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이단심문관의 악마 사냥법-8화 (8/42)

8화. 셰이드 (2)

견디기 힘들 정도의 살기가 쏟아진다. 생각 이상으로 벅차다.

예상은 했지만, 당대의 셰이드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암살자임에도 이 정도라면 정면에서 붙어도 타이탄을 가볍게 사살할 수 있을 거다.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진정하지? 안 그래도 잡음이 끊이지 않는 걸 아는데, 스스로가 정한 규칙마저 어기려고?”

나를 바래다준 안내인조차 말하지 않았던가. 당대의 셰이드가 멋대로 업종 변경한 걸 받아들이지 못한 자들이 있다고.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셰이드의 뜻에 대놓고 반발할 수 있는 걸 보면 제법 세가 있을 거다.

“그쪽이 우릴 죽이는 것쯤은 간단한 일이겠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감각을 애써 무시한 채 평정을 유지한다.

눈을 감은 채 연초를 입에 문다.

그리고 신성 마법으로 불을 붙인 후 조심스럽게 눈을 뜬다. 시선 끝에 아른거리는 작은 불씨를 본다.

“그런데 그건 알고 있겠지? 암살자 수십이 달려들어 우리를 죽인다고 해도, 당신 딸 하나 데려가는 건 문제도 아니라는 거.”

손이 떨리고 있었지만 더 이상 셰이드에 대한 공포는 없었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제대로 된 협상을 시작할 때다.

차후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서라도 여기서는 이쪽이 우세하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

“아니, 설령 죽일 수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지. 타이탄 정도의 피지컬이라면 공격당한 순간 몸이 경직되는 거로도 사람 목을 간단히 부러트릴 수 있을 거야.”

“……나는 잘 모르겠군. 이렇게 날 자극하는 이유가 뭐지? 내가 마르만 되찾으면 언제든지 네놈을 죽일 수 있다는 걸 모르나?”

“타이탄, 팔 하나 부러트려.”

“아주 마음에 드는 제안이군!”

“그만!”

셰이드가 살의를 가라앉힌다.

이제야 제대로 대화를 해볼 생각이 든 거다. 정보 길드 정도라면 이단심문관에 대해서도 알 거다.

“우리가 협력 관계가 될지, 적대관계가 될지는 당신에게 달렸어. 나는 당신 딸에게 표식을 새길 수도 있었으니까.”

우린 이단을 처리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많이 준비한다.

개중에는 사제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새기는 것도 가능하다. 당장에 이전 마을의 여관에도 그 표식을 새겨둔 상태다.

설령 내가 죽는다고 해도, 다른 이단심문관들이 그 표식을 보고 달려들게 만드는 수단이다.

“저주를 걸 수도 있고.”

그 밖에도 악신의 신성 마법 역시 어느 정도 쓸 수 있다.

우리가 세상에서 그 존재를 지우고, 만신전에서만 행사할 수 있는 악신의 신앙이 있다.

그러한 저주들은 특히나 참혹하고 끔찍한 법이다.

“원하는 게 뭐냐.”

“장담컨대, 당신에게도 나쁜 거래는 아닐 거야. 만신전은 당신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원하거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여기서 협박을 통한 우위를 가져가는 건 좋다. 하지만 그게 다음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서로의 등을 찌를 생각으로 거래에 임했다가는 피곤해지니까.

그러니 나는 나에 대한 정보 대신, 셰이드가 가장 반길 만한 정보를 풀어놓을 생각이다.

미리 압도적인 우위를 점거한 상태에서 자비를 베푼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 그보다 더 좋은 그림이 달리 있을까.

“으아아아악!”

“마르?!”

상황이 정리돼갈 무렵 갑자기 마르가 비명을 질렀다.

황급히 돌아보니 타이탄이 마르의 팔을 부러트리고 있었다.

“뭐, 왜? 그렇게 보지? 부러트리라고 하지 않았나?”

저 당당한 모습을 보라.

이쪽 상황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는 증거다.

분위기 파악 못 하는 타이탄의 돌발행동에 셰이드가 손을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이게 무슨……?”

“어우, 미안하네. 얘가 원래 내 말을 잘 안 들어.”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 그렇게 노려보지 말고, 잠깐 보자.”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내가 네놈의 뭘 믿고?”

“아직 따님이 우리 손에 있는 거 같은데?”

“이 개새끼가!”

셰이드는 눈에 핏발까지 세우며 나를 노려봤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이어갈 수 없었다.

아쉽지만 별수 있겠는가.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아닌 이상 셰이드는 우리들에 대한 적대를 풀지 않을 거다.

“어디, 보자.”

“크응, 아, 아파…….”

마르가 칭얼거린다.

내가 알고 있던 ‘마르 셰이드’의 모습과 지금의 ‘마르’ 사이에는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엄청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던 사람으로 기억하는데 실시간으로 인식이 변하고 있다.

“음, 깔끔하게 부러졌네. 이 정도면 의사가 살펴보지 않고 내 선에서 치료할 수 있겠다.”

신성력에 의한 치유는 재생이다.

찢어진 상처를 치료하거나 부러진 뼈를 붙인다거나, 그런 일을 하는 데 신성 마법만 한 게 없다.

다만 뼈가 완전히 으스러지거나 내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을 품고 있을 때는 안 된다.

그때는 자칫 잘못하면 뼈를 이상한 방향에 붙게 하거나 병마를 키울 수도 있으니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의사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이게 세간에서 사제보다도 의사가 더 귀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치료 속도는 느릴지언정 가장 확실한 처방을 내릴 수 있으니.

“좋아, 됐네.”

신성력을 대가로 치유의 신, 파나케이아의 권능을 빌려온다.

별다른 문제 없이 부러졌던 팔이 붙자 마르가 기절하듯 잠든다.

“……긴장이 풀려서 잠든 것뿐이니까 걱정할 거 없어.”

타이탄에게서 마르의 신병을 빼앗아 셰이드에게 넘긴다.

이 이상은 상대를 자극해봤자 좋을 게 없다.

“크흑……. 마르으…….”

다 큰 양반이 저렇게 추하게 울 수 있다니 처음 알았다.

그게 최소 수십 명 이상의 암살에 성공했을 거라 추정되는 암살자들의 왕이라면 더욱.

“거봐, 내가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다니까? 방금 일이 고의가 아니었다는 건 이제 알겠지?”

“시끄럽다. 네놈과 만나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빨리 필요한 정보가 뭔지나 짖고 꺼져버려.”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감정 기복이 조금 심하시네.”

“짖고 꺼지라고!”

어르신 대접을 좀 해줘야겠다.

“뭐, 일단 들어보시죠. 제가 대가로 건넬 정보는 그쪽도 애타게 찾고 있는 게 분명할 테니까.”

그제야 셰이드가 나를 쳐다본다.

다만 흥미보다는 가소롭다는 감정이 더욱 짙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아내분과는 사이가 좋았겠죠.”

“…….”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살기가 몸을 찔러온다.

아무래도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만 할 거 같다.

조금이라도 더 뜸을 들였다가는 내 목이 하늘로 날아갈 거 같다.

“포자 마녀. 아내분을 살해한 자로 추정되는 마인의 명칭입니다.”

또 다른 별명으로는 ‘환란의 칼’이 있겠다. 메즈와 마찬가지로 벨리알이 자랑하는 대량 살육의 스폐셜리스트들 중 한 명이다.

“뭐……?”

“아마 아내분에게도 보라색 꽃이 피어있었겠죠. 마녀의 힘으로 피어난 꽃은 마기의 흔적이 남지 않습니다. 마기를 양분 삼아 자라나니까. 혹시라도 마인들을 용의선상에서 제외하고 있었다면 생각을 달리하실 필요가 있을 겁니다.”

내 말의 뜻을 이해한 셰이드가 손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한다.

“무, 무슨 정보를 원하지? 원하는 걸 말해! 빨리!”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까칠한 모습이었던 셰이드는 이제 나한테 매달리다시피 했다.

이 정보의 가치는 셰이드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보물보다도 값진 것이었을 거다. 아마 더한 것들이라도 요구할 수 있었겠지.

다만…….

“포리스 공작령에 터를 잡은 사냥꾼 한 명의 동향과 세계 중에 퍼져 있는 ‘시련’의 현 상태.”

“고작, 그런 걸……?”

“정보의 가치는 상대적이니까.”

나는 벨리알을 죽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사전작업까지 하고 있다. 물론 녀석은 어떠한 이유가 있더라도 막아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미래의 원한을 현재로 끌고 왔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미래의 은혜 역시 현재로 끌고 와야만 한다.

나 홀로 멸망해버린 세상을 품고 있다면, 그 풍경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말했잖습니까. 저는 셰이드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고.”

사람의 욕망이라는 건 눈앞에 가까울수록 함께 가까워진다.

셰이드에게 가장 필요한 정보.

그게 눈앞에 있다면 녀석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 상황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우위에 있어야 했다.

나한테는 뒷배랄 게 없다.

조금만 조사해도 내가 만신전의 사제가 아니라는 건 들킬 거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배경이 없는 내가 셰이드와 대등한 관계를 맺으려면 이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비로소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참으로 귀찮은 여정이었다.

*     *      *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일이었다.

회귀 전, 셰이드라는 조직이 어땠는지는 내 머릿속에도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셰이드는 대륙 제일의 정보 길드였다. 그건 그들의 정보력이 제일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괜찮으신가요?

-하핫! 성녀님이 직접 상처를 봐주는데 뭐가 문젤까. 이 정도 상처. 못 낫는 것도 아니라며?

-하지만 고통은 있잖아요? 요기, 요기! 아프죠?

그들은 만신전에서 원한 정보를 구하기 위해 어떠한 위험이 있다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른 무엇보다도 인륜을 져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거다.

그때도 지금과 같았다.

만신전에서 파악한 마인의 정보가 셰이드에게 도움이 됐고, 그 덕에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건 이번 정보에 대한 대가예요. 부족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괜찮대도? 우린 당신에게 이미 많은 걸 빚진 상태야.

본디 만신전에서는 포자 마녀에 대한 정보를 풀 생각이 없었다.

그걸 이용해서 셰이드를 이용할 생각만 가득했지.

어느 집단이든 꼭대기에 가까워질수록 인간성이 옅어진다.

셰이드도 그걸 알고 있었고 그런 상황마저 감당하려고 했었다.

그 정도로 간절했으니까.

하지만 성녀님의 생각은 달랐다.

성녀님은 만신전에서 파악한 포자 마녀에 대한 정보를 모조리 셰이드에게 넘겨버렸다.

그것도 아주 값싼 정보만 받고.

그건 자기 일보다도 먼저 타인을 위했던 성녀님의 온정이었다.

-됐으니까 정보나 확인해. 별로 좋은 내용은 아니니까.

-아, 네. ■■■ 씨? 먼저 확인해 주시겠어요?

마르 셰이드가 건네 쪽지에는 적들이 숨기고 있던 병력에 대해 적혀 있었다. 실로 터무니없는, 절망적일 정도의 숫자가 말이다.

-…….

세상이 얼어붙는 듯했다.

이건 단순히 병사의 숫자가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기 자체가 꺾여버릴 거다.

대적하는 것조차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게 될 거다.

-……차라리 도망치는 건 어떻소? 이미 아레스 왕국과 알프헤임이 잿더미가 되지 않았소.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지.

아니나 다를까, 그 보고를 들은 각국의 정상들과 만신전의 고위 사제들은 사기가 꺾여버렸다.

싸울 의지조차 잃고 자기 목숨을 챙기기 위해 백성마저 버리려고 하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야, 지랄이네. 진짜.

그때 그 정보를 가져온 당사자, 즉 그 군세를 직접 눈에 담은 마르 셰이드가 나섰다.

-우리가 정보를 구해온 이유는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한 거지 포기하라고 한 게 아니거든?

-셰이드의 길드 단원들이 많이 희생당했다는 건 알고 있소. 하지만 지금은 현실을 봐야…….

-이봐.

마르 셰이드는 현실을 논하는 사람의 눈앞에 있는 책상에 피고 있던 연초를 지져서 껐다.

-그거 알아? 내가 소싯적에는 손버릇이 참 나빴거든? 대단하다고 추켜세워줬으면 해서 그랬지.

삐뚜름한 미소.

-그래서 사고를 많이 쳤단 말이야. 거래 대상의 주머니를 털거나 뒤통수를 치거나 이런 것들.

초록색 외눈이 마치 상대를 잡아 죽일 것처럼 커진다.

-그런데 그때마다 아빠는 나한테 화를 내지도 않더라고. 뒤처리도 아빠가 했고 고개도 아빠가 숙였어. 웃기지 않아? 우리 아빠가 어디 가서 그렇게 고개를 숙여야 할 정도로 못난 사람이 아닌데.

마르 셰이드는 안대를 두드렸다.

그녀가 셰이드의 이름을 계승하게 됐을 때 함께 잃은 것이었다.

-그게 희생이야. 누군가를 위해 그 잘못마저 함께 감당하려고 하는 게 바로 희생이야. 아빠는 참 많은 걸 희생했지. 고작 내 앞에서 떳떳한 사람으로 있고 싶어서.

전대 셰이드에 관한 비화.

그리고 셰이드가 무얼 위해 정보 길드가 됐는지 드러난 대목이었다.

-그래서 사람처럼 살려고 했어. 그래서 지금 이런 개떡 같은 상황에도 그렇게 살아보려고. 나도 떳떳해야 할 거 아니야?

마르는 외투를 걸쳤다.

그리고는 간단한 손짓 몇 번으로 부하들을 불러 모았다.

-우린 희생당한 게 아니야. 우린 희생한 거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다.

그녀는 당당하게 회의장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뒤를 따라 수많은 정보원이 함께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셰이드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오랜 시간 쌓아온 이미지를 버렸다.

암살자든 정보원이든 차이가 없었다. 떳떳하게 사는 방식에는 그 어떤 허울도 의미가 없다.

그건 삶의 방식일 뿐이니까.

자신의 마음에 의혹이 없다면 그게 바로 떳떳하다는 증거니까.

-그 빌어먹을 악마의 군세? 머리를 잃었을 때 얼마나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지 확인이나 해봐. 우리가 오합지졸로 만들어줄 테니.

암살 길드 셰이드.

그들의 모습은 그 이후 볼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의 희생은 누구라도 확인할 수 있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그녀의 말처럼 마인들의 군세가 수만 많은 오합지졸로 변했으니까.

*     *      *

건물 외벽에 몸을 기댄 채 하늘을 올려다본다.

“오늘도 날씨가 좋네.”

나는 셰이드에게 필요한 정보를 요청한 직후, 내가 알고 있는 포자 마녀에 대한 모든 정보를 풀었다.

그래, 대가를 선불로 치른 거다.

그들이 정보만 홀랑 집어 먹고 사라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자신의 딸마저 놓고 허둥지둥 방을 뛰쳐나간 셰이드를 생각하다 연초를 꺼내 입에 물었다.

눈을 감고 불씨를 피워냈다.

슬그머니 눈을 떴을 때 보인 건 작은 불씨와 연기뿐.

“성녀님처럼 산다는 게. 참 힘듭니다. 이미 결정한 일인데도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비정해지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를 믿고 그 선택을 맡기는 선택을 했다.

나는 성녀님과는 다르다.

성녀님처럼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성녀님이 했던 것처럼 노력해볼 수는 있을 거다.

“이 정도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녀에게 떳떳하게 보일 수 있도록. 나는 그렇게 행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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