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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이단심문관의 악마 사냥법-23화 (23/42)
  • 23화. 죽은 자들의 축제 (4)

    -음……. 그러니까 이곳에 있으니까 몸상태가 좋아졌다는 거죠?

    “네, 혹시 제가 흑마법에 적성이 있는 건가요?”

    -아하하하핳!

    “…….”

    곤혹스럽다.

    클레어는 헤카테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힘들었다.

    분명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진지한 얘기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러는 거다. 성격이 나쁘다.

    -아, 아핳……. 죄, 죄송. 웃으려는 건 아니었는데. 그냥 좀…….

    “그냥 좀?”

    -웃겨서요.

    “앞서 부정한 말과 앞뒤가 맞지 않으신데요?”

    -그러게요!

    잘못 찾아왔나?

    클레어 라이안은 지금이라도 방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닌지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클레어 양. 당신이 생각하는 건 틀렸어요. 오히려 반대죠.

    “반대요?”

    -예를 들면…….

    헤카테는 구석에 있는 벽난로를 가리켰다.

    사용한 지 오래됐는지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벽난로.

    헤카테는 그 안을 적당히 쓸어낸 후 장작을 집어넣었다.

    -이게 클레어 양이에요.

    “장작이요?”

    -네, 그리고 이게 지금 클레어 양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죠.

    화르륵!

    헤카테가 손짓하자 장작이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후덥지근해질 정도로 열기가 달아올랐으나, 헤카테는 불길을 잡기는커녕 박차를 가했다.

    -과하죠? 따스함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뜨겁게 만들 정도로요.

    “…….”

    -이게 지금의 클레어 양이에요. 그리고 이게 네크로폴리스죠.

    쪼르르륵

    헤카테는 어디서 난 건지 모를 물뿌리개로 불길을 잡기 시작했다.

    천천히, 느긋하게. 한 번에 불길을 잡는 것도 아니었기에 물줄기는 쉴 새 없이 흘러 들어갔다.

    -어떤 거 같나요?

    “적당한 온도네요.”

    -하지만 물을 계속 준다면? 불이 사그라들 때까지 물을 준 끝에는 뭐가 남아 있을까요?

    “……쓸모없는 장작?”

    -맞아요. 클레어 양. 지금 당신이 느끼고 있는 편안함은 양날의 검이에요. 보이지 않는 본질을 깎아내고 있는 것에 불과하죠.

    “…….”

    이쯤 되면 클레어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몸을 아프게 하는 건 과도한 신성력의 힘이다.

    로스트가 지루할 정도로 성경책을 읽으라고 권했던 이유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한계는 일주일 정도일까요? 그 이상 네크로폴리스에 체재했다가는 지금 이 장작처럼 불완전 연소해 버리고 말 거예요.

    아직 전부 타버린 건 아니지만, 습기를 머금은 장작.

    그걸 다시 장작으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 습기를 모조리 제거할 때까지는 불이 붙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불길을 잡지 않는다면 언젠가 모조리 타버리지 않나요?”

    -그러니 불길을 잡는 방법을 배워야죠. 이렇게 물로 억지로 꺼버리는 게 아니라, 은은하게.

    그극, 그그극.

    헤카테는 물에 젖지 않은 장작을 부지깽이로 끄집어냈다.

    회색으로 타버린 장작 안에는 작은 불씨들이 눈에 보였다.

    -얼마나 갈 거 같은가요?

    “……글쎄요.”

    -관리 방법에 따라서는 오래 갈 거예요. 인간에게는 충분할 정도의 시간이 되겠죠.

    “…….”

    -신앙을 품으세요. 그 불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헤카테는 시련이 아닌,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클레어는 이제야 자신의 정확한 객관적인 상태를 파악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껏 로스트가 가르쳐 온 내용이 미묘하게 맞물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도 알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어째서 말해주지 않았을까? 한순간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클레어는 고개를 저었다.

    말해도 그녀에게는 닿지 않았으리라. 그녀는 기본적으로 로스트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묘한 반발심리로 오히려 신앙을 품기를 거부했을 확률이 높다.

    물론.

    “……저는 신을 믿지 않아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갖은 고생을 하며 자라온 그녀다.

    그런 그녀의 유일한 보물은 자신을 위해 많은 걸 희생해줬던 오빠였으나, 그마저도 잃지 않았던가.

    그녀라고 신을 찾지 않았겠는가?

    신에게 아무리 기도한다고 한들 바뀌는 건 없었다. 그러니 신에 대해 회의적일 수밖에 없던 거다.

    -그렇죠. 불신감을 느낀 사람이 신을 믿는다는 건 힘든 일이에요.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 가장 도움이 필요했던 순간.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

    -하지만 클레어 양. 신은 사람을 직접 구하지 않아요. 언제나 그럴 기회를 만들어줄 뿐이죠. 그게 전능하지 못한 그들이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랍니다.

    헤카테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가장 고통스러웠을 때, 가장 힘들었을 때. 구원받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원인을 알고 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법이에요. 클레어 양. 당신이 기도했을 때, 당신이 가장 힘들었을 때.

    그녀를 바라보던 신이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건 아니다.

    -당신은 그 기회를 붙잡으려고 정말 아득바득 노력했나요?

    그녀의 신은 늘 그녀에게 선택지를 줬었다. 선택을 한 건 그녀다.

    그녀가 이렇게 언데드가 되어서, 사람의 미련을 끌어안으려는 것 역시 그녀의 선택이란 소리다.

    -그 기회를 붙잡지 않았던 건 클레어 양의 선택이었죠?

    “…….”

    -클레어 양. 저는 그걸 이렇게 불러요. 인간이라면 모두가 품고 있는 어쩔 수 없는 마음.

    헤카테는 손을 뻗어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한 클레어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어줬다.

    -미련이라고요.

    클레어에게는 기회가 있었다. 그건 로스트 역시 했던 말이다.

    버크가 마인이 됐던 바로 그 순간이라면,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이 있었을 거다. 마기가 심장에 파고들기 전이었다면, 상처를 입을지언정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클레어는 눈을 감았다.

    그 기회를 걷어차고 말았다.

    그래, 클레어 라이안은 눈앞의 시련을 넘어서지 못했던 거다.

    *     *      *

    다음날. 쥐 죽은 듯 네크로폴리스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조금 이르지만 떠날 준비를 마쳤다.

    그 성격 이상한 여자라면 정말로 딱 하루를 기준으로 대하는 기준이 달라질 수도 있다.

    24시간이 넘어간 직후부터 시련으로 마주하겠다고 난리를 칠 수도 있는 일. 최대한 빨리 이 죽음의 도시를 빠져나가는 게 좋다.

    -에에……. 이러면 안 되는데.

    “뭐가 안 됩니까?”

    -조금 더 즐기다 가시는 건 어떨까요? 여기 재밌는 거 많아요?

    “갈 길이 바빠서요. 타이탄도 신나게 얻어맞은 거 같으니, 가급적 사기가 짙은 곳에 두는 건 별로 좋을 거 같지 않습니다.”

    타이탄이 많이 다쳤다.

    예상은 했지만 눈앞의 왈가닥 시련은 ‘적당히’를 몰랐다.

    타이탄은 목을 고정하고 부목까지 짚은 채로 침묵하고 있다.

    녀석도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게 별로 마음에 들진 않는 모양.

    전투가 어떤 식으로 흘러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장담컨대 타이탄은 헤카테의 옷자락을 스치기는커녕 본 실력도 보지 못했을 거다.

    -제가 치료해드릴까요?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실제로 치료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전직 성녀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언데드가 아닌가.

    오늘내일하던 타이탄을 깔끔하게 언데드로 만들어버리고는 잘 움직이게 됐다며 소리칠 거 같다.

    -안타까운 일이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조언을 해드릴게요.

    “아뇨, 바빠서…….”

    -조언이 끝나도 건들지 않을 테니까 듣고 가욧!

    헤카테가 추하게 떠나려는 내 발목을 붙잡는다.

    아니, 그동안 대화할 사람이 없었나? 그 악명높은 네크로폴리스의 주인이 이렇게 추하게 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 예. 하세요.”

    -어흠! 그럼 타이탄 님 먼저.

    사람 한 명 한 명한테 다 조언할 생각인 건가?

    -시들어버린 장미는 다시 피어날 수 없어요.

    “……그런 건 나도 안다.”

    -과거와의 맹세만을 고집해선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거예요.

    “그것참 개같이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주시는군.”

    -그렇죠?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타이탄의 기분이 단번에 언짢아졌다.

    저것도 능력이다.

    어제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왔을 때도 저렇게 언짢아하지는 않았다.

    -다음은 리네아 양!

    “네에…….”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에 매몰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지금의 괴로움을 더욱 늘려갈 뿐이니까요.

    “…….”

    리네아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선문답 같은 내용이다.

    아마 일부러 저러는 것이리라.

    모두가 숨기고 싶은 일 하나쯤은 있지 않겠는가.

    다만 그녀의 조언에는 모두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바로 모두가 놔두고 온 무언가에 관한 이야기. 즉, 미련이었다.

    -로스트 님.

    “예, 헤카테 님.”

    -로스트 님에게는 반대로 말해야 할 거 같네요. 그 순례자와 같은 행보는 감탄할 만하나, 모든 걸 버리려고 하지는 않기를 빌게요. 버린다는 것. 그 의미와 무게를 이해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욱 괴로워질 뿐이니까요.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글쎄요?

    역시 기분 나쁜 사람이다. 그녀는 내가 과거로 되돌아왔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처럼 말했다.

    그에 더해 내가 기존의 추억을 모두 부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려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게 나은 길이라는 걸 안다.

    버크의 최후를 지켜봐 줄 수 있었던 것도, 클레어가 명확한 분노를 머금을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예전보다 나아졌다.

    기존의 관계를 부쉈기에 더욱 나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넣어두겠습니다.”

    눈앞의 존재는 ‘인간의 미련’을 상징하는 시련이다. 그리고 그 시련을 넘어선다는 건 인간에서 한 발짝 멀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과거의 미련을 모조리 끊어버리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힘들겠죠. 아마 모든 걸 각오한 뒤일 거예요. 하지만 품속에 품고 있는 그 마지막 미련만큼은.

    그런 내게도 미련은 있었다.

    끝없이 매달리는 게 있었다.

    -절대로 놓치지 마세요.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말씀을 해주시는군요.”

    지금은 얼굴도, 이름도 떠올릴 수 없는 성녀님을 찾아낸다.

    그게 내가 유일하게 떨쳐내지 않은 과거의 미련이다.

    -그리고 클레어 양.

    “네.”

    -클레어 양에게는 이미 어제 모두 말씀드렸다고 생각해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조언은 없어요. 클레어 양은 변해가는 중이니까요.

    “……노력해볼게요.”

    헤카테는 방긋 웃더니 조언 대신이라는 것처럼 클레어에게 나무로 만들어진 지팡이를 내밀었다.

    -이건 선물이에요. 제가 살아생전 이용하던 목자의 지팡이죠.

    “목자…….”

    -이게 변해가는 클레어 양에게 도움을 줄 거예요.

    목자(牧者).

    양치기라는 의미와 신자들을 보살피는 성직자를 뜻하기도 한다.

    성녀였던 그녀가 미련을 품은 어린 양들을 이끌어 오던 것처럼.

    클레어 역시 언젠가는 그 목자의 지팡이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 거라고 믿는 것이리라.

    -자, 여기까지예요. 과거를 되돌아보는 시간은 끝이에요. 이제 신기루처럼 사라질 과거에 눈을 떼고 앞을 향해야 할 시간이에요.

    “좋은 말씀, 감사했습니다.”

    -당연히 감사하셔야죠.

    뻔뻔하기 그지없는 사람.

    하지만 <헤매는 자> 네크로폴리스가 어째서 인간에게 우호적인 시련이라는 건지 확실히 알았다.

    그녀는 분명 죽어 언데드가 됐음에도 길 잃은 어린 양들을 이끄는 목자와 같은 사람이었다.

    -길을 찾는 양들이여, 부디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하기를.

    그녀의 말대로 과거와 미련을 상징하는 유령 도시, 네크로폴리스가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때 마지막으로 보인 건.

    새하얀 날개를 지닌 천사가 우리를 향해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     *      *

    로스트 일행이 떠난 후.

    -어휴, 오랜만에 성녀다운 일을 한 거 같네요.

    헤카테는 흥얼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서 있는 척하느라 즐거웠다.

    마지막에 자신을 향해 보인 그 표정에는 보람까지 느껴졌다.

    그녀는 사람이 좋다.

    사람을 사랑한다.

    그러니 그들을 위해 기꺼이 밑바닥까지 내려왔다.

    그 무엇보다도 숭고했던 영혼을 스스로 더럽혀 언데드가 됐다.

    그녀는 미련을 덜어주는 존재, 원한을 풀어주는 존재.

    어린양을 인도하는 목자.

    -흐음……. 역시 그런가?

    헤카테는 방안에 장식된 메즈의 목을 들어 올렸다.

    수많은 검상이 남겨진 목.

    헤카테에게만 보이는 게 있었다.

    육신에 새겨진 상처가 영혼에까지 새겨지는 권능에 가까운 힘.

    -당신도 움직이기 시작했군요?

    그녀는 거짓말을 했다. 로스트와 관련된 시련은 넷만이 아니다.

    당사자조차도 눈치채지 못한 시련이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

    그 시련의 이름은.

    -아라니에.

    <검의 줄을 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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