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피노키오 (3)
미래 도시 니다벨리르는 외곽과 중앙,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오오! 제페토 영감. 또 들어가나? 자네도 참 대단해. 남들은 아직 외곽의 기술을 연구 중인데 홀로 안쪽까지 꿰고 있지 않나.”
“아닐세. 나도 아직 외곽의 기술들을 다 섭렵하지 못했으니.”
“허허, 겸손도 지나치면 기만이 되네. 그나저나……. 그쪽들은?”
“이번 원정을 도와줄 모험가들이네. 실력은 뭐…… 보이는 그대로일 거라고 믿고 있지.”
“……그렇군.”
타이탄의 압도적인 풍채에 모험가 자격증을 확인해도 되겠냐는 말조차 꺼내지 않는 도시 경비.
이럴 때는 정말 편하다.
초심자에 불과한 우리가 역전의 용사로 보이니 말이다.
여기서야 영주인 제페토가 직접 이끌고 가는 만큼 잡음은 원래 없었을 테지만 다른 영지는 사정이 다를 확률이 높다.
부디 타이탄이 앞으로도 위압적인 모습인 채로 있으면 좋겠다.
괜히 친화적으로 다가간다고 얼굴 펴지 말고.
“따라오게. 지금은 괜찮아도 깊어질수록 위험하니 가급적 전투 자체는 피하는 거로 지향해주게.”
“명심하죠.”
나라고 해서 시련과 정면으로 맞부딪칠 생각은 없다.
목적은 어디까지나 피노키오와 제페토를 대면시키는 것.
그 이후의 일은 둘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물론 일이 틀어졌을 경우도 상정해야겠지만……. 그때가 되면 전력을 다해 도망치면 된다.
이번 원정은 제페토를 제외한 나와 타이탄 그리고 리네아까지.
본래라면 리네아도 두고 올 생각이었지만…….
“저도 나름의 전투 훈련을 받았어요. 귀족이니까요. 귀족이니까 전투 훈련을 받은 건 이상한 일이 아니죠. 귀족이니까. 그러니 제가 발목은 붙잡지 않을 거예요.”
평소 자신의 힘을 숨기려던 것과 달리 열렬한 어프로치가 있었기에 동행시키기로 했다.
리네아의 말대로 발목을 잡을 일은 없을 거다.
신체 능력만 따지자면 그녀가 나보다 더 강하니까 말이다.
물론 타이탄과 비교하면 부족하겠지만, 민첩함이나 감각만큼은 타이탄을 앞설 확률이 높겠지.
척후 느낌으로 활약해주기만 해도…… 아니, 제페토를 신경 써주기만 해도 여유가 생긴다.
타이탄의 전투 센스가 남다르다고는 하나 혼자서 모든 걸 담당하게 만드는 건 좋지 않을 테니까.
“저기, 저건 뭔가요? 적인가요? 아니면 무시해도 될 건가요?”
때마침 리네아가 골목을 막 돌아서 나타난 기계 장치를 가리킨다.
외곽 지역에 돌아다니던 장난감과 달리 거대한 모습이었다.
단순히 몸으로만 들이받아도 일반인은 다칠 수도 있을 거다.
“저건 청소 기계일세. 돌아다니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톱니바퀴나 부품들을 쓸어 담는 녀석이지.”
“그럼 무시해도 되겠네요.”
“아니지.”
리네아가 밝게 미소 짓는 가운데. 나는 그 가치를 깨달았다.
니다벨리르의 안쪽과 바깥쪽의 기술력 차이에는 이유가 있다.
끊임없는 개발과 자기 진화에 열중인 <미래를 그리는 자>가 필요가 없어진 것들을 바깥쪽으로 밀어 넣고 있기 때문이다.
이쪽의 장인들은 그 폐기물 중에서 필요한 것들을 주워 담는 거다.
터무니없는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게 이제 쓸모가 없어져 버려진 거라고 하는데 가만히 둘 리가 있나.
“외곽 지역의 장인들은 아직 부품을 만들 수 없다고 하셨지요?”
“……그렇네.”
제페토는 말했다.
톱니바퀴 정도는 만들 수 있어도 정밀한 부품으로 넘어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말이다.
그 말은 즉.
“그럼 저건 사실상의 보물창고나 다름없는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다만, 굳이……?”
‘굳이’가 아니다.
아무튼, 이놈이고 저놈이고 귀족에다 영주라서 돈 귀한 줄 모른다.
“타이탄 부숴. 완전히 박살 내지는 말고 팔다리를 분질러 버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저 녀석을 잡아두면 당분간 네 식탁에 올라가는 음식의 질과 양이 두 배로 늘어날 테니까.”
“명확한 이유로군.”
타이탄은 모습에 걸맞게 식사량도 보통이 아니다.
당장에 리네아에게 자금이 많기는 하지만, 그걸 빌릴 수는 없다.
녀석과 내 식사는 사냥터에 가서 획득한 전리품을 팔아 번 돈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잦을 거다.
지금이야 제페토의 저택에서 지내고 있다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타이탄도 마차 여행을 하면서 음식의 소중함을 재차 깨달은 바가 있을 테니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팅!
타이탄이 먼저 비수를 던졌다.
은밀하면서도 빠른 비수가 청소 기계의 관절부를 향해 날아갔지만, 금속음과 함께 튕겨 나온다.
“흡!”
타이탄은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등에 매달아둔 창을 던져 이번에야말로 관절부를 꿰뚫었다.
재주도 좋게 4족 보행의 기계의 앞다리와 뒷다리를 각각 하나씩 동시에 꿰뚫었다.
쾅!
그러자 움직임에 제약을 받은 기계가 바닥에 쓰러지고, 타이탄은 확인사살을 하는 것처럼 기계의 머리로 추정되는 부분을 부쉈다.
“별거 없는 상대지만, 생각 이상으로 단단한 녀석이군.”
우득!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타이탄은 나머지 관절부를 일일이 손으로 부러트리는 광경을 선보였다.
이걸로 청소 기계는 내부의 보물을 간직한 채 제자리에 침묵했다.
“근처 구석에 매달아두자. 당장에 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음.”
타이탄이 골목길 사이로 청소 기계를 던져 넣는다. 꼼꼼하게도 방금과 같은 청소 기계가 다가올 걸 염려했는지 아슬아슬하게 들어올 수 없을 만한 골목을 선택했다.
“자, 소감은 어때?”
“가급적이면 부딪치지 않는 게 제일이겠군.”
“그래, 그렇게 행동하자고.”
타이탄에게는 백 마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경험하게 하는 게 편하다. 녀석이 직접 경험하고 느낀 바가 있다면 내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알아서 몸을 사리겠지.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게 시련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객관적인 지표.
타이탄에게는 그게 중요하다.
“깜장여우. 앞으로도 나타날 녀석이 있다면 째깍째깍 보고하도록.”
“제 이름은 리네아인데요…….”
“그래, 그렇군. 깜장여우.”
타이탄은 리네아의 이름은 죽어도 부르지 않는다. 녀석 나름대로 선을 긋고 있는 거다.
이 부분은 차차 해결하기로 하고.
다시금 우리는 니다벨리르의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7m 넘어서의 골목 뒤, 크기는 소형인 기계 장치가 서 있어요. 회피할 건가요? 돌파할 건가요?”
리네아의 질문에 일행들의 시선이 제페토를 향한다.
전체적인 판단은 그에게 맡긴다. 애초에 기본적인 판단은 전투를 회피하기로 굳혀져 있다.
전투를 솔선해서 하는 경우는 그래야 할 이유가 있을 때뿐이다.
“돌파할 수밖에 없겠지. 이미 길목이란 길목은 전부 돌았으니, 이제 뚫고 갈 수밖에 없지 않나?”
지당한 말씀.
최대한 전투를 피하려고 길을 돌고 돌았지만 여기까지 피해서는 중앙까지 들어설 수가 없다.
결론이 나옴과 동시에 타이탄은 날렵하게 움직여 골목을 지나갔다.
“전투 개체다, 로스트!”
타이탄의 뒤를 따라 한 박자 늦게 움직인 나는 그 말에 대응 방식을 정한 채 골목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총구가 보였다.
그리고 그 주변에 덮어 씌워져 있는 피부와 기괴한 근육, 머리카락처럼 늘어진 탄창이 보였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흉내.
생물체의 특성을 그저 얼기설기 설켜 놨을 뿐인 존재.
하지만 위험하다.
탄창의 형태를 보니 총을 연사하는 포악한 기계 장치로 보인다.
다행히 앞서 타이탄이 골목을 지나갔기 때문에 머리가 타이탄이 지나간 방향으로 돌아가 있다.
머리가 다시 이쪽을 향하기 전.
몸을 최대한 숙인 채 전속력으로 기계 장치에 가까이 다가간다.
기관총이라고 부르는 무기를 달고 있는 위험한 전투 개체.
제페토에게 듣기로는 기관총이 위험한 건 일반적인 총과 달리 총알을 연사한다는 점이라 했다.
지이이잉──
머리가 나를 향해 돌아선다. 텅 비어버린 눈동자가 나를 포착한 즉시 붉게 물든다.
철컥.
총을 장전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카락처럼 늘어져 있던 탄창이 아주 조금이지만 안으로 들어갔다.
이대로면 조금 타이밍이 늦다.
검을 뽑은 체 총구가 달린 이음매를 향해 찔러 넣는다.
콰직!
피처럼 붉은 물질이 퍼진다. 다만 진짜 피와는 조금 다르다. 기름과 쇠 냄새가 진동할 정도였으니까.
마치 아이의 목을 찌른 듯한 감각에 불쾌함을 느끼길 잠시.
“흡!”
공격이 얕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대로 꿰뚫어버릴 생각이었건만 단단한 근육에 막혔다.
깊숙해질수록 기계의 내구성이 올라간다더니 사실인 모양.
하지만 꽂히긴 했다.
지금은 그걸로도 충분할 터.
투두두두두!
그대로 검을 꺾어 불을 뿜기 시작한 총구의 방향을 하늘 쪽으로 돌려버린다.
그와 동시에 뻗은 손을 잡아당기듯 팔을 굽혀 그 반동을 이용해 기계 장치를 향해 다가선다.
완전한 사정거리에 들어섰다.
즉시 준비해둔 단검을 뽑아 머리카락처럼 늘어져 있던 여러 탄창 중에 기계에 꽂혀 있는 부분을 몸체에 붙여버리듯 꽂는다.
무겁다. 도움닫기가 짧았다고는 해도 전력을 다해 찔렀건만 조금도 밀려나지 않는다.
철컥! 철컥!
연신 불을 뿜던 총구가 탄이 들어가질 못해서인지 장전하는 소리만 들릴 뿐 완전히 멈춰 선다.
기계의 손처럼 보이는 부분이 대여섯 개 돋아나더니 그중 하나가 끼어버린 탄창을 뽑아내고 다른 탄창을 붙잡는다.
“타이탄!”
그 즉시 골목을 지나쳤던 타이탄이 어깨에 망치를 들쳐 맨 채로 바닥을 기듯 달려온다.
“흐으읍!”
쾅!
타이탄의 망치가 기계의 총구가 달린 부분. 즉, 머리처럼 생긴 부분을 완전히 박살 낸다.
아까처럼 피처럼 생긴 액체가 뿜어져 나오고 그 사이로 살점과 기계 부품들이 흩어진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완전히 부숴버리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다.
애초에 지금 시점에는 기계를 부술 수단이 타이탄밖에 없다.
나도 신성 마법을 비롯한 기술을 사용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일일이 그런 대응을 했다가는 정작 중요한 순간에 버틸 수 없으니까.
그러니 타이탄의 완력만으로 기계를 부수도록 해왔다.
지긋지긋한 상대다. 그저 돌아다닐 뿐인 경비나 다름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방심할 수가 없다.
“후……. 흐읍!”
쾅! 쾅! 쾅! 쾅!
타이탄의 근육이 한순간 부푸는가 싶더니 이내 그 거대한 힘을 기계의 잔해를 향해 때려 박는다.
피와 살점, 금속이 튄다.
이전에 이와 비슷한 개체를 만났을 때, 평범한 생물을 대하는 것처럼 머리를 부쉈더니 팔다리를 휘둘러 공격해왔었다.
어지간한 언데드보다도 더 끔찍한 몰골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잠시 폭음이 들린 후.
조용해졌을 때 나는 가만히 멈춰있는 타이탄을 향해 물었다.
“끝났냐?”
“그래.”
다행히 이번에도 아무 피해 없이 기계 장치를 쓰러트렸다.
속전속결로 말이다.
이건 리네아의 감각이 타이탄보다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녀가 척후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면 몸으로 배웠겠지.
타이탄도 감각이 뛰어나긴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상대의 크기를 맞추는 건 불가능하다.
귀가 좋은 리네아가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걸 통해 그 숫자와 대략적인 크기를 계산한 덕분이다.
역시 의사라 머리가 좋다.
“로스트.”
기계가 혹여라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완전히 산산조각을 내버린 타이탄이 조용히 말한다.
“……아니다. 일단 가지.”
“그냥 말해. 확실하든 아니든, 괜히 머릿속에 넣어뒀다가 나중에 피 볼 수도 있는 거니까.”
“……알았다.”
나는 저런 식으로 말을 돌리는 놈들이 사달을 낸다는 걸 안다.
뭐든 정보는 공유해야 하는 법.
그게 확실하지 않다고 해도 가능성의 일부로 열어둬서 나쁠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피노키오라고 했던가? 이 시련의 주인이.”
“그래.”
“인간이 되고자 한다고 했나?”
“그렇지.”
“이 꼴을 하고도?”
타이탄이 다시금 산산이 조각낸 기계 장치를 가리킨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흉내. 인간 이전에 생물로 칭하기에도 어폐가 있을 정도로 조잡하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더 생물에 가까운 모습이 되겠지.”
우린 아직 절반도 못 왔다.
그리고 피노키오의 최종 목표가 인간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보면 결국 완성된 모습은 아닐 터.
조잡할 수밖에 없다.
“그 점을 묻는 게 아니다.”
“…….”
“봐라.”
타이탄이 부서져 있는 기계 장치의 잔해를 가리킨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 난 부분이 있는가 하면 아직 알기 쉬울 정도의 형태를 남긴 부분이 꽤 남아 있었다.
그리고 타이탄이 가리킨 건 그중 하나. 상어의 이빨을 연상시키는 흉악한 날붙이가 보였다.
“부수기 직전에 봤다.”
타이탄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 날붙이를 쳐다봤다.
“이 녀석은 날 베려고 했다. 아니, 정확히는 찢어버리려고 했다고 하는 게 옳겠군.”
“섬뜩한 가정이네.”
“로스트. 인간이 되고자 하는데 이만큼의 무력이 필요한 건가?”
타이탄의 말에 나 역시 날붙이의 형태를 자세히 살펴본다.
“물론 제 몸 지킬 수단이야 강력할수록 좋겠지. 하지만 로스트. 네가 볼 때 이 무기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이는가?”
“……아니, 그건 아니군.”
무기의 형태만 봐도 그렇다.
이런 형태라면 절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형태인 걸까.
사실 무기가 아니라 다른 용도로 제작된 물건이 아닐까?
톱으로 사용한다면 못 쓸 것도 없다. 이 내부에는 나무는커녕 풀 한 포기도 남아 있지 않지만……
과거에는 있었다고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타이탄은 저 무기를 자신을 향해 휘둘렀다고 했다.
만들어진 목적이 어떻게 됐든 그걸 무기로 활용했다.
피노키오와 달리 마음이 없는 기계 장치가 말이다. 이렇게 되면 나 역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건 호신용이 아니라 상대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무기다.”
피노키오의 목적이 정말 인간이 되려는 게 맞는지.
“명백한, ‘악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