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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이단심문관의 악마 사냥법-32화 (32/42)

32화. 귀가

꼭두각시 인형처럼 움찔거리고 있는 피노키오를 살펴봤을 때 아직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기에 곁눈질로 뒤를 살폈다.

“제페토 영감님. 슬슬 정신을 차린 거 같은데 뭣 좀 물읍시다.”

“뭐, 뭔가?”

황망한 눈으로 피노키오를 바라보고 있던 제페토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나를 쳐다본다.

뭐, 그럴 만도 하다.

얽혀오는 그림자에 저항하고 있는 피노키오의 모습이 보이니까.

피노키오를 만들어낸 부모로서는 마음이 찢어질 듯한 광경이겠지.

“예전에도 저랬습니까?”

“아닐세, 결단코 아니야! 저런 줄 알았다면……!”

그때마다 기계 장치들이 피노키오의 팔다리에 붙어 이리저리 맞물리며 무기를 만들어낸다.

자기 진화의 도중.

하지만 피노키오는 그 무기들이 채 완성되기 직전에 자기 팔다리를 잘라내듯 미완성의 무기들을 잘라냈다. 온전한 병기로 거듭나기 전에 할 수 있는 최선인 거다.

“피노키오를 잡아갔다던 그 왕의 최후는 직접 확인하셨습니까?”

제페토는 말했다. 어떤 나라의 왕이 피노키오를 잡아갔었다고.

그 뒤로 피노키오가 가로막고 있던 모두를 죽이고 돌아왔다고.

“아니……. 하, 하지만 그는 인간이었네. 오래 살 수 있을 리가.”

“최후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거군요. 아마 소문과 정황으로만 그랬을 거라 유추했을 뿐.”

생각이 부족했다.

뻔히 보이는 사건 정황을 의심 하나 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믿었다. 제페토를 신뢰하는가 아닌가를 떠나서 정보 자체의 오류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거다.

실로 교묘한 장치.

왜 왕이 죽었을 거라 생각했지?

왜 피노키오가 모두를 죽이고 탈출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고작 칼날 몇 개가 튀어나온다고 해서 성을 지키는 검사들을 모조리 도륙하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전제조건이 틀렸다.

피노키오가 저질렀던 게 아니다.

왕이 피노키오의 몸에 무언가를 심고 내보냈을 거라고는 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

벨리알은 수백 년간 제국의 그림자 뒤에 숨어 암약하고 있었다.

그럼 수백 년을 숨죽여 있었던 놈이 그 전이라고 달랐을까?

태고의 시절부터 존재했을 터인 악마가? 그럴 리가 없다.

권력의 중추에 있는 자라면 제아무리 실력 좋은 기사가 있다고 한들 정치적인 수완을 이용해 간단히 매장해버릴 수도 있다.

제 살을 깎아내듯, 왕국 자체를 점령하고 서서히 무너트렸다.

폭탄이 가득 실린 왕국을 제국이 먹기 좋게 포장했다.

나라를 하나로 만들고, 그 안에서부터 붕괴시키려던 거라면.

그 전에도 수많은 나라를 멸망시켜 하나로 모아왔을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벌레를 불러들이는 향을 피워 한 번에 일망타진하는 방법 말이다.

녀석은 수천 년 전부터 하나하나 멸망의 씨앗을 심고 있었다.

세세하게 이 세상을 멸망으로 밀어 넣기 위해 정말 수백, 수천 년을 암약하고 있었던 거다.

“아무래도 이젠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불씨가 전부 다 계획된 거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겠는데.”

벨리알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약 5년 후.

하지만 그 전부터 제국은 서서히 망조의 길을 걷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침식하는 자>의 준동, 그로 이어진 <미래를 그리는 자>의 폭주.

포리스 공작령이 짓밟혔고, 니다벨리르 일대를 포함한 수십km가 허허벌판으로 변했다.

<검의 줄을 치는 자>가 제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고, 전란의 불씨를 수습하려던 <헤매는 자>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해악이 됐다.

<바람의 무덤>에 속한 시련들의 싸움은 격화돼 엘프들과의 교류는 완전히 끊기기까지 했다.

만약 그 모든 게 녀석의 계획이라면? 녀석이 예전부터 몰래 심어왔던 씨앗이 발아했던 거라면?

“그 씨앗 하나하나를 모조리 뽑아버릴 수밖에.”

“무슨 말을 하는 겐가?”

“영감님, 간단합니다. 피노키오와 싸우는 건 이미 확정 사항이죠.”

“어찌……. 어찌 그래야 한단 말인가! 내가 어떻게든 설득을 해볼 테니 부디 기회를 주면…….”

“그게 아닙니다.”

벨리알의 권능은 실로 알기 어렵다. 당장에 그림자에 깃들어 있는 건 물론이고 그 힘에서는 어떠한 감지도 통하지 않는다.

마(魔)의 정점에 선 존재라고 하건만 정작 마기를 감지할 수 없으니 이보다 더 까다로울 수가 없다.

아마 나도 포리스 공작령에서 녀석과 직접 마주친 게 아니었다면 피노키오의 이변을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다.

월스레스 호프가 벨리알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 정체불명의 섬뜩함을 지금과 연결할 수 있었다.

“제가 아까 왕의 죽음을 물어봤지요. 쉽게 표현하자면, 아무래도 피노키오는 그 왕의 나쁜 저주에 걸린 거 같습니다.”

“해결 방안이 있을 수도……!”

“맞습니다. 지금 이렇게 저희가 느긋하게 대화하고 있는데도 공격해오지 않는 걸 보면 뻔하죠.”

피노키오는 버티고 있다.

수백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암흑의 왕이라고까지 불리는 벨리알의 권능에 저항하며 버틴 거다.

성정이 어떻든, 녀석이 시련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갈 만한 힘을 지녔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

“그러니 제압해야 할 겁니다. 설득은 그 뒤가 되겠지요.”

끼릭거리는 소리를 내며 부들부들 떨고 있던 피노키오의 등 뒤로부터 무기들이 튀어나온다.

앞서 봤던 무기부터 처음 보는 무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마치 나무에 목이 매달린 것처럼 보이는 피노키오와 기계 장치가 열매처럼 자라나는 듯한 나무.

“하……! 이걸 편하다고 해야 할지, 곤란하다고 해야 할지…….”

그 모든 게 나를 노리고 있다.

이 자리에서 제일 위험한 상대가 나라는 걸 파악한 거다.

오히려 다행이다.

리네아와 제페토를 지키기 위해 정신을 팔 필요가 없을 테니까.

물론 그만큼 내게 향할 부담은 심해지겠지. 상대는 시련이다.

성녀님의 힘을 일시적으로나마 재현할 수 있다고 한들, 시련을 이길 수 있을 거 같지는 않다.

“처음부터 어려운 길이었어.”

나를 조준하기 시작한 무기들이 제각각 흔들리기 시작한다.

정체불명의 총구에는 붉은빛이 점멸하고, 기관총 형태의 무기에는 탄창이 장착되고, 물고기 형태의 무기의 꼬리에는 불이 붙는다.

제페토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아직 기절해 있는 리네아를 이끌고 벽 뒤로 숨는 걸 확인한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나?

품에서 연초를 꺼내 입에 문다. 이게 마지막 연초다. 기계 장치의 성에 들어오고 나서는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정말 줄기차게도 피웠다.

“스읍…….”

베스타의 불꽃으로 연초에 불을 붙이며 한 모금.

“후우…….”

나를 향해 점멸하기 시작한 무기들을 올려보며 내뱉는다.

“그래, 차라리 저항하지 말고 전부 쏟아 내버려.”

피노키오를 좀먹고 있는 벨리알의 권능. 사람을 향한 악의.

“내가 받아내 주마.”

그리고 마침내 피노키오의 무기가 반짝이며 날아든 순간.

기계 장치의 성이 무너졌다.

*     *      *

피노키오는 한 번 사용한 무기는 다시 쓰지 않았다. 일회용 무기이거나 바꾼다는 의미가 아니다.

피노키오는 무기를 사용함과 동시에 종양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걸 곧바로 잘라냈다.

실제로 틀린 것도 없다. 피노키오 안에 파고든 벨리알의 악의가 무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거니까.

그걸 떼어낸다는 건 곧 그 힘에 물든 부분을 뽑아낸다는 거다.

아마 이런 식으로 버텨왔으리라.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버틸 생각이었겠지.

다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을 거다. 그러니 위험마저 무릅쓰고 제페토를 보러 온 거겠지.

그렇게 된다면 내가 만일 <침식하는 자>를 막아선다고 해도 이 일대가 날아가는 건 피할 수 없다.

콰아아아아앙!

눈앞을 붉게 물들이는 폭발에 시선을 피하기도 잠시.

가까스로 피해낸 공격의 결과물에 혀를 내두른다.

정말 터무니없는 강함이다.

내부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악의와 맞서 싸우고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 강함이란 말인가.

피노키오가 한순간이라도 전력을 다했다면 견디지 못했을 거다.

“큽…….”

콰드드드득!

스치듯 피한 물고기 모양의 무기가 허공에서 폭발한다.

폭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튕겨 나가 바닥을 긁어냈다.

등이 화끈거린다. 그나마 날개가 있었기에 이 정도로 그쳤다.

맨몸이었으면 갈려 나갔으리라.

분명 닿지도 않았건만, 이제 원격에서도 무기를 격발시킬 수 있다는 건가? 만약 그런 거라면 무기의 유효범위가 훨씬 더 넓어진다.

“진짜 힘드네.”

당장에 이 공격에 반응할 수 있는 것도 내 소중한 추억을 불태워 희생한 결과건만 그 앞으로 나아가는 게 불가능하다.

호언장담한 것치고는 피노키오를 구해낼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피노키오가 다루는 무기들만 해도 자기 진화 장치를 통해 실시간으로 강화되고 있다.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쉬운 일이라면 시작도 안 했다.

어려운 게 당연한 일이다. 악마, 그것도 일당백의 괴물이 수백 어쩌면 수천 년을 공들인 계획이다.

그걸 고작 십수 년 살아온 내가 넘어서려고 하는 거다.

어려운 게 당연한 일이다. 목숨을 걸고 추하게 바닥을 구르는 건 오히려 당연해야 할 일인 거다.

“흡!”

쾅! 쾅!

내 꿈을 바탕으로 그려낸 성녀님의 힘. 내가 가장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만큼 쓰기가 편하다.

그리고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피노키오의 포화는 맨다리로는 피할 수 없었을 테니까.

순백의 날개를 펄럭이며 공간을 종횡무진 돌아다닐 수 있었기에 어떻게든 버티는 느낌이다.

파직!

날아다니는 데 정신을 쏟는 가운데. 주먹 쥔 손을 펼침과 동시에 번개의 창을 쏟아낸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중심으로 나아가는 십여 개의 창이 피노키오의 몸에 정통으로 틀어박히는 것도 찰나. 녀석이 몸을 터는 것과 동시에 후드득 바닥에 떨어진다.

감전은커녕 꽂히지도 못했다.

낙담하지 않는다. 낙담해선 안 된다. 이를 갈면서 다그친다.

가장 범용성 높은 공격 수단이 막혔을 뿐이다. 녀석의 공격을 하나하나 피하면서 틈을 찾아. 오랜 시간 축적한 대규모 신성 마법을 꽂아 넣으면 될 일이 아닌가.

그러니까 버텨!

쿵!

폭발의 충격을 못 이겨낸 몸이 벽에 부딪힌다. 그 주변으로 포화가 시작되기 전에 움직인다.

날고 피하고 공격한다.

견제는 의미가 없다. 피노키오의 육신은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성벽이나 다름없으니까.

탓!

바닥을 박찬다. 이젠 단순히 날아서 피해서는 부족하다.

직접 바닥을 디디며 움직임에 가속도를 더해야 한다.

타닷!

쏟아지는 총탄의 비는 무시한다.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무기의 공격은 오히려 이용한다.

등 뒤에서 터진 충격을 이용해 더욱 피노키오의 근처로 다가간다.

그에 따라 사선이 늘어난다. 중심으로부터 퍼져 나오듯 쏟아지던 포격의 면이 점점 좁아진다.

“흡!”

치명상에 이를 법한 공격이 아닌 이상에야 몸으로 받아낸다.

폭발을 등에 업고 나아간다.

양손에 모은 번개는 이제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닌 완성된 창의 형태로 자리 잡는다.

“이거라면!”

천공의 신, 유피테르의 번개. 그 줄기가 아닌 자체를 빌려온 힘.

<아스트라페>

콰직!

신의 권능 그 자체를 꽂는다.

제아무리 단단한 피노키오의 육신이라고 해도 막을 수 없다.

파지지지지지지직!!

주변을 수놓던 포격을 번개가 모조리 집어삼킨다.

넓고 단단하던 기계 장치의 성은 하늘이 뻥 뚫린다.

즈즈즉!

눈이 멀 정도의 빛.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낀 이질감.

“이 무슨…….”

이걸 맞고도 버텨?

피노키오가 아스트라페를 손으로 잡아 뽑아내고 있다.

완력도 보통이 아니다.

새삼 시련이라는 게 얼마나 불합리한 존재인지 실감하게 된다.

파앗!

피노키오가 끝내 창을 붙잡아 뽑아낸다. 그 완력에 밀린 나는 허공으로 튕겨 나간다.

하지만 다행히 그게 한계였는 듯 피노키오 역시 가까스로 서 있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많은 무기를 쓰게 만들었다.

피노키오의 본체에도 유의미한 타격을 입혔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팔 하나가 완전히 타서 떨어지고 온몸에 잔류한 전류가 흐르며 기계 장치를 못 쓰게 만들었다.

그래, 이 정도로 몰아세웠다.

그런데 왜.

“어째서…….”

아직도 악의가 사라지지 않는가.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녀석이 계속 자신의 몸을 잘라내고 있었음에도 몸에 파고드는 악의가 더 많았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다른 마인들과 마찬가지라면?

마인은 되돌릴 수 없다.

되돌릴 수 있는 건 막 마기에 중독된 처음밖에 없다.

마기는 심장을 향해 파고드니까.

그런데 만약 기계 장치인 피노키오에게도 심장이 있는 거라면?

제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심장을 파괴해야 하네.”

그때 숨어 있어야 했던 제페토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그것도 참혹한 표정으로.

*     *      *

“……위험하니까 물러나 있으라고 했을 텐데요.”

“늙으면 여러 가지가 보이네. 이미 가망이 없는 게 아닌가?”

내가 내린 결론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 모양.

하지만 다른 방법을 아직 모색해보지 못했다.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겨우 만든 기회가 아닌가. 이대로 무의미한 소모전을 계속할 바에 차라리 편하게 해주세.”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왔습니까. 그건 실패입니다. 당신과 피노키오가 집으로 함께 돌아가는 순간이야말로 성공이란 말입니다.”

“그건 내 고집이지 자네가 고집해야 할 건 아니지 않나. 아무리 숨어 있다고 한들 여파만으로도 자네 동료들은 버티지 못할 거네.”

제페토가 가리킨 방향에는 잔뜩 그을린 타이탄과 그 뒤에 쓰러져 있는 리네아가 있었다.

타이탄이 어떻게든 그 주변을 지켜내려고 한 모양이다.

최대한 멀어져서 싸웠건만 여파가 저기까지 닿았나 보다.

이 이상 싸움을 이어갔다가는 그마저도 넘어설 게 뻔한 일이다.

“그러니 이젠 괜찮네. 더는 늙은이의 고집에 희생하지 말게나.”

그렇게 말한 제페토는 아직 번개의 여파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피노키오를 향해 다가섰다.

그것만으로도 주변에 잔류해 있던 번개가 제페토에게 틀어박혀 리히텐베르크 도형을 만들어낸다.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어.”

고통스러울 거다. 보통 사람이라면 움직이지도 못할 거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고통이 있기에 아무렇지도 않나 보다.

“피노키오야 이제…… 이제 집에 돌아가야지?”

치이이이익!

제페토는 피노키오를 단단히 붙잡았다. 피노키오의 몸을 타고 흐르던 전류가 제페토의 손바닥을 녹여버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빠…….”

“그래, 우리 피노키오. 언제까지 밖에서 놀려고 그러니? 이제 장난 그만하고 돌아가야지.”

“돌아가도…… 돼요?”

“그럼 우리 집인데 네가 없으면 안 되지 않느냐.”

제페토의 손이 피노키오의 심장이 있을 장소로 향한다.

피노키오는 제페토가 하려는 게 뭔지 이해한 것처럼 활짝 웃으며 자신의 중심을 열었다.

그 안에 보이는 건 작은 나무토막. 그 주변은 이미 벨리알의 그림자가 좀 먹고 있는 상태였다.

우득!

제페토의 손이 그 나무토막을 움켜쥔다. 전류 탓인지, 아니면 지금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 탓인지.

제페토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피노키오는 고장 난 인형처럼 웃는 얼굴인 채로 굳어 있다.

우드득!

무언가를 끊어내는 듯한 소리.

기계 장치에 연결돼 있던 나무토막이 뽑혀 나온다. 그와 동시에 피노키오의 눈동자에 깃들어 있던 생명의 이채가 점점 사라진다.

웃는 모습 그대로, 마치 대장간의 불이 꺼지듯이 천천히.

그렇게 피노키오는 침묵했다.

제페토의 녹아내린 손에 달라붙어 있는 새하얀 나무토막은 진득하게 흘러나오는 피에 얼룩져 진짜 심장처럼 보였다.

누구의 심장을 뽑아낸 건지.

피노키오의 심장인 건지, 아니면 자식을 끝내 자기 손으로 보내줘야 했던 부모의 심장인 건지.

그 심장은 붉기만 했다.

“후욱……. 후욱…….”

고된 작업을 마친 대장장이처럼 제페토가 숨을 몰아쉰다.

이마 위로는 땀이 흘러내리고 그 아래, 눈에도 물이 흘러내린다.

그렇게 쏟아내고 있는데도 무언가를 참고 있는 것처럼 눈썹이 꿈틀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으으…….”

제페토는 끝내 무너져내렸다.

참고 있던 무언가가 댐을 무너트리는 강물처럼 쏟아져나왔다.

심장을 움켜쥔 손은 고통을 견디지 못해 바들바들 떨린다.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표정은 일그러져 있다.

그렇게 제페토는 그 심장을 한동안 움켜쥔 채로 오열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의 정리가 끝난 건지 일어났을 때 그는.

“이제 돌아감세.”

이 의뢰의 끝을 선언했다.

*     *      *

의뢰는 제페토와 피노키오를 재회시킬 것. 그 결과가 좋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성사됐다.

덕분에 과분한 보답을 말이다.

제페토가 직접 만들어낸 무기들.

그것도 피노키오가 이룩하던 자기 진화의 기술에 자기 힘으로 도달해 만들어낸 무기였다.

그저 부품을 모아 조립한 다른 장인들과 달리 제페토가 직접 설계하고 만들어낸 무기는 내 손에 딱 달라붙는 듯한 느낌이었다.

“괜찮을까요?”

니다벨리르를 떠나 다시 여행길에 올랐을 때. 아직도 시무룩한 상태인 리네아가 물었다.

뭐가 괜찮냐고 묻는 건지는 굳이 들을 필요도 없다. 피노키오를 잃은 제페토에 대해서다.

“괜찮아야지. 이것도 정비하려면 그 영감한테 가야 할 거 아니야?”

내 허리춤에는 제페토가 직접 만들어준 리볼버가 있었다.

사용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새하얀, 신성력을 탄환으로 쓸 수 있게 만든 개량형의 무기.

“로스트 씨는 너무 매정해요.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하하!”

리네아가 입술을 삐죽인다. 니다벨리르를 다녀온 이후로 조금 더 감정표현이 다양해진 느낌이다.

예전에는 무조건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건만.

이제야 좀 사람다운 느낌이다.

“괜찮아. 무기가 워낙 좋아서, 거스름돈을 남겨놓고 왔으니까.”

제페토는 피노키오의 심장을 들고 돌아왔다. 분명 벨리알의 권능을 모두 걷어낸 심장은 작디작은 나무토막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직 남았다. 피노키오의 심장은 작지만 남아있는 거다.

“한 번 해낸 일을 두 번이라고 못할까. 재료도 갖춰져 있는데.”

아들을 그리워하던 마음이 예전과 같다면 분명.

*     *      *

따앙!

불붙은 대장간 안에서는 망치 소리가 들려왔다. 금속을 치는 소리.

사각사각.

그리고 무언가를 깎아내는 소리.

뭔가를 엮어내고, 잘라내고 붙인다. 그런 잡다한 소리가 한 대장간에서 일주일 내내 들려왔다.

“후욱……! 후욱……!”

노쇠한 드워프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는 넓은 대장간을 가득 채우는 꼭두각시 인형들이 널려 있었다.

따앙!

이번에는 강철로 만든 심장.

두 번 다시 무너지지 않을 은백색의 심장을 조형한다.

작업은 진중하고 세밀하게.

늙은 드워프의 수백 년에 달하던 세월 모두를 쏟아부은 역작을.

“그래…….”

제페토는 작품을 완성한 직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작은 꼭두각시 인형의 모습이 보였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귀가가 늦었잖느냐. 걱정 끼치지 말고 일찍 돌아와야지.”

그 말에 꼭두각시 인형은 마치 개구쟁이 소년처럼 방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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