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미래 도시 (1)
미래 도시, 니다벨리르로 향하는 마차의 안에서 나는 남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보기로 했다.
“흠…….”
그중 첫 번째는 역시 스승님에게 받았던 검이다.
지금까지 신경 쓰지 않았던, 아니, 생각조차 안 했던 일이다.
신성력을 덧씌울 수 없다는 건 그렇게 중대한 결점은 될 수 없다.
신성력이 아닌 마나는 제대로 활용할 수 있으니까.
“자. 어떻게 할까…….”
내가 품은 서클은 하나.
즉, 마나를 조작할 수 있는 1서클이다. 마법사나 마검사가 될 생각은 없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귀족 태생이라면 대부분이 거쳐 가는 단계이며 조금 중산층의 집 역시 비슷하다.
1서클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못하는 타이탄이 이상한 거지.
아무튼, 지금 문제는 서클의 개수가 아닌 그 힘의 총량이다.
나는 마나 수련의 깊이가 깊지 않다. 서클의 크기도 작으며 활용할 수 있는 마나도 적다.
“잡다하게 가느냐, 아니면 한 우물만 파느냐.”
스승님이 주신 검은 명검이다.
신성력을 두르지 못했어도 메즈의 목에 생채기를 새길 정도다.
이 힘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마나를 수련해 서클의 크기를 키울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마나를 대신해 신성력을 단련해온 나이기에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
괜히 노력의 총량을 둘로 나눴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일정 궤도에 오르면 확실히 강해질 수 있을 거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타이탄, 너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거라 보냐?”
“한 우물만 파는 것도 좋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많을수록 좋다.”
“이유는?”
“수단이 많아지면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으니까. 네놈이 평생 틀어박혀 한 가지만 수련할 게 아니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나는 이미 잡다한 기술을 많이 익혔다.
이단심문관으로서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더럽고 비겁한 방식으로 적을 함정에 빠트리던 게 나다.
다만 이번에 해야 할 일은 급히 수준급 궤도로 끌어올릴 수 있는 잡기가 아닌 진득하게 오래 노력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다.
“그러는 너는 어때?”
휙!
말을 꺼내자마자 타이탄이 품 안에서 꺼낸 비수를 근처 나무를 향해 집어 던진다.
이제 막 날아오르려던 참이었는지 새 한 마리가 나무에 못 박히듯 꽂혀 있었다.
“말이 필요한가?”
“그래, 너 잘났다.”
“이런 것도 가능하다.”
타이탄이 또 하나의 비수를 집어던진다. 다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꽂히지는 않았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듯 선회하던 비수가 그대로 하늘을 날아다니던 새의 날개를 베어내고 떨어진다.
“오.”
그렇게 빠르게 날아간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맞춘 걸까?
보통이라면 피할 텐데 말이다.
“어떻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새를 보며 물어보려던 순간이었다.
“히히히힝!”
푹!
새의 날개를 베어내며 떨어지던 비수가 말의 머리를 꿰뚫었다.
터벅터벅 걸어가던 두 마리의 말 중 하나가 곧바로 즉사.
옆에 걷고 있던 말도 그 여파로 인해 날뛰다가 쓰러진다.
“혹시 싶어서 묻는 건데, 일부러 그런 거냐?”
“……내가 대단한 놈이긴 하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순식간에 말 두 마리를 전부 잃었다. 우리의 마차 여행이 끝났다.
“이거 어떻게 할 건데?”
“걸어가면 되는 거 아닌가?”
“콜록! 콜록! 으으…….”
때마침 마차에 누워있던 클레어가 노린 듯이 기침을 한다.
“…….”
제아무리 사람의 마음이 없는 타이탄이라고 해도 그 이상 입을 놀리지는 않았다.
“타이탄, 내가 해결책을 알려줄게. 네가 끌면 돼.”
“지금 나를 말 같은 축생과 똑같이 취급하겠다는 건가?”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는…….
“타이탄, 잘 생각해봐.”
“네 머리를 깰지 말인가?”
“아니, 그거 말고. 말이 정말 단순한 축생이라고 생각해?”
“또 개소리를 시작하는군.”
“말은 마차를 끌어주지. 그래서 이렇게 몸이 약한 클레어도 여행길에 동참할 수 있었잖아?”
“그래서?”
“네가 생각하는 왕은 어떠냐? 왕은 백성들의 앞에서 백성들을 끌어주는 존재가 아닌가?”
“……그런가?”
“마차를 끄는 일은 너밖에 할 수 없어. 나도, 리네아도 힘이 부족해. 오로지 너만이 할 수 있는, 왕의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흠…….”
타이탄이 조용히 일어나서 쓰러진 말을 치우고 마차를 붙잡는다.
“나는 왕이 되기 위한 여행에 나선 몸. 모두를 이끄는 건 나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긴 하겠군.”
앞으로 말을 따로 살 필요는 없을 거 같다. 말보다 힘 잘 쓰는 축생 녀석이 생겼으니까.
* * *
잘 키운 타이탄 한 명이 말 두 마리보다 훨씬 더 나았다.
마차에 타고 있던 가장 무거운 놈이 내렸으니 이동속도가 빨라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만, 녀석은 말보다도 체력이 좋았다.
“그보다…….”
나는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슬슬 도착한 거 같은데?”
아직 도시의 전광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미래 도시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증기가 보였다.
도시 상공으로 치닫는 증기와 그로 인해 살짝 어두워 보이는 풍경.
그리고 그걸 최대한 해소하기 위해서인지 공중에 떠 있는 이상한 장치들이 연신 바람을 일으켜 증기를 멀리 날려 보내고 있다.
“니다벨리르에는 쓸만한 도구들이 많으니까 이참에 좀 사둘까.”
회귀 전에도 니다벨리르에 온 적이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째서 미래 도시라고 불리는지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니다벨리르가 어째서 가장 지독한 시련인지도 말이다.
<미래를 그리는 자>
데우스 엑스 마키나
모든 시련이 인간에게 적대적인 건 아니다. 당장에 <헤매는 자>만 해도 그렇지 않던가.
그녀는 누구보다도 인간을 사랑한다. 그 사랑이 과해 인간의 성장을 막아버리는 경향이 있을 뿐.
이번에 도착하게 될 니다벨리르 역시 마찬가지다.
<미래를 그리는 자>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만들어낸 도시.
기술 단계를 2~3단계는 월등히 뛰어넘는 최첨단의 기술과 마르지 않는 광산이 있는 자원의 보고.
그렇기에 미래 도시인 거다.
그리고 그렇기에.
가장 지독한 시련이기도 하다.
“로스트 씨! 저기 니다벨리르가 보여요! 필요한 물건 있으면 제가 사드릴 테니까 오래 머물죠?”
“그럴까?”
유난히 신이 난 듯한 리네아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의 귀가 쫑긋 솟아올라 있고 꼬리는 사정없이 마차 바닥을 쓸고 있다.
“콜록! 콜록!”
흙먼지를 뒤집어쓴 클레어가 기침하고 리네아가 그 모습을 보며 지나칠 정도로 주눅 든다.
그런 평화로운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연초를 물고 불을 붙였다.
연초 끝에 내려앉은 불씨를 보고 있다가 투 내뱉듯 말한다.
“그러고 보니 라이터라는 물건이 있다고 했던가?”
분명 니다벨리르산 물건이었는데.
물론 나와는 상관없는 물건이다. 내가 신성력으로 불을 붙이는 건 일종의 의식과도 비슷한 일이니까.
“제가 사드릴게요!”
“어, 응.”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는 리네아의 모습에 베스타의 불꽃이 있으니 차마 필요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자신이 도움 될 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걸까?
하긴 최근에 한 걸 보면 그냥 식충이나 다름없긴 했다.
“……그러니까 저번 일은 머릿속에서 잊어주세요.”
나한테 마나가 깃든 단검을 들고 뛰어왔던 일 말일까?
지금도 꿈에 나올까 두렵다.
하지만 뭐…….
“무슨 일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무슨 일 있었나?”
“그런가요? 헤헤.”
악의는 없었으니까.
그냥 서로 모르는 척하는 게 더 편할 거라 생각한다.
“리네아.”
“네?”
“발열석도 필요할 거 같아.”
물론 사준다는 데 거절할 이유는 없다. 원래 타인에게 은혜를 베푸는 건 미덕이라고 했다.
“좀 많이.”
오늘 리네아의 미덕 좀 보자.
* * *
타이탄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경계심을 만든다.
큰 단점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잘 이용하면 그만한 장점도 없다.
그걸 늘 염두에 두고 있긴 했다.
그러니 도시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포리스 공작령 때처럼 문제가 생기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이야, 이거 신기하네.”
“키메라인가? 기어코 생체공학에서 이만한 성과를 보이다니…….”
“이거 보게, 근육의 밀도가 어지간한 생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아.”
다만 호기심은 더했다.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키가 1m도 되지 않는 소인들에게 둘러싸였다.
드워프들이다.
니다벨리르가 미래 도시라고 불리는 만큼 기술자 비중이 높은 드워프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어디서 발견했나? 이럴 게 아니라 우리한테 파는 게 어떤가? 값은 톡톡히 치를 테니.”
“아, 아뇨. 타이탄 씨는 저희 동료라 파는 게…….”
겁도 없이 타이탄의 팔뚝을 만져보며 품평하기 시작하는 드워프들의 모습에 일행의 대표로 나온 리네아가 곤욕스러워한다.
“얼마 주실 겁니까?”
“로스트 씨……?”
리네아가 믿을 수 없다는 걸 들었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끝난 건지 타이탄을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뒤지고 싶나?”
“그냥 농담한 거야. 영감님들 좀 비켜주시죠. 여정이 험난했던지라 우리가 좀 피곤합니다.”
“아, 그렇군! 이거 미안하네. 관광객에게는 친절해야 했건만. 그런데 혹시 어디 머물 생각인가?”
뻔히 보이는 수작이다.
그리고 당연한 흐름이기도 하다.
“글쎄요. 저희가 뭘 알겠습니까. 이번에 처음 오는 건데. 안내인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 그렇지. 이곳의 지리에 빠삭한 사람이 있다면 좋을 게야.”
“너무 번잡한 건 싫고, 안내인 한 명만 어떻게 구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그런데 그런 안내인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어흠! 흠, 흠. 외지인이다 보니 낯선 게 많을 게 분명하네.”
“그럼요. 무려 미래 도시가 아닙니까? 낯설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럼 내가…….”
“어허! 늘 공방에나 틀어박혀 있는 자네가 뭘 알겠는가? 나는 평소에도 맛집 탐방을 하는…….”
“맛집 탐방은 얼어 죽을! 니다벨리르에 관광 온 사람이 음식 찾아왔겠는가? 생각 좀 하게! 그러니 나는 오히려 완벽한…….”
드워프들 사이에 불이 붙는다.
소문이 퍼지고, 꼬리에 꼬리가 붙어 점점 더 불어난다.
어느덧 도시 입구에는 수많은 드워프가 장사진을 이루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로는 장관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조금만 기다리면 정리될 거다.
오크라는 처음 보는 생물을 관찰할 수 있는 드워프는 저 암투 속에서 살아남은 한 명뿐…….
“지금 뭣들 하는 겐가! 시간이 남나? 그러면 일 때려치우고 말지 뭣 하러 여기에 빌붙고 있어?”
“제, 제페토 영감!”
“다들 안 꺼져? 톱니바퀴도 제대로 못 만드는 새끼들이!”
가장 입김이 센 녀석뿐이다.
그렇다면 누구겠는가? 엘프와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을 살아갈 수 있다고 여겨지는 드워프 중 누가 이 기회를 포착할 수 있겠는가?
아마 니다벨리르에서 가장 오래 산, 가장 능력이 뛰어나다는 장인.
“반갑습니다. 영주님.”
이 도시의 주인이다.
“영주는 무슨, 그런 신분으로 우리에게 차별을 강요하지 말게.”
“신분만 없지 권력은 누리시고 계시는 듯합니다만.”
“그럼 내가 이 나이 먹고 저 어린 것들이랑 같은 취급 받으랴?”
운이 좋았다.
접촉하기 위해 단계를 밟아볼 생각이었건만 바로 만났으니까.
“그래서, 뭣 하러 애들 데리고 그 짓을 한 겐가? 괜히 순진한 애들 싸움 붙여서 뭣들 하려고?”
“순진한 애들이라고 하기에는 언뜻 봐도 저희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던데 말입니다.”
“내가 보기엔 전부 핏덩이야.”
이것 참 시니컬한 영감님이다.
제페토라고 불린 드워프가 눈빛 하나로 주변에 몰려들던 드워프를 단번에 물리더니 말했다.
“이보게 종교쟁이 양반.”
“예, 제페토 님.”
“자네도 나한테 뭔가를 캐러 온 거겠지? 일없으니 괜히 힘 빼지 말고 조용히 있다 가게나.”
“이런, 저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꽤 많았나 보군요.”
“자네만 있었겠나?”
“많았겠죠.”
<미래를 그리는 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지금뿐만이 아니라 회귀 전의 미래에서도 그랬다.
회귀 전, <미래를 그리는 자>는 <침식하는 자>의 이동반경 내에 있어 한 차례 멸망했다.
시련과 시련이 맞부딪쳤고 그로 인한 대참사가 있었다.
물론 이번에는 <침식하는 자>가 움직이게 될 원흉 자체를 없애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긴 하지만 대비해둬서 나쁠 건 없다.
“그래도 조금은 알지 않습니까? 시련과 역사를 함께하신 분인데.”
“내 모른다고 했네.”
정말 그럴까?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갔겠는가?
물론 나야 모른다. 하지만 앞서 찾아온 이들 중에서는 나보다 많은 정보를 지닌 이가 없었겠는가.
눈앞의 늙은 드워프는 <침식하는 자>가 <미래를 그리는 자>를 짓뭉갤 때 함께 끝을 고했다.
도시에 남아 시련이 완전히 파괴될 때까지 함께했다는 소리다.
그래. 그렇기에 만신전에서는.
“부모인데도 말입니까?”
제페토를 <미래를 그리는 자>를 창조한 존재로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