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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이단심문관의 악마 사냥법-25화 (25/42)
  • 25화. 미래 도시 (2)

    자, 어떻게 하려나.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제페토에게 시련에 관해 물어봤겠지만, 나처럼 묻는 자는 없었을 거다.

    그가 시련의 부모로 추정된 이유도 마지막에 보였던 그 모습에서 유추해낸 사실일 뿐이니까.

    솔직히 누가 그리 생각하겠는가.

    일개 개인이 시련을 만들었다고.

    그저 시련과 관련이 있다고. 가장 많은 내용을 알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심지어 만신전에서야 시련을 공략할 방법을 찾은 거겠지만, 다른 집단에서는 제각각 제 욕심을 채우려고만 했을 테니까.

    미래 도시가 아닌가? 이 도시의 세기를 초월한 발명품들은 모두 <미래를 그리는 자>가 만든 거다.

    그런 <미래를 그리는 자>의 가치를 환산하면 얼마나 나오겠는가.

    그와 관련된 정보라면?

    “부모라…….”

    모두가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제페토에게 접근했을 거다.

    아니면 시련을 파괴하기 위한 조언을 듣기 위해서거나.

    그 누구도 제페토가 시련을 지키려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물론 나도 안 믿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거쳐 간 길을 똑같이 거칠 정도로 멍청하게 굴 생각은 없다.

    말도 안 되는 가정을 진실이라고 생각하며 밀어 붙여볼 뿐이다.

    “……하하하하! 재밌는 농담을 하는 종교쟁이로구나.”

    “그렇습니까?”

    호쾌하게 웃어넘겼다.

    하지만 그사이에는 분명 잠깐의 간극이 있었다.

    생각한 거다. 내가 한 질문에 대한 답을 따로 준비해야 할 정도로 당혹스러웠던 게 분명하다.

    “아니, 현실성이 없는 얘기가 아닌가. 이 늙고 병든 드워프 하나가 이런 대도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나? 나조차도 이 도시의 중앙에는 접근하지 못하는데?”

    “그렇긴 하죠. 웃자고 한 소립니다. 영감님이 저 같은 부류를 별로 좋아하시는 거 같지 않길래, 앞서 찾아왔을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대화를 청해봤던 것뿐이죠.”

    “그래, 유머는 있군. 앞서 왔던 머리 굳은 놈들보다는 낫다.”

    경계심이 풀렸을까?

    내가 다른 이들과 달리 시련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내보여서?

    욕심을 내세우거나 적대적인 발언을 내뱉지 않아서?

    그럴 리가.

    나이를 세는 게 무색할 정도로 오래 산 양반이다. 그런 양반이 이렇게 경계심 하나 없이 눈앞에 들이민 미끼를 덥석 물 리가 없다.

    본인도 눈치챘을 거다.

    자기가 말을 내뱉기까지 근소한 간극이 존재했다는 것을.

    그러니 저건 경계심을 푼 게 아니라 최고조로 올린 거다.

    “머물 곳이 정해지지 않는다면 내 집으로 오게나. 재밌어 보이는 일행이니 대접은 해줌세.”

    의심스러운 이들을 어떻게 대할지는 사람마다 다른 법.

    제페토는 우리를 가까이에 두고 감시하기로 한 거다.

    동시에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이기도 하겠지.

    가장 가까운 데에서 노골적으로 의심을 시선을 보내봤자, 어떠한 의혹도 발견할 수 없을 거다.

    “그럼 호의를 받들고, 잠시 머무르도록 하겠습니다.”

    “크하하하! 그렇게 하게나.”

    서로의 노림수가 뭔지 다 아는 상황에서 시작된 신경전.

    “관광, 기대되는군요.”

    진심으로 말이다.

    *     *      *

    니다벨리르 안에는 말 대신 기묘한 탈것이 잔뜩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게 톱니바퀴와 증기로 움직이는 마차.

    아니, 마차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생긴 것도 제각각이고 작동 방식도 미묘하게 다르다.

    그나마 공통점이 있다면 생물의 모습을 흉내 냈다는 점일까?

    틱톡틱톡.

    기묘한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작은 강아지 형태의 기계장치.

    그 기계장치의 용도가 뭔지는 모르겠다. 주변에 비슷한 게 잔뜩 돌아다니는 걸 보면 이곳에서는 익숙한 기계장치인 것 같지만…….

    “보고 있으면 질리지는 않겠네.”

    “먹을 수도 없는 것들 아닌가.”

    “그렇긴 해. 그래도 사냥하면 비싼 물건은 많이 나오겠네.”

    “한 마리 잡아보면?”

    타이탄이 한번 부숴보자는 듯이 망치를 들어 올렸다.

    흥미 없다는 듯이 말한 주제에 아주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남의 도시에서 사고치고 다니긴 싫으니까 멈춰.”

    “쯧…….”

    그리고 전리품으로 얻을 것들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도 없다.

    기계장치의 부품 같은 걸 공학자도 아닌 우리가 어떻게 쓰겠는가.

    이곳의 공학자들에게 팔아넘기기에는 상대적 가치가 떨어질 거 같고, 다른 도시로 가져가 교역을 한다고 해도 바가지나 쓸 거 같다.

    필요한 자에게나 보물이지, 모르는 자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로스트 씨, 로스트 씨. 이거 봐요! 귀엽지 않나요?”

    “그러네.”

    “관심 없다는 티를 그렇게까지 내셔야 하나요……?”

    일행 중 가장 감수성이 풍부한 리네아는 여기저기를 방방 뛰어다니며 눈을 빛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평범한 소녀다. 말도 안 되는 기교도 터무니없는 잔혹성도 보이지 않는다.

    “아! 이건 어때요? 로스트 씨에게 잘 어울릴 거 같은데. 거기다 실용적이기도 하고요.”

    “음……. 그렇네. 이건 확실히 가지고 다녀서 나쁠 건 없겠어.”

    이번에 리네아가 눈독을 들인 것은 시계였다. 시계 자체도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한 물건인데 그 크기도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

    안쪽에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있다.

    이것 참……. 언제 봐도 말도 안 되는 기술력이다. 망치나 두드리는 장인들이 저런 작고 정교한 톱니바퀴를 만들 수나 있을까?

    “이거 어떻게 만드신 겁니까?”

    “궁금하면 사가서 해체해보는 게 어떤가? 재료는 근처에서 구할 수 있으니 방법을 모색해보는 것도 즐거운 여흥일 거 같네만?”

    “알려줄 수 없다는 걸 참 고풍스럽게 얘기하시는군요.”

    “그래서? 살 건가 말 건가?”

    “가격이나 들어봅시다.”

    저 정도 시계라면 다소 비싸다고 해도 살 만하다. 본디 계획이라는 건 시간 조건까지 들어갔을 때야말로 비로소 완벽해지니까.

    “아, 됐어요. 제가 사드릴게요.”

    “그러면 미안한데.”

    “뭘요. 기념이잖아요?”

    하긴 리네아에게는 그리 비싼 물건이 아닐지도 모른다.

    의사에 백작가의 여식이니 가진 돈이 얼마나 많을까.

    돈과 돈을 부르는 조합이 만났으니 두려울 게 없겠지.

    당장에 낡은 로브 밑에만 해도 숨길 수 없는 비싼 옷가지들이 있지 않던가. 저런 걸 일상복으로 입고 다니는 시점에서 이미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족속이다.

    “클레어에게는 뭐가 좋을까요?”

    클레어는 저택에 두고 왔다.

    그녀도 관광을 기대하고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여행의 피로가 풀리려면 시간이 걸릴 거다.

    “이런 건 어때?”

    “……로스트 씨는 클레어에게 너무 가혹한 면이 있어요.”

    “어디가?”

    “이런 도시까지 와서 공부를 시키려는 점이요!”

    그게 뭐가 나쁘지? 다 클레어 잘되라고 하는 건데.

    리네아는 의외로 내가 고른 ‘기계공학 장인이 되는 법’이라는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의사쯤 됐으면 공부도 많이 했을 텐데 이렇게 부정적일 줄이야.

    미리 학력을 높여놔야 나중에 편히 살 수 있지 않겠는가.

    “하긴 리네아는 귀족이니까 평민의 절실함을 모르겠구나.”

    “클레어도 귀족인데요?”

    “몰락 귀족이지.”

    “그건…… 그렇지만.”

    책을 들어 살펴본다.

    각종 기계장치의 설계도가 설명과 함께 그려져 있는 게 보였다.

    보고만 있어도 어지럽다. 초보자가 이해하기에는 어렵지 않나?

    “딱이네.”

    “…….”

    어렵다는 건 즉 수준이 높다는 소리다. 선물은 이걸로 정했다.

    “저, 저는 다른 걸 선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뭐, 선물해주는 사람 마음도 생각해야 하는 법이지. 그럼 이건 내가 사는 걸로 할까?”

    “그 책을 기어코…….”

    이래서 있는 집 애들은 모른다. 절박함이라는 게 부족하다.

    하지만 클레어에게는 그게 있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기초 지식이 탄탄해야 하는 법이 아닌가.

    나는 버크와 약속했다.

    클레어가 나중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건 남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거다.

    그리고 행복을 스스로 만들려면 돈과 명예가 필요하다.

    아주 많은 돈이 말이다.

    좋다. 이렇게 필요한 것들이 갖춰졌다면 이제 길만 깔아주면 된다.

    “우리 클레어는 나중에 꼭 종교재판소의 소장이 될 거야.”

    “그런데 왜 기계공학?”

    “교양으로 알아둬서 나쁠 거 없는 과목이잖아.”

    “……집안 교육 방침에 참견하는 것도 좋진 않겠네요.”

    내 결연한 의지를 본 리네아는 그제야 포기한 듯 고개를 돌렸다.

    “저는 이걸로 할래요.”

    리네아가 고른 건 옷이었다.

    새하얀 원피스. 굳이 니다벨리르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보기 힘든 디자인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물론 재질은 뛰어날 거다. 햇빛을 받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클레어였기에 나쁜 선택은 아니다.

    “그래도 내 선물이 더 나아.”

    “…….”

    클레어도 분명 기뻐할 거다.

    *     *      *

    “고마워요. 리네아 언니. 그리고 로스트 씨? 이 쓰레기는 늦기 전에 환불하시는 걸 추천할게요.”

    “…….”

    어째서냐.

    “너도 결국 귀족이었구나.”

    절박함을 알 거라고 생각했건만 배가 아주 불렀다.

    “리네아 언니. 로스트 씨가 역차별을 입에 담기 시작했어요. 피곤해질 거 같으니 뒷일은 부탁드려도 될까요?”

    “로스트 씨, 나가죠?”

    “이거 안 놔?”

    “로스트, 추하게 굴지 말고 그냥 나와라. 내가 봐도 그 이상한 책은 도무지 선물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 너도 왕족이지.”

    “미친놈이 오늘따라 심하군.”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잘못된 건 세상이다. 귀족과 왕족이 배움의 기회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모르니까 저러는 거다.

    빌어먹을.

    나 빼고 전부 왕후 귀족이다.

    날 이해해줄 사람은 어디 있을까.

    그런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에 책을 들고 저택 내부를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응?”

    그렇게 조사 아닌 조사를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장 일이라도 하는 걸까?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제페토가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리고 있었다.

    “뭐냐, 할 말이라도 있느냐?”

    “아뇨, 예상한 거랑은 달라서.”

    니다벨리르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기계공학.

    당장에 장인들만 해도 최첨단의 도구로 정교하고 세밀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게 보였다.

    세간에 보여주기에도 그 정도면 특별한 기술 같은 건 더욱 뛰어날 거라 생각했던지라 이런 평범한 대장간 일은 신기할 따름.

    “흥, 그건 그놈들이 헛물이 들어서 그런 거다.”

    “그렇습니까?”

    “자네도 종교쟁이라면 알 거 아닌가? 니다벨리르의 문제가 뭔지.”

    “아는 것과 실천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괜히 만신전에서 가장 위험한 시련으로 지정했겠습니까?”

    시련의 위험도.

    단순히 힘만을 따진다면 <침식하는 자>나 <어디에나 있는 자>다.

    하지만 시련의 위험도를 평가하는 건 그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다. 물론 <어디에나 있는 자> 멜리스도 위험하긴 하다.

    인간의 악의라는 건 도저히 극복하기 힘들 것처럼 보이니까.

    하지만 <미래를 그리는 자>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다르다.

    “눈앞에 답이 있는데도 보지 말라는 건 가혹한 일이죠.”

    <미래를 그리는 자>는 인간에게 호의적이지도 적대적이지도 않다.

    그저 존재 자체가 이득이다.

    그 정체불명의 기계장치가 만들어내는 발명품들이 있었기에 니다벨리르가 여기까지 발전했으니까.

    “그건 성장이라고 부를 수 없네. 그 기계는 우리에게서 향상심이라는 걸 앗아가 버린 게야.”

    니다벨리르의 첨단기술들은 모두 <미래를 그리는 자>가 만든 것.

    목적이 뭔지, 원하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거대한 광산에 틀어박혀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게 <미래를 그리는 자>다.

    도시의 중심으로 갈수록, 그 본체에 가까워질수록 기술력이 시시각각 달라져 간다고 하니, 나중에 떨어질 콩고물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외곽만으로도 이러니까 말이죠.”

    톱니바퀴와 증기로 움직이는 여러 기계장치만 봐도 대단하다.

    그런데 안쪽은 더욱 뛰어난 기술력이 포진해 있다고 한다면.

    누가 이 시련을 공략하고 싶겠는가. 일개 장인부터 각 나라의 수장들까지도 욕심을 버릴 수 없다.

    “모두 변해버린 게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대적할 수 없는 압도적인 기술력 앞에 무릎을 꿇고 제자가 되길 선택한 게야.”

    “모자람이 있으면 배우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닐 텐데요.”

    “그래, 누군가에게 배우는 일은 좋은 일이지. 하지만 그렇게 배운 것들을 남들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렇지도 않던 거 같던데.”

    <기계공학 장인이 되는 법>

    그랬다면 이런 책을 팔았겠는가? 느리지만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건 틀림없다.

    “줘봐라.”

    “예.”

    망치를 내려놓은 제페토가 책을 가볍게 훑어본다.

    “사기당했군. 멀쩡해 보이더니 이딴 쓰레기를 샀느냐?”

    “…….”

    화르륵!

    그리고는 화로 속에 집어 넣었다.

    일순 거세게 타오르는 불꽃에 주춤거리며 물러나기를 잠시.

    “사내놈이 겁은 많구나.”

    “세상에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답니까?”

    “너는 좀 과한 거 같군.”

    “…….”

    내 추한 행동에 변명하기를 잠시.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눈을 가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인류의 가장 큰 악의는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내뱉는 말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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