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라이안 남작가 습격 (2)
“깜장여우, 이제 나와라. 눈앞에 있는 것들은 모두 치웠으니.”
“앗, 네.”
타이탄의 말에 건물의 그늘 뒤에 숨어 있던 리네아가 쪼르르 달려 나왔다. 그녀는 우선 눈도 못 감은 경비들의 눈을 감겨주었다.
“왜 죽였는지는 묻지 않나?”
“죽을 만한 자들이었으니까요?”
“흠.”
그렇다고 해서 눈 하나 깜빡이지도 않는 건 어떤가?
타이탄이 보기에 그런 리네아의 모습은 조금 섬뜩했다. 마치 사람 흉내를 내는 무언가처럼 보인다.
화도 내고 감정도 있다.
하지만 가끔 인간을 인간처럼 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만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 뿐.
“왜 네놈도 동행한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군. 나 혼자면 더욱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을 텐데.”
“……타이탄 씨가 사람 얼굴을 외우지 못하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죽여선 안 될 사람까지 죽이면 큰일이라니까요?”
타이탄은 어깨를 으쓱였다. 할 말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타이탄에게는 아직 사람의 모습이 잘 구별되지 않는다.
“잡아라!”
“대가를 치르게 해!”
타이탄이 변명조차 하지 않고, 그걸 리네아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더니 저택 내부에서부터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슬슬 몰려드는군. 말해라, 저놈들 중 살려야 되는 건 누구지?”
“저 중에는 없어요.”
“그럼 죽여도 되나?”
“제 허락이 필요한가요?”
“아니.”
우득!
타이탄은 그제야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가 애용하는 망치가 둔탁한 광택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망치를 붙잡은 타이탄의 팔이 크게 부풀어 오른 순간.
“죽어라, 버러지들.”
콰아아아아아아앙!!!
우선 굉음이 들렸다.
그 뒤로는 바위와 돌조각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이어진다.
그리고 뒤늦게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뒤따라온다.
하지만 아직이다. 방금 전의 공격은 그저 문을 열기 위한 노크.
자신들을 가로막던 저택의 벽을 부숴버리기 위한 일격.
막아서려던 가문 내의 병사들은 휘말린 것에 불과하다.
쿵!
타이탄은 아까와 같은 신경질적인 모습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의 존재감이 둔중한 울림이 되어 뻗어 나갔다.
좌중이 침묵에 잠긴다.
“얼마 전, 사냥터에서 피 냄새를 맡았다. 나는 피 냄새를 좋아하지. 목숨을 걸고 싸운 흔적이니까.”
“저는 싫어요. 의사에게는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역시 누군가가 다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니까요.”
리네아는 다소곳한 모습으로 그런 타이탄의 뒤를 따라나섰다.
타이탄은 리네아를 지키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리네아 역시 그걸 알고 있다.
타이탄은 리네아를 껄끄럽다고 생각하고 리네아는 타이탄의 존재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하지만 전사가 아닌 이의 피가 흐르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선 안 될 일이지.”
하지만 그런 둘이라도 지금은 공통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게 어린아이의 피라면 더욱.”
타이탄이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도록 화를 냈던 건 그날, 마수 출몰지역에 흩뿌려져 있던 피가 어린아이의 피였기 때문이다.
“지켜야 할 이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 너희들의 피는…….”
퍽!
타이탄은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자들의 머리를 하나하나 망치로 깨부쉈다.
본디 그는 전의를 상실한 전사를 죽이지 않는다. 중요한 건 상대의 생사여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그가 하는 행동에는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었다.
타이탄은 새롭게 나타난 기사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근처의 병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실력이다.
하지만 타이탄은 오히려 잘 됐다는 듯이 웃으며 이를 갈았다.
“역겨운 냄새가 나는구나.”
상대에게 존중은 필요하지 않다. 상대는 전사가 아니다.
타이탄은 그들을 전사는커녕 사람으로조차 인식하지 않았다.
“인간을 사냥하는 인간들아, 이젠 네놈들이 사냥당할 차례다.”
상대는 사람이 아닌 짐승.
손속에 자비를 둘 필요는 없다.
우득!
타이탄의 근육이 다시 한번 부풀어 올랐다. 다만 이번에는 그 팔이 붙잡고 있는 게 망치가 아니라 창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타이탄은 과신하지 않는다. 적이 아무리 쓰레기라고 한들 자신이 그 모든 걸 간단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면 안 된다.
노려야 할 건 우두머리.
즉 기사들 한가운데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자.
콰르르릉!
마치 번개가 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타이탄의 창이 날아간다.
그의 체구에 맞춰진, 그렇기에 마치 기둥처럼 두터운 그 창은 순식간에 중앙을 돌파해 노리던 자의 몸에 틀어박혔다.
아니, 틀어박혔다기보다는 짓이겨버렸다고 하는 게 옳으리라.
“호오…….”
지휘관에 해당하던 기사는 그 불시의 일격에 사망했다.
사망했지만, 반응했다.
그럼에도 그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은 건, 피하는 게 아니라 막아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등 뒤에는 저택이 있다.
창에 마나도 실리지 않았다.
그로 인해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을 과신하고 말았다.
후웅!
타이탄은 그 즉시 뛰어들었다.
상대가 자신의 창에 반응한 거라면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막아내지 못했지만 반응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그가 가장 강한 기사였다는 점도 있지만, 나머지 기사들도 그에 못지않을 터.
그렇기에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상대의 지휘체계에 혼란이 잡힌 이 순간, 최대한 뒤흔들어야 한다.
전사이자, 사냥꾼.
전략적이면서도 감각적인 판단.
퍽!
그렇게 뛰어든 타이탄의 첫 번째 공격은 앞선 공격들과 달리 초라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당황하고 있는 기사 한 명의 머리를 날리는 데 필요 이상의 힘을 담을 필요는 없었다.
타이탄은 이미 살인을 저질렀다. 경비들의 머리를 부러트릴 때 인간의 강도가 얼마인지도 확인했다.
지금부터는 압도적인 힘이 아니라, 최소한의 힘으로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 집중한다.
펑!
타이탄은 아까 지휘관을 꿰뚫고 그대로 땅에 박혀 있던 창을 거칠게 뽑아 들었다.
흙과 자갈들이 함께 튀어나오면 일순 기사들의 시선을 가린다.
까앙!
“컥?!”
이번에는 타이탄의 망치가 아래에서 위쪽으로 휘둘러지며 상대의 복부를 강타했다.
튀어 오르는 흙과 자갈들의 흐름을 따른 절묘한 기습. 벌써 셋 이상의 기사가 허망하게 당했다.
후웅!
그렇게 세 번째 기사를 처리한 타이탄이 이번에는 창과 망치를 동시에 횡으로 휘두르며 회전했다.
닿는 것은 없었다. 아마 이 이상의 기습은 효과가 없으리라.
하지만 상황을 난전으로 만들어냈다. 상대들의 진형은 지휘관과 함께 박살 났고 나머지들은 체계적인 움직임을 잃은 오합지졸.
지금부터는 폭력으로 다스린다.
콰아아아앙!!
첫 번째는 기존에 선보였던 압도적인 힘을 담은 일격.
피했음에도 땅을 두드리는 충격파에 가장 가까이에 있던 기사가 정신을 잃고 날아간다.
푹!
그렇게 쓰러진 기사의 목덜미 사이로 타이탄이 던진 비수가 틀어박힌다. 압도적인 힘도, 정교한 기교도, 은밀한 기습도. 타이탄은 그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았다.
카가가가각!
타이탄은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검을 창대로 흘려냈다.
위력이 남달랐다.
타이탄이 알고 싶어 했던 오러라는 힘이 그 칼날에 맺혀 있었다.
물론 막아내기 직전까지 타이탄은 그게 오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측면으로 흘려낼 수 있었던 건 상대방의 얼굴에 확신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
“과연, 파괴적이군!”
흘려냈음에도 손바닥을 타고 오르는 저릿한 감각에 타이탄은 미소 지었다. 강력한 힘이다.
저런 비실비실한 기사가 휘두르는 검조차도 이런 위력이 실렸다.
나중에 자신도 그 힘을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어찌나 좋을까.
“하지만…….”
후우웅!
타이탄이 회전하며 망치를 휘둘렀다. 강력한 힘에 몸의 회전까지 더해진 망치가 오러가 맺혀 있던 기사의 검 위로 떨어졌다.
“당해내지 못할 힘은 아니다.”
까아아아앙!!
타이탄의 검이 오러가 맺힌 기사의 검을 산산조각 냈다.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기사의 몸통까지 파고든 망치는 이윽고 상대마저 산산조각 내버렸다.
어떠한 이적도 없이, 그저 육신의 강함만으로 만들어낸 현상.
“다음!!!”
타이탄은 기세 높게 소리 질렀다.
그 함성에 기사들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 잠깐의 사이에 절반이 넘는 기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전의가 꺾이는 것도 당연하다.
“다음이라고? 이 빌어먹을 괴물 새끼가. 잘도 해줬구나.”
하지만 꺾이지 않은 자도 있었다. 저택 내부에서 나타난 기사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였다.
그리고 그가 나타난 순간 분위기가 변했다. 타이탄은 절망감에 기죽어 있던 기사들에게서 묘한 기대감이 피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타이탄이 느끼는 상대의 기세도 앞서 처리한 기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인해 보였다.
“네놈은 누구냐.”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여기까지 와서 행패를 부렸나?”
“아니, 알 거 같긴 하군.”
아마 여기에 있던 모든 기사에게 가르침을 내리던 존재.
기사 가문으로 성장해온 라이안 남작가의 무력 그 자체.
“진짜 우두머리. 아닌가?”
타이탄이 때려죽여야 할 목표.
그에 중년의 기사가 삐뚜름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내가 바로 이 저택의 주인인 트로스 라이안이다.”
* * *
라이안 남작가의 습격이 행해지고 있던 때. 안타깝게도 버크는 저택에 있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날이 될 오늘의 교습을 위해 약속장소에서 로스트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자신의 저택과 그리 멀지 않은 장소에서 버크 라이안은 착잡한 마음으로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음?”
하지만 그렇게 기다리고 있던 그의 귓가에도 굉음이 들려왔다.
멀리서 들려오는 지진 같은 굉음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잠시.
지나가던 행인들의 대화가 버크의 귀에 들려왔다.
“그거 들었어? 라이안 남작가에 괴물이 나타나서 난리래.”
“그쪽에 기사들도 많잖아? 그런데도 이렇게 오래 간다고?”
지진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색한 엇박자의 진동.
때마침 들려오는 소문.
그리고 그 진동과 굉음의 중심이 되는 장소를 깨달은 순간.
“설마…….”
버크는 달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있던 위치에서 라이안 남작가까지 이어지는 최소한의 시간이 걸리는 길을 나아갔다.
골목과 골목 사이를 누비고, 낮은 담벼락은 뛰어넘으면서.
‘이 폭음은 뭐지? 폭격? 마법사? 설마 포리스 공작이……?’
버크는 초조함을 느꼈다.
멀리서도 보일 정도다.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솟아오르고 그 여파로 인해 저택의 측면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그의 오만하고 멍청한 아버지가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다.
새어머니와 이복형제들? 죽었다면 차라리 잘된 일.
오히려 박수라도 칠 일이다.
하지만 그의 여동생은 다르다.
버크의 유약하고 착한 여동생은 그에게 있어 유일하게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다.
그게 그가 아직도 증오스러운 라이안 남작가에 묶여 살아가고 있는 이유다.
“제발 무사하기를…….”
버크는 속도를 높였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저택의 정문이 보일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버크가 다음 골목에 들어섰을 때였다.
“뭣?!”
원래라면 탁 트여있어야 했던 길이 막혀 있었다.
반투명한 얼음의 벽이 차가운 한기를 흘리며 길을 막아서고 있다.
“이게 뭐야…….”
버크는 그제야 냉정해졌다.
영문 모를 섬뜩함이 흘렀다.
“큭?!”
위험하다.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과 동시에 버크는 되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고.
“…….”
그곳에서 새하얀 복장과 새하얀 머리, 새하얀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존재와 마주쳤다.
“버크 라이안, 라이안 남작가의 사생아이자, 5년 차 사냥꾼.”
“……너 뭐야?”
주변이 유난히 조용했다.
아무리 골목길이라곤 하지만, 아직 낮이었건만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자신과 여동생을 핍박하는 가족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복수하기 위해 돈을, 힘을, 권력을 키울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
“너 뭐냐고.”
“과연 그게 어떤 방법이었을까?”
사내는 버크 라이안에 대한 인적사항을 하나하나 늘어놨다.
“사냥꾼으로 돈을 벌고, 알렌 와이즈의 소개로 포리스 공작과 연결점을 얻고, 그에게 자비를 구하며 항소라도 할 생각이었을까?”
“그 미친 여자가 또 날 죽이라고 사주라도 한 건가?”
“아니면 조금씩 힘을 길러 트로스 라이안에게 정당한 결투라도 신청하려고 했을까?”
“너 같은 새끼를 내가 몇이나 치웠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이런 위협에 굴할 놈으로 보여?”
두 사람은 서로 맞물리지 않는 말을 늘어놓았다.
하얀 가면의 사내는 그저 버크의 상황에 대해 늘어놨고 버크는 지금까지의 참혹한 인생에서 몇 번이고 반복됐던 일을 의심했다.
그렇기에 눈치채는 게 늦어졌다.
“네가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역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어.”
“……로스트?”
눈앞의 사내가 익숙하다는 게.
그 새하얀 머리카락도, 무표정한 가면 너머로 보이는 금색 눈동자도. 버크가 알던 것과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달라서.
“그런데…….”
로스트는 손바닥 위로 신성력을 피워냈다. 누군가의 힘을 빌리기 위한 게 아닌, 그저 그 빛을 상대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단심문관은 감정을 내비쳐서는 안 된다. 그들의 일은 신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일이니까.
그러니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걸 위해 무표정한 가면을 쓰고, 마치 낙인처럼 역십자의 문양을 새기는 거다.
하지만 지금의 로스트의 목소리만은 그 규율을 따르지 못했다.
“마인만은 되지 말았어야지.”
“…….”
그건 씁쓸함이었다.
로스트의 빛은 버크를 비추고 있었다. 그래, 그저 빛일 뿐이다.
그런데도 버크는 그 빛이 눈 부시다는 듯, 거슬린다는 듯이 얼굴을 가리며 눈을 찌푸렸다.
그 손가락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가 어느새 밤색에서 피를 담아낸 듯한 붉은색이 되어 있었다.
마인은 힘을 사용할 때 눈동자가 붉게 물든다. 그게 그들을 확인하기 위한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로스트는 지금에 이를 때까지도 의심을 거두지 않았었다.
아직은 아닐 수도 있다고, 자신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다고.
아직 기회가 남았을 수도 있다고.
“너는…….”
하지만 지금 모든 게 확실해졌다.
버크라는 사람은 이미 죽었고, 그 껍데기는 마기라는 힘이 움직이고 있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걸.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쉽사리 이해할 수 있었다.
버크가 조금 전에 늘어놨던 말처럼 그는 몇 번이고 암살 위협에 시달렸던 것이리라.
그러니 힘이 필요했을 거다.
자신을 지킬, 자신의 여동생을 지킬, 그들에게 복수할 힘이.
“너는 차라리 억울한 피해자로 남았어야 했어.”
하지만 대가 없는 힘은 없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얻은 힘을 가족을 죽이기 위해 휘두르는 날이 반드시 올 거다.
“피해자? 피해자로 남으라고? 그냥 그렇게 당하고 있으라고?”
“…….”
버크는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상황이 어땠는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쏘아붙였다.
그건 버크가 수년간 억눌러왔던 감정이었다.
“네가 뭘 아는데. 그깟 정보 몇 개 알았다고 나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할 생각이야? 너는 그 경험 하나하나에 담겨 있던 우리들의 고통을, 감정을 아무것도 몰라!”
“그래, 내가 아는 건 고작해야 글로 된 정보 몇 줄뿐이지.”
버크는 감정을 담아 소리쳤다.
그에게는 아직도 생생한 일이었을 거다. 일개 시종들마저 자신을 무시하던 그 멸시의 눈빛을.
자신의 여동생이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꺼림칙한 눈으로 바라보던 다른 가족들의 태도를.
사생아라는 이유만으로 마주해야 했던 수많은 암살자를.
살아남기 위해 힘을 길렀을 때는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속박하기 시작하던 그 더러운 흉계들을.
감히 안다고 자신할 수 없는 것들이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점이 나한테도 있어.”
“개소리 지껄이지 마.”
지금이 아닌, 예전의 일이지만.
로스트는 버크의 친구가 됐었다. 그의 고민을 함께 공유했다.
그가 자신의 동생을 위해 얼마나 힘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네가 동생을 위해 모든 걸 받쳐왔다는 걸 안다. 그러니까 더욱 너는 마인이 되지 말았어야 해.”
“마인이라도 되지 않으면 지금까지 버틸 수도 없었어!”
“왜 버틸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지금보다 열약하던 그때에도 너는 악에 받쳐 살아남았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었어!”
그게 그저 가능성을 논한다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버크는 쉽사리 부정할 수 없었다. 확신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게 분명한 로스트가, 자신이 해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마인은 인간을 혐오한다.
그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해지는 충동이다.
“너는 편한 길을 찾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말았어.”
버크에게는 적이 많다.
아마 앞으로 누군가를 죽이게 되는 일이 찾아오게 될 거다.
죽여야 할 자를 죽였다.
하지만 그 감각에 망설임이 아닌 희열이 남는다면, 녀석은 복수자가 아니라 괴물이 되어버리는 거다.
“너는 이미 마인이 됨으로써 앞으로 펼쳐질 수 있었던 모든 미래를 자기 손으로 부숴버린 거야.”
어쩌면 노력 끝에 라이안 남작가를 탈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클레어의 병세를 낫게 할 단서를 찾아냈을 수도 있다.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다.
뭐든지 할 수 있었고, 뭐든지 실패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러한 가정들을 세우는 건 가능했다.
하지만 그 모든 가정은, 버크가 마인이 됨으로써 지워졌다.
“이 빌어먹을 개자식아.”
그러니 로스트는 움직였다.
그걸 위해 영혼을 판 어리석은 사내의 마침표를 찍어줘야 한다.
그게 한때나마 버크를 친구라고 생각했던 그가 친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