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이단심문관의 악마 사냥법-27화 (27/42)
  • 27화. 피노키오 (1)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아무것도 의심하지 못했다.

    뒤늦게야 소년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리네아는 아연실색했다.

    위험하다. 자신은 이미 상대가 누군지 추측을 입에 담고 말았다.

    설령 틀렸다고 해도 상대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반응할지는 미지수.

    리네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소년에게서부터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그때.

    “안녕? 누나.”

    “어……?”

    무표정했던 소년의 얼굴에 그림으로 그린 듯한 표정이 생겨났다.

    천진난만한 소년의 얼굴.

    그 간극에 리네아는 한순간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느껴지던 이질감이 사라졌다. 두려움도 옅어졌다.

    어쩌면 자신의 착각이 아닐까? 스트레스 때문에 평범한 소년을 기계장치로 착각한 게 아닐까?

    그런 수많은 의혹이 머릿속을 떠다니기 시작한다.

    당장에도 소년에게서는 인간에게선 날 수 없는,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리네아는 풀어지려는 경계심을 최고조로 끌어 올렸다.

    이상한 일이다. 절대로 경계심을 풀어 놓을 만한 상황이 아니다.

    상대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치 진짜 사람 같은…….’

    그 나이대의 소년을 떠올렸을 때 머리에 떠오르는 그림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모습.

    마치 수많은 표본을 구해 그걸 하나로 엮어 구현해낸 듯한 형태.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이 커다란 건물은 뭐 하는 장소인지 혹시 알아?”

    “저택이에요. 사람이 사는 장소.”

    리네아는 솔직히 답했다.

    다만 누가 살고 있는지까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만약 소년의 목적이 제페토의 목숨일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말해도 상관없을 정도의 내용만을 입에 담으면 된다.

    “이 벽은?”

    “벽은…… 벽이죠?”

    그밖에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보아하니 벽이 뭔지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누굴 막으려고 벽을?”

    “외부인이 아닐까요?”

    “그런 거야?”

    “아마도…… 네.”

    리네아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누굴 위한 벽인지에 대해서조차 두루뭉술한 대답으로 회피한다.

    “그럼 나는 외부인이야?”

    “……글쎄요?”

    이 질문은 지뢰다.

    자칫 대답을 잘못하면 그녀의 손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꼴이 된다.

    리네아는 아직 소년의 목적이 뭔지 모르지 않나. 적의가 있는지 아닌지조차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볍게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구나.”

    리네아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을 했다. 자신은 저택의 주인과 연관이 없다는 식으로, 상관없다는 듯이 선을 그었다.

    하지만 소년은 리네아 내부에 깊숙이 자리 잡은 공포를 감지한 것처럼 스스로 답을 내렸다.

    소년은 다시금 무표정으로 돌아가 건물의 벽을 올려다봤다.

    높고 단단한 단절의 벽.

    한동안 벽을 멍하니 쳐다보던 소년은 이내 터덜터덜 걸어갔다.

    “…….”

    소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시점에야 리네아는 움직일 수 있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알려야 한다. 그럼 누구에게 알려야 하겠는가?

    ‘타이탄 씨?’

    리네아는 파티의 핵심 무력인 타이탄에 대해 먼저 떠올려 봤다.

    그에게 말하면 될까?

    >>시련이 있었다고?

    >>지금 어디에 있지?

    >>녀석이 얼마나 강한지 확인해봐야겠다.

    >>투쾅!

    안 된다.

    리네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책 없이 타이탄에게 알렸다가는 그야말로 방아쇠를 당기는 꼴이다. 괜히 목적도 모르는 시련을 자극해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무력은 조금 뒤처지더라도 조금 더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파티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로스트를 떠올렸다.

    >>뭐? 시련? 확실해?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데?

    >>의심스러워? 꼬마애가? 왜?

    >>너 혹시 이상한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거 아니야?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지금까지 이 비밀을 어떻게 숨겨왔는데.

    책잡힐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리네아는 고개를 세차게 휘저었다. 타이탄은 안 된다. 로스트도 안 된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클레어!”

    “리네아 언니?”

    리네아의 논리회로가 망가졌다.

    그게 올바른 판단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소거법으로 남은 사람이 클레어밖에 없었다.

    “크, 크크, 큰일이야.”

    “……30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클레어는 조금 전만 해도 방실방실 웃고 있던 리네아의 극단적인 변화에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 그게!”

    리네아는 본능적인 공포에 횡설수설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클레어는 담담한 얼굴로 그 얘기를 듣고서는 결론을 내렸다.

    “로스트 씨에게 말씀하시는 게?”

    “그건…….”

    “내용상의 공백이 문제인가요?”

    클레어라고 모를 리가 없다.

    리네아가 소년을 의심스러워한 결정적인 이유가 빠져 있다.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그리고 그걸 로스트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좋아하시는 건가? 그런 자식을?’

    클레어의 판단은 엄격했다.

    로스트는 인간쓰레기다.

    그녀의 편견이 담뿍 들어가 있는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었다.

    ‘리네아 언니가 아까운데…….’

    사회적 신분도, 재력도, 능력조차도 리네아가 아깝다.

    당연하지만 평소 자신을 간호해주는 리네아에게 더 호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어찌 됐든 그녀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 당장에 그녀는 로스트를 죽일지 말지 고민하는 와중이다.

    “제가 속이 답답해서 밖으로 나가자고 했고, 우연히 소년을 발견한 리네아 씨가 말을 걸었다고.”

    “어, 그래도 돼?”

    “그럼요. 이렇게 멋진 선물도 주셨는걸요?”

    리네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나 착한 아이인데.

    어째서 그런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야 했었을까?

    “당황하지 마시구요.”

    “응.”

    “호흡을 찬찬히 고르시고……. 침착하게 얘기하세요.”

    “응!”

    클레어는 아직도 시련과의 조우에서 온 긴장감을 떨쳐내지 못한 리네아를 위로하고는 다시 누웠다.

    어쩐지 피곤하다.

    ‘여기서 뭐 하시려는 걸까.’

    니다벨리르에는 그녀의 무기를 구하기 왔다고 했다. 검을 들고 휘두를 체력이 없는 클레어가 임시로나마 쓸 수 있는 무기를 말이다.

    니다벨리르에는 그런 무기가 많았다. 약자를 위한 무기가 말이다.

    대표적으로는 총이 있다.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다.

    그밖에 도시 안쪽에서 흘러들어왔을 거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무기들 역시 가득하다.

    그럼 로스트는 그런 무기들에 대해 알아보고 있던가?

    ‘아니, 다른 목적이 있어.’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클레어는 로스트에 대해 알아챈 게 있었다. 그는 수상한 사람이다.

    남들에게는 말하지 않은 비밀을 잔뜩 품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에 끌어들인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본인조차 인지하지 못하도록.

    사람을 파악하는 게 능한 거다.

    그러니 알면서도 당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끈다.

    ‘악질이야.’

    클레어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몸을 뒤척였다.

    로스트가 만든 시험지가 보였다.

    “……이런 건 잘 만드시는데.”

    이상한 사기에 당해서 개떡 같은 책을 사 온 것과 달리 로스트가 정리해 만든 시험지는 상당히 잘 만들어져 있었다.

    이해하기도 쉽고 문제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게 명확했다.

    그 문제가 어떤 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지까지 객관적이고 알기 쉽게 풀어내기까지 했다.

    리네아만큼은 아닐지라도 로스트의 학력은 상상한 것보다도 훨씬 더 높은 곳에 있다.

    “그런데 왜…….”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벽을 치는 사람.

    마치 언제라도 떠나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짐만을 풀어놓는 여행객 같은 사람이었다.

    “다들 어린애뿐이구나.”

    아직 한참이나 어린 그녀가 말하기도 그렇지만, 일행 중에는 어른이 된 사람이 없었다.

    “다들…… 나처럼 미숙해…….”

    클레어는 서서히 눈이 감기는 걸 느꼈다. 편안한 이부자리다.

    “어쩌면…….”

    몸이 약한 그녀를 위해서 제페토를 자극한 걸지도.

    그래서 이런 훌륭한 거처에서 지낼 수 있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     *      *

    리네아는 클레어의 조언대로 냉정하고 침착하게 달려갔다.

    “로스트 씨! 큰일이에요오!”

    어디까지나 그녀의 생각 속에서는 그랬다는 소리다.

    그녀는 저택 내부를 돌아다니는 사이 다시 패닉에 빠졌다.

    마음은 조급한데 로스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교적 평범한 부류에 속한 그녀였기에 초월자와의 만남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로스트는 숨을 고르는 리네아를 보며 뺨을 긁적였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과민반응하는 건 본 적이 없다.

    “시, 시련을 만났어요!”

    “뭐? 어쩌다가?”

    “……클레어가 바람을 쐬고 싶다고 해서 데려나갔다가 기이한 소년을 만났어요. 한없이 인간처럼 생겼지만……. 기계장치였어요.”

    “흠.”

    다행히 리네아는 클레어와 함께 생각해둔 변명을 내뱉는 사이 어느 정도 진정할 수 있었다.

    “무슨 대화했어?”

    “그, 그게…….”

    로스트는 리네아의 기대에 부응하듯 냉철한 태도로 물었다.

    물론 로스트도 이런 상황에, 그것도 리네아가 시련과 마주쳤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애초에 그런 소년의 비밀을 눈치챌 수 있었던 것도 리네아가 수인이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감각이 남들보다 뛰어난 자들은 애초에 니다벨리르에 오지 않는다.

    소음이 가득 찬 도시는 그들에게 괴로울 뿐이니까. 설령 올 일이 있다고 해도 대부분이 감각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들에 해당했다.

    리네아처럼 시끄럽고 머리가 아파지는 장소에서 감각을 모두 풀어놓은 채로 주변을 돌아다니는 멍청이는 별로 없다는 소리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이 외부인인지 묻고는 떠나갔어요.”

    “불길하네.”

    “그래요! 불길해요! 혹시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건 아니겠죠?”

    그녀의 말로 인해 니다벨리르에 거대한 재앙이 찾아오기라도 한다면 그녀는 버틸 수 없다.

    그녀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감추지 않았던가.

    그러한 공포가 그녀의 몸을 옥죄이고 있었다. 그녀가 무슨 일을 해도 뒤바꿀 수 없을 운명처럼.

    그녀는 사람들의 멸시를 받게 될 거라는 것처럼 느껴져서.

    “일단 진정해.”

    로스트는 불안으로 떨리는 리네아의 여우 귀를 보고서는 일단 그녀의 양손을 포갰다.

    그리고는 기도하는 것처럼 그녀의 양손을 감싸 쥐었다.

    그 부드러운 손길에 진정이라도 되는 건지 리네아의 호흡이 귀와 함께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별일 아니야. 네가 몇 마디 한 정도로 니다벨리르에 문제가 생겼다면 진즉에 생겼을 문제니까.”

    “그럴까요?”

    “애초에 악의는 없었을 거야.”

    로스트는 평소처럼 눈을 감고 연초에 불을 붙였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로스트만의 의식이다.

    공포를 다른 공포로 다스리는 법.

    의식을 할애해 정신을 냉철하게 만든다.

    “애가 이렇게 불안해하는데.”

    연초 끝에 아른거리는 불꽃을 흐릿한 눈으로 보던 로스트는 조용히 뒤돌아서 물었다.

    “뭐라도 말씀해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제페토 영감님.”

    제페토의 안색은 파랗다 못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표정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동요하고 있다.

    어쩌면 운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변명할 수 없을 상황이니까.

    “제 예상이 맞다면, 당신을 만나러 온 것 같은데.”

    제페토는 눈을 질끈 감았다.

    로스트의 말이 맞다.

    <미래를 그리는 자>는 자신을 만나러 왔다. 게다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감정의 동요를 보여버린 이상 숨기는 것도 불가능하다.

    “……리네아 양, 그 아이는 어떻게 보이던가?”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미래를 그리는 자>가 자신을 찾아온 일 말이다. 아니, 어쩌면 눈치채지 못했을 뿐, 그 아이는 언제까지고 벽에 가로막힌 채 기다리고 있었던 걸지도 모를 일이다.

    “그게…….”

    참담한 표정의 제페토를 보던 리네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이 혹시라도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닌지 했던 걱정이 사라진 뒤다. 그렇기에 비교적 과거의 일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다.

    “쓸쓸해…… 보였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자신은 없었다.

    소년은 웃고 있었다.

    그 연령대의 아이처럼 말이다.

    쓸쓸해 보였다고 생각하는 건 그저 질문이 그렇게 느껴졌을 뿐.

    안타깝게도 리네아는 소년에게서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러한 대답을 한 건 제페토의 표정이 너무나도 절실해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 그렇군. 그야 당연하겠지.”

    자신의 손을 보며 바들바들 떨던 제페토는 마침내 뭔가를 정했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자네가 했던 말대로. <미래를 그리는 자>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불리는 아이는 내가 만들었네.”

    그건 분명 기적이었을 거라고. 제페토는 장담했다.

    “그리고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든 것도 내 잘못이야.”

    “뭐가 됐든, 일단 주어부터 바로잡읍시다.”

    로스트는 마치 뭔가를 토해내는 것처럼 말을 꺼낸 제페토를 보며 말했다. 그는 제페토를 비난하기 위해 찾아온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해결을 위해서다.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만이, 부정하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그녀가 존경하던 성녀는 늘 호구처럼 살았다. 그게 어리석어 보이던가? 아니, 그렇지 않았다.

    그 삶의 자세는 그 어떤 것보다도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당신을 그렇게나 괴롭게 만드는, 그렇기에 관계가 깊었을 관계. 그렇다면 뭣 모르는 사람들이 멋대로 붙인 이름이 아닌, 당신이 붙인 이름이 있을 거 아닙니까?”

    <미래를 그리는 자>라거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거나 그런 거창한 이름이 아닌, 드워프 제페토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 이름이.

    “그 아이는…….”

    제페토는 고개를 떨궜다.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지금껏 그 누구도 시련이라고 불리게 된 아이의 진짜 이름 같은 건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피노키오라고 하네.”

    줄곧 홀로 감당하고 있었던 비밀에 대해 털어놓기로 한 건.

    그러자 사내가 싱긋 웃었다.

    “부모 속 좀 썩였을 거 같은 이름이군요.”

    그런 평범한 태도에 제페토는 마치 잊고 있던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처럼 눈물을 머금고 쓴웃음을 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천방지축이었지…….”

    그렇게 제페토의 멈춰 있던 톱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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