해질 거다.

    “너는 어느 쪽이지?”

    월스레스는 지도의 한 점을 노려보며 미소 지었다.

    그곳에는 ‘<해를 기다리는 도시>, 루비아’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끌끌끌끌.”

    철컥!

    그때 집무실 문이 열리고 젊은 소년이 한 명 들어왔다.

    “아! 오늘은 기분이 좋으신가 보군요. 할아버님.”

    “응? 그럼.”

    섬뜩하게 웃고 있던 월스레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인자한 노인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보기만 해도 이쪽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미소로 말이다.

    “그러는 우리 손주는 어떤고? 약혼자는 마음에 들더냐?”

    “어……. 크흠! 나, 나쁘지는 않더군요. 사람이 좋아 보이던데요.”

    “허! 참. 별 말 같지도 않은 내숭을 다 하는구나? 입이 귀에 걸렸는데? 많이 예쁘더냐?”

    “평범했습니다. 크흠, 평범.”

    “사내놈이 이렇게 솔직하지 못해서야. 혹여라도 밖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마라. 에이지 그놈 성격이 불같아서 당장에 너를 마법으로 땅에 묻어버리려고 할 테니까.”

    “……넵.”

    월스레스는 평범한 또래 아이처럼 보이는 자신의 손주를 보며 미소 지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제법 괜찮은 재능을 타고났지만, 어찌 됐든 아직은 인간.

    “나중에 내 도움이 되려면 더욱 정진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고.”

    “예, 할아버님.”

    “그래, 노력해야지. 암.”

    자신이 괴물이라는 걸 모르는 동안 쌓아 올린 인격이야말로 나중에 훌륭한 비수가 되어줄 테니까.

    *     *      *

    천하의 벨리알의 눈을 속인 최적의 이동 수단이 대지를 질주한다.

    “훅! 훅! 훅! 훅!”

    타이탄이 마차를 이끌며 맹렬히 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 마차를 이끄는 행위에 익숙해진 건지 타이탄의 질주에도 마차는 상당히 평온했다.

    “제페토 영주님 덕분이네요. 이런 최고의 마차를 선물해주다니…….”

    “마차는 덤이야. 너한테는 이런 훌륭한 무기를 주셨잖아?”

    “한 번 쓰고 나면 전신의 뼈가 박살 나는 무기 말이죠.”

    “다른 무기라고 뭐 다를까. 어차피 한 번이 한계인 지금의 너한테는 이보다 더 좋은 게 없지.”

    로스트는 마차 바닥에 모포를 깔고 누워 있는 클레어의 눈앞에 저격총을 들이밀었다.

    반동을 최대한으로 줄였고 로스트의 리볼버와 마찬가지로 신성력을 탄환으로 바꿀 수 있는 무기.

    물론 그 작은 반동에도 뼈가 아작 나고 아직 제 몸을 짓누르는 신성력을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클레어에게는 큰 효용이 없다.

    ‘큰 효용이 없는데도 탄이 만들어진다는 게 무서울 따름이지.’

    물론 반동을 최대한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일격을 중시하는 무기다.

    한 발 쏘기만 해도 견착해둔 어깨뼈가 부러질 정도였으니 클레어가 얼마나 연약한지는 새삼 말할 것도 없을 정도였다.

    “일단 명심해둬. 네가 그걸 쏠 상황이 됐을 때. 맞추지 못하면 그대로 죽을 거라는 걸.”

    “그것참 도움 되는 말이네요. 이참에 그냥 죽으라고 기도라도 하시는 건 어때요?”

    “너도 진짜 성격 더럽다.”

    로스트는 표독스러운 태도로 비아냥거리는 클레어를 질린다는 듯이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직도 클레어는 감을 못 잡았다.

    뒷골목을 전전하던 로스트와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신에게 사랑받고 있는 클레어인데도 그렇다.

    회귀 전의 미래에서는 재회했을 때 이미 팔라딘이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그 중간과정이 어떻게 흘러간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물론 그때도 알려고 한다면 알 수 있었겠지만…….

    ‘우리가 좀 서먹한 관계긴 했지.’

    미래에서도 그랬지만, 지금이라고 크게 다를 게 있겠는가. 자신은 클레어의 가족을 죽인 살인자인데.

    클레어가 최대한 사적인 감정을 배제한 채 대해주고 있기에 이런 관계라도 유지되고 있는 거다.

    “어휴.”

    로스트는 괜스레 누워 있는 클레어의 뺨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괴롭혔다.

    아주 그냥 짐 덩이가 따로 없다.

    “리, 리네아 언니……. 로스트 씨가 또 저를 괴롭혀요.”

    “환자한테 뭘 하는 건가요?!”

    제페토가 선물해준 의료기기 세트를 살펴보던 리네아가 황급히 뒤돌아 로스트의 등짝을 후려쳤다.

    “그냥 뺨만 찔러봤어. 내가 주먹이라도 휘둘렀을까 봐?”

    “클레어는 피부가 약하니까 그렇게 건드리는 것도 안 된다고 예전에도 말했잖아요!”

    “허, 참…….”

    여기저기서 구박이다.

    로스트는 예전의 부드러운 모습의 리네아가 그리워졌다.

    물론 좋은 변화이긴 하다. 예전처럼 눈치만 보는 게 아니니까.

    “로스트, 저기 봐라.”

    “응?”

    얻어맞은 등짝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던 로스트는 줄곧 조용히 마차를 끌고 가던 타이탄의 부름에 고개를 하늘로 들어 올렸다.

    “와이번 무리다.”

    “저런……. 여기서 돌아서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텐데.”

    “그럼 사냥인가?”

    타이탄은 마침 좀이 쑤셨다는 듯이 마차를 내려놨다.

    로스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건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전투 상황이 확정돼있는 듯했다.

    어차피 말려도 듣지 않을 터, 로스트는 그런 타이탄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이며 뒤돌아섰다.

    “클레어, 마침 좋은 기회니까 너도 한 마리 잡아봐.”

    “저도…… 어?”

    불만스럽다는 듯이 뭔가를 말하려고 한 클레어였으나, 그 말을 끝까지 이어갈 수는 없었다.

    뒤돌아선 로스트의 등 뒤에 타이탄이 손을 뻗고 있어서였다.

    “로스트 잘 들어라. 저번처럼 네놈이 먼저 하늘에 올라가서 놈들의 주의를 끌어주면 된다. 그렇게 낮은 위치까지 유인해오면 내가 창을 내질러 요격하도록 하지.”

    “아니, 그게 무슨 개소리…….”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로스트의 말 역시 이어지지 못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타이탄이 로스트를 붙잡고 와이번 무리가 있는 하늘로 내던졌기 때문이다.

    로스트가 처음에는 직선으로 날아가다 이내 와이번 무리의 한 가운데에 들어선 이후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땅으로 떨어진다.

    타이탄은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땅에 떨어진 로스트를 보며 의아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날개를 펼치지 않지?”

    안타깝게도 피노키오와의 전투에서 선보였던 로스트의 날개는 일회용이라서 더는 펼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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