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이단심문관의 악마 사냥법-19화 (19/42)
  • 19화. 암막

    포리스 공작령까지 온 벨리알에게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벨리알로서의 목적과 월스레스 호프로서의 목적이다.

    “흠…….”

    다만 첫 번째 목적은 목적지까지 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라이안 남작가는 마인을 양성하기 위한 장소였다. 납치해온 아이들의 마음에 절망과 어둠을 쌓은 뒤 마인으로 만드는 방식이었다.

    세상을 미워할수록 별다른 명령 없이도 순종적으로 인간 세상을 혼란에 빠트리니 말이다.

    이만한 양식장이 따로 없다.

    하지만 이미 보이는 것만으로도 그 어떻게 됐을지는 뻔했다.

    라이안 남작가의 저택은 무너져내렸고 그 안에서 만들고 있던 고독의 항아리 역시 깨져버렸다.

    남작 부인은 온몸이 갈기갈기 찢긴 채로 벨리알의 눈앞까지 기어 왔으며, 벨리알은 친히 그 노고를 치하해 그녀를 편하게 해주었다.

    그럼 이제 월스레스 호프로서의 일만이 남아있는 상황.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그리 쩨쩨하게 굴지 말게나. 50년 지기가 아닌가? 오면서 봤는데 꽤 멋진 영지더군.”

    “그 영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놈이 하는 말이라 무게가 남다르구만 그래.”

    “끌끌끌.”

    월스레스 호프는 에이지 포리스의 저택에 방문했다.

    공식적인 절차는 아니다. 불청객이라고 내쫓아도 할 말이 없다.

    당장에 그는 아무 연락도 없이 들이닥친 상황이 아닌가.

    “뭐 하러 왔나?”

    “에잉,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인색하기 짝이 없군. 차라도 한잔 내주면 어디 덧나던가?”

    “아하, 알겠군. 이제 보니 내 인내심을 시험하러 왔어.”

    에이지 포리스는 곧장 지팡이를 휘둘러 월스레스 호프에게 마법을 날려 보냈다.

    그렇게 형형색색의 마법이 월스레스 호프에게 쏟아지고.

    월스레스 호프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대처했다.

    그림자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움직여 에이지 포리스의 마법을 막아낸다.

    마법도 아니고 오러도 아닌 힘.

    그런 이능은 실제로 존재했고 세상에도 여럿 퍼져 있었다.

    그렇기에 세상은 그 힘에 임시로 고유능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리네아 스피린이라고 했던가?’

    남작 부인을 토막 냈다는 백작가의 여식이 품은 힘도 마찬가지.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게 고유능력이다.

    물론 그만큼 능력이 제각각이고 폭이 넓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위장하기 편하지.’

    벨리알의 권능을 고유능력이라고 속인다고 해도 누구 하나 의심할 수 없는 거다. 마기만 느껴지지 않으면 누가 증명하겠는가?

    그러는 사이에도 에이지 포리스의 마법은 이어졌다.

    월스레스 호프가 아무렇지 않게 막아서는 걸 보고 머리끝까지 화가 난 모양새였다.

    “……빌어먹을 고유능력! 세상 이렇게 불공평할 수가 없어!”

    “하하하하!”

    월스레스 호프는 유쾌하다는 듯이 웃었다.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에게 대적할 수 있는 존재다.

    물론 직접적인 전투는 제외한다.

    에이지 포리스의 가치는 정치적인 입지와 권력에서 나오니까.

    “그만하지.”

    “쯧…….”

    에이지 포리스는 그제야 쏟아붓던 마법들을 거둬들였다.

    죽이기 위한 대마법을 펼치지 않는 이상 무의미한 소모전이라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저 자신의 영역에 멋대로 침입해온 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

    “그래, 지껄여보게나.”

    “우리의 시대가 저물고 있네.”

    아니다. 월스레스 호프는 그럴지 몰라도 벨리알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오고 있었다.

    “후대에게 맡길 시간이 가까워진 게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에이지 포리스는 침묵했다.

    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들에게 후계를 조금씩 물려주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월스레스 호프의 말에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월스레스 호프는 그런 뻔히 보이는 모습에 속으로 조소했다.

    “집안에 골칫덩이들이 있지. 그대도, 나도. 안 그런가?”

    “내 손녀딸에 대해 함부로 말할 생각이라면 내 장담하지. 내 힘과 권력과 돈을 모조리 쏟아부어 호프 공작가를 부숴버리겠네.”

    “섬뜩한 말이군. 걱정하지 말게. 나는 그저 서로에게 이익이 될 말을 가져온 거니. 우리 가문 막내와 자네 가문 막내를 혼인 말이야.”

    제아무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딸이라지만 에이지 포리스는 무턱대고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던 거다.

    화를 내긴 했지만, 월스레스 호프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으니까.

    에이지 포리스는 후계를 자신의 아들로 굳혔지만, 다음이 문제다.

    딸이라고는 하지만 같은 핏줄을 품은 이상 가족 간의 암투는 피할 수 없을 테니까. 그렇게 된다면 가장 어리고 연약한 시리스 포리스가 그걸 견딜 수 있을까?

    아니, 절대 버틸 수 없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집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그것도 감히 건들 수 없을 훌륭한 뒷배를 마련해줘야 한다.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가문 장손이 영 형편이 없지 않나.”

    “…….”

    호프 공작가와는 사정이 반대였다. 망나니나 다름없는 장손보다는 막내가 낫다는 건 이미 귀족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월스레스 호프는 막내에게 힘을 실어주기로 한 듯 보였다.

    “네놈의 핏줄이라니.”

    에이지 포리스는 경멸 어린 눈빛을 숨기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월스레스 호프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는 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결국 에이지 포리스는 이 혼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걸.

    *     *      *

    저택에 쫓겨났을 무렵.

    포리스 공작가의 저택으로 들어서는 월스레스 호프의 모습이 보였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캐보고 싶지만 월스레스 호프의 눈을 속이려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위험하다.

    “우선 짐부터 챙겨와.”

    이 영지를 최대한 빨리 떠나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월스레스 호프가 대기시켜 놓은 흉수가 움직일 테니까. 적어도 녀석보다 먼저 떠나야만 준비를 마칠 수 있다.

    월스레스 호프와 에이지 포리스 사이의 대화가 궁금하긴 하지만, 그건 나중에 셰이드를 통해서라도 조사하면 될 일이다.

    아니, 애초에 공작 둘이 움직이는 일이니 오래 숨기지는 못하겠지.

    저렇게 대놓고 움직인 걸 보면 월스레스 호프도 악마가 아닌 공작으로서 움직였다는 뜻일 테니까.

    “아직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아직 그놈의 전력을 보지 못했어!”

    리네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여관에 들어갔을 때. 격렬하게 반발한 건 아니나 다를까 타이탄이였다.

    이 녀석은 라이안 남작가의 저택에서 자신을 말리려던 사냥꾼 길드의 마스터, 알렌 와이즈와의 싸움에 아쉬움이 남는 모양이다.

    복수전을 고대하고 있었겠지.

    “타이탄, 잘 들어. 알렌 와이즈의 실력은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강할 거야.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래.”

    “그렇다면 더욱!”

    “모처럼의 기회를 개처럼 바닥이나 구르다가 끝나려고?”

    알렌 와이즈는 위와 아래에서 터져 나오는 문제에 골머리를 안는 평범한 중간관리자처럼 보일지 몰라도 상상 이상의 실력자다.

    애초에 와이즈 백작 가문은 라이안 남작 가문과는 달리 유서 깊은 기사 가문이다.

    무려 백작 가문이기까지 하니, 그런 가문이 기사로서 이름을 날렸다는 게 어떤 의미겠는가.

    버크가 왜 하고많은 일 중에서 사냥꾼을 선택했을까?

    자신의 부친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에게 붙은 거다.

    그래, 삐뚤어진 반발 심리임과 동시에 가장 안전한 방책이었다.

    “녀석은 사냥꾼 길드의 마스터지. 그리고 최근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기는 했어도 그 자리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아. 끊임없이 자격을 증명해야 하는 자니까.”

    “……계속 말해봐라.”

    “애초에 내가 지하 감옥에 있는 동안 알렌 와이즈에게 결투를 신청하지 않았을 리가 없겠지?”

    “그렇다.”

    “결과는?”

    “거절하더군. 업무가 바쁘다고 둘러댔다. 그래서 더는 변명할 수 없을 시기까지 기다리려 한 거다.”

    타이탄도 바보는 아니다.

    글자를 못 읽고 상식이 부족할 뿐이지 사고는 할 줄 안다.

    저게 녀석이 생각한 끝에 내린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 거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치고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하다. 확실히 통할 방법이기도 하고.

    왕족이 결투를 위해 계속 시간을 걸쳐 기다리고 있는 거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알렌 와이즈는 속이 쓰릴 터.

    종국에는 ‘그냥 겨뤄주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될 거다.

    녀석도 그걸 노렸겠지.

    하지만…….

    “그 방법은 시간이 너무 걸려. 너는 알렌 와이즈 한 사람과의 결투만을 위해 나라를 나왔냐?”

    “…….”

    “아까 내가 말했지? 끊임없이 자격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라고.”

    “그렇다.”

    “그건 녀석이 싫어도 피할 수 없는 무대가 존재한다는 소리다.”

    한 번 길드 마스터가 되면 그걸로 끝이겠는가? 어떤 길드 건 주기적으로 자신이 마스터에 걸맞은 인물이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

    “마스터의 자리를 노리는 다른 사냥꾼들의 도전.”

    실전으로.

    “흐…….”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무대야. 그 무대를 위해서라도 지금은 여길 떠날 필요가 있는 거지.”

    그제야 타이탄의 기분이 풀린다.

    정말이지 다루기 귀찮은 녀석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녀석을 타지로 끌어들이는 게 가능해졌다.

    “그 무대는 제국의 수도, 코이누르에서 열려. 지금부터 정확히 1년 뒤가 되겠네. 그동안 놀 거냐?”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럼 알렌 와이즈도 얕잡아볼 수 없을 실력을 쌓아야겠지?”

    “인정하겠다. 로스트. 네놈의 간교한 혓바닥에 또 놀아나 주지.”

    “뭘 또 간교하기까지야.”

    새끼가 도움을 줘도 못 하는 말이 없다. 내가 녀석을 위해 계획의 일부를 할애하고 있다는 건 알까? 이 대가는 비싸게 받을 거다.

    반드시 벨리알과의 결전에 최전방으로 밀어 넣어주마.

    “그럼 여관 가서 짐이나 챙겨와. 그보다 챙길 건 있나?”

    “장미 화분이 있다.”

    “고상한 취미 납시셨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안 어울리게 말이야.

    비꼬는 것도 못 알아듣는 멍청이와 무슨 말을 하겠느냐마는.

    그렇게 타이탄과의 말싸움이 끝나고 녀석이 비로소 여관 안으로 기어들어 갔을 무렵.

    “아하하, 타이탄 씨를 어떻게든 설득하셨나 보네요.”

    “생각보다 짐이 적네?”

    “네, 뭐……. 원래 필요한 건 정착하고 나서 사려 했거든요.”

    “정착 말이지.”

    포리스 공작령에 정착하려던 네가, 이렇게 아무 망설임 없이 여행에 나서려는 이유는 뭘까?

    이걸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답답할 따름이다.

    내가 그렇게 말한들, 아니라고 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여기서 정착했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는 건 나밖에 없다.

    “이건…….”

    리네아 스피린이 자결하는 순간을 기억한다. 아니, 자결하는 순간이라기에는 어폐가 있다.

    그녀의 시신을 발견한 건 내가 최초였고, 그때는 이미 그녀의 육신이 차가워진 뒤였으니까.

    산적을 도살하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던 그녀. 떠나려면 언제든 떠날 수 있었을 텐데도 남아있던 그녀.

    “내가 실수했을지도 모르겠네.”

    리네아 스피린은 타인과의 유대를 바랐을 확률이 높다.

    사람들의 멸시를 받으면서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당장에라도 짐을 싸고 다시 여행을 나설 수 있었던 그녀를, 포리스 공작령에 잡아두고 있었던 건.

    “어쩌면 끼어드는 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네?”

    “산적 때의 일 말이야.”

    그녀의 흉포한 면을 보고서도 친구로서 접했던 내가 있었으니까.

    “어쩌면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

    내가 그녀를 죽였다.

    그녀의 이해자였던 내가 있었기에, 그녀는 버티려고 했다.

    버티지 못하고 목을 매달았다.

    얄궂은 일이다.

    만약 산적과의 전투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이렇게 떠나는 지금 이 순간 그녀와 더 깊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숨겨둔 일면을 인정해준 끝에, 함께 여행을 떠났다면 더욱 서로에게 신뢰를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한 건 최선이 아니라 차선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저는 감사하고 있는데요? 재밌을 거 같으니까요. 헤헤.”

    “그래…….”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일이다.

    리네아 스피린은 내 앞에서 평범한 소녀를 끊임없이 연기해야 할 거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나였기에,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거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일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한 차선이, 그녀에게는 최선이었을 수도 있으니까.

    “즐거운 여행이 됐으면 좋겠네.”

    *     *      *

    리네아 스피린의 세상은 붉게 물들어 있다. 손톱자국이, 칼자국이. 붉은 점과 선으로 얼룩져 있다.

    그런 끔찍한 세상을 살아가는 게 그녀에게는 곤욕이나 다름없다.

    어찌 끔찍하지 않겠는가.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없게 만드는 힘을 품고 있는데.

    그녀가 품은 이능은 그녀의 정신을 끊임없이 괴롭혀왔다.

    사람을 해체하는 선이 보인다.

    그럼 자신은 사람을 그저 고기로 보고 있다는 소리가 아닐까?

    그런 의문에 반박하고자, 리네아 스피린은 착한 아이가 됐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누구에게나 부드럽게 접하며, 화를 내지 않고,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그런 그려진 듯한 착한 아이가.

    ‘어라……?’

    그렇기에 그건 갑작스러웠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금색의 눈동자가 눈에 띄는, 아직 앳된 티가 남아있는 청년이었다.

    어느 정도 단련한 듯 보였지만, 가문에 있는 호위 기사들에 비하면 아직 약해 보였다.

    -저기…….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그, 그게 말이죠.

    무심코 말을 걸어버렸다.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그늘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을 생각이었건만, 먼저 말을 걸어버리고 말았다.

    -마차를 타실 생각이신 거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실수였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됐다. 이러면 마치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꼴이 아닌가.

    수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거리를 벌린다면 낭패가 따로 없다.

    -무, 무서운 사람이 마차에 타겠다고 난리예요. 그래서 아저씨도 운행일이 3일 뒤라고 우기고 있어서요……. 괜히 지금 찾아가면 일이 복잡해질 거 같아서…….

    리네아는 횡설수설하면서 청년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놨다.

    하지만 그럴 만한 문제였다.

    눈앞의 청년에게서는 어떠한 붉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착한 아이 흉내를 낼 수 있다.

    많은 걸 희생할 수 있다.

    ‘그래, 오직 로스트 씨만이.’

    마치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에 보호받고 있는 듯한 그만이.

    붉은 선과 점으로 얼룩진 도살장의 고기들 속에서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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