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이단심문관의 악마 사냥법-21화 (21/42)

21화. 죽은 자들의 축제 (2)

그건 아무리 봐도 발버둥이었다.

로스트의 싸움법은 약자가 강자를 제압하기 위한 방식을 극한으로 단련한 형태였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군. 저놈은 좋은 방향으로 미친놈이다.’

타이탄은 로스트를 좋게만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자신도 만족할 법한 무대를 세웠기에 동조했을 뿐. 기회주의자 같은 면모를 좋게 볼 수 없었던 거다.

그래서 로스트가 직접 싸우겠다는 소리를 했을 때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과 사가 오가는 결투 속에서라면 사람의 본심이 보이는 법.

보아라, 이렇게 뚜렷하지 않나.

이기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내의 모습이 정녕 비참하기만 한가?

아니, 그 투혼은 그 누구라도 비웃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저러다 로스트 씨가 죽겠어요.”

하지만 리네아는 그 광경을 좋게만 볼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로스트 쪽이 더욱 다치지 않았는가.

상대는 마인이기에 계속 재생하건만, 로스트는 자신의 상처를 돌보지도 않고 공격하고 있다.

그게 상대를 몰아세우려는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과하다.

자신을 향해 공격하는 언데드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모습에는 흡사 광기까지 느껴졌다.

“아니, 저건 목숨을 걸고 얻어낸 기회다. 그렇게 말하는 게 옳지.”

“도와주지 않으실 건가요?”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로스트는 나를 만류하면서 자기 손님이라고 했었다. 참견해선 안 될 일이다.”

“…….”

“그렇게 걱정된다면 직접 나서는 건 어떤가? 주머니 안에 있는 그걸 잡고만 있을 생각이 아니라면.”

“아뇨, 저는…….”

“흠.”

타이탄은 머뭇거리는 리네아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결국 그렇다. 리네아는 로스트에게서 뭔가를 찾고 있으면서도 자신에 대해 밝히는 건 꺼린다.

‘어떻게 하지?’

저러다 로스트가 죽는 건 싫다.

아직 그에게만 선이 보이지 않는 이유를 확인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걸 묻기 위해서는 자신의 비밀도 밝힐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한 용기는 없다. 그래서 이렇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상황이 된 게 아닌가.

비밀을 들키는 게 무섭다.

저택 내부에 은연중에 퍼져 있던 자신을 향한 공포가 떠오른다.

그게 싫어서 집을 빠져나왔는데 또다시 같은 결과를 맞이한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자신에 환멸이 난다.

하지만 리네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타이탄의 말대로다. 아니, 타이탄의 말을 억지로 수긍하려 한다.

정말로 죽을 거 같다면 움직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직은 감출 수 있어.’

그렇게 리네아는 자신의 판단을 합리화하며 조용히 숨죽이던 찰나.

“어……?”

메즈를 제압한 채 연신 공격을 반복하고 있던 로스트가 울컥 검은 피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     *      *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품에 안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내가 흘린 검은 피는 메즈에게 당한 공격이 아니다. 동시에 녀석이 다루는 언데드들도 아니다.

이단심문관인 내가 고작해야 시체의 독에 감염돼 단시간에 검은 피를 쏟게 될 리가 없지 않나.

이건 ‘침식’이다.

내가 줄곧 걱정하고 있던, 그렇기에 흉수가 찾아올 걸 알면서도 도망치듯 포리스 공작령을 나와 여행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침식하는 자>의 독기가 내 육신을 좀먹는다. 그저 꿈속에서 마주쳤을 뿐인 존재가 내 육신에까지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거다.

적의도 아닐 거다. 그저 엮였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됐다.

“비켜어어어어!!”

하지만 물러나지 않는다.

이런 기회를 놓칠까 보냐. 지금 이 자리에서 녀석을 확실하게 제압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쿨럭!”

피를 토한다. 검은 피가 새하얀 수도복을 적신다.

급하게 나오느라 습격자를 죽일 힘을 갖추지 못했다.

그래, 인정하겠다. 욕심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성공했다.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다.

“죽어라.”

너무나도 많은 피가 흘렀다.

어제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가 다음 날 내 앞을 가로막았다.

비참한 몰골로, 육신의 일부를 잃은 채로.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 영혼마저도 더럽혀졌다.

“죽어!”

바로 이 새끼 때문에.

-그러다가 정말 죽이시겠네요. 그건 약속과 다르지 않나요?

쿵!

하지만 그때 세상이 한 차례 크게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메즈의 검은 안개와 내 신성력이 마치 퇴색된 것처럼 회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야지.”

“무슨 개소리를…….”

사태 파악을 못 한 메즈가 이를 갈며 나를 밀어낸다.

비로소 녀석은 나를 죽이지 않고 밀어낼 만한 선의 힘을 찾았다.

하지만 늦었다.

이미 상황은 끝났다.

메즈를 죽일 방법은 이미 준비해둔 상태다. 나는 애초에 시간을 끌기만 해도 충분했다.

“계약은 계약이지. 널 직접 죽이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회색으로 물든 세상 속에서 도시가 그 형상을 드러냈다.

나를 억압하던 언데드들이 모두 경직된 채로 움직임을 멈춘다.

그들을 움직이던 메즈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굳어버린다.

벨라는 약속을 지켰다.

이게 이번 생에서 직접 마주치는 첫 번째 시련.

“네게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주는 건 가능할 테니.”

-잘 생각하셨어요. 배려는 미덕이니 분명 사후 저를 나쁜 의미로 만날 일은 없겠죠.

조금 뒤로 물러나 숨을 고른다.

마침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찾아온 존재를 확인하려던 찰나.

-그럼.

위압감이 주위를 짓눌렀다.

그 누구도 움직일 수 없었다. 숨을 고르던 메즈도 나도. 뒤에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일행들도.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헤카테.

뒤이어 들려온 건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 하지만 감히 항거할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감.

자연히 고개가 아래로 처박히고 감히 들어 올릴 수가 없다.

눈앞에 보이는 거라고는 발밑까지 끌리고 있는 흰색 머리카락뿐.

-길을 잃은 아이들에게 길을, 아쉬움을 남긴 자들에게 기회를.

10개의 시련 중 3번째로 기록돼 있는 영원의 존재.

<헤매는 자>

네크로폴리스

-다들 미련은 남으셨나요?

머리카락이 땅에 쓸린다. ‘헤카테’라고 자신을 소개한 네크로폴리스의 주인이 이동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당연하게도 벨리알의 정예인 ‘속박의 칼’ 동시에 흑마법사이기도 한 메즈 쪽이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제게 말해주시지 않을래요?

나긋나긋한 목소리와는 상반된 터무니없는 위압감.

-말하기가 힘드신가 보네요.

말하기가 힘들다? 이게 누구 탓인가? 입을 열지도 못하도록 주변을 위압감으로 뭉개버렸으면서.

-그럼 당신을 잘 알고 있을 분들에게 물어보도록 할까요? 그래요, 저와 같은 동족들에게.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헤카테가 향한 방향에는 분명 메즈가 소환했던 언데드들이 있을 거다. <헤매는 자> 네크로폴리스는 자유의지를 가진 언데드들.

그들에게 있어서는 언데드가 사람이고 그 언데드의 이지를 죽이고 사역하는 흑마법사들은 그야말로 노예상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음, 그렇군요. 아하?

그녀의 목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언데드들과 대화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때 미치도록 소름 끼치는 감각이 전신을 휘감는다.

-저런, 썩 좋은 분은 아니셨나 봐요. 흐흐흐흐.

메즈 녀석이 바들바들 떨고 있을 게 눈에 선하다. 그야 상대는 벨리알과 같은 위치에 있는 존재.

‘시련’이니까 말이다.

-어떻게 해드려야 할까요? 네, 도대체 어떻게 해드릴까요? 그래요, 그게 좋겠네요. 아! 그것도 꽤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아요.

혼잣말인지 아니면 언데드들과 여전히 대화하는 건지.

어쩐지 즐거운 듯한 목소리.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상대는 의도적으로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메즈에게 가장 비참한 죽음을 선사해줄 생각이 분명하다.

괜히 기분이 좋다. 성녀님이 꿈속에서 시련을 조심하라고 했을 때는 조심스러운 느낌이었지만, 역시 끌어들이길 잘했다는 느낌이다.

-우선 500년 동안 그 영혼을 장작으로 써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불멸의 삶을 살아서 그런지 단위의 스케일부터가 다르다.

-할 수 있는 게 많아요,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지요.

“끄…… 아아악!!”

우득! 뚜두둑!

목을 산 채로 뽑는 소리. 비틀지도 않고 그저 상대를 짓누른 채로 위로 뽑아 올리기만 하는 소리다.

-그러니 우리 함께 고민해보죠? 시간은 넘치도록 있으니까.

뚜둑 뚜둑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 끝에 귀곡성과 어우러지던 메즈의 비명이 뚝 끊긴다.

바닥을 타고 검은 피가 이쪽까지 흘러와 새하얀 수도복을 질척이고 끈적하게 적시기 시작했다.

-다들 고개를 드셔도 돼요. 이제 무서운 악몽은 지나갔으니.

그 말과 함께 몸을 짓누르던 위압감이 사라진다.

여기저기서 물에 막 빠져나온 듯한 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

나 역시 고개를 들어 메즈가 있는 방향을 쳐다봤다.

목소리처럼 부드러운 인상의 전신이 하얀 미녀가 거칠게 뜯겨나간 메즈의 목을 든 채 서 있었다.

모른다.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언데드라면 무릇 풍겨야 할 지독한 죽음의 기운이 없다.

마치 벨리알에게서 마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육신을 갖춘 걸 보면 좀비나 구울, 투명한 피부를 보고 있으면 고스트나 벤시 종류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격이 낮은 존재는 아닐 거다.

내가 아는 격 높은 언데드라고는 리치 정도밖에 없다.

하지만 눈앞의 존재가 리치인가 하면 아니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녀의 종족을 유추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소는 따로 있었다.

다만 그걸 말해도 되는 걸까?

관련하여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죄를 짓는 기분이다.

하지만 나는 내 의문을 결국 입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천사?”

세상에서 가장 죽음이 만연한 장소에 있는 건, 천사의 형상이었다.

*     *      *

-손님들에게 대접할 만한 게 이런 거밖에 없어 죄송하네요.

“……확실히 죄송해야겠군. 이딴 걸 대접한다고 내온 건가?”

-하하.

빡!

너무나도 솔직한 타이탄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너는 새끼가 사람이면 염치라는 게 좀 있어야 하지 않겠냐?”

이 녀석은 키가 커서 앉아있어도 뒤를 치려면 점프를 해야 한다.

타이탄이 불만스럽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지만 알 게 뭔가.

다행히 헤카테가 별말 없이 자리를 벗어났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시련을 정면으로 마주할 뻔했다.

겁대가리가 없는 것도 정도가 있지 방금의 악몽을 봤으면서도 어찌 저리 당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로스트, 봐라. 이딴 걸 처마시라고 내놨다.”

물론 헤카테의 말대로 대접할 게 없긴 했다. 물은 물인데 썩은 물이다. 언뜻 도발이라도 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럴 의도는 없었을 거다.

언데드가 아닌가. 음식을 먹지 않아도 살아가는 이들인데 인간 손님을 위한 물건이 있을 리 없다.

“타이탄, 이것도 수련이다. 이게 그저 썩은 물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생각해봐? 네가 며칠은 물을 마시고 갈증에 미칠 거 같을 때도, 이게 단순한 썩은 물일까?”

“쉽게 말해라, 로스트. 그 잘난 대가리 깨버리기 전에.”

“뭐든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거지. 중요한 건 뭘 대접했는지가 아니라 이런 상태에서도 무언가를 대접하려 했다는 마음이다.”

“마음?”

“그래, 우릴 대접해주려 한 상대의 마음을 받은 거라고 생각해.”

“흠…….”

타이탄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비로소 이해한 모양이다.

녀석과 내 잔에 담긴 썩은 물을 신성 마법으로 정화한다.

타이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물로 목을 축였다.

그리고 그때.

-후후, 농담이었어요. 이쪽이 진짜예요. 허브 티…… 인데,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빡!

이번에는 내가 타이탄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한순간 정신이 아찔해진다.

하지만 타이탄이 그랬듯이 녀석을 노려보지는 않았다.

자업자득이었으니까.

-덕분에 많은 분을 자유롭게 풀어줄 수 있었네요. 이런 일이 있다면 앞으로도 저희에게 연락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연락 수단이 없잖습니까.”

-유령 하나를 붙여드릴까요?

“싫습니다.”

나는 사제다.

그런 내 신성력을 버티려면 어지간한 유령으로는 안 될 거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강력한 원령을 붙일 수밖에 없는데…….

그런 끔찍한 걸 달고 다닐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에이지 포리스처럼 미치지 않았으니까.

-그나저나 놀랍네요. 이렇게 많은 시련과 연관된 분이라니.

“……그걸 용케 알아보시는군요. 눈이라도 특별하십니까?”

-알아보고 말고 할 게 있나요? 당장에 눈에 보이는 게 있는데.

헤카테는 빙긋 웃으며 피에 더러워진 수도복을 가리켰다.

-<침식하는 자>. 참 지독한 분을 마주하셨군요. 저도 생전에 만난 적 있어요. 살기가 짙은 분이었죠.

그리고 다음으로는 내 머리 쪽을 가리키며 말한다.

-<꿈을 꾸는 자>. 꿈에 매달려야 했던 일이 있으셨나 보네요.

나는 이름을 잃었다.

하지만 이름을 잃기까지 몇 번이고 기회가 있었다.

아마 내가 처음 잃어버린 건 이름이 아니었을 거다.

이젠 무얼 잃어버렸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그렇게 수많은 것을 잃어가면서도 시련을 마주했던 건, 그것이 보여주는 꿈이 달콤했기 때문.

참 잔혹한 시련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번에는 탁자 위에 장식품처럼 놓여있던 메즈의 목을 가리킨다.

-<어디에나 있는 자>.

역시.

까마득한 삶을 살아온 거로 추정되는 존재라 그런지 멜리스.

즉, 벨리알을 알고 있다.

그녀의 말대로다. 나는 짧은 시간 동안 세 개의 시련을 마주쳤다.

잘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바로 저.

헤카테가 자신을 가리키며 히죽 웃는다. 미녀의 미소가 분명한데.

-이런……. 이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고 만 걸까요?

어쩐지 재수 없는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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