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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이단심문관의 악마 사냥법-26화 (26/42)

26화. 미래 도시 (3)

책이 타들어 가는 걸 지켜보던 제페토가 이내 장갑을 내던지고서는 나를 향해 핀잔을 내뱉는다.

그때까지도 나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책이 활활 불타는 걸 별로 지켜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정확히는 불꽃을 바라보고 있는 게 눈 아파서였지만 말이다.

“화로에 이물이 들어갔군. 오늘 작업은 이걸로 끝내야겠어.”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그렇게까지 해서 불태울 필요가 있었나? 작업을 내던질 정도로?

“공통점도 없고 하나로 이루어지는 그림도 없다. 그저 해체해서 알게 된 장치들의 설계도를 늘어놓기만 했을 뿐이지 않으냐. 보기만 해도 화가 나는 쓰레기군.”

“그거 비싸게 주고 샀는데.”

“뭐든 단계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요즘 놈들은 제대로 된 단계를 거치려고는 하지도 않아.”

“물어주실 겁니까?”

“당장에 톱니바퀴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게 반절이다. 그런 놈들이 그저 조립하는 방법, 작동하는 방식만 알아서 뭣하겠느냐.”

귓등으로도 안 듣네. 명예직이라고는 해도 영주면 들어오는 돈이 꽤 있을 텐데 치사한 영감이다.

“미래를 그리는 자가 사라지면? 그 기술의 근간이 사라지면 당장에 옛날로 회귀할 거 아니냐.”

“뭐, 그러니 공략을 못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너는 도대체 뭐 하는 놈이냐? 종교쟁이 주제에 시련을 긍정하기라도 하는 거냐?”

“그러는 영감님은 이런 도시에 살면서도 잘도 그렇게 사시는군요. 다른 장인들한테 이단 취급당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심문이라도 하게?”

“저는 종교 관련 문제에만 참견하는 종교쟁이인지라.”

“푸하하하! 미친놈 같으니라고.”

방금도 듣고 온 말이다.

애초에 미치지 않으면 이 일을 어떻게 하겠는가.

“음, 잠시…….”

코에서 흘러나오는 진득한 피를 소맷자락으로 닦아낸다.

이것 참, 가만히 있을 때도 침식의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뭐냐, 어디 아프냐?”

“예, 조금.”

눈도 조금 뻑뻑한 거 같다.

이 망할 놈의 시련은 나를 내버려 두지를 않는다.

“종교쟁이. 이제 보니 칼도 쓰는군? 네놈이 모시는 신께서는 별말 안 하시냐?”

코피를 닦기 위해 소매를 들어 올렸기 때문일까? 허리춤에 놓여 있는 검에 눈이 간 모양이다.

“아, 저 만신전 소속입니다. 칼이야 뭐……. 전쟁의 신님께서 허락하셨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 관대하군. 이참에 좀 보여줘 봐라. 내가 좀 손봐주지.”

“화로에 불순물이 들어갔다며요? 그런데 손대도 괜찮은 겁니까?”

“내 칼도 아닌데 뭐 어떤가.”

“아니, 이 미친 영감이?”

“농담일세. 보기만 할 거야.”

제페토는 반쯤 뺏어가다시피 내 검을 가져갔다.

그래도 니다벨리르 최고의 장인이라고 하니 문제는 없을 거다.

설마 부러트리기라도 하겠는가.

아니, 차라리 잘됐다.

안 그래도 신성력이 먹히지 않는 검이라 찝찝함이 있었는데 그 원인을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흠…….”

땅.

제페토는 검을 빛에 비춰보거나 망치로 두들기는 등 여러모로 확인에 들어갔다.

날의 상태를 확인하고 무게중심, 두께, 길이 등까지 확인하나 싶더니 제페토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거 어디서 났나?”

“제게 검을 가르쳐주신 스승님에게 받았습니다. 혹시 뭔지 좀 아시겠습니까? 평범한 검은 아니던데.”

“이 검은 말일세.”

제페토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게 아닐세.”

“그럼 마수의 뼈라도 됩니까?”

종종 그런 무기들이 있긴 하다.

당장에 메탈울프만 해도 그 갑각을 활용해 무기를 만들지 않던가.

그와 비슷한 이치라고 한다면 신성력이 통하지 않았던 이유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다.

“비슷하지. 비슷하지만…….”

“뭔가가 더 있나 보군요.”

“마수의 소재로 무기를 만드는 과정은 알고 있나?”

“대충 갈거나 두드리거나 하지 않겠습니까?”

“비슷하지. 뭐가 됐건 변형이 필요한 법이야. 가령 마수의 뿔을 무기로 삼는다면 그 뿔을 갈거나 때려서 형태를 잡곤 하겠지.”

어떤 말인지 알 거 같다.

제페토도 그걸 설명하려는 건지 검의 날이 아닌 크로스가드와 손잡이 그리고 폼멜 같은 부분을 살펴보기 시작했으니까.

“그런데 이건 소재 그 자체가 검의 형태를 하고 있네.”

“검 끝부터 폼멜까지 전부?”

“검 끝부터 폼멜까지 전부. 그나마 연마한 부분이 있다면 폼멜이군. 끝부분을 갈았어.”

“그럼 이 검의 폼멜 부분이 어떤 생물과 연결돼 있었다는 소리 같이 들리는데 말이죠.”

“그렇네. 이렇게 균형 잡힌 완벽한 검을 육신으로 지니고 있다라……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키메라도 이런 건 존재할 수 없을 텐데.”

“음…….”

스승님이 주신 새하얀 검.

아름답게만 보였던 그게 어쩐지 섬뜩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무튼, 좋은 검일세. 내가 따로 손댈 부분은 없겠어.”

“알아낸 정보가 빈약하시군요.”

“내가 알아야 할 정보도 아닌데 열심히 할 이유가 있나?”

“쩨쩨하시긴.”

여전히 검의 정체는 불명.

알아낸 것이라고는 금속이 아닌 생물의 일부라는 점뿐.

도대체 어떤 생물이 이런 검을 통째로 몸에 달고 다니는 걸까?

모를 일이다.

“말 나온 김에, 다른 무기 좀 볼 수 있겠습니까? 만들어본 적 있으니 확인하신 거 아닙니까.”

“그 검이면 충분하지 않나?”

“이거, 신성력이 안 통합니다.”

“신의 힘으로 사람을 해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보내만. 어떤 의미로는 성유물이군. 아껴 쓰게.”

“그런 관점도 있었군요.”

나는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나보다 더 신실하신 분이다.

“검이면 되나?”

“딱히 가리는 건 없습니다.”

“욕심이 많은 녀석이군.”

제페토는 적당히 둘러보라는 듯 자신이 만든 무기들을 보여줬다.

바깥의 풍경과는 이질감이 들 정도로 평범한 무기들뿐이다.

검과 창, 도끼. 그야말로 일반적인 대장간에서 볼 수 있는 것들.

“이런 건 얼마나 합니까?”

그중 내가 보기에도 상당한 수준으로 완성된 검들이 있었다.

스승님의 검에는 신성력이 씌워지지 않으니 쓰기에 문제가 있다.

마나를 오러의 형태로 바꿔 쓰기 위해서는 나름의 수련이 필요하다.

그동안 사용할 대신이라고 한다면 충분할 정도다.

“제국 금화 2,400개.”

“은화 말입니까?”

“금화. 제국 금화 말일세.”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가격이다. 작은 영지라면 한 해의 예산으로도 편성될 만한 가격이니까.

“……성능에 비해 비싸군요.”

“돈 없는 놈들은 꼭 그렇게 트집을 잡더군. 안 살 거면 내려놓게.”

검을 얌전히, 최대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이런 건 리네아한테도 사달라고 할 수가 없다.

그래도 사람이 염치가 있지.

이제 무기와 관련된 화제는 됐다.

차라리 도시에 늘어져 있는 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무기를 사는 게 더 싸게 먹혀들 거다. 장인의 물건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화제를 옮긴다. 슬슬 신경전을 시작할 순간이 왔다.

<미래를 그리는 자>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 됐다. 남들은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지 않은가.

시련과 시련이 맞붙었을 때,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지.

인간에게 해코지하지 않았다고는 한들, 가진 힘이 너무 크다.

원인을 규명하고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도시 안쪽에는 뭐가 있습니까?”

“모르네.”

“너무 노골적이지 않습니까. 흔히 알려진 것만이라도 말해주시죠.”

“기술이 있지. 우리가 모르는 한참 더 뛰어난 기술이.”

“예를 들면?”

“자네는 모르는 걸 설명할 수 있나? 우린 지금까지도 외곽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네. 가장 뛰어난 장인인 나조차도 외곽에서 밀려난, 사실상 폐기 처리된 기술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는 말일세.”

땡그랑!

제페토가 나를 향해 쇳덩이를 집어 던졌다. 슬며시 피하자 바닥에 부딪히며 소리를 내며 굴러간다.

“잘 보게. 내 기술의 한계점은 어디인지, 그걸 토대로 이 도시가 어떤 문제를 지니고 있는지.”

“…….”

제페토가 던진 건 톱니바퀴였다.

그것도 크기가 제각각인 강철 톱니바퀴 말이다.

그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적어도 제페토에게 톱니바퀴를 만드는 기술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의 크기로 제한된다는 사실 말이다.

“작을수록 만들기 힘들더군. 그것도 그 정도 금속으로는 더더욱.”

“그래도 만드셨지 않습니까.”

“가장 기본적인 형태만 말일세. 그걸 적용해서 기계 장치를 만들려면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정밀한 계산과 작업이 필요하지.”

“가령 이런 거 말입니까?”

리네아가 사준 회중시계. 그 안쪽에는 크고 작은 톱니바퀴가 규칙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괜찮군. 우리 장인이 만들어낸 건 아닐세. 그럴 실력이 안 돼.”

“해체해보면 알 거라던데?”

“알기야 하겠지. 조립이라면 알렉스도 할 수 있을 걸세. 다만 그 재료를 만들어내지 못할 뿐.”

“알렉스가 누굽니까?”

“우리 집 개.”

“아하.”

뭔 소린가 했네.

제페토는 회중시계를 한동안 빤히 쳐다봤다. 무언가 생각의 정리라도 하는 것 같아 내버려 뒀다.

고민해야 할만큼의 일이라면 그만한 내용일 테니까.

“안쪽에 뭐가 있는지 물었던가?”

“예, 그리고 영감님은 기술이라고 답해주셨습니다.”

“그래, 우리로는 이해할 수조차 없는 기술이 있네. 그런데 그런 우리도 이해할 수 있는 건 있다네.”

“드디어 듣고 싶었던 내용을 말해주시는군요.”

“딱히 숨길 것도 없지. 도시 안쪽에 있는 건 말일세.”

회중시계에서 눈을 뗀 후 나를 올려보던 제페토의 눈에는 막연한 불안감과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도시 안쪽에서 뭘 봤기에 저런 불안을 품고 있는 걸까?

“외곽에서 안쪽으로 갈수록 기술력은 마치 기술의 역사를 새겨놓은 역사서처럼 이어지네. 당연히 안쪽에는 경비들도 있네. 기계 장치로 이루어진 난폭한 것들이지.”

“그건 처음 듣는 소리군요.”

“그 욕심 많은 장인이 자기 주제 파악을 잘해서 외곽에만 있을까? 안쪽에는 아직 접근조차 하지 못했기에 바깥에만 있는 거지.”

“그럼 <미래를 그리는 자>는 인류의 적이라고 보면 됩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쓴웃음. 그럴 리는 없다는 듯. 비웃음에 가까운 그런 웃음이었다.

“아무튼, 그 자기 진화의 종착점을 향하는 단면도의 방향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네.”

“그게 뭡니까?”

“…….”

제페토는 뜸을 들였다. 말을 해도 되는지, 비밀을 풀어놔도 되는지에 관한 걱정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자신이 내놓은 답이 혹여나 정답일까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몇 번이고 한 고민일 거다. 그러니 잘 알지도 못하는 나한테도 말할 수 있는 내용일 거다.

그게 아니라면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렇게 잠시 고민하며 뜸을 들이던 제페토는 말했다.

“……<미래를 그리는 자>는 단순한 기계 공학을 넘어 생명 창조의 영역으로 진화하고 있네.”

“그건…….”

“그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신의 영역이지.”

*     *      *

리네아는 니다벨리르가 좋았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이 니다벨리르 산인 것도 이유다.

물론 그녀는 인간보다 감각이 뛰어난 수인이었기에 니다벨리르는 결코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귀를 어지럽히는 제련의 소리, 코를 마비시키는 쇠의 냄새.

견디기 힘든 뜨거운 열기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니다벨리르를 좋아했다.

능력을 각성한 이후, 세상이 너무나도 끔찍하게 보였던 그녀다.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붉은색의 선과 점들. 마치 세상의 단면도를 만들어내는 듯한 현상에 토악질이 나오던 게 몇 번이었겠는가.

그녀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 비밀을 감추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연히 찾아오게 된 니다벨리르는…….

“붉지 않아.”

단단하게 제련된 쇠와 기계 장치들은 그녀로는 결코 넘볼 수 없을 정도의 강도를 자랑했다.

붉은색이 가득한 그녀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색을 차지하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니다벨리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 장치의 동물들이 돌아다닌다. <미래를 그리는 자>가 만들어낸 장난감 같은 것들 말이다.

오전에도 봤던가?

기계 장치로 이루어진 새와 강아지를. 붉은색으로 점철되지 않은 구릿빛 장난감들의 형태를 말이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그런 딱딱한 기계 장치가 오히려 생명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헤헤.”

오래 머물 수는 없을 거다.

애초에 그렇기에 포리스 공작령에 터를 잡으려고 했었다.

지금도 주변의 소음으로 인해 머리까지 아프다. 하지만 그런 고통을 고려하더라도 마냥 좋았다.

그녀가 평범해질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 이 시간을 최대한 알차고 즐겁게 보내야 할 거다.

“응?”

저택에서 창밖의 기계 장치를 구경하던 도중이었다. 그녀의 눈에 한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어?!”

무심코 지나가듯 발견한 아이의 모습에 리네아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금…… 바, 방금……!”

붉은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로스트 같은 사람이 한 명만이 아니었던 거다.

리네아는 모처럼의 단서에 귀족의 체통조차 잊어버린 채 아이가 있던 방향으로 뛰쳐나갔다.

아이는 저택의 근처에 있었다.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다.

그렇게 자신의 신체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건물을 뛰어내리다시피 내려온 리네아는 처음 소년을 발견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저기.”

소년은 거기에 있었다. 어딘가로 떠나지 않은 채 저택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던 거다.

소년이었다. 멜빵바지와 노란색 모자를 멋스럽게 쓰고 있는 소년.

리네아는 숨을 고르며 조심스럽게 그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

“윽?!”

소년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 소년과 눈을 마주친 리네아는 비로소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아이는…….’

인간이 아니다.

소년에게서는 여전히 붉은 빛이 보이지 않았다.

선은커녕 점조차도 말이다.

그렇기에 소년의 눈동자는 세상과 대비될 정도로 푸르렀다.

하지만 로스트와는 달랐다.

로스트처럼 보이지 않는 게 아니다. 애초에 볼 수조차 없던 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녀로는 소년을 상처입히는 게 불가능했다.

소년의 새하얀 피부는 그녀가 무슨 짓을 해서도 상처입힐 수 없다.

그 압도적인 존재의 힘에 몸을 떨던 리네아는 소년의 눈동자 안쪽으로 보이는 정체불명의 정교한 기계 장치를 보고서는 깨달았다.

그래, 눈앞의 소년이 바로.

“미래를 그리는 자…….”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이 도시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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