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이단심문관의 악마 사냥법-17화 (17/42)
  • 17화. 에이지 포리스 (3)

    “있잖아. 자?”

    “안 잡니다.”

    “언제 잘 거야?”

    “안 자려고요.”

    “그러면 안 돼! 인간은 잠을 자야 피로가 풀린다구?”

    “악몽이 확정돼 있는데 잠이 올 리가 있겠습니까?”

    언데드가 되면서 뇌라도 잃어버린 걸까? 옆방에 있는 나이트메어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한다.

    뻔히 내가 잠든 사이에 내 머릿속을 뒤적이며 악몽을 꾸게 할 거라는 걸 아는데, 내가 뭐하러 그런 제안에 응하겠는가.

    최대한 버틸 만큼 버틸 거다.

    “그보다 왜 포리스 공작 밑에서 정보나 캐고 있는 겁니까?”

    “악몽을 먹게 해주니까?”

    “더러운 일로 상부상조를 한다는 걸 당당히도 밝히는군요.”

    “몰라, 내가 좋고 에이지가 좋으니 둘 다 좋은 거 아닌가?”

    공작의 이름을 저리 가볍게 부를 수 있다니 참 대단하다.

    하긴 들려오는 목소리와 달리 내용물이 얼마나 나이 많은 괴물일지 누가 알겠느냐마는.

    “그리고 어차피 너한테 뭐라도 얻어내기 전까지 에이지는 포기하지 않을걸? 평생 갇혀 있게?”

    “그것도 그렇군요.”

    하고도 남을 사람이긴 하다.

    “그러니까 코오 자자?”

    “지금은 안 졸리니까 나중에요.”

    “아, 왜애애!”

    분명 죽었을 때 뇌의 일부를 잃어버린 게 분명하다.

    나는 그렇게 확정했다.

    그리고 그런 대화의 사이에도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내 머릿속에 신성 마법을 걸어 보호했다.

    이걸로 상대가 내 꿈속에 멋대로 들어온다고 한들 상관없겠지.

    “그러고 보니, 후배는 이름이 뭐야? 말 안 했었지?”

    “로스트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로스트? 어감이 괜찮네!”

    “그렇지요?”

    “응! 우리랑 닮은 이름이라 마음에 들어.”

    “그렇게 말씀하시니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군요. 도대체 어디가 닮았다는 겁니까?”

    “우리도 길을 잃은 자들이니까.”

    “…….”

    어이쿠, 벨라도 에이지 포리스처럼 내가 가명을 내세웠다는 걸 알아챘다. 너무 노골적이었나?

    아니, 그렇다고 해도 존재하지 않는 이름은 아니다. 단순히 이름을 듣고 거기까지 떠올릴 수 있는 둘이 제정신이 아닌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슬슬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있잖아, 로스트. 자?”

    “아직……. 안 잡니다.”

    “그래? 잘 자.”

    이렇게 대놓고 수작을 부려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본인 딴에는 들키지 않을 생각이었을까? 이렇게 부자연스러운데?

    어차피 신성 마법은 걸어뒀다.

    이대로 잠에 빠져들고 내가 보여주는 기억들만 확인하면 이 구금 생활도 금방 끝이 날 거다.

    이 심문은 내 의혹을 캐기 위한 거니 여기서는 오히려 보여줘서 의혹을 지우는 게 낫다.

    백 마디 말보다 직접 보고 확인하는 게 더 나을 테니까.

    “좋은 꿈 꿔.”

    귓가에 들려온 나이트메어의 목소리는 유달리 섬뜩했다.

    *     *      *

    “자? 자는 거야?”

    “…….”

    “자는 거 맞네!”

    벨라는 옆방에서 들려오는 고른 숨소리에 히죽 웃었다.

    이제 드디어 식사 시간이다. 최근에는 에이지 포리스가 죄수들을 데려오지 않아서 심심하던 차였다.

    호기심과 배를 동시에 채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흐흥!”

    벨라는 머리를 벽에 가볍게 통과시켜 로스트를 살폈다.

    예상대로 로스트는 벨라의 수작에 당해 쓰러지듯 잠들어있었다.

    “캬! 나도 아직 안 죽었네!”

    벨라는 이미 죽은 존재였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대화를 유도하며 그사이 상대를 잠재우는 수면 마법을 건다.

    이 얼마나 완벽한가!

    벨라는 자신의 완벽함에 취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녀의 계획은 상대가 그녀의 정체를 모를 경우에나 통할 법한 조잡한 수작에 불과했다.

    “자, 그럼.”

    재료가 준비됐다면 슬슬 요리할 시간이다. 벨라는 잠든 로스트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그 손끝에서 질척이는 검은빛이 솟아 나와 로스트의 머릿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벨라의 눈의 흰자위가 눈동자에 물들듯 검게 물들었다.

    현실이 아닌 꿈을 보는 눈.

    이제 그녀의 호기심과 허기를 채움과 동시에 에이지 포리스와의 계약을 이행할 때가 됐다.

    그렇게 벨라는 로스트의 정신세계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컥?!”

    벨라는 마치 튕겨 나오듯이 로스트에게서 손을 뗐다.

    공중을 유영하던 그녀가 마치 겁에 질리기라도 한 것처럼 엉덩방아를 찧고서는 일어나지 못했다.

    “뭐야……?”

    로스트의 꿈을 들여다본 건 좋았다. 어딘가 구멍이 뚫린 것처럼 이상한 꿈이었지만, 상대가 <꿈을 꾸는 자>에게 당해 기억을 빼앗겼다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상한 건 다른 점이었다.

    로스트의 꿈에는 자신조차도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붉은 눈을 지닌 검은 사자. 안개를 몸에 걸친 그 괴물은 멀리서 로스트를 주시하고 있었다.

    벨라는 그 존재와 눈이 마주치는 것과 동시에 도망쳐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죽었다.

    육신이 없이 정신만으로 이루어진 그녀가 그저 시선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소멸을 느꼈다.

    “도대체 어떻게……?”

    벨라는 그게 뭔지 안다.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런 힘을 지닌 존재가 누군지 들어본 적이 있다.

    “어떻게 녀석과 만나고도 살아남아 있는 거야……? 아니, 그보다 어떻게 만날 수가 있었던 거야?”

    <침식하는 자>

    언터쳐블(Untouchable)

    10가지의 시련 중, 첫 번째에 기록돼 있는 괴물 중의 괴물이 로스트를 주시하고 있었다.

    *     *      *

    벨라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내 꿈속에서 벗어났을 때, 함께 잠에서 깨어날 수도 있었다.

    내가 걸어둔 신성 마법의 여파.

    신성력을 대가로 빌려온 건 부정한 것을 막아주고 감시하는 태양의 신 호루스의 눈이다.

    그렇기에 일련의 상황에 대해 눈치챌 수 있었다. 눈을 뜨자, 겁에 질려 있는 벨라가 보였다.

    “너, 너 대체 뭐야?”

    “그러게 말입니다.”

    그녀가 본 게 뭔지 나도 안다. 나는 그녀를 감시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얼마 전, 꿈에서 성녀님이 말했다. 시련을 조심하라고 말이다.

    처음 벨리알과 조우했을 때는 그걸 말하는 건가 싶었다.

    녀석을 쫓아내기 위해 <모르페우스의 꿈조각>을 사용하려 했을때는 그걸 의심하기도 했다.

    그리고 끝내 마수를 떨쳐내기 위해 네크로폴리스를 이용하기로 했을 때도 고민을 참 많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운이 좀 안 좋습니다.”

    성녀님이 말했던 시련은 내 안에 있었나 보다. 아무래도 사안이 사안인지라 입안이 상당히 쓰다.

    나는 내 몸을 좀 먹고 있던 녀석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녀석에 대해서는 시급한 시일 내로 해결해야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계획을 서두르는 게 좋을 거 같다.

    “그래서, 선배님? <헤매는 자>와의 만남은 언제쯤 주선해주실 수 있을 거 같습니까?”

    “나 너 싫어…….”

    “약속은 약속이지 않습니까.”

    “우리 임금님한테 이상한 짓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맹세하겠습니다.”

    “에혀…….”

    벨라는 기운이 없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그대로 데굴데굴 자기 방으로 굴러갔다.

    한참을 시끄럽게 떠들던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조용함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다른 소리가 더욱 예민하게 들려왔다.

    딱!

    단단한 무언가가 돌바닥을 내려찍는 소리.

    딱!

    마치 사람 보폭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오는 그 소리에 나는 누가 찾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간수 같은 게 아니다.

    “어디, 꿈자리는 괜찮던가?”

    “하하, 짓궂은 질문이십니다. 포리스 공작. 대놓고 악몽까지 보여줘 놓고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알고 있군. 저 입 싼 녀석이 또 나불나불 불던가?”

    “쟤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거든? 에이지 이 멍청아!”

    옆방에서 벨라의 반박이 들려온다. 꽤나 친근한 말투였다.

    “알고 있었다? 어떻게?”

    “뭐, 이 방에 드나든 사람이 저 혼자는 아닐 거 아닙니까.”

    “분명 전부 죽였을 텐데?”

    “…….”

    “농담일세.”

    아니, 아마 진담이다.

    실제로 여기까지 오게 된 녀석들은 모두 죽었을 게 분명하다.

    어지간한 일이 아닌 이상 들어올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뭔가 수상쩍은 점은 봤나? 벨라.”

    “기억에 구멍이 뚫려서 잘 모르겠지만, 어디 산속에서 살다가 막 내려온 거 같던데? 아, 그리고 저 자식 침식당했으니까 조심해.”

    “침식? 그 침식?”

    “예, 뭐. 그렇다는군요.”

    그 말에 에이지 포리스의 포커페이스가 단번에 무너졌다.

    그야 그럴 거다. 안 그래도 영지 가까이에 있는 시련인데, 그 시련과 마주쳐서 중독당한 놈이 찾아왔다고 하면 얼마나 섬뜩하겠는가.

    “옮는 거 아닙니다.”

    미리 말해뒀다.

    괜한 의혹 때문에 살해당했다가는 죽어서도 성불 못 한다.

    하지만 에이지 포리스는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물었다.

    “내가 지금 유령을 보고 있나?”

    “바로 옆방에 있으니 보이긴 하겠군요.”

    “주둥이를 보니 살아있는 게 맞는데……. 사제들이 그런 극독을 정화할 수 있기는 한 건가?”

    “못할 건 없죠. 다만 그게 가능한 사람이 극소수일 뿐.”

    “…….”

    실제로, 회귀 전의 나는 <침식하는 자>에게 당했었지만, 성녀님의 도움으로 버틸 수 있었다.

    아마 교황님도 가능할 거고 추기경 중 몇몇도 가능할 거다.

    물론 완전한 해독은 불가능하다. 고작해야 삶을 연장하는 정도.

    녀석이 제국을 쑥대밭으로 만들다가 사망해, 침식의 영향 자체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나는 진즉에 황천길을 걷고 있었을 거다.

    “이게 상당히 지독한지라 공작님도 녀석과 마주칠 일이 있으면 그냥 도망가시는 게 나을 겁니다.”

    “당연히 도망쳐야지.”

    “그 괴물이 영지를 향해도?”

    “그럼 안 되고. 뭐 어쩌겠나. 내가 이쪽의 영주인데.”

    “귀족으로서의 책임을 지키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솔직히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야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걸 내가 봤기 때문이다.

    에이지 포리스는 시련, <침식하는 자>에게 도전했고 참패했다.

    녀석의 발걸음을 막을 수조차 없었다. 그만한 괴물인 거다.

    그리고 그건 가장 막아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벨리알이 본격적으로 활개 치고 다닌 게 에이지 포리스가 죽은 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걱정인가?”

    “예, 공작님처럼 훌륭한 분이 다치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군요.”

    “네 목숨이나 걱정할 것이지.”

    “그러니 이러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부하는 겁니다.”

    “미친놈이로구나.”

    원래 이런 일을 많이 하다 보면 사람이 미치고는 한다.

    어찌 아니겠는가. 내 몸 깊숙한 곳에 괴물이 숨 쉬고 있다는데.

    녀석이 자연사할 때까지 버티거나 그러지 못하거나.

    내게 남겨진 선택지는 그 둘뿐이다. 사실상 시한부나 마찬가지다.

    녀석이 죽을 때까지 침식을 견디지 못하면 내가 죽을 테니까.

    “그럼 말해봐라. 넌 누구냐?”

    “로스트입니다.”

    “그것 말고는?”

    “보다시피 사제지요. 이단심문관이기도 하고.”

    “만신전에는 그런 이름이 없다던데? 그건 어떻게 된 일인고?”

    “저런, 빠르기도 하셔라.”

    내가 셰이드와 거래했을 때 불안해하던 점이 그거였다.

    내가 만신전 소속이 아니라는 게 들켰을 경우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스케일이 다르다.

    마침 딱 좋은 재료도 있지 않나.

    “아는 분에게 물어보셨어야죠.”

    “……그래, 네 존재를 아는 사람이 만신전 내에도 적다? 내가 물어본 자가 누군지 알고?”

    “대충 주교님 중 한 분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공작이나 되면 그 정도 사람과 끈이 닿아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에이지 포리스가 사제를 싫어하건 말건 관계없이 그의 영지에도 신전과 교회는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주교라고 다 같은 주교는 아니다. 그런 암시를 했을 때 상대는 누구를 떠올릴까?

    “흠…….”

    나한테는 재료가 있다.

    바로 <침식하는 자>에게 침식당하고 있다는 재료 말이다.

    녀석과 마주쳤음에도 살아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에이지 포리스가 모를 리가 없다.

    그게 정화가 가능한 일이냐는 듯 물어본 것만 해도 그렇지 않나.

    에이지 포리스는 <침식하는 자>를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그 힘을 억누른 자가 있다. 그렇다면 그게 가능한 자는 과연 누굴까?

    -못할 건 없죠. 다만 그게 가능한 사람이 극소수일 뿐.

    재료는 갖춰졌다. 그 재료를 봤을 때 어떤 음식이 나올지 짜 맞추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당장에 눈앞에 밀가루와 달걀이 있고, 근처에 화덕까지 있다면 뭘 떠올리겠는가?

    “……귀찮은 일에 간섭했군.”

    열에 아홉은 빵을 생각할 거다.

    예상대로 에이지 포리스는 나를 교황 직속의 무언가로 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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